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 용린검의 비밀 (6)
선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건 뭔가?”
“이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딸아이의 물건입니다.”
무진이 답하자 선주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예사 물건이 아닌 듯싶네만은…….”
무진은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별 가치 없는 물건입니다.”
“자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무진이 눈을 크게 뜨자 선주의 입가에 뜻 모를 미소가 피어났다.
“물건의 가치는 내가 판단하네. 그 물건은 자네가 배에 탔을 때는 분명 가지고 있던 물건이 아닌 것으로 아네.”
“…….”
무진이 말없이 선주를 바라보자 선주가 반문했다.
“내 말이 틀린가?”
“절대, 아닙니다. 이건 저희 겁니다.”
“원래 자네 거였다고……. 뭐, 그것도 내가 판단할 문제네. 일단 이 물건은 내가 가지고 있겠네.”
선주는 반 토막 난 검신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러나 붉은색 검신을 잡은 선주는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으윽!”
그 소리에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무진은 선주가 당황한 틈을 타서 재빨리 붉은색 검신을 잡았다.
이전에도 느꼈던 오묘한 기운이 팔을 타고 흘러들어 왔다.
하지만, 이것은 영아에게 숙면을 주는 물건이었다.
무진은 이를 악물고 붉은색 검신에서 흘러들어 오는 기운을 참았다.
그때 무진의 등에 업혔던 영아가 깨어났다.
“지금 뭐 하세요?”
“영아야, 이걸 잡고 있어라.”
“앗, 이게 왜……. 떨어뜨렸나 보네요.”
“그래, 네가 잠든 사이에 떨어졌다.”
무진은 영아의 품에 붉은색 검신을 건넸다.
영아가 그 검신을 품에 안아 들자 무진이 영아에게 말했다.
“조, 조심하여라.”
“괜찮아요. 아버지.”
영아가 해맑게 웃었다. 사실 날이 없는 뭉툭한 검날은 닭의 목을 벨 수도 없을 정도로 무뎠다.
무진이 영아를 업고 선주로부터 열 걸음 정도 도망쳤을 때였다.
선주가 외쳤다.
“도둑이다. 저기 도둑이다!”
선주의 외침에 주변이 살짝 술렁거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무진과 영아를 확인하고는 그대로 하던 일에 열중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일개 도둑 따위에 신경 쓸 정도로 여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중에는 이곳 나루터 일이 생업인 사람도 있었고.
무림 단체에서 나와 이곳 나루터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이도 있었다.
더욱이 상인들의 경우 자신의 짐에만 신경을 쓸 뿐,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관계없었다.
도둑이라는 외침을 듣는 순간 자신의 짐을 꼭 잡아끌 뿐이었다.
그 모습에 선주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것은 분명히 기물이었다.
신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으로 봐서 그 값을 헤아릴 수 없을지도 몰랐다.
저 물건이 누구 것이냐고 한다면 선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것이라 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무진이 오늘 어선의 대여비를 상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자 선주의 눈에 화롯불의 불씨처럼 욕망이 타올랐다.
무진을 잡으러 뛰어가려던 선주의 머릿속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붉은색 검신이 떠올랐다.
붉은색 하면 과연 무엇이 떠오를까?
그것은 피.
피 하면 떠오르는 문파가 하나 있다.
솔직히 문파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말이다.
그것은 바로 마교였다.
계획은 간단했다.
마교도로 몰고 물건은 자신이 차지한다!
선주는 재빨리 외쳤다.
“마교도가 보물을 가지고 도망친다!”
그 파급력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갑자기 웅성대는 군중.
그들 중 가장 노골적으로 무진이 있는 쪽을 바라보는 자들은 역시 무림인들이었다.
“마교도?”
“여기에 마교도가 나타났다고?”
“어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 보물이라고 했어. 보물.”
무림인들의 귀에 마교와 보물이라는 두 단어가 합쳐 들리자, 그들의 눈빛에 탐욕이 한여름에 일렁거리는 아지랑이처럼 들끓었다.
“그러고 보니 보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래, 마교도한테 뺏은 보물은 줍는 사람이 임자지.”
그들은 하나둘씩 검을 빼 들었다.
스릉! 스릉!
검집에서 뽑혀 나온 검날이 붉은 노을빛을 받자 붉게 변했다.
무진은 검을 들고 오는 이들을 눈에 담았다.
무진의 눈에는 그들이 마교도처럼 보였다.
붉은 노을이 반사된 검날에 눈동자에는 탐욕이라는 두 글자를 품고 있는 자들을 정상적인 무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진은 여기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했다.
반 토막 난 붉은색 검은 딸아이를 위한 것.
그런데 지금은 딸아이와 자신의 목이 달아날 판이였다.
무진은 재빨리 딸아이를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영아가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는 듯 토막 난 붉은색 검을 건넸다.
“아버지, 여기요.”
“고맙다.”
무진을 붉은 검신을 받자마자 냅다 선주에게 던졌다.
붉은 검신이 빙글빙글 돌더니 선주의 앞에 탁 떨어졌다.
챙그랑.
선주가 붉은 검신을 주워 들자 무진의 뒤에 업힌 영아가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해도 마교도의 부탁은 받지 마셨어야죠!”
화난 듯한 영아의 목소리에 무진은 번뜩 정신을 차렸다.
“네 말이 옳다. 저 간악한 마교도의 부탁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 간악한 놈 같으니라고. 부탁을 해 놓고는 우리를 모함하다니!”
무진이 말을 마친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를 향해 다가오던 무사 중 대부분이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방향을 바꾸어 다급하게 달려갔다.
타다닥.
무사들의 발소리가 나루터 주변에 울렸지만, 선주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손으로 감당키 힘든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붉은 검신을 밧줄로 감싸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무사들을 보지 못했다.
그저 이 붉은 검신을 사천의 번화가로 가져가 그곳에서도 가장 크다는 만금 전장 사천지부에 감정을 받을 꿈에 부풀어 있었다.
과연 얼마일지, 그의 눈앞에 전표가 어른거린다.
이것을 누구에게 넘겨야 할까를 생각하자 그의 눈앞에 몇몇 무림세가가 떠올랐다.
선주가 탐욕에 찬 눈으로 붉은 검신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스스륵, 스르륵.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선주의 귀에 울렸다.
나루터에 익숙한 선주에게는 사실 익숙한 소리였다.
그것은 가죽신이 나무에 긁히는 소리였다.
문제는 그 소리를 내는 사람의 숫자였다.
거슬리는 소리가 한두 명에게 나는 것이 아니었다.
선주가 슬쩍 소개를 들었다. 순간 선주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무진과 영아 부녀를 쫓아야 할 무림인들이 갑자기 자신의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선주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 대체 왜 그러는 것이오?”
물론 누구를 콕 집어서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선주의 질문에 답해 주지는 않았다.
그중 하나가 선주를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마교도다.”
“내, 내가 무슨 마교도라는 말이오!”
“네가 가지고 있는 붉은 검이 마교도라는 증표가 아니더냐?”
“그, 그건 내 물건을 찾기 위해…….”
변명하던 선주는 자신의 입을 급하게 막았다.
그 모습에 무사 중 하나가 입가에 비웃음을 그리며 물었다.
“오호, 그게 네 물건이 맞다고 인정하는 것이냐?”
“이건 저자의 빚 대신 받은 것이기에 내 물건이 맞소.”
선주는 손가락으로 무진 부녀를 가리켰다.
선주의 말에 맨 앞에 있던 무사가 턱짓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그쪽에는 무진 부녀가 있었다.
동시에 무사 중 몇이 무진 부녀 쪽으로 달려갔다.
타다닥.
무진 부녀의 길을 막은 무사와 선주 쪽으로 다가가는 무사.
이렇게 두 무리로 나누어진 상태.
어쩌다 보니 선주와 무진 부녀가 모두 무사들에게 포위된 상태였다.
* * *
한빈은 턱을 괸 채 갑자기 벌어진 난장판을 감상하고 있었다.
설화와 청화도 목을 삐죽 내민 채 고개를 창밖으로 내밀었다.
한참을 보던 설화가 말했다.
“쯧, 제 무덤을 팠네, 팠어.”
“그쵸, 왜 저렇게 혀를 놀려서……. 그런데 저러다 누구 하나 죽어 나가겠는데요.”
청화도 혀를 차며 그들의 상황을 주시했다.
설화는 무사들의 무복에 그려진 문양을 가리켰다.
“명색이 정의맹 무사들이잖아. 사람이 득실득실하는 저곳에서 아무렇게나 칼질을 하겠어?”
“하긴 그렇겠네요. 그나저나 저 부녀는 무사할까요?”
“가만히 보니 저 물건만 빼앗으면 그냥 돌아갈 것 같은데.”
그때 한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설화가 다급하게 물었다.
“공자님, 어디 가세요?”
“내 물건 찾으러.”
한빈이 당연하다는 듯 답하자 설화가 다시 물었다.
“공자님 물건이라니요? 혹시 뭘 잃어버렸어요?”
“내 용린검이 자신의 핏줄을 찾았는지 마구 소리 지르네.”
한빈은 검집이 된 화룡편에 얌전히 잠들어 있는 검 자루를 가리켰다.
이것은 용린검의 반쪽. 그 핏줄이라고 하면 한빈이 잃어버린 나머지 반쪽을 말함이었다.
그 뜻을 알아챈 설화의 고개를 더욱 기울어졌다.
귀락천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용린검의 반쪽을 어떻게 여기에서 찾는다는 말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던 설화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용린검의 검 자루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거기에 새가 울듯 용린검의 검 자루가 검명을 토해 내고 있었다.
지이잉, 지이잉.
깜짝 놀란 설화가 물었다.
“그게 어떻게 된 거예요?”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말을 마친 한빈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어서 설화가 외쳤다.
“공자님, 같이 가요!”
“저도 갈게요,”
청화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다시 나타난 곳은 정의맹 무사들의 포위망 바로 앞쪽이었다.
사사삭.
풀잎 밟는 소리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을 때 한빈은 자리에 철퍼덕 앉았다.
그 모습에 설화가 물었다.
“공자님, 알아보신다면서요?”
“일단 구경부터 하고.”
“그럼 위쪽에서 구경하셔도 되잖아요.”
“위쪽에서 편안히 보기에는 내 깨달음이 아직 짧네.”
한빈이 빙긋 웃으며 허공에 원을 그렸다.
그 모습에 설화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예전이라면 한빈이 지금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충이나마 한빈이 그린 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한빈이 장악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저들의 무공 수준을 고려했을 때 한빈이 그린 테두리는 완벽하게 그의 공간이었다.
저 붉은 검신이 누구에게 가든.
아니면 강 속에 빠지든.
한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언제든 그 상황에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저들의 생사 여탈권과 함께 말이다.
설화는 조용히 자신의 경지를 헤아려 봤다.
과연 자신이 장악할 수 있는 공간은 얼마나 될까?
자문하던 설화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서 자신 있게 장악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에이, 나는 아직 멀었네.”
“언니, 실망하지 마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청화야”
“언니는 대신에 예쁘잖아요.”
“얘는 그게 무슨 말……. 헤헤.”
설화가 손을 내저으며 실없이 웃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고개를 기분 좋게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미소였다.
이렇게 여유롭게 싸움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다시 나타난 용림검의 반쪽에 감사했다.
지이잉. 지이잉.
용린검의 울림이 조금 더 커졌다.
그때였다.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의맹의 포위망 주변으로 회색 무복의 무인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포위망을 구축한 정의맹의 무사들을 포위하려는 듯 보였다.
회색 무복의 무사들의 가슴에는 강남 사도련을 나타내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을 확인한 한빈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었다.
뭐,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가지회는 어찌 보면 강호에서 몇 안 되는 큰 행사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