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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68화 (368/621)

368. 파국(破局) (6)

서생처럼 머리에 두건을 한 채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나오는 모습은 어디선가 들어 본 외모였다.

그는 제갈공민의 앞에까지 오더니 정중하게 포권했다.

“저는 강남 사도련의 군사를 맡은 마휘라 하오. 명성이 자자한 제갈 군사를 뵙게 되어 영광이오.”

그는 사도련의 군사 마휘였다.

익절선생이라고도 불리는 마휘는 사도련 제일의 지낭이라 평가받는다.

현재는 강남 사도련의 부흥을 이끄는 자였다.

그 부흥의 중심에는 적룡대협이라는 사파의 영웅이 있었고 말이다.

물론 익절선생 마휘는 한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자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정파인은 모르지만 말이다.

제갈공민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마휘 군사님입니까? 저도 익절선생의 명성은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과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소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닌 듯싶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오기 전에 누군가의 서신을 받았습니다. 무가지회에서 사건을 일으키고 그것을 강남 사도련에 뒤집어씌울 계획을 가지고 있는 집단에 대한 첩보였습니다.”

“아, 그런…….”

“그런데 우리를 회유하는 모습까지 완벽하게 그 첩보와 일치하니 황당할 따름이라오.”

“대체 어디서 그런 첩보를…….”

제갈공민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마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희는 그 첩보에 따라 무림세가를 도우러 온 것이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그런 의도로 오신 거였군요. 염치없지만, 사도련의 도움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럼 주군…….”

마휘는 사도련주에게 뭐라 하려고 하다가 말을 맺지 못했다.

독고진이 자리에서 없어진 것이다.

마휘는 당황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독고진을 찾았다.

없어진 독고진은 한빈의 앞에 서 있었다.

마휘는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갔다.

가능한 한 한빈과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한빈과의 만남은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았다.

지금 마휘는 제갈공민에게 얻을 것은 얻으려 운을 떼는 중이었다.

그런데 독고진이 한빈과 말을 섞는다면?

마휘는 그 끝을 알고 있었다.

한빈과 말이 길어질수록 사도련 측은 손해를 입을 것이다.

마휘가 달려가자 제갈공민도 함께 달려갔다.

그들이 달려간 곳에서는 독고진이 팔짱을 끼고 한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갈공민은 조심스럽게 그들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눈매를 좁히며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하지만 둘은 말이 없었다.

그저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가까이 붙으니 한빈과 머리 하나는 차이가 나 보이는 모습.

어른과 아이가 대화를 하는 듯 보였다.

익절선생 마휘도 그들의 옆에 다가갔으나 쉽사리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분위기가 너무 진중했기 때문이었다.

익절선생 마휘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사도련주 독고진이 손해 볼 일을 하면 그때 나서기로 하고 한발 물러섰다.

제갈공민도 마찬가지였다.

마휘를 따라오긴 했지만, 정작 걱정이 되는 것은 한빈이었다.

마휘 자체가 이익이라면 죽고 못 사는 인간이었다.

오죽하면 익절선생이라는 별호가 붙었을까?

한빈은 정파를 대표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제갈공민은 한빈이 마휘의 세 치 혀에 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독고진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적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아군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었다.

제갈공민은 마른세수를 했다.

사도련주 독고진의 눈빛이 조금은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의 착각일까?

독고진이 한빈을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시험 감독관이 서생들을 감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둘은 이미 알고 있는 사이가 맞았다.

하지만, 한빈의 인사에 제갈공민은 입을 벌려야 했다.

“처음 뵙는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나도 자네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네. 덕분에 내 귀가 닳아서 없어졌다네.”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농담이 아니네. 내 누님한테 얼마나 들었는지 귀에 못이 박혔다네. 그건 그렇고 이 상황을 어떻게 알고 있던 것인가?”

“뭐, 제가 이래 봬도 개방에 한 발 걸치고 있지 않습니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하북팽가의 직계가 무제자 홍칠개의 제자라니 말이야.”

“뭐, 그렇게 됐습니다.”

그때였다.

그들의 건너편에 있던 금선이 다시 소리쳤다.

“반이 아니라 내 전 재산을 다 주겠소! 내가 바로 강남제일의 상단, 금와 상단의 상단주요. 그리고 강남 제일의 부자요. 내 재산을 전부 가지시오. 그리고 저들을 세상에서 지워 주시오!”

그 외침이 얼마나 절실한지 무림세가의 고수들을 독고진의 눈치를 봤다.

독고진이 마음이 바뀌면 상황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쯤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에 독고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는군? 우습지 않나?”

“우습다니요?”

한빈이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강남제일의 부자는 따로 있거늘……. 어찌 자신이 강남제일의 부자라고 떠벌리는지 모르겠군.”

“하하. 금와 상단의 상단주 정도면 강남제일의 부자라 해도 부족하지는 않지요.”

“이제까지는 그랬지만, 얼마 전부터 바뀐 것으로 아네만은…….”

“바뀌다니 설마…….”

“그 부자가 가까이 있지 않나?”

독고진은 한빈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 눈빛에 한빈이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그건 비밀입니다. 그런 고급 정보는 련주님만 아시는 게 이득이지요.”

한빈은 지그시 웃었다.

그 웃음에 독고진 역시 진득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 수완도 좋군. 일단 그 수완은 합격일세.”

“합격이라니요?”

“아, 내가 말이 너무 길었군. 그런데 저 두 고수는 대체 누군가?”

독고진은 힐끔 설화와 청화를 바라봤다.

시선을 받은 설화가 포권했다.

“저는 설산신녀 설화라고 해요.”

“설산신녀라…….”

“근래에 붙은 별호지요. 헤헤.”

설화가 뭔가를 떠올린 듯 실없이 웃었다.

그때 청화도 앞으로 나섰다.

“저는…….”

살짝 말끝을 흐린 청화는 한빈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 한빈이 작게 웃었다.

청화의 마음을 훤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청화는 설화와 달리 별호도 없었다.

그렇다고 사천당가의 사람이라 밝히기도 애매한 처지일 것이다.

한빈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이 아이는 청산신녀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 청산신녀였군…….”

독고진은 청화를 바라보며 별호를 곱씹었다.

사실 설화의 별호에 대해서는 나루터에서 들었기에 알고 있었다.

별호라는 게 허명에 불과하다지만, 사실 별호만큼 중요한 것도 없었다.

별호가 생겼다는 것은 강호인들에게 그만큼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는 것이니까.

강호인은 나루터에서 일이 있고 난 후, 설산신녀라는 별호를 조금씩 퍼뜨리기 시작했다.

독고진은 이곳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그 별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청화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독고진은 청화가 보통의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런 인물이 별호가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

물론 한빈이 즉흥적으로 지어낸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청화의 눈가에는 살짝 눈물이 맺혔다.

단 며칠이지만, 별호가 생긴 설화가 부러웠다.

그런데 오늘 자신도 별호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때 한빈이 활짝 웃으며 독고진에게 포권했다.

“저는 진룡소협이라 불러 주시면 됩니다.”

“허.”

독고진이 엷은 한숨을 토해 냈다.

나루터에서도 봤지만, 이리 뻔뻔할 줄은 몰랐다.

지금의 별호가 자신이 지었다는 것을 독고진을 알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이렇게 별호를 밝힐 줄을 상상도 못 한 것이다.

그것도 잠시, 독고진은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소협이라 자신을 칭한 것은 실력의 삼 할을 숨기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독고진은 한빈이 가면 한두 개쯤을 쓰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적룡대협과 청운사신의 후인이니 소협이 아닌 대협으로 칭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었다.

갑자기 훈훈해지는 분위기로 바뀌자 건너편에서 보고 있던 금선은 애가 탔다.

돈이면 다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금선은 이를 악물었다.

이제 자신이 벼랑 끝에 몰린 사냥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금선은 조용히 자신의 황금빛 의자로 걸어갔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의자의 팔걸이를 잡아당겼다.

툭.

황금빛 의자의 손잡이가 떨어져 나왔다.

금선은 손잡이 아래에 달린 줄을 당겼다.

손잡이에서 황금빛 구슬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황금빛 구슬이 허공으로 날아가자 마치 보름달이 두 개인 것처럼 보였다.

그것도 잠시 황금빛 구슬은 허공에서 터졌다.

팡. 팡.

황금빛 구슬의 정체는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그 불꽃 또한 황금빛이었다.

그 모습에 무림세가의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갈공민도 마찬가지였다.

“휴, 다행히도 폭약이나 독은 아니었군.”

“저게 폭약이나 독보다 더 무서울지 어찌 알겠소?”

마휘가 의심의 눈초리로 하늘을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마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한빈이 말을 이었다.

“일단 저들을 제압하도록 하시죠.”

한빈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갸웃했다.

한빈이 어둠 속을 보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사도련주인 독고진도 한빈이 누굴 보고 이야기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때 한빈이 재촉하듯 말했다.

“이제 솎아 낼 자는 다 솎아 낸 것 같으니 손을 쓰셔도 됩니다.”

한빈이 막 말을 마쳤을 때였다.

어둠 속에서 백발의 노인이 걸어 나왔다.

묘한 것은 이마에 난 주름조차 각이 잡혀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인상이 아니라 그의 분위기가 날카롭기에 모든 것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터벅터벅.

조용히 걸어 나온 그의 얼굴이 달빛에 또렷해지자 제갈공민을 비롯한 십대세가의 대표들이 눈을 크게 떴다.

“헉, 어떻게…….”

“무사하셨군요.”

여기저기서 놀란 듯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지금 나온 이는 다름 아닌 당무천이었다.

당광현의 아버지이며 청화의 할아버지, 즉 사천당가의 가주인 당무천.

그가 걸어 나오자 좌중을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놀란 것은 남궁장천이었다.

천하제일의 독인이라는 칭호로 강남 무림에서 군림해 오던 것이 당무천이었다.

남궁장천은 덕분에 강남의 오대세가 중 이인자의 칭호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당무천이 쓰러지자 가장 충격을 받은 것 또한 남궁장천이었다.

남궁장천은 전성기의 당무천을 꺾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파답게 정상에 오르는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당무천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남궁장천이었다.

그가 진심으로 놀라고 있는 것은 당무천이 내뿜고 있는 기세였다.

그전에 그가 보여 줬던 기세는 주변 사람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거칠었다.

그것은 독인의 기질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거친 기세를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기세가 완벽하게 달라진 것이다.

그냥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의 기세에는 공허함이 묻어났다.

남궁장천은 그것이 공독지체가 내뿜는 자연스러운 분위기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천천히 걸어온 당무천은 한빈을 보더니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대신 청화의 손을 잡았다.

청화의 손목을 잡은 당무천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화야. 할아비가 재주 하나를 보여 주마. 옆에서 구경하겠느냐?”

“네.”

청화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당무천은 등에 걸친 피풍의를 허공으로 던졌다.

휙.

허공으로 던진 피풍의는 실 끊어진 연처럼 펄럭이며 어디론가 날아갔다.

방향을 잃고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피풍의가 마지막으로 향한 것은 금선이 있는 자리였다.

펄럭이며 날아가던 피풍의가 허공에서 터졌다.

팡!

그 모습에 한빈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승부는 끝났군요.”

“대체 저건 무엇인가?”

사도련의 독고진이 묻자 한빈이 말했다.

“사천당가의 비밀입니다. 뭐, 상대 쪽에서 아직도 돌을 던지지 않으니 우리는 지금부터 계가(計家)를 해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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