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366화 (366/621)

366. 파국(破局) (4)

챙, 챙!

동시에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곧 연달아 울리던 병장기 소리가 멈췄다.

주변이 칠흑과 같은 어둠으로 덮였기 때문이다.

주변을 바라보던 금선이 눈을 빛냈다.

이대로 월식이 지나가고 달빛이 정상적으로 자신들을 비춘다면 승부는 불 보듯 훤했다.

자신은 아군과 적군을 구별할 표식이 있지만, 저들은 없었으니까.

저들도 표식을 준비했지만, 이제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결과를 예측하던 금선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등골을 타고 올라와서였다.

금선은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자신이 놓친 것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금선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의 계획은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잠시, 금선은 눈을 크게 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상황이 완벽해도 너무 완벽했다.

지금은 무림세가의 진영까지 횃불을 모두 껐다.

자신이 횃불을 끈 것에는 이유가 있지만, 그들이 횃불을 끈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챙, 챙!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다시 울렸다.

동시에 울려 퍼지는 비명.

아악!

누군가가 털썩 쓰러진다.

금선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상황을 지켜봤다.

암흑 속에서도 허공을 뛰어노는 병장기와 쓰러지는 무사들.

금선은 그제야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는 재빨리 외쳤다.

“팔찌를 숨겨라!”

하지만, 아수라장에서 그 말이 먹힐 리 없었다.

획!

허공을 가르는 파공성에 이어서 비명이 연달아 울려 퍼질 뿐이었다.

악!

아악!

문제는 팔찌였다.

똑같이 생겼지만, 저들이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는 야광이 아니었다.

이 암흑 속에서 금선과 수하들의 팔찌만 빛을 발하고 있던 것이다.

그때 금선의 수하들도 그것을 알아채고는 재빨리 손을 숨겼다.

거듭된 금선의 외침으로 상황을 알게 된 것이다.

남궁무진도 재빨리 팔찌를 벗어 품속에 넣었다.

어떤 자들은 팔찌를 벗어 집어 던지기도 했다.

남궁무진은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월식이 일어나는 시간은 길어야 차 한 잔 마실 시간.

그 시간이 지나면 팔찌는 적과 아군의 구분을 희미하게 하는 무기가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자들도 하나둘 팔찌를 벗어 품에 넣었다.

동시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주변에서는 풀벌레 소리만이 가끔 들려왔다.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사천당가의 초입을 쓸고 지나갈 때쯤이었다.

금선은 속으로 한숨을 삭이며 재빨리 품속에 넣어 둔 팔찌를 손목에 찼다.

다른 수하들도 야광 팔찌를 찼다.

금선의 예상대로 다시 달빛이 그들을 비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보통의 팔찌로 보일 뿐이었다.

적군과 아군이 섞여 있는 상태에서 칼자루는 자신에게 있다고 금선은 생각했다.

열 명의 장군이 한 명의 첩자를 당해 내지 못할 경우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랬다.

혼란이 혼란을 낳고 그 혼란은 모두를 파멸시킨다.

금선의 수하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철저히 훈련되어있었다.

누구의 등에 먼저 칼을 꽂을 것이며 어떻게 혼란을 일으킬 것인가에 대해 훈련되어 있는 상황.

이제 달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 계획이 하나하나 이루어질 터였다.

만약 그 계획이 실패한다면?

금선은 거기까지도 생각해 두었다.

이제는 둥근 달이 한낮의 태양처럼 돌다리 위를 비추고 있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적응되었던 이들에게 달빛은 대낮의 태양처럼 환하게 느껴지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남궁장천은 검에서 달빛을 받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암흑 속에서 몇 명의 적을 베었는지 몰랐다.

조금 우스운 것은 적을 벨 때 그가 망설였다는 점이다.

가문을 배신한 아들이지만, 자신의 검으로 베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남궁장천뿐이 아니었다.

적을 베는 데 망설인 것은 다른 가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검을 휘둘렀다.

휙!

그 검에 무사가 쓰러진다.

털썩.

순간 남궁장천의 눈이 커졌다.

쓰러진 무사가 적인지 아군인지가 구분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남궁장천은 검을 휘두른 무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검을 휘두른 무사가 외쳤다.

“이자는 적입니다!”

“…….”

남궁장천은 검을 틀어쥔 채 주변을 둘러봤다.

지금의 상황은 묘했다.

검을 든 자와 쓰러진 자의 외모가 똑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상처?

상처는 아군에게도 있었다.

검상의 흔적을 꼼꼼히 살핀다면 적군과 아군을 구분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은 적과 아군이 구분되지 않은 상황.

남궁장천의 가슴에 후회라는 감정이 밀려 들어왔다.

차라리 야광 팔찌로 적군과 아군의 구분이 가능했을 때 완벽하게 적을 처리했더라면?

하지만 후회보다는 사태 해결이 급선무였다.

남궁장천은 재빨리 제갈공민을 바라봤다.

“다음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적을 구별할 방법을 알려 주시오.”

“…….”

제갈공민은 말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에 남궁장천이 재촉하듯 말했다.

“어서 묘책을 말해 보시오.”

“…….”

제갈공민은 답할 수 없었다. 자신이 짜낸 묘안은 여기까지였다.

그때 다시 비명이 울린다.

악!

무사 하나가 옆구리에 검상을 입고 쓰러졌다.

공격한 사람이나 당한 사람 모두 같은 가문의 사람이다.

그들은 둘 다 백씨세가의 무사.

쓰러진 자가 검지로 검을 든 무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둘째, 네가 감히…….”

“나는 가문의 배신자를 처단했을 뿐이오.”

그때 뒤쪽에서 검을 든 무사와 똑같이 생긴 자가 나타나 외쳤다.

“저자는 가짜요!”

말을 마친 무사는 상대에게 검을 겨눴다.

서로 똑같이 생긴 무사 둘이 상대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상황.

순간 모두가 검을 빼내며 주위를 경계했다.

그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서로를 경계하며 거리를 벌렸다.

제갈공민은 헛숨을 삼켰다.

저들이 이렇게까지 준비할 줄을 몰랐다.

그때 두 무사 중 하나가 외쳤다.

“숙부님을 해치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가짜가 그런 망언을 뱉다니!”

일촉즉발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나설 수 없었던 없었다. 누가 진짜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지금 맞붙게 된다면 그것으로 혼란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여기저기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나타날 것이 분명했다.

제갈공민은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무림세가를 배신한 인물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흠.”

그는 옅을 한숨을 토해 냈다.

세가를 배신한 인물들은 주위에 없었다.

아마도 모두 인피면구를 쓴 듯 보였다.

대낮이라면 충분히 진위를 가려낼 수 있지만, 지금은 인피면구를 쓴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완벽하게 적군과 아군이 섞인 상태.

선조인 제갈량이 온다고 해도 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제갈공민은 뭔가 결심한 듯 이를 악물었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야 하는 법이었다.

지금 그들 사이에는 십대세가의 대표와 똑같이 생긴 자들은 없었다.

‘확실한 자만 살리고 나머지는 패는 버린다.’

이것이 제갈공민의 선택이었다.

제갈공민이 남궁장천을 바라봤다.

그가 막 입을 열려 할 때였다. 붉은색 신형이 제갈공민의 옆에 쓱 나타났다.

순간 제갈공민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지금 지나간 이는 하북팽가의 사 공자였다.

한빈은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백씨세가의 무사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쪽에 섰다.

백씨세가의 무사는 갑자기 다가온 붉은 무복의 한빈 때문에 움찔했다.

그 모습에 한빈이 사람 좋은 얼굴로 말했다.

“왜 그렇게 겁내? 나 나쁜 사람 아니야.”

“나한테 왜 그러시오? 저자가 가짜요.”

“그건 내가 차차 밝혀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빈은 그자의 어깨를 토닥이고 이내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똑같이 반대편 무사의 얼굴을 바라봤다.

반대편 무사가 움찔하며 한 발 물러났다.

“왜 그러시오.”

“자꾸 주춤거리면 어떻게 해? 감정을 할 수가 없잖아.”

한빈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가늘게 떴다.

무림세가 사람들은 한빈의 행동을 말릴 수 없었다.

한빈은 십대세가의 대표들이 인정한 자였다.

한빈의 행동을 반박한다면 가짜로 몰리기에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얼굴이 똑같이 생긴 백씨세가 무사 둘을 바라보던 한빈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하얀 신형이 한빈의 옆에 나타났다.

물론 그 신형의 정체는 설화였다.

“공자님, 여기요.”

설화는 한빈에게 우혈랑검을 내밀었다.

“고맙다, 설화야.”

우혈랑검을 받은 한빈은 우혈랑검을 검집에서 빼내었다.

스릉.

단검이지만, 묘한 기세를 풍기는 우혈랑검에 백씨세가 무사 둘은 동시에 한 걸음씩 물러났다.

그 모습에 한빈이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돌다리 바닥에 우혈랑검을 찍었다.

탁.

우혈랑검을 찍은 상태에서 한빈은 검지로 검 자루의 끝을 눌렀다.

한빈이 손을 떼면 우혈랑검은 한쪽으로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그 상태에서 한빈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 단검은 혈랑검이라고 하지. 이건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신통력이 있어. 혈랑검은 항상 검 끝이 적군을 향하거든…….”

말끝을 흐린 한빈은 양쪽의 무사를 번갈아 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갈공민은 속으로 혀를 찼다.

혈랑검에 그런 효용이 있다는 소문은 들어 본 적 없었다.

그저 무슨 묘안이 있겠지 하고 바라볼 뿐이었다.

그 옆에 있던 남궁장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한빈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한빈은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쪼그려 앉은 상태에서 손끝을 검의 손잡이에서 뗐다.

순간 우혈랑검이 쓰러졌다.

팅!

돌바닥에서 한빈이 튕긴 우혈랑검이 가벼운 소리를 내더니 멈췄다.

한빈의 말대로 우혈랑검의 검 끝은 한쪽 무사를 가리키고 있었다.

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확률은 이 분의 일이니 말이다.

비스듬하긴 했어도 누가 봐도 한쪽을 가리키고 있는 상황.

한빈이 우혈랑검을 주워 들었다.

줍는 동시에 한빈은 한쪽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손을 내뻗었다.

휙!

우혈랑검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날아간 우혈랑검이 무사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푹!

무사가 자신의 어깨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악!

무사는 어깨에 박힌 우혈랑검을 빼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무사는 중심을 잃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단순히 복부에 박힌 것이 아니었다.

단검을 던져서 마혈을 제압한 것.

한빈의 망설임 없는 행동이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어떻게 단검 하나로 판단을 하지?”

“저거 미신 아니야? 나뭇가지 하나 던져 놓고 쓰러지는 방향에 있는 게 적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잖아.”

“대체 무슨 일이지?”

“지금 같은 상황에 저런 미친 짓을…….”

그때였다.

제갈공민이 재빨리 한빈에게 다가갔다.

이대로 놔두면 소란이 더욱 커질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제갈공민이 나서자 주위는 진정되었다.

천천히 한빈에게 다가간 제갈공민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단검 하나로 어떻게 아군과 적군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빈이 손을 내저었다.

“그걸 진짜 믿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인가?”

“자세히 보십시오.”

한빈은 검지를 들어 제갈공민을 가리켰다.

뜻밖의 상황에 제갈공민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왜 자신을 가리키는지 제갈공민도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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