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 용린검의 비밀 (3)
엉덩방아를 찧은 무진은 어선 위에 뒹구는 붉은색 쇠붙이를 바라봤다.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던 무진의 소매를 그의 딸이 잡아당겼다.
“왜 그래요?”
“아, 아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무진은 눈을 크게 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토막 난 검은 평범한 쇠붙이에 불과했다.
녹이 많이 슨 것처럼 붉은색이 강하긴 했지만, 강물에 오래 담겨 있는 쇠붙이가 멀쩡하다는 게 더 이상했다.
무진은 그제야 눈을 가늘게 뜨고 상황을 살폈다.
상황을 살피던 무진의 눈빛이 떨렸다.
그는 재빨리 달려가 그물을 살폈다.
손으로 그물을 정리해 보니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었다.
대충 가늠해 보아도 며칠은 수선해야 다시 그물을 쓸 수 있을 정도였다.
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역시 이곳은 저주받았어. 내가 어쩌자고 여기에…….”
무진은 말끝을 흐리며 영아를 바라봤다.
“저는 괜찮아요. 쿨럭.”
“일단 안에 들어가 있거라.”
무진은 어선 위에 설치된 그늘막을 가리켰다.
“아니에요. 저도 여기서 도울래요.”
영아는 고개를 흔들며 그물로 다가갔다.
무진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물을 수습했다.
무진은 지금 후회가 막심했다.
지금 타고 있는 어선도 자신의 배가 아니었다.
철전 열 닢을 주고 하루 동안 빌린 배였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영아의 약값은 고사하고 빚만 지게 되는 것이었다.
무진은 왜 다른 사람들이 귀락천과 맞물리는 강의 상류를 두려워하는지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눈앞에 물고기가 파닥거리지만, 그것은 그림의 떡이었다.
다 잡은 물고기를 저 쇠붙이 때문에 놓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무진은 부러진 검신을 주웠다.
검신을 손에 잡은 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놓았다.
쩔그렁.
다시 검신이 어선의 위에서 뒹군다.
무진은 부러진 검신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진이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검신에서 뜨거운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진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화상을 입을 정도의 뜨거운 기운을 느꼈는데 의외로 손은 멀쩡했다.
무진은 재빨리 그것을 다시 잡아 어선 밖으로 던지려 했다.
“썩 꺼지거라! 귀신아. 퉤.”
다른 이에게 배운 귀신을 쫓는 방법대로 침까지 뱉은 무진이 막 반 토막 난 검신을 던지려 할 때였다.
옆에 있던 영아가 무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 그거 저 주시면 안 돼요?”
“이걸 달라고? 이건 귀신 붙은 물건이다.”
“큰마음을 먹고 여기까지 와서 그물을 던진 거잖아요.”
“그래,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 건져 올린 것이라곤 이 저주받은 물건뿐이 아니더냐? 너는 어서 그늘로 들어가 쉬어라.”
무진은 영아를 그늘막으로 밀었다.
영아의 병은 희한했다.
영아는 조금만 추워도 떨고 조금만 더워도 땀을 뻘뻘 흘렸다.
그러면서 계속 몸은 말라 갔다.
지금 영아의 손을 보면 뼈마디가 보일 정도였다.
열아홉밖에 안 되는 아이에게는 너무 가혹한 병이었다.
무슨 병인지라도 알았다면 그나마 나을 것이었다.
용하다는 의원은 다 모셔 봤고 몸에 좋다는 약은 다 먹었다. 하지만, 그저 생명을 연장시키는 효과만 있을 뿐 병은 호전되지 않았다.
그때 영아가 다시 무진의 팔을 잡았다.
“아버지,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다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저게 저주받았는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할 게 아니라 하늘에 맡겨야 할 것 같아요.”
“우리 밥줄이 저리 끊겼는데, 어떻게 저게 저주받은 물건이 아니더냐. 반드시 버려야 한다.”
“저거 그냥 저 주시면 안 될까요? 아버지.”
“흠.”
무진은 영아와 부러진 검을 번갈아 바라봤다.
묘하게 부러진 검이나 자신의 딸 영아나 비슷한 처지로 보였다.
무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하여라.”
“네, 고마워요.”
영아가 무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반 토막 난 검을 주워 든 영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깜짝 놀라 검을 바닥에 던진 무진과는 달리 영아는 청아한 기운을 느꼈다.
묘하게 시원한 기운이 손을 타고 몸 곳곳으로 퍼졌다.
영아는 태어나서 이렇게 몸이 편해 본 적이 없었다.
영아는 반 토막 난 검을 손에 쥔 채 잠이 들었다.
그녀가 쓰러지자 무진을 놀랐지만, 평온한 영아의 모습을 보고는 다급하게 입을 막았다.
“헉.”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겨우 막은 것이다.
저렇게 편안한 표정을 본 것이 언제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진은 이 모든 것이 영아가 말한 대로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진은 배를 돌리며 방금 그물을 던졌던 곳을 향해 조용히 합장했다.
* * *
다음 날.
한빈은 밤을 꼬박 새운 뒤 먼동이 트는 수평선을 바라봤다.
한빈의 머릿속에는 암제가 남긴 잔당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전생에 정의맹이 보였던 행동들은 정상이 아니었다.
마교인을 묵묵히 쓰러뜨리며 승리를 쟁취한 것이 귀검대였는데, 그 영웅들을 반역자 취급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그렇다면 전생의 정의맹과 위씨세가의 행동이 모두 암제의 모략이라 봐도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위씨세가는 암제의 손아귀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림세가도?
그 진실은 이번 지금 진행되고 있는 무가지회에서 밝혀야 했다.
한빈은 암제가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활시위가 벌써 당겨졌다고 했다.
그 말을 해석한다면 무림을 장악하겠다는 암제의 계책이 벌써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궁극적인 위험은 제거했지만, 무림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것과 같았다.
한빈이 진지한 표정으로 강물을 바라보자 청화가 조용히 다가왔다.
“공자님, 이건 어떻게 해요?”
청화는 손에 든 채찍을 내밀었다.
그것은 암제가 쓰던 화룡편이었다.
한빈은 화룡편을 받아 들고는 여기저기를 살폈다.
암제가 사용할 당시에는 무시무시한 이력을 냈지만, 맨눈으로 보면 다른 채찍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다.
한빈은 채찍을 허공에 휘둘러 봤다.
휙!
풀어진 채찍이 길게 늘어나며 허공을 강타한다.
팡!
생각보다 큰 파공성이 허공에서 울렸다.
그때였다.
한빈의 발목에 찼던 용린검 반 토막이 진동음을 내기 시작했다.
드르륵.
드르륵.
묘한 진동음에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진동음을 내며 공명하는 용린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빈은 조용히 용린검을 꺼냈다.
그때였다.
용린검과 화룡편이 갑자기 서로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괴이한 현상에 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손에 힘을 뺐다.
한빈이 손에 힘을 빼자 용린검과 화룡편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화룡편은 마치 뱀처럼 움직였다.
스르륵.
화룡편이 뱀처럼 용린검을 휘감기 시작했다.
반쪽짜리 용린검을 둘둘 말던 화룡편은 마치 온전한 용린검을 감싸듯 쭉쭉 아래로 내려갔다.
화룡편은 분명 어떤 모양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서서히 모양이 완성되자 한빈은 눈을 크게 떴다.
“뭐야?”
“공자님, 대체 이게 뭐예요?”
설화도 황당한 듯 용린검과 화룡편을 바라봤다.
화룡편이 만들어 낸 모습은 다름 아닌 검집이었다.
용린검은 화룡편이 만들어 낸 검집이 자신의 자리인 듯 딱 맞게 안착해 있었다.
한빈이 말했다.
“아무래도 화룡편이 용린검의 검집이었던 것 같다.”
“검집이요?”
“생각해 보면 보검에 검집이 있는 건 당연하지. 그런데 용린검은 없었거든. 아무래도 화룡편이 용린검의 검집이었던 것 같구나.”
“와, 신기해요.”
“나도 신기하다.”
한빈은 용린검과 검집이 된 화룡편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한빈은 용린검을 검집에서 뽑아 봤다.
스릉.
청아한 소리가 한빈의 귀를 즐겁게 했다.
그것도 잠시, 한빈은 눈을 크게 떴다.
용린검의 색이 바뀐 것이다.
그전에는 붉은색과 검은색이 조금씩 섞여 있는 녹슨 검 같았는데, 지금은 완벽하게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한빈은 이번에는 검집에 내공을 불어 넣어 봤다.
우우웅.
검집이 울음을 토해 내더니 나선형으로 뭉쳤던 것이 스르륵 풀렸다.
다시 화룡편으로 돌아온 것이다.
용린검뿐 아니라 검집도 전설의 병기 중 하나인 것이 분명했다.
한빈은 화룡편을 검집으로 만들고 다시 풀고를 반복해 봤다.
그러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쓸 만하네.”
그때였다.
한빈이 눈을 가늘게 뜨며 허공을 바라봤다.
비급에서 글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용린검을 완성하십시오. 완벽한 용린검을 완성할 시에는 용린검법의 다음 단계가 활성화됩니다.]
그 글귀를 확인한 한빈은 헛숨을 들이켰다.
용린검은 반쪽은 아미 암제의 몸에 박혀 사라졌다.
용린검이 주인의 손에 들어온다는 전설이 있긴 하지만, 언제인지는 알 수 없는 법이었다.
한빈이 나지막이 혼잣말을 뱉었다.
“운이 좋다면 언젠가는…….”
그 말에 설화가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운이요?”
“아니다. 그냥 혼잣말이었어.”
한빈이 손을 내저으며 웃자 설화가 마주 웃었다.
“공자님은 욕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너도 당과에 욕심이 많지 않으냐?”
“헤헤, 그러고 보니 저도 공자님과 똑같네요.”
그때 청화도 끼어들었다.
“저도 떡에 욕심이 많으니 똑같네요.”
누가 봐도 이 무리에서 떨어지기 싫은 청화의 마음이 담겨 있는 한마디였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한참을 웃었다.
한참을 웃던 청화가 뭔가 생각난 듯 뒤의 구석으로 달려갔다.
모두가 고개를 갸웃할 때 청화가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청화의 손에는 암제가 쓰던 금륜이 들려 있었다.
청화가 금륜을 내밀며 말했다.
“공자님, 이것도 한번 시험해 보세요.”
“그럴까?”
희미하게 웃은 한빈이 금륜을 용린검에 가져다 대 봤다.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에 일어날 일을 기대했다.
그것도 잠시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용린검과 금륜 사이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화와 청화는 실망한 눈으로 금륜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했다.
“아무래도 이건 너희의 몫 같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공자님.”
설화가 묻자 한빈이 희미하게 웃었다.
“너희들도 이제 투척 병기 하나 정도는 익혀 둬야지.”
“네?”
“내가 보기에는 이 금륜만큼 어울리는 무기는 없을 것 같구나. 다만, 한 명이 두 개를 운용하기에는 힘드니 각자 하나씩 맡아서 수련해야 할 것 같구나.”
“수련이요?”
“그래.”
한빈이 고개를 끄덕이자 청화가 끼어들었다.
“저도 수련할래요.”
“당연하지.”
한빈이 활짝 웃으며 청화와 설화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 * *
반나절이 지난 오후.
삼대천의 어느 나루터.
한빈 일행은 사천당가와 가까운 삼대천 하류의 나루터에 도착했다.
나루터에 처음 보는 배가 들어오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들을 본 한빈은 청화에게 말했다.
“이쯤 해서 닻을 내리자. 청화야.”
“더 안 가도 될까요?”
“저기 한번 봐 봐. 나루터에 가까이 대면 여기 있는 보물이 한 시진도 안 되어 사라질 게 분명해.”
“설마요?”
고개를 갸웃한 청화는 닻을 고정한 배 후미로 이동했다.
한빈은 청화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세상은 넓고 도둑은 널린 법이지.”
“공자님은 너무 의심이 많아요.”
“잘 생각해 봐. 암제가 이 배를 잃어버릴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
“음,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그러면 공자님도 도둑, 아니 도둑님인 거잖아요.”
“에이, 나는 주워 온 거지. 주인 없는 물건을 주워 왔다고 해서 도둑 소리를 들으면 좀 서운하지 않을까?”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말을 마친 청화는 닻을 풀었다.
스르륵.
닻이 내려와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첨벙.
배가 멈추자 한빈이 설화와 청화에게 말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한빈이 가리킨 곳은 나루터였다.
나루터와 배의 거리는 열 걸음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