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362화 (362/621)
  • 362. 사천대국(四川大局) (5)

    “대체…….”

    남궁장천이 말끝을 흐리자 제갈공민이 재빨리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질문을 던진 제갈공민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남궁장천의 몸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 잘 안 보였던 것.

    앞으로 나온 제갈공민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제갈공민이 이렇게 놀라는 이유는 위험에 처한 남궁무진의 일행 때문이 아니었다.

    도리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놀라는 것이었다.

    적들은 남궁무진 일행의 돌격에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았다. 중간에 함정이라 생각한 돌과 나무의 주변에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았다.

    남궁무진 일행이 적진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적이 연주하는 곡조가 바뀌었다.

    우울한 장송곡을 토해 내던 적의 비파가 활기찬 곡조로 바뀌었다.

    따라랑, 띵띵. 띠링.

    제갈공민은 눈을 가늘게 떴다.

    개선가(凱旋歌)라 불리는 이 곡은 진나라 때 강상이라는 악사가 만든 노래라 전해지고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들어온 아군을 환영하기 위해 만든 노래로, 아직까지 군대에서는 불리고 있는 노래였다.

    그런데 왜 저들이 개선가를?

    제갈공민은 등 뒤에서 소름이 올라왔다.

    ‘설마…….’

    제갈공민이 이를 악물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저것은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었다.

    저것은 분명 섭혼대법이었다.

    대법이라 불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섭혼술을 극대화시켜 이런 거대한 전장에서도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갈공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남궁무진 일행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들은 검을 축 늘어뜨린 채 무기력하게 휘적휘적 적들의 중앙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적들도 남궁무진 일행의 행렬에 슬쩍 양옆으로 비킨다.

    적들이 남궁무진의 일행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모습을 본 제갈공민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섭혼대법이 분명하군.”

    “그게 정말인가?”

    침통한 목소리로 남궁장천이 물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벌써 대법이 걸려든 것 같습니다.”

    제갈공민이 적진을 가리키지 남궁무진이 눈썹을 꿈틀했다.

    “그럼 무진이도…….”

    “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단순한 손실이 아닌 적에게 무기를 쥐여 준 꼴이군요.”

    “흠.”

    침음을 삼킨 남궁장천이 이를 악물었다.

    그가 피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적진을 쏘아볼 때였다.

    뒤쪽에서는 환호성이 들린다.

    “와아!”

    “남궁 공자가 적진을 뚫었다.”

    “자, 들어가자!”

    가만히 지켜보던 무림세가 고수들의 어깨가 들썩인다.

    남궁무진과 무림세가의 고수들이 아무 저항 없이 적진에 파고드는 데 성공하자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뒤쪽에 있기에 자세한 상황을 못 봤기 때문이었다.

    만일 제갈공민이나 남궁장천처럼 정확하게 상황을 알고 있었다면 이런 오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몇 명 무림세가의 고수들이 적진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세 명의 무사가 번개처럼 뛰어나갔다.

    “와! 적의 숨통을 끊어 놓자.”

    “가자.”

    그들이 튀어 나가자 나머지 무사들도 동요한다.

    모두가 적토마라도 된 듯 내공을 다리에 모으고 적진을 향해 달려들려 할 때였다.

    남궁장천이 내공을 담아 외쳤다.

    “그만!”

    그 소리에 십대세가의 대표들이 돌격하려는 다른 무림세가 고수들의 앞을 막았다.

    탁. 탁.

    그들이 병장기를 내밀며 기세를 피워 내자 상황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하지만 몇 명은 벌써 적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적이 연주하던 곡이 멈췄다.

    갑자기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정적이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뒤늦게 적진을 향해 돌격하던 세 명의 무림세가 무사가 자리에서 멈췄다.

    모든 것이 차 한 모금 들이켤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이었다.

    제갈공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적진을 바라봤다.

    남궁세가의 남궁무진을 비롯한 무림세가의 선발대가 적진에 도착한 상황.

    하지만 그들과 적 사이에는 그 어떤 충돌도 없었다.

    그때였다.

    금선이 다시 손뼉을 쳤다.

    이전에 쳤던 손뼉과는 묘하게 다른 느낌.

    비파를 든 무사 중 하나가 비파의 현 하나를 잡고 길게 뽑는다.

    쭈욱.

    비파의 현을 잡아 빼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휘릭.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세 명의 무사가 서 있는 공간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였다.

    중간에 멈춰 있던 세 명의 무사가 휘청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몸이 지면을 향해 서서히 무너졌다.

    몸이 바닥에 닿기 전에 그들 중 한 명의 몸에서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툭.

    데구루루.

    다른 무사는 목이 아니라 머리가 반쪽으로 잘렸다.

    툭, 툭.

    다른 무사는 몸이 반 토막이 되었다.

    마치 한 줄기 검기가 횡으로 썰고 지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토막 난 그들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에 제갈공민은 침음을 삼켰다.

    “흠.”

    세 명의 무사가 허무하게 적의 함정에 당한 것이다.

    제갈공민은 비파를 든 적의 무사를 바라봤다.

    현을 길게 뽑았던 적의 무사가 손을 놓았다.

    순간 뽑혀 나왔던 현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팅.

    순간 다시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아군과 적의 사이로 지나갔다.

    제갈공민은 그 바람 속에 가느다란 실선을 보았다.

    그 실선의 중간에는 핏빛이 비쳤다.

    그때 다시 개선가가 흘러나왔다.

    따라랑, 띵띵. 띠링.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흘러나오는 흥겨운 가락은 무림세가의 사기를 단숨에 꺾어 놓았다.

    모든 상황을 지켜본 남궁장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제갈 군사의 말이 옳군.”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저들이 왜 저 세 명만을 죽였는지 하는 점입니다. 본래대로라면 저들에게 섭혼대법을 걸어 포로를 늘려야 이치에 맞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첫 번째 돌격에는 섭혼대법으로, 두 번째 돌격에는 가차 없는 응징을 선택했습니다.”

    “흠.”

    “그 차이점이 뭘까요? 거기에 따라 우리의 대응 방법도 달라져야 할 듯싶습니다.”

    “차이점이라…….”

    말을 끝낸 남궁장천은 쓰러진 세 명의 무사를 바라봤다.

    분명 한 줄기의 예리한 선이 그들을 썰고 지나갔다.

    아군의 죽음에 슬퍼하기보다는 적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방비하는 것이 수장의 임무였다.

    “저도 그것이 의문입니다. 대체 저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갈공민이 말끝을 흐릴 때, 누군가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참, 비싼 물건을 썼군요.”

    그 목소리에 제갈공민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한빈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세 명의 목숨이 날아갔고 적진에는 섭혼술에 걸린 포로가 있는 상황이었다.

    저리 여유를 보인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대체 무슨 말인가?”

    제갈공민이 표정을 굳히며 묻자 한빈이 손가락으로 적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천잠사가 아닌가?”

    “저 실은 천잠사도 아니고 인면주사도 아닙니다. 저 실은 무려 만년빙사입니다.”

    “만년빙사라…….”

    제갈공민이 의문을 띄우자 한빈이 말을 이었다.

    “저길 보십시오. 시체에서 피가 흘러나옵니까?”

    “음.”

    “저 물건을 중원에서 보다니 신기하군요. 뭐, 부르는 게 값이죠. 저런 물건을 쓰는 것을 보면 오늘의 일전에 모든 것을 걸었나 봅니다.”

    한빈이 살짝 고개를 젓자 제갈공민이 헛숨을 들이켰다.

    “허.”

    제갈공민의 한숨은 한빈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한빈의 말대로 중원에서는 구하기 힘들다는 만년빙사를 썼다면 저들의 의도는 분명했다.

    십대세가를 굴복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말살시키겠다는 의도.

    그때 한빈이 말을 이었다.

    “만약에 우리가 달려들었으면 반 정도는 목이 달아났을 겁니다. 아까 공격을 막으신 건 잘하신 판단입니다. 역시 군사님입니다.”

    “지금 한가하게 칭찬이나 듣고 있을 때가 아니네.”

    제갈공민의 말에 옆에 있던 남궁장천이 끼어들었다.

    “섭혼술에 걸린 무진이를 구해 낼 방법이 있겠는가?”

    “섭혼술이요?”

    한빈이 고개를 갸웃하자, 남궁장천의 눈썹이 꿈틀댔다.

    이 급박한 상황에 비해 한빈의 표정이 너무 여유로웠기 때문이다.

    그것도 잠시, 남궁장천은 표정을 풀었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이 상황을 부처님 손바닥 보듯 아는 사람은 한빈이 유일해 보였다.

    거기에 더해 한빈은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

    자신의 아들인 무진의 목숨도 구할 방법을 알 수도 있었다.

    남궁장천에게 필요한 것은 무력이 아니라 지략이었다.

    한빈이 아들을 구할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들라 해도 그리할 것이었다.

    남궁장천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저들은 섭혼대법에 걸린 것이 분명하네. 제갈 군사도 그리 말했네. 그리고 저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섭혼술에 걸렸다고밖에 판단할 수 없지 않은가?”

    “남궁 가주님과 제갈 군사님까지 속인 걸 보면 적의 심계가 대단하긴 합니다.”

    한빈의 말에 제갈공민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그건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어서 말해 보게.”

    “제가 저자와 잠시 얘기 좀 나눠도 되겠습니까?”

    “…….”

    제갈공민은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남궁장천이 있었다.

    제갈공민이 정의맹의 군사라고는 하나, 여기에서 결정권은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남궁장천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었다.

    남궁장천을 바라봤다는 행위 자체가 제갈공민은 허락을 했다는 것이었다.

    남궁장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 협상의 권한을 주는 것은 아니니 짧게 말하게.”

    “네, 알겠습니다. 애초에 저들과 협상할 여지는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는 협상하고 싶어도 저들이 협상을 거부한다는 말입니다. 애초에 저들의 목적은 하나니까요.”

    말을 마친 한빈은 적진을 향해 한 발 나아갔다.

    이제는 한빈이 가장 선두에 있는 상태.

    대화 상대가 바뀌었다고 생각한 금선이 손바닥을 보였다.

    그 즉시 흘러나오던 개선가가 멈췄다.

    그러고는 금선이 황금빛 무복을 펄럭이며 앞으로 나왔다.

    “자네는 처음 보는 얼굴이군. 하하.”

    웃음소리에는 내공이 실려 있었다.

    섭혼술에 걸린 것 같은 아군.

    그리고 적진으로 돌격하다가 목숨을 잃은 세 명의 무사.

    아군이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적장의 웃음에 무림세가 쪽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한빈은 그 분위기에 개의치 않고 피식 웃었다.

    “나도 널 처음 보니까. 너도 나를 처음 보는 게 맞지.”

    “허허, 광오한 놈이로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그러는 너는 좋겠어. 얼굴에 피가 말라서. 피가 마르면 얼굴이 그렇게 되는 건가 봐.”

    말을 마친 한빈은 손을 들어 금선의 얼굴을 가리켰다.

    순간 무림세가 진영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헉, 지금 보니 얼굴이 왜 저래…….”

    “괴, 괴물이다.”

    그 술렁임에 금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지 않아도 깊었던 화상 자국이 더욱 기괴해졌다.

    금선이 내공을 담아서 외쳤다.

    “네놈 덕에 여기 포로로 잡힌 아이들의 목이 달아나겠구나!”

    “죽여 봐.”

    “…….”

    “죽여 보라고. 왜 자신이 없어? 아직 이용 가치가 있다는 건가? 왜 못 죽이지…….”

    한빈은 입에 물레방아를 달아 놓은 것처럼 금선을 끊임없이 도발했다.

    상대가 대꾸할 틈도 없이 한빈은 쉬지 않고 입을 털었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남궁장천이 움찔하며 손을 뻗었다.

    그때 제갈공민의 남궁장천의 팔을 잡았다.

    “팽 공자를 믿어 보지요.”

    “흠,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도발하다가는 우리 아이가…….”

    “개인보다는 우리 무림세가 전체의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일단 지켜보십시오.”

    “알겠네, 제갈 군사.”

    남궁장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까지도 한빈의 도발은 계속되었다.

    달라진 점이라고는 한빈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는 것이었다.

    “난 네가 저들을 못 죽이는 이유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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