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 화향만리(火香萬里) (3)
두 명의 무사는 황보세가와 광동진가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황보세가는 강북 오대세가 중 하나였다.
광동진가는 강남의 오대세가는 아니지만, 강호에서 인정받고 있는 무림세가 중 하나였다.
강북과 강남을 대표하는 무림세가의 대결이기에 더욱 관심이 모였다.
그들이 가진 배경도 배경이지만, 그만큼 박진감이 넘쳤기에 연신 함성이 울려 퍼졌다.
광동진가의 무사가 빗자루로 바닥을 쓸듯 황보세가의 무사의 하체를 공격했다.
획!
그 기세가 얼마나 드센지 주변에 광풍이 느껴질 정도였다.
황보세가의 무사는 다급히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동시에 광동진가의 무사의 발끝이 하늘을 향한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구경꾼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아.”
“끝이군. 역시 권각술은 광동진가야.”
그때였다.
황보세가의 무사가 몸을 뒤틀었다.
그러고는 오른팔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일렁이는 투명인 기운.
구경꾼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권기다, 권기!”
“대단하군. 대단해. 검법인 황룡비검을 저리 펼치다니.”
“황룡비검이 아니라 황룡비권아라고 불러야 하나?”
구경꾼들은 그들의 모습에 눈매를 좁혔다.
광동진가의 무사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황보세가 무사도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팡!
공중에서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광동진가의 무사와 황보세가의 무사가 거리를 벌렸다.
뒤쪽으로 물러난 광동진가의 무사의 걸음이 살짝 불편해 보였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상대를 바라봤다.
“졌소이다.”
“양보해 주셔서 감사하오.”
황보세가의 무사가 마주 포권했다.
동시에 구경꾼들의 함성이 비무대 주변에 울려 퍼졌다.
사실, 검을 이용한 대결이라면 황보세가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맨손으로 무공의 고하를 겨루는 비무였다.
그런 이유로 광동진가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황보세가의 황보견우가 저 정도였어! 대단해.”
“황보세가의 권각술이 저 정도라니 믿어지지 않는군.”
“혹시 봐준 거 아니야?”
“에이, 광동진가가 왜 강북의 황보세가에게 져 준다는 말이야?”
그 정도로 황보세가의 승리는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어떻게 권각술에서 광동진가가 황보세가에 진 거지?”
“나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아, 미치겠네.”
“자네도 광동진가 쪽에 걸었나?”
“덕분에 다 날렸네.”
그들 중에는 이들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들도 꽤 많았다.
그들은 모두 광동진가 쪽에 돈을 건 이들이었다.
그것도 잠시, 그들은 비무대 위에 심판관을 바라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심판관이 이 비무에 대해 판결을 내리기 전까지는 승리가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심판관을 바라봤다.
그때 비무의 심판관으로 자리한 제갈공민이 손을 들었다.
동시에 함성이 멈췄다.
분위기가 잠잠해지자 제갈공민이 말을 이었다.
“이번 광동진가와 황보세가의 대결은 황보세가의 승리임을 선언한다.”
제갈공민은 황보세가의 황보견우에게 손짓했다.
시선을 받은 황보견우가 불끈 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제갈공민의 말에 다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
“황보세가 최고다.”
비무대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었다.
그들은 무림인들만이 아니었다.
일반 백성들도 간간이 섞여 있었다.
오늘부터는 일반 백성들의 입장이 허용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반 백성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꽤 여유가 있는 자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용봉지회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꽤 많은 돈을 지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무림고수들의 무술에 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함성이 가장 크게 울려 퍼진 곳은 하북팽가의 무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함성이 사그라드는데도 하북팽가, 아니 정확히는 팽혁빈은 목청 높여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황보세가 최고다!”
그 외침이 조금 컸는지 다른 무림세가들의 시선이 팽혁빈에게 모였다.
옆에 있던 팽대위는 재빨리 팽혁빈의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쉿.”
“앗, 죄송합니다.”
팽혁빈이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팽대위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한빈이 가져온 오호단문도의 비급이 문제일까?
분명 무공은 눈에 띌 만큼 상승했지만, 지금처럼 사리 분별을 못 하고 날뛸 때면 난감하기만 했다.
십대세가가 중심이 된 무가지회라는 것이 무엇인가?
힘을 겨루는 곳이 아닌 이익을 나누는 곳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정치판이라는 말이었다.
섣불리 누굴 믿어서도 안 되고 한쪽에 붙어서도 안 된다.
팽대위가 생각하기에 강호행을 수행하고 돌아온 팽혁빈 정도면 대충 이런 상황은 알 것이었다.
그런데 번번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팽대위는 자신의 품에 있는 오호단문도의 비급을 어루만졌다.
무공서가 잘못되어 주화입마에 빠진 것은 아닌 것이, 팽대위도 새로운 오호단문도를 익혔다.
하지만 팽혁빈과 같은 증세는 없었다.
팽대위의 시선을 받은 팽혁빈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팽혁빈이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걸로 스무 번이나 이겼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비무에서 이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승패를 맞히는 것에서 스무 번이나 이겼다.
모든 것이 한빈이 주고 간 서책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무가지회에서 벌어질 승패가 정확하게 예측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적은 돈부터 걸었다.
그런데 계속 비무의 승패를 맞히는 내기에서 승리하자 팽혁빈은 내기에서 딴 돈을 모두 털어 넣기 시작했다.
팽혁빈은 자신의 품에 있는 서책을 만졌다.
팽혁빈은 이 서책에 혹시나 무공이라도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몇백 번을 살폈다.
하지만 비무의 승패를 기록해 놓은 서책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정확도가 문제였다.
덕분에 팽혁빈은 지금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내깃돈을 벌어들였다.
팽혁빈은 이번 무가지회에서 하북팽가가 가져가야 할 이익을 미리 쓸어 담아도 되었다고 봤다.
그 정도로 많은 돈을 쓸어 담았다.
상념을 이어 가던 팽혁빈의 머릿속에 이 서책을 주고 간 한빈이 떠올랐다.
천기를 읽는 천재라?
팽혁빈은 한빈을 떠올리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갑자기 사라져서 아직 소식이 없는 한빈이 서서히 걱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무엇을 하기에…….”
그때 황보세가의 가주 황보만청이 천천히 하북팽가의 무사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를 본 팽대위가 살짝 포권한다.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아니네, 이게 모두 하북팽가의 사 공자 덕이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팽대위가 눈을 크게 떴다.
같이 사천까지 왔지만, 이런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지금 황보만청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한빈과 황보세가 사이에 무공에 관해 교류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 황보만청이 말을 이었다.
“사 공자 덕에 무공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많은 진전이 있었다네, 덕분에 검법을 권법으로, 권법을 장법으로 변환시키는 데 수월했다네.”
“대체…….”
“나머지는 사 공자와의 약속 때문에 비밀일세.”
“아, 비밀이군요.”
팽대위가 탄성을 터뜨렸다.
요즘 들어 느낀 것이지만 한빈과 관련된 일에는 비밀이 많다는 느낌이었다.
하다못해 시녀조차도 ‘비밀인데요.’ 하며 얼버무리지 않는가.
그때 황보만청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 공자가 안 보이는군.”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들었습니다.”
“뭐, 항상 바쁘지. 그건 그렇고 자네는 어떻게 할 텐가?”
“뭘 말씀입니까?”
“내 동생이 며칠 후면 여기로 도착할 텐데 생각이 있나 물어보는 것이야. 지난번에 답을 주지 않았지 않나?”
“아, 그게…….”
“그럼 생각해 보게.”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이상하군.”
“이상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오늘따라 금와 상단의 일꾼들이 보이지 않아서. 뭐 사천당가의 사람도 많으니 그리 티는 안 나지만 말이네.”
“그러고 보니…….”
팽대위는 주변을 둘러봤다.
금와 상단의 표식을 달고 있는 일꾼들이 오늘따라 확 줄어든 느낌이었다.
물론 상단주가 전염병에 걸렸기에 그와 접촉한 일꾼은 일단은 격리한다는 통보를 받기는 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줄어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때 비무대 위에서 내공이 담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음 비무의 참가자는 속히 비무대로 올라오시오.”
그 목소리에 팽대위는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이는 팽혁빈의 모습이 보였다.
팽대위는 재빨리 팽혁빈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네 차례다.”
“알겠습니다, 숙부님.”
팽혁빈은 재빨리 비무대로 올랐다.
잠시 후.
하북팽가를 외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하북팽가의 대표로 나간 팽혁빈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하북팽가의 권각술도 대단하군. 마지막 초식은 대체 뭔가?”
“저게 혼원장이라지?”
“혼원장이라. 장법도 혼원벽력도의 명성에 못지않군.”
모두가 웅성거리고 있을 때 제갈공민이 외쳤다.
“오늘의 비무는 모두 끝났습니다! 내일은 용봉지회의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부터는 비무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가문별로 세 명의 출전자를 내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만은 병장기의 사용을 허가합니다. 나머지는 설명은 전과 마찬가지이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갈공민의 설명에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군침을 삼켰다.
한 가문에서 세 명의 무사가 나온다면 그만큼 많은 비무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눈을 빛내고 있을 때, 비무대 옆으로 무사들이 커다란 석판을 세우기 시작했다.
구경꾼들은 난데없는 상황에 고개를 갸웃했다.
석판은 웬만한 대문만큼이나 컸다.
거대한 석판이 비무대 옆에 우뚝 서자 제갈공민은 허리에 있는 판관필을 꺼냈다.
판관필을 꺼낸 제갈공민은 발을 박찼다.
탁.
그는 바로 석판 앞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는 땅에 착지하지 않고 공중에 머물렀다.
제갈공민은 왼손으로 석판을 구멍을 내고 그것을 잡은 채 석판에서 버티고 있었다.
놀라운 그의 조법에 모두가 웅성거린다.
“헉, 저 단단한 돌이 한 번에 뚫렸네그려.”
“그러게, 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거지?”
모두가 웅성거릴 때 제갈공민은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모두의 호기심이 극에 달할 때 제갈공민의 판관필이 움직였다.
스윽.
스윽.
마치 화선지에 글씨를 쓰듯 제갈공민의 판관필이 거대한 석판에 이름을 남겼다.
-황보세가.
-남궁세가.
-하북팽가.
-산동악가.
-하남정가.
-사천당가.
-서문세가.
-위씨세가.
마지막 날 최고를 겨룰 가문들이 이름이었다.
석판에 기록을 남긴 제갈공민은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고는 눈매를 좁혔다.
그도 오늘따라 금와 상단의 일꾼이 확연히 줄어든 것을 느낀 것이었다.
“대체…….”
그의 혼잣말은 군중들의 함성에 이내 묻혔다.
“와, 이제 여덟 세가 남았다.”
“아무래도 하남정가가 우승할 것 같은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서문세가가 최고지.”
하지만, 그들을 말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림세가의 사람들은 조용히 자신의 처소로 돌아갈 뿐이었다.
무림인들은 모두 빠졌지만, 비무대 주변에는 아직 많은 사람이 남아 내일의 비무에 관해서 토론을 벌였다.
* * *
그날 밤.
접객실이 있는 전각에는 조촐한 술자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용봉지회의 결승을 하루 앞둔 시점에 이런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간단했다.
용봉지회의 우승자를 배출하는 가문에 어떤 특혜를 줄 것인지, 남은 이익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미리 상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미리 상의하면 가문이 너무 많아 집중을 못 할 테고 우승자가 가려진 후에는 해당 가문에 특혜를 주기가 꺼려질 테니 지금이 협상하기에 가장 적당한 시기였다.
이 회의를 맡은 남궁장천이 술잔을 내려놨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잘 들었소이다. 그럼 그 의견을 내가 정리해 보겠소. 그러니까…….”
남궁장천이 설명을 시작하려 할 때였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그 모습에 다른 세가의 대표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남궁장천을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세가의 대표들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였다.
창밖 어디에선가 내공이 담긴 웃음이 울려 퍼졌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