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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76화 (376/621)

376. 계가(計家) (4)

눈을 크게 뜬 무사가 말했다.

“헉, 자네도 핏물이 비치네.”

“자네 눈이 잘못된 것 아닌가? 내 어깨가 아니고 자네 눈에서 피가 나고 있는 걸세!”

“내 눈에…….”

무사는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감싸 쥔 그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터져 나왔다.

순간 그는 비명을 질렀다.

“아악!”

그 비명은 그 무사만의 것이 아니었다.

동창의 무사들 사이에서 비명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다.

아악!

윽.

비명과 동시에 그들은 자리에 쓰러졌다.

털썩.

어떤 이는 왼팔로 자신의 오른팔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또 다른 이는 목을 감싸 쥐고 터져 나오는 피를 막으려 애쓰고 있었다.

상처 부위는 다르지만, 서창휘가 던진 암기가 스쳐 지나간 자리에 있던 동창의 무사들은 모두가 나뒹굴었다.

가장 앞에 섰던 서창휘의 호위 무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덜렁거리는 자신의 오른팔을 보고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호위하고 있는 서창휘가 저런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니!

호위 무사는 서창휘의 근처를 바라봤다.

목이 잘린 시체는 둘이었다.

하나는 금와 상단의 상단주 금선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자신과 함께 서창휘를 호위하던 다른 무사였다.

그 무사는 동창에 몸을 담고 형제처럼 지내던 이였다.

호위 무사는 일단 모두에게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는 팔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저자는 가짜다!”

그 외침에 몸이 온전한 동창의 무사들이 검을 뽑았다.

스릉.

스릉.

여러 개의 검신이 달빛을 반사하자 그 주변은 은하수가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때 십대세가의 대표들이 재빨리 그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 중 제갈공민은 재빨리 동창의 무사들에게 외쳤다.

“뒤로 물러나시오! 당신들이 제압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오!”

그 외침에 동창의 무사들은 십대세가의 대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때였다.

서창휘가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너희의 목숨을 거두지 않았는지 아느냐?”

그것은 동창의 무사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

하지만 그들 중 대답하는 자는 없었다.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나기도 바빴기 때문이다.

호위 무사만이 이를 악물고 서창휘를 바라봤다.

“대체 당신은 누구요?”

서창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단 며칠이지만, 내 수발을 들어 준 것에 대한 보답이다. 근맥이 끊어져 앞으로는 칼질을 못 할 테지만…….”

제갈공민이 그의 말을 끊었다.

“동창의 서 제독이 아니라면 대체 네놈은 누구냐!”

그 외침에 서창휘가 제갈공민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른의 말을 끊다니 참, 어이없는 아이로군.”

말을 마친 서창휘의 손에서 한 줄기 섬광이 날아갔다.

휘릭.

그 섬광은 제갈공민을 향해 날아갔다.

제갈공민은 재빨리 검으로 그 섬광을 쳐 내려 했다.

탁!

그러나 제갈공민은 섬광을 쳐 내는 데 실패했다.

그 섬광에 담긴 기운은 노도처럼 제갈공민의 검을 밀어붙였다.

파박.

그 옆에 있던 남궁장천이 검으로 섬광을 찔렀다.

슉!

순간 맞물린 세 개의 힘이 공명했다.

팡!

섬광이 다시 서창휘에게로 돌아갔다.

서창휘는 맨손으로 초승달 모양의 반월도를 잡았다.

순간 제갈공민이 피를 토했다.

쿨럭.

남궁장천이 제갈공민은 부축하며 물었다.

“괜찮은가?”

“저는 괜찮습니다. 저자의 내력이 심상치 않으니 협공을 해야 할 듯싶습니다.”

제갈공민의 말에 남궁장천은 주변의 다른 고수들과 눈을 마주쳤다.

순간 눈빛을 주고받은 무림세가 고수들이 서창휘를 향해 짓쳐 들었다.

남궁장천은 검을 길게 앞으로 뻗으며 일직선으로 서창휘를 향해 날아갔다.

파박.

악소천도 창날을 앞으로 세우고 화살처럼 달려들었다.

황보만청과 서문무결 그리고 나머지 십대세가의 대표들이 모두 서창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뒤쪽에서 지켜보던 나머지 인원들도 한꺼번에 서창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림세가의 반역자와 금선의 수하들을 지키는 인원만 빼고는 모두 병장기를 고쳐 잡고 한 곳을 향해 짓쳐 들었다.

“와아!”

뒤쪽에서 달려오는 인원들은 함성까지 뱉었다.

파박.

앞쪽에서 달려가는 십대세가의 고수들이 내뻗은 병장기 소리가 파공성을 일으켰다.

슈웅!

그중 가장 앞에 선 것은 남궁장천이었다.

다섯 걸음.

네 걸음.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은 제갈공민.

제갈공민은 머릿속으로 잠시 뒤의 모습을 그려 봤다.

이 정도의 고수가 한 번에 달려든다면 아무리 무위가 뛰어난 고수라도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이제 한 걸음.

제갈공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상대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쿵!

서창휘가 오른발로 바닥을 찍었다.

땅이 흔들릴 정도의 강력한 진각.

모두는 진각을 밟으며 앞으로 튀어나오는 서창휘를 경계하며 병장기를 고쳐 잡았다.

그때였다.

서창휘의 신형이 묘하게 방향을 바꾸었다.

그는 무림세가 고수들을 향해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도리어 몸을 뒤쪽으로 날렸다.

그가 향한 곳은 비무대 쪽이었다.

휘릭.

서창휘는 몸을 날려 비무대 위로 착지했다.

탁.

그 모습에 제갈공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기세만 보면 무림세가 대표들의 목을 당장 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기세등등하던 자가 갑자기 뒤로 물러난다라?

제갈공민이 의문을 피워 올릴 때, 서창휘가 입을 열었다.

“아이들아, 나는 몰매를 맞기는 싫단다. 여럿이 하나를 패는 것은 강호의 도리가 아니지.”

“음.”

제갈공민은 침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서창휘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덤빌 테면 한 명씩 덤비거라. 그럼 내가 상대해 주지.”

“…….”

제갈공민은 아무 말 없이 비무대 위에서 버티고 있는 서창휘를 바라봤다.

정말 상대하기 까다로운 자였다.

저 정도의 경지라면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어야 하는데, 적당히 물러설 줄 아는 자였다.

서창휘의 얼굴을 한 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만약 저자가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저자를 잡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제갈공민이 상대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서창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얼마 전까지는 중원을 내가 집어삼킬 생각을 했지. 하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내가 모르는 은둔 고수가 많더군. 그래서 나는 생각했지…….”

서창휘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봤다.

마치 추억에 잠긴 듯 그는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살면서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의 멱을 따기로 했지.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천하제일이 되지 않겠어? 정파에서 힘 좀 쓴다는 놈들도……. 무림삼존도……. 그리고 황제까지. 언젠가는 내 손에 목이 떨어지겠지.”

“무엄하다!”

십대세가와 같이 그에게 달려들던 강유찬이 외쳤다.

서창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무엄하다고? 과연 네놈들이 그런 말을 자격이 있을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놈들은 승부를 받아 주겠다.”

“…….”

“한 명씩 올라오도록. 하지만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놈이 달려들면 나는 오늘은 이만 여기서 사라지겠다.”

“대체 네놈은…….”

제갈공민은 말을 맺지 못했다.

서창휘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기 때문이다.

“쉿!”

그 소리에 무림세가의 고수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서창휘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챙!

비무대 위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챙!

같은 소리가 또 한 번 울려 퍼졌다.

그러고는 다시 잠잠해졌다.

순간 제갈공민은 눈을 크게 떴다.

비무대 위에 누군가가 서창휘와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십대세가의 대표 중 하나가 외쳤다.

“빈아!”

그는 팽대위였다.

지금 비무대 위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한빈이었다.

“팽 공자가 왜 혼자 저기에…….”

아래쪽에서 지켜보던 광개가 놀라 검지로 비무대 위쪽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악비광도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대체 왜 팽 형님이 저기에……!”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제갈공민은 재빨리 수신호를 보냈다.

비무대를 포위하라는 신호였다.

병진을 이루어 포위하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순식간에 그들은 비무대를 포위했다.

하지만 서창휘는 아무렇지 않게 코웃음 쳤다.

“여러 놈이 한 명을 공격하는 것은 정파 놈들의 버릇인가? 개 버릇 남 못 준다더니…….”

서창휘의 말에 아래쪽에서 비무대를 포위하고 있던 무림세가의 고수들은 이를 박박 갈았다.

그때였다.

뒤쪽으로 잠시 물러나 있던 한빈이 서창휘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손을 툭툭 털었다.

“영감, 죽다 살아나더니 제법 실력이 늘었나 봐.”

“그러지 않아도 네놈부터 찾으려 했는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왔구나.”

서창휘가 눈매를 좁혔다.

그 모습에 한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 발로 찾아온 건 영감이지, 내가 아니야. 진짜 감쪽같은 변장술이었어. 오죽하면 내가 못 알아볼 정도였다. 암제.”

“용케 날 알아봤군.”

“내가 어떻게 알아봤는지 궁금하지 않아?”

“어떻게 날 알아봤느냐? 아이야.”

“에이, 그건 비밀이야.”

한빈은 씩 웃으며 검지를 살짝 흔들었다.

사실 한빈도 놀란 상황이었다.

한빈은 상대가 암제라는 것에 대해 반신반의했었다.

처음에 의심한 것은 바로 천급구결 때문이다.

천급 구결을 나타내는 점이 서창휘의 등 뒤에서 일렁이고 있자 한빈은 의심을 시작했다.

한빈은 조용히 다가가 천급 구결을 취하기 위해 그를 암습했다.

그러나 암습은 실패로 돌아갔고, 지금 이렇게 비무대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천급 구결을 가진 다른 고수가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두 번의 격돌로 한빈은 그게 암제라는 것을 거의 확신했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 한빈은 넌지시 떠봤다.

그리고 한빈은 이제 그가 암제라는 것을 확인했다.

문제는 그가 어떻게 살아났는지는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한빈은 용린검의 반쪽을 그의 심장 깊숙이 박아 넣었었다.

심장이 뚫리고 살아남았다는 자는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눈앞에 있었다.

한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은 잠시 의문을 뒤로 밀어 둬야 한다.

적을 앞에 두고 병장기를 맞대고 있는 상황.

상대와 자신의 무위를 측정해 봐야 할 때.

한빈은 입맛을 다셨다.

“쩝.”

암제의 무위는 측정이 불가능했다.

그 말은 귀락천의 지하 공간에서 싸울 때보다 무공의 경지가 높아졌다는 말이었다.

자신의 무위가 오른 만큼 암제의 무위도 올랐다는 것은…….

일대일 승부로는 아직 암제의 상대가 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암제의 방심과 지형적인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찌 보면 변수가 없는 상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가 언제든지 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눈을 가늘게 뜬 한빈의 모습에 암제가 미소를 피워 냈다.

“너도 다른 이들처럼 걱정을 하고 있구나.”

“내가 뭔 걱정을 한다고 그래?”

“내가 여기에서 사라지면 항상 뒤통수가 근질근질하겠지……. 언제 칼이 날아올지 모르니 말이야.”

“대단하군, 대단해. 내 마음속까지 읽을 수 있다니 말이야. 아무래도 조만간 등선할 것 같네.”

한빈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속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암제의 말 그대로였다.

절대 고수가 자신의 목을 노리는데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까?

한빈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딱 한 가지였다.

뒤통수 칠 자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 때문에 무공의 끝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도망쳐서 자신의 목을 노린다고?

천급 구결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겼다.

그것은 이 자리에서 암제를 끝장내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비무대 아래에서 내공이 담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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