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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74화 (374/621)

374. 계가(計家) (2)

서창휘와 그의 수하들은 눈을 크게 떴다.

사내 중 하나의 옷에서 금빛 허리띠를 보았기 때문이다.

강호에서는 모르겠지만, 황궁에서 황금빛 허리띠를 두르고 다니는 이들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수하 중 하나가 말했다.

“금의위.”

그 수하의 눈은 정확했다.

다가온 사내는 서창휘에게 정중하게 포권했다.

“안녕하시오, 서 대인. 오랜만에 뵙겠소이다.”

“…….”

서창휘는 아무 말 없이 상대를 바라봤다.

그때 호위가 작은 목소리로 서창휘에게 말했다.

“저분은 금의위의 수장인 강유찬 대인이십니다.”

수하의 설명에 서창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강 대인이셨군. 몰라봐서 죄송하오.”

“아닙니다. 원래 세월이 흐르면 기억이란 놈은 사라지는 법이지요.”

강유찬은 슬쩍 서창휘를 바라봤다.

그와 만난 것은 딱 한 달 전이였다.

심미호와 이곳으로 오며 잠시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을 몰라보는 것이 이상했다.

강유찬이 말한 것은 그의 기억력을 비꼬아서 일침을 날린 것이었다.

하지만 서창휘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이해해 주셔서 고맙소.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오?”

“이곳에서 중대한 일이 있다고 해서 들렀습니다.”

“중요한 일이라면 금와 상단의 상단주에 대한 처분 말입니까?”

“저도 자세한 이야기는 모릅니다. 일단 들어 봐야겠지요.”

강유찬은 양예신을 바라봤다.

그때 양예신이 입을 열었다.

“다른 분들도 소개해 드려야 예의겠지요.”

말을 마친 양예신은 힐끔 나머지 사람을 바라봤다.

그중 한 명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저는 무당의 현문이라 하오.”

그의 소개는 짧았다.

하지만 현문이라는 두 글자가 미치는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무림세가의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문이면, 무당 장문인과 같은 배분 아니야?”

“그냥 배분만 같은 게 아니라, 장문인보다도 더 유명하지.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말이네.”

“그런데 왜 저자가 여기에…….”

모두는 현문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만큼 현문의 등장이 의외였었다.

“금의위의 수장인 강유찬에, 무당의 현문이라니!”

누군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강호를 헤쳐 온 그들의 본능이 지금 일이 가볍지 않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어찌 보면 금선을 구해 가려는 동창 제독 서창휘의 등장보다도 의외였다.

사실 현문은 한빈과 함께 사천당가에 잠시 머물렀었다.

하지만 그가 정체를 밝히지 않는 바람에 이제야 세인들이 알게 된 것이었다.

그들이 웅성거리고 있을 때, 다른 이가 앞으로 나왔다.

“저는 개방의 광개라 합니다. 조금 있으면 홍칠개 어르신도 오실 겁니다.”

개방까지 등장하자 세인들의 시선이 마지막 사내에게 머물렀다.

마지막 사내가 소개를 하기도 전에 그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 사람은 매화검협이네.”

“헉, 그러고 보니 구파일방 중 셋이 여기에 왔군.”

“대체 무슨 일이지? 금선은 빼 가려는 것을 멈추려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러게 말일세.”

모두가 웅성대고 있을 때, 서재오가 서창휘를 향해 포권했다.

“저는 화산파의 서재오라고 합니다.”

“흠.”

서창휘가 작은 침음을 삼켰다.

그것도 잠시, 서창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양예신이 있었다.

양예신의 주변에는 다른 이들도 합류했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십대세가의 대표들이 어느새 자리한 것이다.

남궁세가의 남궁장천, 황보세가의 황보만청 그리고 산동악가의 악소천 등 십대세가의 대표들이 모두 양예신의 옆에 자리했다.

서창휘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양예신을 쏘아봤다.

“지금 뭐 하는 짓이오? 힘으로 동창을 겁박할 요량이라면 잘못 생각했소.”

양예신은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지금부터 제가 할 말은 중요하기에 여러 문파와 금의위가 증인이 돼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모셨습니다. 만약 이곳에 무림세가만 모여 있다면 제 말을 누가 믿어 주겠습니까?”

“알았으니 말해 보시오.”

“저는 상방보검을 걸고 동창과 금의위에 한 가지 부탁을 드릴까 합니다.”

“…….”

서창휘는 눈을 가늘게 떴고 강유찬은 미리 검을 잡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상한 장면이었다.

그때 양예신이 말했다.

“금선과 결탁해서 반역을 꾀하려던 자를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양예신은 상방보검을 두 손으로 잡고 무릎을 꿇었다.

순간 서창휘의 미간이 좁아졌다.

바늘도 안 들어갈 정도로 말이다.

그것은 물론 딱 한 단어 때문이었다.

좌중들도 눈을 크게 떴다.

다른 때라면 웅성거리며 의견을 나누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반역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몸을 움츠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던 것이 바로 두 시진 전이였다.

그런데 날이 밝기도 전에 상황은 계속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양예신이 몰아넣으려는 자는 따로 있었지만, 무림세가 사람들은 석상이 된 채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몰린 상황에서 강유찬은 아무렇지 않게 상방보검을 향해 한 걸음 나왔다.

그러고는 자신의 애병인 금검을 뽑았다.

스릉.

누군가에게 겨눈 것은 아니었다.

그는 검을 바닥에 찍었다.

탕!

청강석으로 된 바닥과 부딪친 금검이 작은 울음을 토해 냈다.

그 상태에서 강유찬은 북경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동창 제독인 서창휘도 똥 씹은 표정으로 마지 못해 예를 취했다.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동시에 둘이 일어났다.

강유찬과 서창휘는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서창휘가 말했다.

“나는 반역도를 찾아내는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소.”

“그게 무엇입니까?”

“이 상방보검을 금와 상단주에게 다시 돌려주는 일이오.”

서창휘는 상방보검을 가리켰다.

그 상방보검은 금선이 준 것이었다.

강유찬이 물었다.

“왜 돌려주려 하십니까?”

“이 상방보검을 돌려주지 않으면 내가 반역도로 몰릴 것이 아니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반역도가 부탁한 일을 수행하려 했으니 나도 분명 과오가 있소. 그러니 나는 이 상방보검을 저자에게 돌려주고 강 대인과 함께 일을 처리하겠소이다.”

서창휘의 말에 모두는 서로를 바라봤다.

서창휘의 말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금선과 결탁한 자라는 것은 서창휘를 말함이었다.

하지만 서창휘는 자신과는 전혀 관련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양예신은 그런 서창휘를 보고 씁쓸하게 웃었다.

정치라는 것이 철판 서너 개는 깔아야 한다는 조부의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양예신이 보기에 서창휘는 철판 서너 개가 아니라 수십 개를 깔고 행동하는 자였다.

하지만 그는 이제 독 안에 든 쥐였다.

양예신은 강유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를 받은 강유찬이 말을 이었다.

“그리하도록 하십시오.”

“감사하오.”

서창휘는 자신의 호위가 들고 있는 상방보검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휘적휘적 금선을 향해 걸어갔다.

상방보검을 들고 오는 서창휘의 모습에 사람들은 좌우로 갈라졌다.

곧 쓰러질 것같이 지쳐 보이는 서창휘가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반역자의 손에 들렸던 상방보검과 가까이하기 싫었던 것이다.

금선의 앞에 도착한 서창휘는 상방보검을 내밀었다.

금선의 눈썹이 뒤틀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양예신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놓치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때 양예신의 눈이 커졌다.

석연치 않은 점이 지금에서야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서창휘의 태도였다.

서창휘는 금선이 반역자라고 했을 때 일말의 의심도 내비치지 않았다.

서창휘 자신이 금선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이곳에 있는 모든 이가 증인이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금선이 반역도라는 증거를 대 보라는 한마디 정도는 해야 했다.

그런데 서창휘는 금선의 반역을 기정사실인 것처럼 인정했다.

하지만, 저렇게 병약한 동창 제독 서창휘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창휘는 항아리에 갇힌 생쥐와도 같았다.

양예신이 의문의 눈빛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서창휘는 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어딘가로 던졌다.

동전이 날아간 곳은 용봉지회의 대진표를 그려 놓은 석판이었다.

날아간 동전은 석판의 모서리에 부딪혔다.

순간 석판에서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그 불꽃을 유심히 보는 이는 없었다.

동전을 던지고 난 서창휘는 탁탁하고 손을 털었다.

그에게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약간은 굽은 서창휘의 허리가 곧게 펴진 것이다.

그는 허리를 펴고 눈을 빛냈다.

상황을 지켜보던 양예신은 다급하게 외쳤다.

“동창 제독을 막아라!”

그 외침에 반응하는 무림세가 사람들은 없었다.

십대세가의 대표들은 모두 양예신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 상황이었다.

십대세가의 대표들은 재빨리 서창휘에게 달려갔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양예신의 목소리에서 절박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타다닥.

하지만 비무대의 주변에 있던 무림인들은 고개만 갸웃하며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닭의 모가지조차 비틀 힘도 없어 보이는 동창 제독을 왜 막느냐는 표정이었다.

주변에 있던 무인들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서창휘는 상상도 못 할 기세를 뿜어냈다.

이제까지의 서창휘가 가뭄에 얼마 안 남은 생기만을 보였다면 지금의 그는 바다와도 같았다.

그의 기세는 둑이 터진 것처럼 사방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 기세에 무림인들은 주춤거렸다.

가장 놀란 것은 무림인이 아니었다.

금선은 눈을 크게 뜨며 뒷걸음쳤다.

“다, 당신이 어떻게……!”

금선의 외침은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순간, 주변의 무림인들은 본능적으로 병장기를 잡았다.

이제 십대세가의 대표들도 금선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들은 서창휘와 금선을 중심에 두고 포위망을 구축했다.

저벅저벅.

포위망을 좁히며 십대세가의 대표들이 조금씩 다가가려 할 때였다.

꾸아앙!

갑자기 폭음이 울렸다.

동시에 폭풍처럼 몰아치는 화기.

십대세가의 대표들은 재빨리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들을 향해 무수한 돌조각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재빨리 자신의 병장기를 휘둘렀다.

휙, 휙.

순간 암기처럼 날아오던 돌조각들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타다닥.

제갈공민은 고개를 들고 상황을 살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폭음에 놀란 새들이 다급하게 날아오른다.

푸드덕.

날아온 방향으로 봐서는 비무대 옆의 석판이 분명했다.

그 석판도 금와 상단이 비치한 물품이었다.

어찌 보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먼지가 뿌옇게 깔린 상태.

제갈공민이 외쳤다.

“모두 포위망은 그대로 두고 앞을 경계하십시오!”

“알았네.”

남궁장천이 말했다.

제갈공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없었지만, 반대쪽에는 당무천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 강유찬과 서재오도 합류한 상황이었다.

제갈공민은 이 포위망을 뚫을 무인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먼지가 걷히기를 기다리면 되었다.

놀라 날아올랐던 새들이 다시 둥지로 돌아왔을 때쯤 서서히 먼지가 걷히기 시작했다.

제갈공민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였다.

먼지가 깔린 바닥에서 정체불명의 물체가 굴러들어 왔다.

데구루루.

제갈공민은 그것이 석판으로부터 떨어진 파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편이 제갈공민의 발끝과 부딪혔다.

탁.

순간 바닥에 깔린 먼지도 걷혔다.

파편을 발로 밀어 내려 하던 제갈공민의 눈이 커졌다.

“헉.”

그것은 파편이 아니라 누군가의 머리였다.

화상 자국과 두건을 보면 그건 분명히 금선의 머리가 분명했다.

제갈공민이 외쳤다.

“모두 비무대에서 물러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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