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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75화 (375/621)

375. 계가(計家) (3)

제갈공민의 외침에 모두가 뒤쪽으로 물러났다.

먼지가 생각보다 빨리 가라앉지 않았다.

이렇게 먼지가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그것은 희뿌옇게 끼어 있는 황토색 먼지 속에 가벼운 독이 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저리 가벼운 독은 산공독의 일종인 소화산(小火酸)밖에 없었다.

소화산은 보통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면 공중으로 흩어지는 독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먼지와 뭉치게 되면 좀처럼 흩어지지도 가라앉지도 않는다.

그래서 폭약과 함께 쓰는 독이었다.

지금은 소화산이라는 산공독이 사방에 퍼져 있는 상태.

제갈공민의 판단은 정확했다.

뒤로 후퇴했다가 상황을 살피는 것이 맞았다.

제갈공민의 외침에도 사천당가의 가주인 당무천만은 앞으로 걸어갔다.

저벅저벅.

그 모습에 제갈공민이 재빨리 외쳤다.

“어르신!”

“사천당가에서 독을 쓰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군. 군사는 나를 믿게.”

당무천은 손을 들어 제갈공민을 안심시켰다.

그러고는 그 손을 그대로 앞으로 내뻗었다.

순간 당무천의 손바닥을 통해 막대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파바박.

순간 제갈공민이 외쳤다.

“모두 뒤로 더 물러나시오!”

제갈공민도 뒤로 열 걸음 더 물러났다.

순간 당무천을 중심으로 희뿌옇게 남았던 먼지가 점점 가라앉았다.

당무천이 독 기운으로 먼지 속의 소화산을 녹이고 있던 것이다.

당무천을 제외한 무림세가 고수들은 비무대에서 서른 걸음 정도 떨어진 곳까지 물러 나왔다.

그곳에는 다급하게 달려온 동창의 무사들도 먼지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창휘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고 싶지만,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그들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꾸아앙!

폭발음에 설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

“끝난 게 아니었어요? 언니.”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끝난 게 아니었어.”

“우리도 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청화가 눈을 가늘게 뜨자 설화가 손을 저었다.

“청화야, 우린 공자님을 호위해야지. 가긴 어디를 가?”

“그건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저쪽 인원들 다 합치면 우리 공자님보다 더 강할 거니까.”

“그게 아니라…….”

“당무천 할아버지가 걱정되는 거야?”

“그것도 아닌데요.”

“그럼 왜 그렇게 다급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공자님이 싸움 구경은 빠지지 말라고 했잖아요. 간접경험이 중요하다고도 했고요.”

“묘하게 설득력 있네…….”

설화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은 지금 가주전의 뒤뜰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장 안전한 곳에서 용린검법의 깨달음을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가부좌를 튼 한빈은 양손으로 용린검을 가볍게 잡은 상태로 편안하게 운공을 하고 있었다.

청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언니, 왜 그래요?”

“저기 공자님을 봐 봐.”

설화와 청화는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의 주변에 묘한 기운이 들어왔다 나왔다는 반복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용린검에서 흩어진 기운이 한빈의 백회혈로 빠져들어 가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청화가 말했다.

“싸움 구경보다는 공자님을 지키는 게 중요할 것 같네요.”

“그래. 청화야, 그런데 우리는 언제 저렇게 되지?”

“저렇게 되냐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언니.”

“깨달음을 밥 먹듯이 얻는 수준 말이야.”

“언젠가는 저렇게 되지 않을까요?”

청화가 한빈을 가리키자 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겠지.”

말을 마친 설화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깨달음을 얻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안정이었다.

만약 주변에 사소한 일이라도 생긴다면 깨달음은 그대로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설화는 파리 한 마리도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우혈랑검을 잡았다.

청화도 마찬가지로 언제든 독 기운을 내보낼 수 있도록 잔뜩 긴장한 채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설화와 청화가 긴장한 채 한빈을 호위하고 있을 때였다.

정작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무아지경의 상태도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주변의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하지만 눈앞에는 이전에 용린검법의 깨달음을 흡수할 때처럼 수많은 글자가 떠다녔다.

한빈은 이 깨달음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전광석화.’

용린검법의 초식을 기본으로 깔고 손을 뻗었다.

[용혈신공의 문장 중, 용(龍)을 획득하셨습니다.]

[용혈신공의 문장 중, 린(鱗)을 획득하셨습니다.]

[……]

시간이 갈수록 점점 빨라지는 글자는 마치 밤하늘에 떠다니는 반딧불과도 같았다.

한빈의 손은 반딧불을 낚아채는 촘촘한 그물이 되어야 했다.

획, 휙.

한빈의 손이 더욱 빨라졌다.

[용혈신공의 문장 중, 월(月)을 획득하셨습니다.]

[……]

설화의 목소리나 밖에서 일어나는 소란스러운 소음에 귓가가 생생하게 울렸지만, 지금은 눈앞의 깨달음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용혈신공의 문장 중, 검(劍)을 획득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검이라는 글자를 획득했을 때였다.

갑자기 눈앞이 밝아졌다.

그러고는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린조일(龍鱗照日)

용의 비늘은 태양을 비추고.

-용검조월(龍劍照月)

용 검은 달을 비춘다.

청아한 목소리는 아쉬움을 날리고 사라졌다.

하지만, 눈앞에 비급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용혈신공이 완성되었습니다. 지금 확인하시겠습니까?]

한빈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비급이 용린검법의 비급이 용혈신공이 있는 마지막 장으로 넘어갔다.

[용혈신공]

[진룡출세(眞龍出世)]

[조일중원(照一中原)]

[일조어주(逸藻於晝)]

[월조어야(月照於夜)]

[용린조일(龍鱗照日)]

[용검조월(龍劍照月)]

이전에 있던 문장에 용린조일, 용검조월이라는 두 문장이 더 추가되어 있었다.

순간 그 아래 용린검법이 전하는 글귀가 나타났다.

[용혈신공의 끝자락을 잡았습니다. 지금부터 천급 초식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길고 일었던 여정을 끝낸 느낌이었다.

한빈은 재빨리 용린검법을 바라봤다.

용린검법을 바라보자 천급 구결이 보였다.

[천급 – 지(之), 역(易), 지(地)]

문제는 아직 초식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천급 초식을 사용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지금은 무용지물이었다.

순간 문장 하나가 더 나타났다.

[천급 초식, 최초 사용 시 용린검이 활성화됩니다.]

한빈은 들고 있던 용린검을 바라봤다.

용린검은 한빈이 생각하기에 완벽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활성화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무슨 뜻인지 확인하려면 천급 초식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천급 초식을 완성하려면 한 개의 천급 구결이 더 필요한 상황.

갑자기 천급 구결을 덕지덕지 달고 있었던 암제가 그리워졌다.

허탈한 결론에, 한빈은 가늘게 눈을 뜨며 쓴 입맛을 다셨다.

“쩝.”

그 소리에 설화가 달려왔다.

“공자님, 괜찮으세요?”

“중요한 고비는 넘겼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헉, 그런데 검에 새로운 문장을 새겨 넣으셨네요. 대체 언제 새겨 넣으신 거예요? 공자님.”

설화가 용린검을 가리키자 한빈도 용린검을 바라봤다.

용린검에는 지난번에 깨달음을 얻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용혈신공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설화에게 저절로 새겨진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내가 손이 빠르잖아. 뭐, 이 정도는 누워서 죽 먹기지.”

한빈의 말에 설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빈보다 손이 빠른 자는 중원에서 보지 못했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설화가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짝.

“제 우혈랑검에도 새겨 주세요. 왠지 멋있어 보여요.”

“그래, 알았다.”

한빈은 영혼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린검에 새겨진 글귀는 새길 수 없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새겨 넣은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비슷하게는 가능했다.

그때 청화도 재빨리 끼어들었다.

“저도요, 공자님.”

“…….”

한빈은 물끄러미 청화를 바라봤다.

둘은 사이가 좋으면서도 경쟁하는 친자매 같았다.

하지만, 무가지회가 끝나면 아마도 청화는 사천당가에 남을 것이었다.

한빈은 시선을 돌려 설화를 바라봤다.

그때가 되면 설화가 쓸쓸해할 것 같아서였다.

한빈의 시선에 설화가 말했다.

“가 보셔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야지…….”

한빈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비무대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쿵!

제법 멀리 떨어진 거리임에도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한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툭툭 옷에 붙은 먼지를 털어 낸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 한 걸음에 한빈의 자취는 사라졌다.

사사-삭.

동시에 설화가 청화의 소매를 잡았다.

“우리도 가자.”

“네, 언니.”

청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설화가 구걸십팔보를 펼쳤다.

동시에 설화와 청화가 그림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 * *

같은 시각 비무대 주변.

쿵!

그것은 분명히 진각을 밟는 소리였다.

당무천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사실 당무천은 소리가 나기 전에 이미 뒤로 몸을 피했다.

갑자기 자신의 앞에 몰려온 기세를 느꼈기 때문이다.

당무천은 뒤로 물러난 채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의 기세는 공동지체를 완성한 자신보다도 위였기 때문이다.

당무천은 지금 의문을 뭉게뭉게 피워 올리고 있었다.

먼지에 섞여 있는 것은 소화산이 분명했다.

그런데 지금처럼 기세를 뿜어냈다는 것은 소화산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소화산은 상대의 공력을 완벽하게 흐트러뜨리지는 못한다.

대신 그것을 막는 방법도 어렵다.

저 정도의 소화산에 묻힌다면 보통 상대는 공력의 반 정도는 잃게 마련이었다.

그런데도 자신보다 위 단계의 기세를 내뿜고 있다면?

둘 중의 하나였다.

자신은 상대도 할 수 없는 내공의 소유자이든가.

그게 아니라면 만독불침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전자나 후자나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무천은 조용히 자신의 아래를 바라봤다.

그의 발밑에는 비무대 아래에서부터 뻗어 나온 금이 있었다.

청강석으로 된 연무장이 상대가 밟은 진각 한 번에 갈라진 것이다.

그때 상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소화산이 묻어 있던 먼지가 진각에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모두는 상대와 그의 주변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분명히 비무대 아래에는 서창휘가 당당히 서 있었다.

그 모습에 당무천을 비롯한 십대세가의 고수가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 중 가장 당황한 것은 제갈공민이있다.

정의맹의 군사라는 직책이 어떤 자리이던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중원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자리였다.

제갈공민이 알기에 동창의 제독 서창휘는 무공의 ‘무’ 자도 모르는 이였다.

권모술수 하나로 강남을 총괄하는 제독의 자리까지 올라온 자였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무위를 지니고 있다고?

혹시 가짜?

제갈공민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조금 전 그와 인사를 나눌 때 확인을 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나와의 만남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때였다.

옆쪽에 있던 금의위의 수장 강유찬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나와의 대화는 기억 못 하고 있었습니다.”

“강 대인,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저도 저자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물어보니 당황하더군요. 저는 동창 제독이 가짜라고는 생각 못 하고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서창휘는 저런 무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때였다.

동창의 무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다닥.

서창휘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달려갔다.

타다닥.

수십 명의 무사가 서창휘를 보호하기 위해 그가 있는 쪽으로 뛰어들었다.

그때였다.

서창휘가 품에서 뭔가를 던졌다.

휘릭.

서창휘가 던진 물체는 동창의 무리 가운데를 훑고 지나갔다.

획.

순간 가느다란 은빛 섬광이 서창휘에게 돌아갔다.

그 은빛 섬광을 서창휘가 잡았다.

탁.

그가 잡은 것은 초승달 모양의 반월도였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이기어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무천이었다.

“이기어검이 분명 맞소.”

남궁장천도 고개를 끄덕이자 무림세가의 고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보다 당황한 것은 동창의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순간 상대를 바라보던 동창 무사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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