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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88화 (388/621)

388. 진정한 승자 (1)

비무대 아래에서는 구경꾼들의 웅성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사천당가에 저런 무사가 있었어?”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내가 아는 설산신녀는 사천당가의 무인이 아닌데 어떻게 된 일이지?”

“설마 가문을 속였겠어?”

그들의 대화는 묘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새로운 정보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자 위씨세가의 위지약은 고개를 갸웃했다.

비무를 포기한 당세령이란 여인도 처음 봤을뿐더러 지금 사천당가에 설산신녀란 소녀가 있다는 것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위지약이 입술을 달싹이며 오라비인 위지천을 바라봤다.

하지만 위지천은 벌써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에 위지약이 다급하게 외쳤다.

“오라버니!”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가만있어라, 지약아.”

“말씀드릴 게…….”

“다 알고 있다.”

위지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그가 걸어오는 모습에, 비무의 판정을 내리고 난 제강공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첫 비무를 사천당가에서 포기하고 두 번째 비무를 사천당가가 이겼으니 이제 마지막 대결을 펼칠 차례였다.

하지만 제갈공민이 아직 다음 참가자를 호명하기도 전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급하게 올라왔다는 것은?

지금 끝난 비무에 대해서 할 말이 있음이 분명했다.

제갈공민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

제갈공민의 표정이 싸늘했다.

제갈공민은 앞선 가문들의 선택에 대해서 찬사를 보냈다.

그들은 양보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희생에 대한 경의를 보낸 것이다.

그 뜻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은 무림세가들의 단합을 뜻했다.

그런데 그 단합을 위씨세가가 산산이 부숴 놓았다.

무가지회에서 이루어야 할 최고의 목적인 ‘단합’을 위씨세가가 무너뜨린 것이다.

제갈공민의 싸늘한 표정에도 위지천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위지천은 제갈공명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번 비무를 빨리 진행하고 싶습니다.”

“흠.”

제갈공민은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의 예상과는 완벽하게 벗어난 것이었다.

제갈공민은 위지천의 눈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위지천은 주위를 바라봤다.

설산신녀라는 아이가 사천당가의 소속인지 아닌지는 관계없었다.

남은 비무에서 자신이 승리하면 그뿐이었다.

더는 사천당가 쪽에 시선이 몰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위지천은 이미 사천당가 쪽에서 올라올 무인을 확인했다.

위지천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피워 냈다.

상대는 길에 떨어진 볼품없는 돌멩이에 불과했다.

자신의 행보에 방해가 되는 돌멩이는 그냥 걷어차면 되었다.

청화라는 아이의 활약은 보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무공은 자신의 동생인 위지약만도 못했다.

그렇다면 상대는 돌멩이가 아니라 지푸라기에 불과했다.

위치천의 득의만만한 모습에 제갈공민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제갈공민은 위지천을 불쌍하다는 듯 바라봤다.

청화는 누가 봐도 당무천 다음가는 독공의 고수였다.

중요한 건 그 독공의 깊이를 측정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저리 만만히 보다니!

제갈공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도 잠시,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외쳤다.

“다음 비무를 시작하겠소! 사천당가의 참가자는 비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오.”

제갈공민의 말에 청화가 비무대로 올라왔다.

청화는 이런 분위기가 어색한지 주위를 둘러봤다.

그 모습에 좌중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봐도 비무의 경험이 없는 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었다.

청화는 비무 경험이 없었다.

천독의 밑에 있을 때도 은밀한 작전을 위주로 적을 섬멸했지, 앞에서 이렇게 맞선 경우가 없었다.

청화의 심장은 쿵쾅대고 있었다.

앞에 우뚝 서 있는 건장한 체격의 무인, 즉 위지천을 두려워해서일까?

그것은 아니었다.

병장기가 허용되는 비무인 만큼, 사천당가의 특기라 하는 독도 암기도 사용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정도였다.

청화에게 가장 힘든 것은 힘 조절이었다.

공독지체라는 것은 독을 흡수하고 비워 내면서 점점 성장해 나가는 독인의 최고 경지였다.

청화는 그 그릇이 완성된 상태.

이제 독공의 절대적인 크기만 늘리면 되었다.

문제는 지금 상태가 그녀가 담아 놓은 독 기운을 비울 때가 되었다는 것.

만약 여기서 몸에 담아 놓은 기운을 모두 풀어놓는다면?

상대는 한 줌의 핏물이 될지도 몰랐다.

청화는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읊조렸다.

“돌고 돌아 태극이니……. 최대한 부드럽게.”

지금 그녀가 되뇌고 있는 것은 무당 태극권의 구결이었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그 정수를 깨치지 못했다는 무당의 기본 무공.

그녀가 이렇게 태극권의 구결을 되뇌고 있는 것은 현문의 충고 덕분이었다.

그녀는 비무 대회의 참가 여부를 알게 되자, 즉시 상대를 죽이지 않을 방법을 찾았다, 그때 현문이 나서서 태극권의 부드러움에 대해 조언했다.

강맹한 독 기운을 부드러움으로 다스린다.

이것이 청화가 이번 비무에서 이루어야 할 목표였다.

하지만 심장의 고동 소리는 점점 커졌다.

막상 부드러움으로 독 기운을 다스리려 하다 보니 익숙지 않았다.

과연 한빈이 옆에 있었다면 어떤 조언을 해 주었을까?

청화는 자신도 모르게 하북팽가의 무사들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을 바라보던 청화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팽혁빈의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분명히 한빈이었다.

청화를 바라보는 한빈은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청화는 눈을 가늘게 뜨며 한빈의 입술에 집중했다.

분명 뭐라 말하고 있었다.

한참을 보던 청화가 눈을 크게 떴다.

한빈이 전달하려는 말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한빈은 분명 ‘죽여!’라고 말하고 있었다.

청화의 표정은 서서히 본래대로 돌아왔다.

이제 안정을 찾은 것이다.

청화에게 한빈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한빈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것은 바람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그저, 언제 나타날지가 궁금했었다.

그런데 자신이 가장 필요할 때 나타나자 이제 마음의 균형을 찾은 것이다.

청화의 변화무쌍한 표정을 보던 위지천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마 지렸다는 표현은 저 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천당가의 다른 이가 나왔다면 이렇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꺾듯 한 손으로 제압할 수 있는 상대가 나오자,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그때 제갈공민의 외침이 비무대 위에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위씨세가와 사천당가의 마지막 비무를 시작하겠소!”

그 외침에 위지천은 청화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터벅터벅.

한 발 한 발에 내공을 담아서 걷자, 비무대 위가 거대한 북이 된 것처럼 울렸다.

쿵, 쿵.

청화는 자신이 가두고 있던 독기를 줄기줄기 피워 냈다.

동시에 청화의 주변에 서늘한 바람이 돌기 시작했다.

그 바람은 바닥에 깔린 먼지와 낙엽을 담고 청화의 주변을 맴돌았다.

미세하게 흐르는 보이지 않는 기운에, 세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건 뭐지? 마치…….”

“뭔가 도가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그들의 말은 정확했다.

청화의 몸 주변에 미세하게 흐르는 기운은 태극의 묘리를 담고 있었다.

그때였다.

천천히 다가가던 위지천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생겼다.

누가 본다면 빗물이 고일 듯이 깊은 골이었다.

거기에 그의 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내공을 실어 걷던 그의 기세는 어디 가고 세찬 바람을 맞닥뜨린 것처럼 걸음이 느려졌다.

“저건 대체…….”

그는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그는 거대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십대세가의 대표들에게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기세였다.

위지천은 그것이 청화가 내뿜는 기세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위지천은 검을 뽑았다.

스릉.

검집을 바닥에 던진 그는 검을 양손으로 잡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묘하게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위지천은 흐릿하게 보이는 상대의 그림자에서 아비인 위상호가 기세가 느껴졌다.

순간 위지천은 이를 악물었다.

아비인 위상호는 위지천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몇십 년이 흘러도 넘을 수 없는 철옹성.

그런데 왜 상대에게서 그런 기세가 느껴진다는 말인가?

분명 이건 착각이었다.

그때였다.

위지천은 고개를 갸웃했다.

상대와의 걸음은 분명히 열 걸음 정도였다.

자신이 이제까지 상대를 향해 나아간 걸음은 오십 걸음도 넘었다.

순간 위지천의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비무대 아래에 있던 이들은 묘한 비무의 양상에 고개를 갸웃하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왜 가만히 있지?”

그들이 보기에 위지천은 검을 굳게 잡고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청화가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청화는 원래 서 있던 그 자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을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모두가 둘의 모습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였다.

위지천의 귓가에 전음이 들려왔다.

-양보하여라.

위지천은 그 음성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것은 자신의 아비인 위상호의 음성이었다.

전음이 머릿속에 울리자 위지천은 현재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상대의 기세에 갇혀 석상처럼 서 있었음을 말이다.

그때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훗날을 도모하거라.

분명 자신의 아비인 위상호의 목소리였다.

위지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있을 때 전음이 이어졌다.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잘 들어라. 너는…….

전음을 이해한 위지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입가에 묘한 웃음을 피워 올렸다.

그것도 잠시, 위지천은 앞으로 내민 검을 늘어뜨렸다.

툭.

검 끝이 바닥에 닿았다.

순간 위지천이 입을 열었다.

“내가 졌소. 우리 위씨세가도 하북팽가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다만, 젊은 혈기에 사천당가의 무공을 견식하고자 잠시 도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였소이다.”

그는 청화에게 포권한 후 몸을 돌려 나갔다.

그 모습에 구경꾼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위씨세가가 마지막에 보여 준 모습이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역시 십대세가답군.”

그 말을 시작으로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러게 말이야. 그럼 사천당가가 비무에 올라간 것인가?”

“그러게 말이야. 그럼 사천당가가 다음 대결의 승자와 자웅을 겨루면 이번 대회도 끝나겠군.”

그 모습에 제갈공민은 헛웃음을 참았다.

군중들의 생각이란 그만큼 단순했다.

고개를 가볍게 흔든 제갈공민이 외쳤다.

“사천당가의 승리를 선언하는 바이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외쳤다.

“바로 다음 비무를 진행하겠습니다. 하북팽가와 산동악가는 비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오.”

그 외침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팽혁빈이었다.

팽혁빈은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다들 하북팽가에 경의를 표한 후 양보하며 비무를 포기하는 상황이었다.

저 위에 올라가서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할까?

상대의 포기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까?

여러 가지 변수가 그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어제 겪었던 아수라장만큼이나 팽혁빈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 상황에서 한빈이 나타나자 그의 혼란은 더욱 커진 것이다.

한빈의 숭고한 희생으로 인한 양보였다.

그런데 한빈이 이렇게 멀쩡하게 돌아왔으니 앞에서 양보한 가문들은 뭐라고 할까?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팽혁빈이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제가 올라가겠습니다, 형님.”

“네가 올라가겠다는 건…….”

“저 때문에 엉킨 상황이니 제가 푸는 게 맞을 듯싶습니다.”

“흠, 그럼 부탁하마.”

“네. 감사합니다, 형님.”

한빈은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저벅 비무대로 올라가는 한빈.

평소 입던 붉은 무복이 아니라 다른 무사와 같은 회색 무복을 입은 한빈을 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먼저 올라와 있던 산동악가의 악비광은 한빈을 바로 알아봤다.

“형님…….”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빈이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눈짓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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