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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61화 (361/621)

361. 사천대국(四川大局) (4)

한빈의 말에 무림세가의 고수들이 눈을 반짝였다.

‘사냥꾼’이라는 말이 그들의 본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냥감보다는 사냥꾼으로 살아왔다.

강호에서는 먹이사슬의 최상층에서 살아온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사냥감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그 답에 무림세가의 구성원들이라면 백이면 백, 모두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지금 험한 꼴을 당했다.

단순한 창피함을 넘어서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었다.

남궁장천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하. 자네 말대로 십대세가의 무서움을 보여 줌세.”

“십대세가가 아니라 정파의 무서움을 보여 줘야 할 것입니다.”

제갈공민도 한 수 거들었다.

그들의 대화에 한빈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그들의 자신감은 아직 자만심이라는 단어를 지우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 * *

사천당가의 정문에 무림세가의 고수들이 모여 있었다.

무림세가의 노고수들을 사천당가의 담장 밖을 바라보며 회의를 하고 있었다.

담장으로부터 이백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는 예상대로 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일단은 밖으로 나가서 적의 목을 베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바로 전의 경험 때문인지 그들을 신중하게 적진을 바라봤다.

한참을 바라보던 제갈공민이 침음을 뱉었다.

“흠, 곤란하게 됐군요.”

“무슨 말인가? 저기 있는 적을 단숨에 박살 내면 그만이 아니던가? 보아하니 함정도 없을 것 같은데 왜 그러나?”

“있습니다.”

“함정이 있다는 말인가?”

“네, 있습니다. 그것도 참 교묘하게 숨겼군요.”

“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저기 보십시오.”

제갈공민은 담장 밖을 가리켰다.

남궁장천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함정으로 보이는 곳은 없었다.

“내 눈에는 안 보이네만, 혹시 진법이라도 펼쳐져 있단 말인가?”

“물론 진법도 있지요.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저길 보시면 저희가 들어올 때와 나무나 돌의 배치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나무와 돌이라…….”

남궁장천은 다시 주변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제갈공민에게 돌렸다.

정의맹의 군사라는 직책은 그냥 딱지치기로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천재였다.

그것도 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

그렇지 않고서야 사천당가를 방문하며 얼핏 스쳤던 풍경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남궁장천과는 다르게 제갈공민은 머릿속에 한빈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이 주의하지 않았다면 밖의 풍경이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북팽가의 사 공자는 이 모든 일을 예측하고 대비하고 있었다.

자신이 정의맹의 군사를 맡을 자격이 있을까?

당장은 그만두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의 자리에 하북팽가의 사 공자를 앉히고 싶었다.

이것은 자신의 소망이 아니라 무림을 위해서 그리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눈앞에 난관을 헤치고 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제갈공민은 사천당가의 입구에서부터 펼쳐진 풍경을 다시 한번 살폈다.

세인들이 사천당가를 천의 요새라 부르는 이유는, 사천당가를 초승달 모양으로 둘러싼 절벽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그들이 눈매를 좁히며 보고 있는 사천당가의 초입도 난공불락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천당가의 정문에서부터 백여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는 수로가 나 있었다.

수로의 폭은 열 걸음 정도이며 깊이는 십 척 정도.

고수들이 건너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곳을 건너기 위해서는 잠시나마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공중에서 자유로운 무인은 없으니까.

능공허도니 허공답보니 하는 무공을 펼칠 수 있는 절세고수도 상황은 똑같다.

공중이나 물속은 평지보다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자연의 섭리.

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라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들은 수로를 등지고 진을 치고 있었다.

배수진이 아니라 한 명의 적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진법이었다.

문제는 제갈공민이 달라진 풍경을 모두 기억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돌이나 나무 등 사물만 피하면 그뿐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자가 있겠지만, 이것을 노리고 평지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다면?

그때였다.

남궁장천이 기세를 피우자 제갈공민이 조심스레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일단은 저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 알아봐야 하지 않겠나?”

“…….”

제갈공민은 조용히 남궁장천을 바라봤다.

그의 말이 맞았다.

적을 알고 싸우는 것이 싸움의 기본이다.

그것은 추측만으로는 불가능한 것.

적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대화가 먼저였다.

입구를 걸어 나간 남궁장천은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외쳤다.

“나는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장천이외다! 문밖의 고인은 누구시기에 우리 무림세가의 발길을 막는 것이오?”

얼마나 내공을 실었는지 멀리 있는 새들이 놀라 도망간다.

푸드덕.

하지만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궁장천은 안력을 돋워 상대의 진영을 바라봤다.

황금색 의자에 황금색 무복을 입은 이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피풍의를 눌러썼다. 고의로 용모를 감춘 것이 분명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천천히 걸어왔다.

터벅터벅.

그래 봤자 고작해야 열 걸음.

하지만 그 열 걸음이 남궁장천에게는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그 걸음 수만큼 결전의 순간이 가까워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피풍의로 얼굴을 가린 채 남궁장천에게 포권했다.

“나는 금선이라 하외다. 아마 전에 인사를 드린 적이 있을 거외다.”

비록 팔십 걸음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였지만, 내공이 담겨 있는 그의 목소리는 옆에서 듣는 것처럼 선명했다.

남궁장천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금선이라면 혹시 금와 상단주가 맞소?”

“아마 어제까지는 그렇게 불렀소.”

“피부병에 걸려서 요양 중이라더니 여기는 무슨 일이오? 벌써 다 나은 것이오?”

“아직 낫지 않았소.”

금선은 자신의 몸에 걸쳤던 피풍의를 벗어 던졌다.

휘릭.

순간 그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남궁장천의 눈에는 그 모습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기만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걱정하지 마시오. 오늘만 지나면 깨끗이 나을 것이외다.”

“…….”

“오늘 이 자리에서 십대세가는 다시 태어날 것이오.”

“어디서 그런 망발을…….”

금선은 남궁장천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손뼉을 쳤다.

짝.

그 소리에 금선의 뒤에서 대기하던 흑색 무복의 무사들이 앞으로 나왔다.

그들은 금선의 앞에 일렬로 서서 진을 구축하는 듯 보였다.

그 모습에 남궁장천은 검집을 움켜쥐었다.

그들이 달려오면 목을 베어 버리겠다는 기세로 상대를 바라봤다.

앞으로 나온 무사들은 무기를 천으로 감싸고 있었다.

크기로 봐서는 도나 낭아봉이 분명했다.

그때 금선이 다시 손뼉을 쳤다.

짝짝!

이번에는 두 번이었다.

그 소리에 맞춰 무사들이 천으로 감싼 무기를 바닥에 박았다.

팍. 팍.

남궁장천은 상대가 지금 뭐 하는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앞으로 나왔을 때는 함정을 발동시키거나 아니면 이쪽으로 달려와 한판 대결을 벌이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닥에 병기를 박아 넣다니? 남궁장천은 그들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금선이 손뼉을 다시 쳤다.

짝짝짝!

이번에는 세 번이었다.

그 소리에 맞춰 무사들이 병기를 덮은 천을 벗겨 냈다.

휘릭.

병기를 덮은 천은 걷어 내자 남궁장천의 눈이 커졌다.

그들이 들고 있는 병기는 다름 아닌 비파였다.

그들은 거대한 비파를 땅에 꽂고 연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남궁장천이 뒤를 보며 외쳤다.

“음공이다! 다들 조심해라!”

그 목소리에 모여 있던 무림세가의 고수들이 귀를 막았다.

그들은 하나가 된 듯 귀를 틀어막았다.

물론 그들 중 고개를 갸웃하며 그저 팔짱을 끼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한빈 일행이었다.

설화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음공이라는데 괜찮아요?”

“음공은 무슨 음공?”

“다들 귀를 막고 있잖아요.”

“음공으로 백 보 밖의 적을 타격할 수 있을 정도면 저렇게 함정을 깔아 놨겠어?”

“그럼 뭘까요?”

“아마도 열쇠를 꽂은 거겠지?”

“열쇠라니요?”

“저 비파들 잘 보면 열쇠처럼 생기지 않았어?”

“그러네요.”

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청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비파를 든 무사들을 가리켰다.

“그런데 진짜 비파 소리가 나오는데요.”

띠리링, 따라라.

백 걸음 떨어진 적의 진영에서는 비파 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공이 실려 있지는 않지만, 흘러나오는 곡은 무림세가 고수들의 기분을 가라앉혔다.

지금 흘러나오는 장송곡으로 유명한 곡이었다.

고대 왕조의 유명한 시인인 강령이 전쟁 통에 죽은 자신의 친우를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망자의 노래.

즉 비파 연주로 무림세가 고수들을 희롱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빈은 그들의 연주를 아무렇지도 않게 감상했다.

그는 그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그들의 연주를 들었다.

한빈이 지루함에 하품이라도 할 듯 입에 손을 가져갔을 때 뒤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림자의 주인공은 한빈을 향해 포권했다.

“주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적혈맹호대의 대주인 소대섭이었다.

소대섭의 뒤에는 장삼과 조호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들을 포권한 채 한빈의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한빈이 물었다.

“확실히 처리했나? 소 대주.”

“네, 확실해 처리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손님 맞을 준비해. 소 대주.”

“알겠습니다, 주군.”

소대섭이 눈을 빛내자 뒤쪽에 서 있던 장삼과 조호도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돌아선 소대섭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이제야 적혈맹호대 대주의 위엄을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빈의 지시에 소대섭과 장삼, 조호는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이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을 눈여겨보는 자는 없었다.

한빈은 힐끔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황보만청이 조용히 다가왔다.

그는 울화통을 겨우 참고 있다는 듯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한빈에게 다가온 황보만청이 물었다.

“다음 계획은 뭔가? 답답해서 미치겠군.”

“비밀입니다.”

“허,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으면 생각해 놓은 수가 있을 텐데……. 어찌 내게도 말을 안 해 주는가?”

“수는 저기 계신 제갈 군사님이 짜내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럼 자네는 무엇을 할 터인가?”

황보만청이 눈을 가늘게 뜨자 한빈이 할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저는 돌을 골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돌을 고른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검은 돌과 흰 돌이 섞여 있는데 편안히 바둑을 둘 수 있겠습니까?”

“돌이 섞여 있다니, 여기 모두 무림세가의…….”

황보만청이 말을 맺지 못했다.

누군가 함성을 질렀기 때문이다.

“와아!”

함성의 주인공은 남궁세가의 둘째 남궁무진이었다.

그의 함성은 남궁장천도 예상 못 한 듯 눈을 크게 떴다.

남궁무진은 기세를 피워 올리며 검을 들어 올렸다.

“우리 남궁세가가 앞장설 것이니 저들을 칠 자는 내 뒤를 따르시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남궁장천은 제갈공민을 바라봤다.

제갈공민이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위험하다는 뜻이다.

전술이라는 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멈춰야 하고 때로는 후퇴할 때도 있어야 했다.

그런데 젊은 혈기로 저리 나서다니, 위험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남궁무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첫걸음을 내디뎠다.

쿵.

예상보다 심후한 내공에 아비인 남궁장천까지 눈을 크게 떴다.

그것도 잠시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말려야 한다는 것을 남궁장천은 알고 있었다.

섣불리 덤볐다가는 절벽에서의 자신과 똑같은 처지가 될 터였다.

하지만 그가 말릴 틈도 없이 남궁무진은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적진으로 뛰어든 것은 남궁무진뿐이 아니었다.

남궁세가의 대부분과 다른 세가들까지 합심해서 달려들었다.

“와아!”

남궁장천은 움찔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제갈공민은 그의 소매를 잡았다.

“여기는 전장이고 남궁 가주님은 아군의 지휘관이십니다. 군령을 어긴 병사에 흔들리시면 안 됩니다.”

제갈공민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남궁장천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자식이 죽어 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감정을 숨기기 위해 이를 악물던 남궁장천이 입을 벌렸다.

뭔가 상황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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