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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37화 (337/621)
  • 337. 용린검의 비밀 (4)

    나루터 입구까지의 거리를 본 청화가 웃었다.

    “그럼 당연하지요. 혹시 저 무시하는 거예요? 공자님.”

    설화가 뾰로통한 얼굴로 바라보자 한빈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다. 내가 언제 너를 무시했다고 그러느냐?”

    “알았어요. 이제는 저도 저 정도 거리는 진짜 누워서 당과 먹기라고요.”

    “그래, 알았다.

    한빈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화도 뒤따라 말을 이었다.

    “저도 저 정도 거리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난 너희를 믿어.”

    말을 마친 한빈은 나루터의 입구로 날아올랐다.

    사사-삭.

    한빈이 나루터에 안착했다. 그 소리는 마치 풀잎이 스치는 듯 자연스러웠다.

    그의 뒤쪽에서 착지하는 소리가 연속으로 울렸다.

    풀썩. 풀썩.

    뒤를 돌아본 한빈이 말했다.

    “다 좋은데 소리는 좀 줄여야겠구나.”

    “아, 이번에는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설화가 볼을 부풀렸다.

    그 뒤에 있는 청화는 조용히 딴 곳을 바라봤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들의 말에 한빈의 빙긋 웃고는 고개를 돌려 배를 확인했다.

    잔잔한 물결에 바람도 없었다.

    저곳에 며칠은 놔둬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배를 확인한 한빈은 고개를 돌려 천천히 걸어갔다.

    설화는 고개를 갸웃하며 무작정 한빈의 뒤를 따랐다.

    한빈은 마치 장을 보러 나온 것처럼 휘적휘적 걸어가며 주위를 살폈다.

    한빈의 시선이 멈춘 곳은 나루터 입구에서 오십 걸음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뒤따르던 설화가 그곳을 바라봤다.

    한빈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여러 거지가 동냥 그릇을 내놓고 있었다.

    그 거지들은 모두 다른 무리인지 제각기 복색이 달랐다.

    한 거지는 대머리에 여기저기 다 해진 옷을 입고 있었으며 다른 거지는 머리가 희끗하기는 해도 그나마 그럴듯한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누가 본다면 최근에 거지가 되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깔끔한 복장이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금방 거지들의 서열에서 밀려난 듯 보이는 아이가 힘없이 동냥 그릇을 내놓고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던 한빈이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잠시 후 한빈은 그곳으로 걸어가 거지들의 앞에 섰다.

    그 모습에 뒤따라간 설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자님, 여기는 왜 오셨어요?”

    “거지 찾아서 왔지, 내가 별 의도가 있겠느냐?”

    한빈이 거지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설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거지는 매듭도 없잖아요. 그럼 그냥 거지 아닌가요? 개방의 거지도 아닌데 공자님이 만날 이유는 없잖아요.”

    “설화야, 거지에 어디 높고 낮음이 있겠느냐? 거지라 함은 무릇 개방이나 저잣거리 거지나 모두 한 하늘 아래 있는 법이란다.”

    “그래도 개방 거지들은 무공이라도 하잖아요.”

    설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말뜻은 간단했다.

    한빈이 볼일이 있다면 개방의 거지들을 만날 것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거지는 아무리 봐도 매듭이 없었다.

    “그건 네 착각이지. 그리고 매듭이 없다고 해서 개방의 거지가 아니란 법도 없단다.”

    그때였다.

    앞에 가장 허름한 복장의 거지가 일어났다.

    불쌍할 정도로 여기저기 숭숭 구멍이 난 옷을 입은 거지였다.

    거지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한빈을 바라봤다.

    “거, 기분 나쁘게 왜 거지 거지 하슈?”

    “거지를 거지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합니까?”

    “그래도 거지라고 계속 그러니, 듣는 거지가 기분 나쁘오.”

    거지가 눈을 크게 떴다.

    그 모습에 한빈이 사람 좋은 얼굴로 말했다.

    “죄송하오, 거지 양반.”

    “헉, 지금 한번 해보자는 겁니까?”

    “해보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귀인이 찾아온 것을 모르는 것을 보면 기강이 하늘에 떨어진 것 같군요.”

    “기강이라 했소? 귀하가 누구길래 기강을 논하는 것이오?”

    거지는 미간을 좁히며 한빈을 바라봤다.

    이 장면은 지켜보는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눈앞에 있는 거지는 분명히 개방도가 아니었다.

    그런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평범한 거지는 아닌 듯싶었다.

    그때 한빈이 거지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하늘은 높고…….”

    한빈은 말끝을 흐리며 거지를 바라봤다.

    거지는 고개를 갸웃할 뿐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듯 멍하니 한빈을 바라봤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거지가 되묻자 한빈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 모습에 거지가 당황한 듯 뒷걸음쳤다.

    “왜 그런 흉악한 표정을…….”

    “아니, 언제부터 거지들의 정신 상태가 이리 해이해졌단 말이냐?”

    한빈이 갑자기 호통을 쳤다.

    뒤로 물러나던 거지가 주춤대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왜 저희에게…….”

    “개방에서는 신입에게 암어도 안 가르친다는 말인가?”

    한빈이 실망했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 모습에 뒤쪽에 있던 가장 어린 거지가 일어났다.

    어린 거지는 얼굴이나 복장 모두 가장 멀쩡한 편이었다.

    거지는 여전히 불쌍한 표정을 하고 한빈의 앞에 섰다.

    그 거지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 친구가 신입이라서 그렇습니다. 귀인께서는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사천 지부의 소개라 합니다.”

    말을 마친 소개는 한빈을 향해 포권했다.

    그러고는 멍하니 있는 거지에게 턱짓했다.

    그 신호에 그들은 슬금슬금 물러났다.

    한빈은 그들의 행동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전체적인 교육은 제법 잘되어 있네.”

    “교육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소개는 황당하다는 듯 한빈을 바라보며 연신 손가락으로 나머지 거지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한빈은 그들의 모습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소개라는 어린 거지가 다른 거지들을 책망하며 물러나게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적과의 충돌에 대비해서 포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뒤쪽으로 물러난 거지들은 다른 거지들을 더 불러왔다.

    지금은 어디서 왔는지 모를 수십 명의 거지가 주변 담장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다.

    한빈을 보고 있지는 않지만, 손에는 타구봉을 든 것이 언제라도 덮칠 수 있게 준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빈은 이런 그들의 모습을 칭찬하고 싶었다.

    하지만, 본론이 먼저였다.

    한빈이 소개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하늘은 높고…….”

    “땅은 넓으니.”

    소개가 말을 받자 한빈이 씩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있는 곳이 집이요.”

    “하늘이 천장이네.”

    소개가 말을 마치며 한빈을 조용히 바라봤다.

    마치 뭔가 기다리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 모습에 한빈은 품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그러고는 가죽 주머니를 뒤지더니 조그만 장기짝 하나를 꺼내 소개에게 건넸다.

    소개는 그 장기짝을 받아서는 확인했다.

    장기짝은 졸(卒)이라 써 있어야 적당한 크기였다.

    하지만 장기짝은 앞뒤로 각각 초(楚)와 한(漢)이 써 있었다.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장기짝이지만, 소개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대신 한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귀인을 뵙습니다. 이리 오시지요.”

    깊숙이 포권한 소개는 손으로 담장 쪽을 가리켰다.

    한빈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한빈은 소개가 가는 곳을 따라갔다.

    소개는 담장을 따라 방향을 몇 번 꺾더니 어느 담장의 개구멍으로 들어갔다.

    한빈도 아무렇지 않게 그 개구멍을 통과했다.

    개구멍을 통과하자 소개의 표정의 확 바뀌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긴장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한빈을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한빈도 팔짱을 끼고 그저 웃기만 했다.

    그때 소개가 말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뒤쪽에서 그 모습을 보던 설화와 청화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짓을 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아느냐는 표정이다.

    그녀들의 표정을 본 한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개방의 정보를 총괄하는 곳이다. 사천 지역의 정보는 모두 이곳을 통해서 전해지지.”

    “여기가요? 그럼 아까 그 거지들은…….”

    설화가 담장 뒤쪽을 힐끔 바라봤다.

    그 모습에 한빈이 나지막이 설명을 이었다.

    “정보란 것이 은밀한 것인데 내가 개방도라고 내세우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냐.”

    “아, 신기하네요. 그런데 아까 그 장기짝은 뭐예요?”

    “그 장기짝은 정보를 사고팔거나, 여기를 이용할 수 있는 징표이지. 가장 작은 장기짝에 초와 한이 표시되어 있는 것은, 현실은 거지지만 마음만은 왕이라는 개방의 표식 중 하나란다.”

    “아, 암어와 표식으로 증명을 하는 거였네요.”

    “그리고 마지막에 개구멍까지가 신분을 증명하는 절차지.”

    “개구멍이요?”

    “개방과 친구가 아닌 자가 개구멍을 통과할 리는 없지.”

    “아, 그렇군요.”

    그때 뒤쪽에 있던 청화가 새파랗게 질려서는 입을 벌렸다.

    “와, 저 개구멍 앞에서 좀 망설였거든요. 만약에 제가 안 들어갔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공자님.”

    “거기까지는 들어 본 적이 없지만, 아마 청화가 좋아하는 떡은 앞으로 먹지 못했을지 싶네. 하하.”

    한빈이 청화를 보며 웃었다.

    물론 한빈이 던진 말은 농담이었다.

    여기서 공독지체인 청화를 막을 수 있는 개방도는 없었다.

    아마 적이 나타났을 때 제대로 방어할 수 있는 무인은 몇 안 될 것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남을 누를 수 있는 무공보다는 경공술에 특화된 자들이었다.

    굳이 말하면 인간 전서구라고 할까.

    뭐, 이들이 발로만 정보를 전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곳은 그들의 본거지.

    아마 뒤쪽에는 제법 많은 비둘기를 키우고 있을 것이었다.

    한빈이 이곳에 대해서 설명을 이어 가고 있을 때,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껄껄.”

    그 소리에 한빈 일행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중년의 거지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한빈은 그가 이곳의 책임자임을 직감했다.

    태양혈이 살짝 튀어나온 것이 딱 봐도 절정 이상의 무인이었다.

    한빈이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곳의 책임자시구려.”

    “하하. 귀인은 대체 누구시길래 개방에서도 꽁꽁 숨어 있는 이곳을 그토록 잘 알고 있는 겁니까?”

    “그건 비밀입니다.”

    “하하, 못 말리겠군요. 역시 어르신의 제자답습니다.”

    “어르신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홍칠개 어르신의 제자 아닙니까? 붉은 무복에 잘생긴 얼굴 하며 딱 소문 그대로입니다.”

    “잘생긴 건 맞지만, 나머지는 모르겠소.”

    “아……. 비밀리에 활동하시는 거였군요. 저도 그럼 모르는 척하겠습니다. 저는 사천 개방의 주양개라고 합니다. 제게 부탁하실 일이 뭔지요?”

    주양개는 한빈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한빈은 고개를 돌리더니 설화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설화가 보따리 하나를 들고 왔다.

    설화는 한빈의 앞에 보따리를 풀었다.

    보따리를 평평하게 풀어 놓은 설화는 그 위에 종이를 깔았다.

    그 모습에 가장 놀란 것은 청화였다.

    “언니, 그건 언제 준비한 거예요?”

    “아까 오면서 샀어.”

    “헉, 그럴 기회가 어디 있다고…….”

    청화는 얼마나 놀랐는지 말을 맺지 못했다.

    그 모습에 설화가 씩 웃었다.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렇게 놀라니?”

    “남들의 이목을 숨기고 이걸 다 준비할 수 있는 시녀가 중원에 얼마나 되겠어요? 언니는 정말 대단해요. 부러워요.”

    “헤헤. 뭘 그것 가지고…….”

    설화가 멋쩍은 듯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던 주양개는 입을 벌렸다.

    정보를 취급하는 이곳의 수장인만큼 눈치 하나는 백 단이라 자부하는 그였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종잡을 수 없었다.

    주양개는 그들의 대화가 암어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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