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341화 (341/621)

341. 용혈의 주인 (2)

한참을 바라보던 청화가 물었다.

“그런데 누구죠?”

“지난번에 영단산에서 간식 챙겨 줬던 아저씨잖아.”

“아, 어쩐지 낯이 익더라. 헤헤.”

청화가 실없이 웃었다.

그녀들의 옆에 있던 무진은 난데없는 고수의 등장에 긴장했다가 옆에 의녀들이 웃자 어찌 된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새로 나타난 고수가 의녀와 안면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무진의 생각과는 달리 정의맹 무사들은 앞으로 곧게 겨눴던 검 끝이 눈에 보이게 떨리고 있다.

그들과 팽팽하게 대치하던 사도련 무사들은 갑자기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누가 봐도 새로 나타난 고수는 사도련의 인물이었다.

난데없는 고수의 출현으로 정의맹 무사들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가장 앞에 상대와 설전을 벌이던 무사도 뒤로 물러섰다.

“산서이살…….”

“정말 산서이살이야!”

뒤쪽에서 버티던 정의맹 무사 하나가 맞장구쳤다.

순간 정의맹의 진영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럼 저자가 편육랑아라는 이야기야?”

“저 거구에 저 거대한 낭아봉을 보면…….”

정의맹 무사가 말끝을 흐렸다.

편육랑아가 입꼬리를 떨었기 때문이다.

어찌나 떨리는지 낙엽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드르륵 떨리던 입꼬리가 멈추고 편육랑아의 입술이 열렸다.

“지금 뭐라고 했나? 혹시 산서이살이라고 했나?”

말을 마친 편육랑아가 낭아봉을 바닥에 찍었다.

푹!

낭아봉이 나루터 바닥에 박혔다.

순간 정의맹 무사가 한 발 뒤로 더 물러나며 물었다.

“대체 왜 그러느냐?”

“왜 그러냐고? 우리 형제는 항상 세 명이었다. 그런데 이살이라고?”

“음…….”

정의맹 무사는 침음을 삼키며 편육랑아를 바라봤다.

둘째인 빙혈서생이 빠지고 지금은 두 명만 남아 있다는 것은 강호에 퍼진 소문.

생각해 보니 중원에 남은 첫째와 셋째는 이살이라는 칭호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뒤쪽에서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도, 도움을 요청해야!”

말을 마친 뒤쪽 정의맹 무사는 허리 쪽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붉은색으로 물을 들인 대나무 통이었다.

그는 대나무 통 아래에 있는 끈을 당겼다.

순간 대나무 통 안에 있던 폭죽이 하늘 위로 튀어 올랐다.

팡!

하늘 위에서 터지는 폭죽.

그때 편육랑아의 옆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허허, 제법 머리를 썼구나. 참 재미있어.”

“당, 당신은 흑의살풍 아니오?”

정의맹 무사의 떨리는 목소리에 산서삼살 중 첫째인 흑의살풍이 복면을 내렸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수염은 그대로인.

하지만 그간 성취가 있었는지 눈빛만은 예전보다 더 빛났다.

그 눈빛 때문인지 정의맹 무사는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에 흑의살풍이 말했다.

“그래도 보는 눈은 제법 있는 편이야. 그런데 생각이 없다는 것이 문제지.”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저 폭죽을 볼 수 있는 거리는 밤에는 오십 리 정도지. 그런데 낮이라면 어떨까?”

“…….”

“한, 십 리? 그것도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알아보겠지.”

“허.”

“그런데 웃기는 건 말이야. 십 리 안에는 사도련의 세력이 더 많거든.”

“대체…….”

“우리도 무가지회에 놀러 왔다는 생각은 안 해 봤나? 너희 대부분의 세력은 사천당가에 있지. 그리고 우리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고. 그런데 그런 얄팍한 수법으로 신호를 보낸다고?”

“아!”

정의맹 무사가 탄성을 터뜨리자 흑의살풍이 말을 이었다.

“그 신호를 보고 달려오는 사람은 과연 누구 편일까? 내가 보기에는 실수를 해도 단단히 한 것 같은 느낌인데…….”

“대체 무엇을 원하십니까? 정사대전이라도 벌이시려는 겁니까?”

정의맹 무사의 어투가 공손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정파나 사파나 모두 칼밥을 먹는 처지였다.

이익이 상충하는 일만 없다면 선배에 대한 예우는 당연했다.

물론 지금은 이익이 눈앞에 있지만, 힘에서 밀리기에 한발을 슬쩍 뺀 것뿐. 정의맹 무사의 기세는 완전히 죽지 않았다.

흑의살풍은 피식 웃으며 뒤쪽에 있는 선주를 가리켰다.

“마교인을 우리에게 넘기게! 어차피 자네들과는 상관없지 않나? 저자의 혀를 자르고 관절 마디마디를 토막 내서라도 실토를 받아 내겠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정보는 정의맹과 공유하도록 하지.”

“…….”

정의맹 무사를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조용히 뒤를 바라봤다.

선주의 얼굴에는 이제 핏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하얀 종이가 바람에 떨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선주는 붉은 검신을 묶은 밧줄을 잡은 채 강물로 뛰어들기 위해 몸을 날렸다.

순간 정의맹과 사도련 모두가 경악했다.

“저, 저놈이!”

“막아라!”

정의맹과 사도련 무사들이 동시에 외칠 때였다.

어디선가 파공성이 들려왔다.

휘잉!

그 소리는 하늘 위에서 들려왔다.

마치 화살이 날아오는 듯한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점을 본 편육랑아가 말했다.

“화살입니다, 형님.”

“화살이 아니다, 셋째야.”

“그럼 대체 저게 뭡니까? 누가 봐도…….”

편육랑아는 말끝을 흐렸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화살이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다.

점점 가까워지자 눈에 들어온 물체는 보통 화살보다 많이 컸다.

모두가 화살이라고 생각한 물체가 나루터의 가장자리에 박혔다.

팡!

그 가장자리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은 화살이 아니라 창이었다.

창에는 오색의 매듭이 긴 머리를 뽐내는 미녀처럼 찰랑거리고 있었다.

더 신기한 것은 그렇게 흉악한 기세로 날아와서 나루터에 박혔는데 그 주변이 멀쩡하다는 것이다.

나루터의 대부분은 나무로 연결되어 있고 그 나무는 물기를 머금기 마련이다.

사실 조금 세게 발만 굴러도 바스러질 텐데 아무렇지도 않게 나루터의 가장자리에 박혀 있는 창은 무공을 조금 아는 무사들이 봤을 때는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춤을 추듯 살짝 흔들리는 창의 앞쪽에는 선주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사실 조금만 더 일찍 갔다면 저 창에 몸이 꿰뚫려 꼬치구이가 되었을 터였다.

그때였다.

멀리서 마차 소리가 들렸다.

덜그럭, 덜그럭.

그 마차는 나루터 쪽으로 다가왔다.

모두가 그 마차에 주목하고 있을 때 마차의 선두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왔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사도련 무사들의 머리 위로 날듯이 달려온 사내는 정의맹의 무사들도 지나쳤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나루터 가장자리에 꽂힌 창을 뽑았다.

휙!

창을 뽑은 사내는 창대를 돌려 묻은 물기를 털어 냈다.

싸악!

창대는 아슬아슬하게 선주의 목을 지나쳤으나 닿지는 않았다.

선주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뒤쪽으로 물러났다.

어쩌다 보니 선주는 정의맹 무사와 사도련 무사가 대치하는 중앙까지 가게 되었다.

붉은 검신을 묶어 놓은 밧줄을 쥔 채 말이다.

하지만, 정의맹 무사들의 눈에 선주의 모습은 들어오지 않았다.

선주뿐 아니라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붉은 검신도 그들의 뇌리에는 잊혔다.

모두가 새로 나타난 고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긴장한 것은 정의맹의 무사들이었다.

아까 흑의살풍이 말한 것을 들어 보면 분명 사도련의 인물일 터.

앞뒤로 포위를 당한 것에 더해 무공까지 상대가 되지 않으니 죽은 목숨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사내는 창을 뒤쪽으로 돌린 뒤 한 손으로 포권했다.

이 포권은 누구 한 명이 아닌 모두에게 표하는 예의였다.

고개를 든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양가의 양예신이라고 합니다. 지나가는 길에 도와달라는 외침이 들려서 본의 아니게 창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내는 양예신.

가주인 자신의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강호를 떠돌던 신창양가의 대공자였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가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창양가였다.

그의 등장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했다.

양예신의 말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양가의 양예신이라고 하면……. 신창양가!”

“신창양가의 대공자다.”

“신창양가가 우릴 도와주러 왔다.”

“지금 쓴 수법은 산창양가의 비룡익조가 분명해.”

“신창양가를 여기서 보게 되다니 운이 좋군,”

“무가지회에 한 번도 참석 안 한 신창양가가 사천에…….”

“사악한 사도련을 처단하기 위해서 온 게 분명해.”

무사들의 목소리에 양예신은 고개를 갸웃했다.

딱히 어느 한쪽을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여기에서 일을 벌이고 싶지도 않았다.

빨리 무가지회에 도착해야 했다.

그것은 누군가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양예신을 향해 갑자기 기세가 몰아쳐 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거대한 거구의 사내와 검은 무복의 무인이 있는 곳이다.

그들 중 거구의 사내가 기세를 쏘아 내고 있다.

거구의 사내는 물론 편육랑아.

편육랑아는 말도 안 되는 솜씨로 창을 바닥에 꽂아 넣은 상대가 기분 나빴다.

문득 산서에서 하북으로 넘어왔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누군가와 마주치고 나서 묘하게 인생이 바뀌었다.

지금 상황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딱 누군가 때문에 인생이 바뀐다는 것은 그만큼 힘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 누군가 때문에 둘째 형인 빙혈서생도 북해빙궁으로 떠났다.

그 누군가 때문에 첫째 형인 흑의살풍과 편육랑아는 영단산에 둥지를 틀었다.

영단산에서 편육랑아는 이를 악물고 수련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얼마 전 그 누군가와 만났다.

문제는 자신이 강해진 것보다 그 누군가는 몇 배 더 강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편육랑아는 그 누군가보다 강해지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심했다.

그를 제외하고 나면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겠다고 말이다.

편육랑아가 기세를 담아 외쳤다.

“나와 붙자!”

“시간이 없소.”

양예신이 짧게 말하자 편육랑아의 눈썹이 꿈틀댔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 신창양가 따위가!”

“지금 우리 가문을 모욕하는 것이오?”

양예신이 눈을 가늘게 떴다.

굳이 답을 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문을 들먹인 자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었으니까.

편육랑아에게 달려가던 양예신이 자세를 낮췄다.

동시에 창이 빗자루 쓸듯 편육랑아의 하체로 달려들었다.

양가창법 중 발초심사(撥草尋蛇)의 수법.

풀을 헤쳐 뱀을 찾는 수법이었다.

말 그대로 아래를 공격해서 뱀을 나오게 하고.

밖으로 나온 뱀을 그대로 두 동강 내는 수법.

편육랑아가 덩치에 걸맞지 않게 가볍게 뛰어올랐다.

발초심사의 발초에 걸린 것이다.

양예신의 창이 방향을 바꾸었다.

뛰어오른 뱀, 아니 편육랑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편육랑아는 허공으로 짓쳐들어오는 창을 보며 웃었다.

그는 거대한 낭아봉을 한 손으로 들었다.

그러고는 옆으로 날아오는 창을 행해 일도양단의 기세로 내리쳤다.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자세.

하지만 편육랑아는 거대한 낭아봉을 마치 단검을 들듯 가볍게 한 손으로 다루고 있었다.

사람을 노린 것이 아닌 창대를 노린 일격.

팡!

양예신이 재빨리 창을 거두며 뒤로 물러났다.

양예신은 조용히 편육랑아를 바라봤다.

편육랑아도 양예신을 바라봤다.

그 둘의 사이에는 오줌을 지린 선주가 붉은 검신을 묶은 밧줄에 둘러싸인 채 넋을 잃고 있었다.

오가는 창과 낭아봉을 피하며 뒹굴다 보니 붉은 검신을 묶은 밧줄이 그의 목을 포박한 모양이 되었다.

하지만 선주를 눈여겨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양예신과 편육랑아의 대결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그들이 대결을 이어 가고 있을 때였다.

한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설화가 물었다.

“어디 가세요? 공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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