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356화 (356/621)

356. 화향만리(火香萬里) (7)

망설임 없이 뛰어오른 그는 첫 번째 검집을 밟고 도약했다.

파박!

그러고는 두 번째 검집을 밟고는 날아올랐다.

그때였다.

남궁가주가 다섯 번째 검집에 올라 도약하려 할 때였다.

눈앞에 섬광이 번쩍였다.

해를 똑바로 본 것처럼 눈앞에 환해지더니 귀청을 울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꽈광!

진천뢰 정도는 아니지만, 벽에서 폭약이 터졌다.

아마도 폭약을 심어 둔 것이 확실했다.

벽이 터지면서 먼지가 연기처럼 자욱하게 깔렸다.

벽에서 떨어져 나온 돌덩이가 우박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투두둑.

그때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왔다.

휘익.

그 바람에 먼지가 쓸려 나가자 절벽 쪽의 광경이 보였다.

절벽의 중간 부분은 동굴의 입구처럼 동그랗게 파였다.

“저 정도의 폭발력이면 남궁 가주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제갈공민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에 한빈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기 보세요.”

절벽에서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의 대나무였다.

제법 기다랗게 솟은 대나무 위에 한 발로 버티고 있는 남궁장천.

그는 절벽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있었고, 그런 남궁장천을 본 제갈공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구나.”

“무사하시긴 해서 다행인데, 조금 모양새가 빠지긴 했네요.”

“허허,”

제갈공민은 그저 웃기만 했다.

남궁장천은 약간은 볼썽사나운 상태가 되었다. 불에 탄 생쥐가 털 없이 알몸을 드러내듯 옷이 여기저기 타서 연주황이 드러나 있으니 말이다.

제갈공민이 입맛을 다시는 동안, 한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장천이 말만 앞서는 무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빈이 주목하는 것은 상의가 휑한 무복이 아니라 그의 피부였다.

무복은 다 여기저기 구멍이 나서 볼썽사나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피부는 멀쩡했다.

호신강기로 완벽하게 보호했다는 말이다.

호신강기는 공간의 장악부터 시작한다. 처음에는 신체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범위를 늘려 나간다.

화경의 고수들이 모두 그런 과정을 밟으며 호신강기의 범위를 확장하기 마련이다.

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범위보다는 내공의 질이었다.

한빈이 보기에 남궁장천은 최고의 밀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 결과 신체는 솜털 하나도 상하지 않은 것이다.

볼썽사나운 것은 사실이지만, 어찌 보면 놀라운 광경이었다.

저 정도의 무위면 차기 정의맹주 자리를 노려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힐끔 제갈공민을 보니 그도 이제야 남궁장천의 호신강기에 놀라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갈공민도 현 상황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사람은 위험에 닥쳐야 참모습을 드러내는 법이었다.

제갈공민도 남궁장천의 실제 무위는 지금 처음 보는 것이었다.

뭐, 남궁장천의 불같은 성격은 일을 처리하는 데 단점이기는 했다.

하지만, 저런 경지를 이루는 데는 그 성정이 한몫했을 터이니 꼭 손해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제갈공민은 자신의 나서야 할 때를 조심스럽게 엿봤다.

남궁장천은 모두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나무 위에서 내려오더니 십대세가의 고수들 틈으로 다시 걸어갔다.

아마도 자신의 꼴이 어떤지를 모르는 듯했다.

십대세가의 고수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자, 남궁장천은 자신의 몸을 살폈다.

“흠.”

그는 자신의 몰골을 보고는 침음을 토했다.

그것도 잠시, 다 찢어진 자신의 무복을 잡았다.

부욱.

무복을 뜯자 온전한 그의 상체가 드러났다.

수많은 세월 동안 강호에서 버텨 온 무인답게, 그의 몸에는 흉터가 가득했다.

남궁장천은 아무렇지 않게 위쪽을 올려다봤다.

다시 절벽을 오를 생각인 것 같았다.

그때였다.

절벽 위에서 화살이 쏟아진다.

피슝! 피슝!

그 화살은 쉴 틈 없이 그들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십대세가의 고수들에게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았다.

휙!

누군가 휘두른 검 한 번에 날아오던 화살 두 대가 토막이 났다.

하지만 화살은 계속 쏟아졌다.

마치 그들을 견제하려는 듯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제갈공민이 고개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말려야 될 때.

저렇게 화살을 날리는 이유는 분명 다음 공격을 위함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공격은 진천뢰와 벽력탄을 사용한 공격이었다.

어떤 대단한 공격을 준비하기에 이렇게 시간을 벌려 한다는 것인가?

이제는 여기서 후퇴한 후, 다음 계획을 세워야 했다.

제갈공민은 힐끔 고개를 돌렸다.

이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있는 듯한 한빈의 의견을 묻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말려야 할 때가…….”

제갈공민은 말을 잊지 못했다.

옆자리에 앉아서 싸움을 구경하던 한빈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당황한 제갈공민의 귓가에 팽대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쪽으로 갔으니 우리는 그냥 지켜봅시다.”

“저쪽이라니…….”

제갈공민은 팽대위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한빈이 아무렇지 않게 십대세가의 고수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슝!

절벽 위에서 아래로 화살이 쏟아지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한빈의 모습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았다.

슝!

다시 화살이 쏟아지지만, 이상하게 한빈만은 피해서 가고 있었다.

저 여유는 뭐란 말인가?

제갈공민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평생을 전장에서 구른 병사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이 묘한 이질감을 만들었다.

난을 그려 놓은 곳에 유일한 국화라고나 할까.

그때 팽대위가 말했다.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읍시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냥 내 조카가 하는 일을 보고 결과만 챙기자는 말입니다. 괜히 끼어들어 봤자 방해만 됩니다.”

“…….”

제갈공민은 조용히 팽대위의 눈을 바라봤다.

분명 거짓은 아니지만,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대체 저 믿음은 어디에서 나온다는 말인가?

팽대위는 그나마 몇 번 봤던 인물이기에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행동에 대한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제갈공민은 한빈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 대신 남궁장천의 행동은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새파랗게 젊은 무인이 남궁장천을 말린다면?

제갈공민이 보기에 그 결과는 뻔했다.

적에게 당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분이었다.

제갈공민이 움찔하자 팽대위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

“이거나 한 모금 빨고 긴장을 푸십시다.”

팽대위는 조그만 호리병을 건넸다.

제갈공민은 자신도 모르게 호리병을 받았다.

호리병 입구에서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주향으로 보건대, 명주가 분명했다

“이게 무슨 술입니까?”

“백아주입니다.”

“허, 귀한 술이군요.”

술을 한 모금 들이켠 제갈공민은 조용히 한빈을 바라봤다.

과연 한빈이 어떻게 남궁장천의 마음을 돌릴지를 생각하며 말이다.

남궁장천은 천천히 줄어드는 화살에 뛰어오르려 다리를 움츠렸다.

지금이 적을 섬멸할 기회라 생각한 것이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허리띠를 살짝 잡았다.

순간 발바닥에 모였던 내공이 흐트러졌다.

남궁장천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붉은 무복을 입은 젊은이가 아직도 자신의 허리띠를 잡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남궁장천이 물었다.

“대체 무슨 짓이냐?”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놈이…….”

남궁장천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한빈이 끊었다.

“남궁 가주님은 이번 싸움에서 그냥 승리만 하면 된다고 보십니까?”

질문을 던지는 한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거기에 던진 질문 자체가 묘했다.

싸움의 승리는 확정된 것처럼 생각하고 다음의 상황을 묻고 있었다.

그것이 남궁장천의 마음을 움직였다.

남궁장천은 오로지 싸움의 승리가 중요했다.

그런데 상대가 싸움의 승리가 확정된 것처럼 말하니 그다음 말이 궁금해졌다.

그때 남궁장천의 뒤통수로 화살이 날아왔다.

피슝!

남궁장천은 왼손을 들어 화살을 가볍게 쳐 냈다.

팍.

화살을 쳐 낸 남궁장천이 물었다.

“승리가 중하지 않다면 뭐가 중하다는 말이냐?”

“그야 승리의 모양새죠.”

“모양새라, 그것이 무슨 말이냐?”

“천하의 십대세가가 이런 꼴로 승리를 한들, 강호의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할까요?”

한빈은 남궁장천을 가리켰다.

남궁장천은 순간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상대는 체면을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남궁장천은 말없이 한빈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그때 한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일단 무복부터 정비하시는 게 어떨지요?”

“허.”

남궁장천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이곳에서 어떻게 무복을 고쳐 입는다는 것인가?

싸움 중에 처소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 한빈이 말을 이었다.

“여분의 무복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여분의 무복이라고?”

남궁장천이 고개를 갸웃하자, 한빈은 말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순간 하얀색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 색이 있을 리 없지만, 지금은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 바람의 정체는 하얀 무복을 나풀거리며 날아온 설화였다.

설화는 한빈의 앞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여기요, 공자님.”

“그래, 수고했다. 설화야.”

“헤헤, 보따리 하나 들고 온 게 무슨 수고예요? 공자님.”

설화가 해맑게 웃었다.

그 모습에 남궁장천은 잠시 싸움도 잊고 보따리를 바라봤다.

한빈은 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따리를 풀었다.

순간 남궁장천의 눈이 커졌다.

보따리 속에는 무복 몇 벌이 들어 있었다.

무복을 뒤척이던 한빈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흠, 이거 난감하군요.”

“왜 그러느냐?”

“남궁 가주님께 맞을 만한 옷이……. 아, 여기 있습니다.”

한빈은 푸른색 무복을 꺼내어 남궁장천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무복을 받아 든 남궁장천이 물었다.

“이걸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일단 입으십시오. 원래 적의 진지를 점령하는 장수는 의관을 제대로 차려입는 것이 군례입니다. 강호에서도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일단 상의라도 걸치시지요.”

그 말에 남궁장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상의를 걸쳤다.

옷을 다 입고 난 남궁장천이 물었다.

“대체 너는 누구냐?”

“흠, 그건 제 이름으로 말하기가…….”

“그게 무슨 말이냐?”

“…….”

한빈은 대답 대신 조용히 설화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설화에게 살짝 눈짓을 줬다.

신호를 받은 설화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대화를 끼어들었다.

“우리 공자님께서는 진룡소협으로 불리고 계시지요.”

설화가 손으로 한빈을 가리켰다.

그 말에 한빈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별호를 어찌 제가 스스로 밝히겠습니까?”

“진룡소협이라…….”

남궁장천이 그 이름을 곱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그때 뭔가 생각난 남궁장천은 한빈을 바라봤다.

“생각해 보니 시녀를 통해 별호를 밝힌 것이나 스스로 별호를 밝힌 것이나 똑같은 것이 아닌가?”

남궁장천은 이제 싸움은 잊었다.

눈앞에 있는 상대의 정체가 궁금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던 제갈공민이 혀를 찼다.

남궁장천을 다루는 솜씨가 그의 예상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제갈공민은 무공이나 지략이 아닌 순수한 언변에 놀라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잠시 제갈공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빈의 의도가 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충돌 없이 시간을 끌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시간을 끌어서 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

제갈공민은 더욱 눈매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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