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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55화 (355/621)

355. 화향만리(火香萬里) (6)

물론 질문을 던진 붉은 무복의 사내는 한빈이었다.

한빈은 설화와 청화를 뒤쪽에 둔 채 제갈공민에게 다가온 것이다.

질문을 받은 제갈공민은 눈매를 좁혔다.

그것도 잠시, 제갈공민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가 자신의 옆에 왔는데도 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정의맹의 군사 신분으로 있긴 하지만, 그는 다른 세가의 대표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강호인들은 자신을 문무를 겸비한 인재라고 말한다.

그런데 제갈공민이 통제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상대가 자신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면?

생각이 떠오른 순간 제갈공민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한빈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휴, 제가 전한 쪽지 봤잖아요. 그런데 왜 아직도 여기 계세요?”

“…….”

“제가 숙부님을 통해서 전해 드렸을 텐데…….”

한빈은 말끝을 흐리며 날아오는 절벽 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팽대위를 바라봤다.

제갈공민은 그제야 자신의 품을 만졌다.

그곳에는 전서 통이 있었다.

제갈공민은 재빨리 물었다.

“혹시 적벽대전이라 적으신 분이……?”

“그게 바로 접니다.”

한빈이 검지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때였다.

꾸아앙!

위쪽에서 다시 진천뢰가 떨어졌다.

순간 십대세가의 고수들이 사방으로 몸을 피했다.

한빈과 제갈공민이 있는 쪽까지 밀려드는 화기.

화르륵.

그 엄청난 화기에도 한빈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저 예정된 일이라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제갈공민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제갈공민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분명 적군은 아니었다. 아니, 아군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 아수라장 같은 현장에서 자신과 똑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평온한 표정을 유지한다는 말인가?

제갈공민은 정의맹의 군사였다.

정의맹의 군사로 있으면서 수많은 무림명숙과 기인을 만나 봤다.

하지만 저 나이에 저런 모습을 보이는 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제갈공민이 재빨리 물었다.

“그런데 팽 대협을 보고 숙부라 하지 않았소? 분명히 팽 대협은 이 쪽지를 전한 자를…….”

제갈공민을 말끝을 흐리며 뒤쪽에서 거도를 빼어 들고 절벽 위를 바라보고 있는 팽대위를 바라봤다.

한빈도 그쪽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물론 숙부님께서는 제가 그 쪽지를 전달했다고 말하지 않았겠죠.”

“맞소, 그런데 어떻게 알았소? 혹시 부탁이라도 한 것이오?”

“아마 제 신분을 밝히셨다면, 제갈 군사께서 그 쪽지를 조금도 안 믿으셨을 겁니다.”

“그럼 자네는 대체 누군가?”

“싸움 중에 정신이 없지만, 인사는 드려야겠네요. 하북팽가의 사 공자 팽한빈이라고 합니다.”

“헉. 그 강북 제일의…….”

“네, 그 겁쟁이가 맞습니다.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요.”

“그렇지, 그게 문제가 아니지. 그럼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나?”

“네, 말씀하시지요.”

“우리 형님은 무사하신가?”

“아마도 무사하실 겁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셨으니까요.”

“헉, 자네도 같이 납치를…….”

제갈공민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한빈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이 자리가 그렇게 편하지 않았다.

“일단 그 얘기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한빈은 슬쩍 옆을 바라봤다.

십대세가의 고수들은 절벽 위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무공에서 밀리는 것은 아니었다.

지형에서 절대적으로 밀리는 것이었다.

제갈공민도 그 모습에 쪽지에 적힌 단어가 떠올랐는지 다시 한빈을 바라봤다.

“자네 말대로 적벽대전이 생각나게 하는 모습이군. 그럼 해결책은 무엇인가?”

“우리 십대세가의 대표들께서 뭘 하고 있는지를 잘 보세요.”

“지금 싸우고 있지 않은가?”

“그게 문제입니다. 제갈세가의 선주이신 제갈량 군사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흠, 어려운 질문이군. 위치가 바뀌었으니 그걸 내가 예상할 수는…….”

“그렇죠. 위치가 바뀌었죠. 애초에 이런 싸움에 말려들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 자네 말은…….”

“지금이라도 내빼야죠. 삼십육계 중 줄행랑이 지금 상황에서 딱 맞는 방법입니다.”

“그럼 여기서 물러난다면, 차후 저들을 어떻게 잡을 수 있겠나? 나는 그게 두렵다네.”

“제갈 군사님이 저들을 잡으려는 건 제갈 가주님의 안위 때문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건 확인하셨으니, 그만 뒤로 물러나도 되겠지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

“지금 큰 착각을 하고 계시는데, 쫓기는 쪽은 저들이 아닙니다.”

“…….”

제갈공민이 말없이 절벽 위의 적들을 바라봤다.

그의 눈이 점점 커졌다.

제갈공민도 적들이 오늘을 위해 얼마나 준비했는지는 대충 짐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빈과 전혀 다른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오로지 이 싸움의 승부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군의 손실을 최소로 하고 적을 섬멸한다.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것이 제갈공민의 목표였다.

그 바탕에는 여기 모인 무림세가가 이곳의 절대자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제갈공민의 눈에는 저들은 하룻강아지였다.

그에 비해 십대세가는 호랑이.

하룻강아지가 좀처럼 잡혀 주지 않기에 애가 탔던 것이다.

그런데 한빈의 말을 듣고 보니 저들이 하룻강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판을 새로 짜야 했다.

이게 전쟁이라면 이곳은 하나의 요충지에 불과했다.

불리한 지형을 안고 싸울 필요는 없는 법.

싸움터를 조용히 바라보던 제갈공민이 입을 열었다.

“이해했네, 그럼 자네 말대로 저들은 진정시키겠네.”

“그냥 놔두시죠.”

“그게 무슨 말인가?”

“제갈 군사님처럼 자신을 아는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

“음.”

제갈공민이 한빈의 진의를 살피듯 눈을 가늘게 떴다.

한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아마도 당해 봐야 정신이 좀 들 겁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뭐, 못 믿으시겠다면 직접 얘기해 보시고요.”

“잠시만 기다리게.”

말을 마친 제갈공민은 재빨리 십대세가의 고수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으로 간 제갈공민은 재빨리 남궁장천을 막아섰다.

“남궁 가주님, 일단 진정하시죠.”

“자네 지금 무슨 짓인가?”

“아무래도 함정 같습니다.”

“함정이라……. 저리 폭약까지 준비했으니 함정이 맞긴 맞지. 하지만 저들을 놓치면 그것이 더 큰 후환이 될 것이네. 그러니 물러서게. 그리고 저들은 사도련이 분명하네. 우리의 단합을 막으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곳이 어딘가?”

“…….”

“십대세가가 모인 곳, 그것도 강남의 제일세가인 사천당가일세. 여기는 십대세가의 앞마당과도 같은 곳이고. 그런 곳에서 저들을 보고만 있으라고?”

“맞설 때가 아닙니다. 일단 물러서서…….”

“제갈 군사가 정의맹에 있더니 이제는 틀에 박힌 생각밖에 못 하는군. 여긴 내게 맡기고 뒤로 물러서게.”

남궁장천은 제갈공민을 뿌리쳤다.

앞으로 나간 남궁장천은 내공을 담아 외쳤다.

“정파의 길은 사악함을 멸하는 것에 있다. 모두 나를 따르라!”

그의 외침에 전열을 가다듬은 십대세가의 고수들이 뒤쪽에서 진영을 이루었다.

“사파를 멸한다!”

“자, 모두 사파를 멸하자!”

다른 십대세가의 고수들도 같이 외쳤다.

그 기세가 얼마나 강렬한지 제갈공민의 얼굴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제갈공민은 그제야 한빈이 한 말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자신은 십대세가의 일원이지만, 십대세가를 너무 몰랐던 것이다.

제갈공민은 자신도 모르게 한빈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친 한빈이 손짓한다.

제갈공민은 조용히 한빈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자네 말이 맞군.”

“뭐, 어르신들 생각이야 예나 지금이 똑같죠.”

“그런데 자네는 아직도 여유가 넘치는군.”

“저라도 힘을 내야죠. 그래야 어르신들이 쓰러졌을 때 부축할 거 아닙니까?”

“허허, 그럼 이대로 쓰러질 때까지 기다리자는 말인가?”

“저는 그럴 겁니다.”

한빈은 씩 웃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여기에서 십대세가의 고수들을 막아선다?

몰매 맞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신분으로는 저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었다.

한빈은 힐끔 적벽 위의 적들을 바라봤다.

한빈이 적벽대전 꼴이 나리라고 예상한 것은 심미호와 만나기 전이었다.

한빈은 구걸십팔보를 극성으로 끌어올리며 사천당가의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한빈은 사천당가를 중심으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화약 냄새를 맡고는 이번 싸움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상했다.

이번 싸움의 적은 절벽 위에 있는 무사들이 아니었다.

한빈이 생각하는 가장 큰 적은 바로 자만심이었다.

강호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십대세가의 자만심.

그것이 이번 싸움의 가장 큰 적이었다.

그때 제갈공민이 말했다.

“그럼 지켜보는 게 최선일 것 같나?”

“물론이죠. 그리고 적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저리 날뛰는 걸 보니 아직 많이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적을 알아보지 못한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사도련이 진천뢰를 왜 쓰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거대한 싸움을 걸어오면 나라에서 그냥 놔두겠습니까?”

“그럼 사도련이 아니란 말인가?”

“그건 군사님께서 직접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허.”

제갈공민이 허탈하게 웃을 때, 제갈공민의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제갈공민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팽대위가 있었다.

제갈공민이 깜짝 놀라 물었다.

“팽 대협은 왜…….”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팽대위가 말했다.

“대충 하고 빠졌습니다.”

말을 마친 팽대위는 힐끔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은 벌써 자리에 앉아 있었다.

팽대위도 한빈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들은 이곳이 싸움터라는 것을 잊은 채 턱까지 괴고 전투 장면을 바라봤다.

제갈공민도 포기했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남궁장천은 검집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 모습에 십대세가의 고수들이 남궁장천의 옆에 모였다.

인원이 모이자 남궁장천이 들고 있던 검집을 날렸다.

팡!

검집이 파공성을 내며 절벽을 향해 날아갔다.

내공이 담긴 검집이 절벽에 박혔다.

푹.

동시에 나머지 사람들도 검집을 날리기 시작했다.

휙! 휙!

그들이 날린 검집은 절벽의 중간중간에 박혔다.

그 검집은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게 일정하게 늘어선 상태.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장천은 천천히 절벽을 향해 다시 나아갔다.

그 모습을 보던 제갈공민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허, 어쩌면 이번에는 성공하겠군.”

“과연요?”

한빈이 그곳을 바라보며 눈매를 좁혔다.

한빈이 보기에 절벽 위에 적들은 선발대에 불과했다.

그 뒤로 더 많은 인원이 몰려올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승부에서 그들의 힘만으로 이긴다면 그것도 한빈이 바라는 바였다.

그때 남궁장천이 절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뒤로는 십대세가의 고수들이 기세를 뿜어내며 따라왔다.

제갈공민은 마른침을 삼켰다.

누군가 저 절벽을 오른다면 이 싸움의 승패는 날 것이었다.

제갈공민이 보기에 절벽의 위쪽에 있는 자 중 남궁장천이나 다른 십대세가의 고수를 당해 낼 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제갈공민이 눈을 크게 떴다.

위쪽에서부터 내려오는 작은 불꽃을 발견한 것이다.

치지직.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저 불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제갈공민이 달려가는 남궁장천을 향해 외쳤다.

“조심하십시오. 남궁 가주!”

하지만 남궁장천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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