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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82화 (382/621)
  • 382. 계가(計家) (10)

    상대의 검이 정확히 심장을 노린다.

    암제는 재빨리 만월로 상대의 검을 쳐 냈다.

    휙.

    암제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만월이 허무하게 허공을 스쳤기 때문이다.

    순간 뒤쪽에서 예기를 느낀 암제가 재빨리 호신강기의 범위를 넓혔다.

    촤르륵.

    순간 피어나는 무형의 기세.

    팅!

    한빈의 용린검이 암제의 호신강기에 튕겨 나갔다.

    암제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화르륵.

    불꽃이 점점 거세진다.

    암제는 재빨리 호신강기로 불꽃을 감쌌다.

    촤르륵.

    하지만 불꽃은 줄지 않았다.

    그의 상체가 기름 끓는 소리를 내며 타고 있다.

    지글지글.

    암제는 자신의 상태를 다급하게 살폈다.

    강렬한 불꽃 덕분에 자신의 상태를 살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호신강기로 불을 감싸면 화력은 힘을 잃기 마련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불꽃은 자신의 옷을 지글지글 태우며 피부로 옮겨 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뒤로 물러난 한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영감, 내가 이번에는 돈 좀 썼어.”

    “돈이라…….”

    “영감이 묻어 둔 돈이 좀 있더라고.”

    “설마…….”

    “그래. 그 돈으로 해남에서 난다는 흑유를 좀 많이 사 왔지. 영감 몸에 듬뿍 발라 준 게 해남의 특산물이야.”

    순간 암제의 기세가 전과는 달라졌다.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피부가 타는 것도 잊고 한빈을 노려봤다.

    해남에서 난다는 흑유가 얼마나 비싼지는 알고 있었다.

    진시황이 주먹만 한 호리병에 든 흑유로 삼천 병사들이 이동하는 길을 사흘 동안 밝혔다는 일화가 있다.

    흑유는 그 정도의 화력을 지닌 물건이었다.

    암제는 호신강기를 자신의 살갗으로 집중했다.

    지글지글.

    흑유는 호신강기 위에서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어찌나 불꽃이 강렬한지 암제의 상의는 벌써 한 줌 재가 되었다.

    “네놈은 기회를 잃었다.”

    “무슨 기회?”

    “편히 죽을 기회 말이다.”

    “어차피 영감은 나한테 비밀을 알아내야 하잖아. 그 비밀을 알아내려면 내 목숨은 붙여 둬야 할 거고. 그런데 무슨 편하게 죽여 준다고 선심 쓰는 척하고 있어? 날 잡으면 어차피 고문할 거잖아.”

    “흠, 잘 알고 있군.”

    “나도 영감을 잡으면 고문을 할 거거든. 금선도 목이 달아났고 지금은 잔당이 어디 있는지 토설할 만한 사람이 영감 하나잖아. 서로 피차일반이니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말을 마친 한빈이 등에서 검 하나를 잡았다.

    오른손에는 용린검, 왼손에는 월아를 든 상태.

    한빈은 재빨리 초식을 떠올렸다.

    ‘부창부수.’

    용린검을 든 손으로는 기본적인 용린검법의 초식을 펼치고 다른 손으로는 하북팽가의 절기인 오호단문도를 떠올렸다.

    순간 용린검과 월아가 서로 공명을 한다.

    위이잉.

    양손에 검을 든 한빈의 모습에 암제가 흥미롭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음, 재미있는 아이구나.”

    말을 마친 암제는 눈을 빛냈다.

    동시에 묘한 일이 일어났다.

    암제를 뒤덮고 있는 불꽃의 형태가 변했다.

    이전에 불꽃이 자연스럽게 일렁이던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호신강기처럼 암제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순간 한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대체 어떻게…….”

    그 모습에 암제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화(火)의 기운이 필요한 내게 그 기운을 전해 줬으니 너를 칭찬해 주고 싶구나. 덕분에 단전에 기운이 차오르는구나. 내가 왜 화룡편을 들고 다녔다고 생각하느냐?”

    “화의 기운이라…….”

    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암제를 관찰했다.

    한빈이 파악해야 할 것은 하나였다.

    그것은 허세이냐, 아니냐였다.

    한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꽃이 암제의 단전과 공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기운이 차오르는 속도는 미미했다.

    쉽게 말하면 물레방아가 돌기 직전인 것이다.

    물레방아에 물이 떨어지면 처음에는 천천히 돌다가 일정 궤도에 올라야 정상 속도를 찾는다.

    암제의 혈맥이 흡수하는 화의 기운은 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암제는 소모했던 내공을 모두 회복할 터.

    한빈은 지금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미리 만들어 놓은 비밀 통로로 피하든지.

    아니면 하나 남은 천급 구결을 위해서 암제와 한판 붙든지 말이다.

    만약 후자라면 반 시진 안에 승부를 봐야 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한빈에게는 불리하니 말이다.

    한빈은 재빨리 달려들었다.

    ‘일촉즉발!’

    용린검이 푸른 검기를 뽐내며 암제에게 달려들었다.

    챙!

    암제가 아무렇지 않게 용린검을 튕겨 내자 이번에는 월아가 암제의 목을 노리며 예기를 빛냈다.

    챙! 챙!

    암제의 몸에서 피어나는 불꽃보다도 강렬한 빛이 둘 사이에 쉴 틈 없이 피어났다.

    그때였다.

    암제가 나지막이 외쳤다.

    “네 목숨을 앗아 갈 초식을 말해 주마!”

    “고맙네, 영감.”

    “화룡난화!”

    순간 암제의 단전에 있던 진기가 그의 만월로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모든 불꽃도 암제의 손끝으로 모였다.

    암제는 뒤로 물러나며 만월을 날렸다.

    만월이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한빈을 향해 달려들었다.

    챙. 챙.

    한빈은 만월을 쳐 내며 암제에게 뛰어들었다.

    한빈은 암제가 이번 수법을 왜 ‘화룡난화’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용이 만들어 낸 꽃잎이 앞을 빽빽하게 막고 있다.

    무림의 고수들에게 최선의 방어가 무엇이냐를 물어보면 백이면 백 공력이라고 말한다.

    빈틈없는 공격 덕분에 한빈이 공격이 들어갈 틈이 없어졌다.

    픽!

    한빈의 왼쪽 어깨에 작은 자상이 생겼다.

    픽!

    한빈의 허벅지에도 작은 혈선이 생겼다.

    한 개의 만월이 마치 만 개의 검날처럼 보이는 것이 화룡난화의 초식.

    하지만 한빈은 물러서지 않았다.

    살갗이 갈라지는 상처 정도는 별것이 아니라는 듯 깊게 들어오는 공격만 쳐 내며 암제를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 법이 아니던가!

    한빈의 붉은 무복은 더욱 붉은 혈색으로 물이 들었다.

    그 모습에 암제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한빈의 모습이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화룡난화의 초식에는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범위였다.

    일정 범위를 벗어나서 기다리는 적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본래 암제는 상대를 물린 후 시간을 벌려고 했다.

    시간만 있다면 내공을 모두 회복한 다음에 단숨에 상대를 박살 낼 방법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검기에도 아무렇지 않게 걸어오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그래도 몸을 사렸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암제는 저런 미친놈은 처음 봤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몸을 던진다는 말인가?

    무림을 위해서?

    아니면 가문을 위해서?

    이제까지 상대한 것으로 보아, 놈은 강호의 도리와는 거리가 먼 놈이었다.

    암제는 한빈이 이리 물러나지 않고 달려드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자신의 목을 노리고 악귀처럼 달려드는 상대를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은 암제의 착각이었다.

    한빈은 오직 한 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암제의 목이 아니었다.

    바로 천급 구결이었다.

    저 구결만 있으면 암제와의 정면 승부에도 밀리지 않으리라는 것이 한빈의 예상이었다.

    픽! 픽!

    한빈의 온몸에 비집고 들어오는 검날의 향연.

    그때였다.

    한빈의 신형이 허공에서 갈기갈기 찢겼다.

    휙, 휙. 파팍.

    암제가 눈을 크게 떴다.

    악귀처럼 눈을 뜨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상대가 갑자기 힘을 잃고 갈기갈기 찢어지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픽!

    암제의 등이 따끔했다.

    암제는 재빨리 허공에서 무수히 많은 꽃 모양의 검기를 만들어 내는 만월을 회수했다.

    만원을 잡은 암제는 재빨리 뒤를 돌았다.

    그러고는 만월로 아래를 내리쳤다.

    만월이 머금고 있던 화룡난화의 기운이 한곳으로 몰렸다.

    팡!

    만월이 지나간 자리에는 큰 구덩이가 생겼다.

    암제는 재빨리 왼손으로 다시 삼매진화의 불꽃을 일으켰다.

    왼손에 남아 있던 흑유에 불이 붙자, 그의 왼손은 횃불이 되었다.

    큰 구덩이 안은 휑했다.

    그렇다면?

    암제는 조금 더 뒤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누군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고 있었다.

    착.

    그러고는 암제를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암제는 황당한 듯 상대를 바라봤다.

    상대는 상의를 벗어젖힌 채 보따리를 등에 메고 있었다.

    한빈이 사용한 방법은 금선탈각이었다.

    한빈은 금선탈각의 수법으로 만월이 만들어 낸 꽃 모양의 검기를 아무 저항 없이 지나올 수 있었다.

    대신 상의는 만월이 만들어 낸 빽빽한 검기에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졌다.

    금선탈각과 반박귀진의 수법이 암제로 하여금 등을 내주게 만들었던 것.

    암제는 자신의 등 뒤에서 흐르는 뜨끈한 핏물을 느낄 수 있었다.

    암제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비웃듯 한빈이 묘한 웃음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도 암제의 착각이었다.

    한빈은 암제를 보고 웃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천급 초식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획득하셨습니다. 역지사지는 이화접목의 수법인 자승자박의 상위 초식입니다. 이화접목은 상대의 힘을 이용해서 상대를 누르는 수법입니다. 공격의 네 배를 상대에게 돌려줍니다. 역지사지는 공격을 돌려줌과 동시에 상대의 초식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열두 시진에 한 번 펼칠 수 있습니다. 필요 공력 오십 년.]

    한빈이 웃고 있던 이유는 천급 초식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한빈의 눈썹이 반달 모양이 되었다.

    정말 천급 구결다운 초식이었다.

    상대의 공격의 네 배를 돌려준다라?

    어떤 고수가 쓰러지지 않겠는가?

    그것도 잠시, 한빈은 고개를 저었다.

    이 천급 구결은 때에 따라서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적이 만약 일 할도 안 되는 힘으로 공격해 온다면?

    되돌려 줄 힘이라고 해 봤자 사 할에 불과하다.

    한빈은 암제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꼭 힘으로 암제를 제압할 필요는 없었다.

    한빈은 차선책을 택하기로 하고 암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보자고.”

    “네놈…….”

    암제는 말을 맺지 못했다.

    한빈이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순간 암제는 이를 악물었다.

    세상에 태어난 이후 이렇게 분했던 적은 없었다.

    황위를 앞에 두고 배신당할 때보다도 더 분했다.

    암제는 모든 내공을 다리에 집중했다.

    그러고는 왼손을 앞으로 뻗은 채 한빈을 쫓기 시작했다.

    순간 암제의 몸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내공으로 화기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순수한 분노로 불꽃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암제는 거대한 횃불 자체가 되어 한빈을 쫓기 시작했다.

    어찌나 불꽃이 강한지 암제가 지나는 통로는 온통 그을음으로 가득 찼다.

    * * *

    한빈은 만독 비고와 연결된 통로의 앞에 서 있었다.

    거대한 돌이 굴러와서 막힌 통로였다.

    사천당가의 담장 바로 밑과 가까운 곳이었다.

    한빈의 계획은 간단했다.

    비밀리에 만들어 놓은 통로로 빠져나간 후 이곳을 무너뜨린다는 것이었다.

    만일을 위해 심미호가 곳곳에 진천뢰를 묻어 놓은 상태였다.

    아무리 강한 무공의 고수라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호롱불에 불과한 법이었다.

    한빈이 입구 쪽에서 문을 열기 위해 장치를 찾고 있을 때였다.

    한빈의 귀에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치지직.

    치지직.

    한빈은 고개를 갸웃하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봤다.

    순간 한빈은 헛숨을 들이켰다.

    “헉.”

    천장에서 두 가닥의 심지가 불꽃을 내며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심지는 이곳을 무너뜨리기 위해 묻어 놓은 폭약과 연결된 것이 분명했다.

    한빈은 재빨리 위쪽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그때 뒤쪽에서 거대한 기세가 가까워졌다.

    그 기세의 중심에서 암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놈!”

    그 말과 함께 만월이 검명을 토해 냈다.

    지징지징.

    한빈을 향해 만월이 날아올 때, 암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화룡점정이라는 초식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지울 수 있지.”

    암제의 말을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보통 무인이라면 그 기세만으로도 일 초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빈은 재빨리 주변을 살피는 동시에 용린검을 내뻗었다.

    “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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