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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51화 (351/621)

351. 화향만리(火香萬里) (2)

그 함성에 한빈이 입맛을 다셨다.

“쩝.”

“왜 그래요? 주군.”

심미호가 묻자 한빈이 옷을 툭툭 털며 말했다.

“하북팽가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그러지. 용봉지회라고 한다면 이미 참석했던 후기지수를 빼고 다 출전했을 텐데…….”

“하북팽가는 예선을 통과했어요.”

“그건 다행이네.”

“그렇게 걱정되시면 올라가셔서 용봉지회에 나가시면 되잖아요.”

“에이, 나는 용봉지회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지.”

“주군, 지금 상황에서 용봉지회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

“왜 없어, 어떻게 보면 용봉지회가 가장 하찮은 일이지.”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차기 십대세가를 이끌 후기지수를 뽑는 일이잖아요. 용봉지회의 우승자를 배출해 낸 가문이 상당수의 이권을 가져갈 것이고요.”

“심 부대주, 하나만 물을게.”

“네, 주군.”

“심 부대주는 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외양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소가 다 나가고 휑한 외양간을 준다 해도 무슨 필요가 있겠어?”

“그럼 주군이 하시려는 일이 외양간을 고치는 건가요?”

“그건 절대 아니지.”

“그럼 뭔데요?”

“소를 빼돌리면 외양간이 불타든 부서지든 상관없잖아.”

“아……. 그러면 그 소는 다 누가 가지고 가는 건가요?”

“그야 당연히…….”

“음.”

심미호는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그 모습에 씩 웃은 한빈이 말을 이었다.

“내가, 아니 우리가 가져야지.”

“우리요?”

“나와 적혈맹호대, 그리고 내 식구들! 심 부대주도 한 달 동안 고생했잖아. 햇빛도 못 보고 말이야. 그러니 우리라고 하는 게 맞지.”

한빈의 말에 심미호의 눈이 촉촉해졌다. 심미호뿐만 아니라 뒤쪽에서 따라오던 적혈맹호대 대원들의 눈에도 습기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심미호가 말했다.

“아, 생각해 주시니 고마워요. 주군.”

“왜 눈물을 글썽여?”

“아니에요, 주군.”

“심 부대주가 이러니까 내가 꼭 악덕 주인 같잖아.”

“그런데요…….”

촉촉했던 심미호의 눈동자에 습기가 가시고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 모습에 한빈이 재빨리 물었다.

“왜 그래? 심 부대주.”

“그 소는 어떻게 가져오실 건가요?”

“일단 미끼를 던져야지.”

“미끼라고요?”

“강태공처럼 느긋하게 기다리다 보면 때가 오지 않겠어? 물이 차야 대어가 걸려드는 법이지.”

“…….”

심미호는 눈을 크게 떴다. 한빈이 대어라고 말하자 왠지 모르게 긴장된 것ㅌ다.

한빈이 왕거니 혹은 대어라는 표현을 썼을 때는 경천동지할 사건이 벌어지고는 했다.

하긴 그런 사건이 아니라면 지금처럼 한 달 동안 땅굴을 파고 이런 준비를 했겠는가?

지금까지의 일을 보면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일임이 틀림없었다.

입술을 달싹이는 심미호의 모습에도 한빈은 그저 웃기만 했다.

눈빛과 웃음이 적당히 오갈 때, 심미호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혹시 지난번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나요?”

“지난번이라면…….”

“장운현에서처럼요.”

“그럴 수도 있겠지. 더 위험할 수도 있고.”

“헉.”

심미호가 비명을 터뜨렸다. 장운현에서 아군의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조금만 삐끗했으면 황천길로 직행할 뻔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비명을 지르던 심미호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올라가서 미리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요?”

“내가 올라가면 염려하던 일은 안 일어날 수도 있어.”

“그럼 더 좋은 게…….”

“아니지. 사람이란 건 진짜 위험에 닥쳤을 때 구해 줘야지 그 은혜를 아는 법이야. 그리고 이번에 지나가도 언젠가는 터질 일이니, 여기서 마무리 짓는 게 좋겠지.”

“아.”

“심 부대주가 걱정하는 건 하북팽가가 아니지?”

“…….”

“그렇다고 다른 무림세가도 아닐 거고.”

“네, 맞아요. 제가 걱정하는 건 소대섭 대주와 나머지 대원들이에요.”

“그건 걱정하지 마. 하북팽가와 적혈맹호대는 멀쩡할 거니까.”

“정말이죠? 주군.”

“심 부대주는 나 못 믿어?”

한빈이 상체를 기울이며 심미호를 바라봤다.

심미호는 대답을 피하며 슬쩍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렇게 말할 때면 묘하게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이다.

심미호의 심장이 살짝 뛰기 시작했다.

한빈과 생사를 넘나드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하더라도 그 경험이 두려움을 무디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심미호는 조용히 한빈을 바라봤다.

“…….”

“이거 섭섭한데, 쩝.”

한빈이 입맛을 다시자 심미호가 깜짝 놀라 재빨리 답했다.

“그럼 안심하고 기다릴게요. 이제 다 왔어요. 이 위쪽이 가주전의 뒤쪽으로 연결되는 통로예요.”

심미호가 위쪽을 가리켰다.

위쪽을 확인한 한빈은 시선을 뒤로 돌려 적혈맹호대 대원들을 확인했다.

그들은 등에 궤짝을 짊어진 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오고 있었다.

한빈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대기한다.”

한빈이 씩 웃자 심미호가 뒤쪽을 보며 손짓했다.

간격을 두고 뒤따라오던 적혈맹호대 대원들이 멈췄다.

자리에서 멈춘 적혈맹호대 대원들이 횃불을 들었다.

각자의 자리에 선 그들은 횃불을 벽에 꽂았다.

탁, 탁.

횃불을 벽에 꽂은 그들은 재빨리 등에 짊어진 궤짝을 내려놨다.

쿵, 쿵.

짐을 내려놓자 통로가 흔들릴 정도로 소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위쪽에서 울리는 함성 덕분에 그 소음은 이내 묻혔다.

궤짝을 앞에 둔 적혈맹호대 대원들은 전투를 앞둔 이들처럼 마른침을 삼키며 한빈의 지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심미호도 덩달아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도 적혈맹호대가 내려놓은 궤짝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이 내려놓은 궤짝은 천리 표국에서 가져온 물건이었다.

궤짝은 밀랍으로 봉인되어 있으며 한빈이 지시할 때만 개봉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대원 하나가 심미호의 앞에 궤짝을 내려놨다.

이로써 적혈맹호대 대원들은 궤짝 하나씩을 앞에 두게 되었다.

심미호는 궤짝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표정을 굳혔다.

심미호는 눈앞에 있는 궤짝에 이번 임무에 필요한 중요한 물건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맹독이나.

폭약이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에 비견되는 위험한 물건들 말이다.

모두가 한빈만을 바라보고 있자, 설화와 청화도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에 심미호가 눈매를 좁혔다.

설화와 청화가 모른다는 표정을 보이자 그 궤짝의 내용물이 보통 물건이 아님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심미호는 슬쩍 자신의 대원들을 바라봤다.

적혈맹호대 대원들의 표정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떤 대원은 ‘이젠 죽었구나’ 하는 감정을 보이는가 하면.

어떤 대원은 한빈과 심미호를 원망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한빈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궤짝을 열라는 신호였다.

순간 적혈맹호대 대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이어서 궤짝 여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려왔다.

탁. 탁.

궤짝을 연 적혈맹호대 대원들은 너나없이 옆에 서 있는 동료를 바라봤다.

그중 한 대원이 못 참겠다는 듯 옆의 동료에게 물었다.

“이게 뭐지?”

“그러게 말일세. 이게 뭔지 모르겠군.”

대원들은 똑같이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한빈이 말을 이었다.

“안에 있는 물건을 비워라.”

“…….”

그 말에 적혈맹호대 대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궤짝의 안에는 술과 육포 그리고 의복이 들어 있었다.

궤짝의 구석을 보면 가죽 주머니까지 있었다.

심미호가 한빈의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주군, 이게 다 뭡니까? 왜 폭약 대신 술이 들어 있는 겁니까?”

“심 부대주, 그게 무슨 말이야? 왜 폭약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 거야?”

“저 궤짝을 받으면서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은 데다……. 거기에 밀랍으로 봉인까지 됐으니 오해하지 않으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있어야죠.”

“사는 데 무슨 낙이 있겠어. 술과 돈, 그리고 옷이 제일 중요하잖아. 집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걸 궤짝에 넣을 수는 없으니까.”

“안에 들어 있는 게 술과 옷이면 미리 말씀 좀 해 주시지.”

“에이, 괜히 미리 말해 줬으면 막 입어 보고 미리 먹고 했을 거 아니야.”

“아!”

심미호가 탄성을 질렀다.

그 모습에 한빈이 잠시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궤짝 안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다.

그때 한빈이 외쳤다.

“지금 새로운 무복으로 갈아입는다, 실시!”

드디어 한빈의 지시가 나왔다.

심미호를 비롯한 적혈맹호대 대원들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부터 환복하겠습니다, 존명.”

“존명!”

적혈맹호대 대원들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횃불 아래 하나둘씩 늘어나는 붉은 무복.

상자에 들어 있는 무복은 한빈과 똑같은 붉은 무복이었다.

붉은색 무복으로 막 갈아입은 적혈맹호대 대원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심미호도 눈 깜짝할 사이에 붉은 무복으로 갈아입고 한빈 옆에 섰다.

적혈맹호대 대원들이 모두 무복을 갈아입자 한빈이 외쳤다.

“무가지회에서 우리 적혈맹호대의 힘을 보여 준다. 복창은 생략한다!”

“…….”

한빈의 말대로 그들은 말없이 눈빛으로 답했다.

심미호도 주먹을 꽉 쥐며 눈을 빛냈다.

심미호는 심장을 뚫고 삐져나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한빈과 같은 붉은색 무복을 입었다는 것이 그녀의 감정을 건든 것이다.

다른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무복은 한빈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런 붉은 무복을 자신들이 입자, 주군인 한빈과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고 느낀 것이었다.

그들의 결의에 찬 눈빛을 본 한빈이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임무 개시 전까지 편하게 한 잔씩 하도록!”

“네?”

심미호가 깜짝 놀라 묻자 한빈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기다릴 동안 할 것도 없잖아. 그러니까 술이라도 한잔해야 하지 않겠어?”

“아무리 그래도……. 그런데 이 가죽 주머니는 뭐예요? 묵직한데요.”

“한번 확인해 봐.”

“헉.”

“별건 아니지만 이번에 고생한 보수라고 생각해.”

“나중에 주셔도 되는데…….”

“너희는 몰라도 나는 위험할 수 있거든. 내가 죽으면 적혈맹호대에 누가 보상을 줘?”

“앗, 주군!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심미호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술을 마시던 적혈맹호대 대원 중 몇은 놀라 술을 뿜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뭐, 다른 뜻도 있어. 이 돈을 써야 하니까. 꼭 살아남으라는 이야기다. 꽤 많이 넣어 뒀으니 목숨 걸고 살아남아라.”

한빈이 씩 웃자 심미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말이 어딘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빈의 말에 끼어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빈을 향한 시선들이 촉촉해질 뿐이었다.

한빈의 진지한 표정.

그리고 지옥에서라도 뛰어들 것만 같은 적혈맹호대의 표정.

그들의 표정이 지하 통로를 후끈하게 만들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설화가 입을 떡 벌렸다.

푼돈 가지고 이렇게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만드는 한빈의 솜씨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것도 잠시,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저 전낭을 푼돈이라 생각한 것이 놀라웠다.

설화는 품속에 야명주를 만졌다.

야명주를 확인한 설화는 입꼬리를 올렸다.

한빈이 천하제일 부자라면 자신은 천하제이 부자였다.

설화는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겸손해야 해. 그리고 검소해야 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예요? 언니.”

청화가 묻자 설화가 눈을 찡끗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헤헤.”

그때 위쪽에서 함성이 다시 울려 왔다.

와아아!

* * *

비무장에서 구경꾼들의 함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와아!”

지금 비무대에는 두 명의 무사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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