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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32화 (332/621)
  • 332.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4)

    한빈의 검은 빠르고 정확했다.

    그야말로 검술의 교과서였다.

    그런데 그 빠르고 정확함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지금도 한빈과 암제의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현문의 귓가에 울린다.

    챙! 챙!

    어찌나 둘의 동작이 빠른지.

    그들의 모습과 소리에 있어 차이가 생길 정도였다.

    그들의 동작은 소리보다도 빨랐다.

    그때 현문이 입을 벌렸다.

    “헉!”

    그들의 동작이 한 단계 더 빨라졌다.

    저것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화경에 도달한 자신이 볼 수 없는 동작이라니!

    화경 중에도 단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 화경의 중입이라 하는 오 경을 넘어선 것일까?

    그때 다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슝!

    병장기가 파공성을 내더니 한빈과 암제가 반대 방향에서 나타났다.

    암제의 어깨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린다.

    암제는 웃고 있었다. 상대인 한빈의 상태가 더욱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한빈의 가슴에는 횡으로 선혈이 피어올랐다.

    암제에 비한다면 그 상처가 몇 배는 되는 것 같았다.

    횡으로 나타난 핏물이 이제는 종으로 흘러내린다.

    하지만, 한빈의 붉은 무복 때문에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붉은색 무복만으로 암제의 예리한 눈빛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암제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아이야, 이쯤 해서 포기하는 것이 어떠하냐? 사실 노부는 꽤 놀랐구나.”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 놀라기는…….”

    “처음에는 너를 십 년 뒤 만났다면 승패를 가늠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딱 삼 년이구나. 그 삼 년의 차이가 생사를 구분하는 선이 될 줄은 너도 몰랐겠지……. 허허.”

    “사람 잡는 백정이 꼭 도인처럼 말하고 있네. 어쩌다 보니 뼈를 주고 뼈를 취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게 아쉬워.”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 게 아니란 말이냐?”

    “지금 내 꼴을 보고 말해. 이게 어디 살은 내준 걸로 보여? 뼈 두 개를 내주고 한 개를 취한 거지.”

    “허허,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것도 대견하군.”

    암제는 한빈을 보고는 씩 웃었다.

    암제는 한빈이 진심으로 대견했다.

    저 젊은 나이에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룬 자는 무림 역사상 없었다.

    암제는 한빈을 거두지 않기로 했다.

    그냥 거두기에는 너무 위험한 인물이었다.

    진득한 미소를 짓던 암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한빈이 마주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빈이 웃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용안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천급 구결 역(易)을 획득하셨습니다.]

    [천급 – 지(之), 역(易)]

    천급 구결이 두 개나 모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암제의 몸에는 황금빛 점이 두 개나 빛나고 있었다.

    한빈은 눈앞에 나타난 글귀와 암제의 몸에서 빛나고 있는 황금빛 구결을 번갈아 바라봤다.

    저 구결을 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었다.

    남은 두 개가 있는 곳의 위치는 묘하게 암제의 백회혈과 심장이었다.

    어깨나 옆구리를 내줄 수는 있지만, 정수리와 심장은 끝까지 보호해야 할 급소였다.

    사실 두 개의 구결을 획득한 것도 한빈에게는 천운이었다.

    모든 것이 천급 구결을 최초 획득하고 얻은 특권 덕분이었다.

    한빈은 시간 제약 없이 초식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있었다.

    암제는 아마도 한빈의 진짜 무위보다도 훨씬 높게 평가하고 있을 터였다.

    사실 한빈도 암제에게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특권을 얻어서 싸우고 있는 지금 상태는 본래 경지보다 두 단계 정도를 뛰어넘어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암제가 위였다.

    다만, 노련함에서 한빈이 미세하게 앞서고 있었다.

    현재의 나이 차로 본다면 노련함에서 앞서고 있다는 것이 어불성설일 테지만, 전생의 경험까지 합친다면 한빈이 앞섰다.

    이렇게 생사가 오간 현장을 경험한 것도 한빈이 더 많을 터였다.

    아마 암제는 그 노련함에 놀라고 있을지도 몰랐다.

    한빈은 지금 한시바삐 동귀어진이 작동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만약에 이곳에 물이 차오른다면 그 노련함이 경지의 차이를 해소해 줄 것이었다.

    아무리 암제라고 할지라도 수공까지 익혔을 리는 만무했다.

    이곳에 물이 차오른다면 구결을 조금 더 쉽게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한빈은 피를 토해 냈다.

    울컥!

    선혈이 입에서 분수처럼 쏟아졌다.

    가슴으로 들어간 암제의 진기가 속을 진탕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소매로 입가에 묻은 선혈을 닦아 냈다.

    소매에 묻어 나오는 내장 조각에 암제가 씩 미소를 지었다.

    “이제 마지막이구나. 잘 가라, 아이야.”

    암제가 금강태륜을 들고 한빈을 향해서 짓쳐 들었다.

    암제는 이제는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기세를 완전히 개방했다.

    암제의 기세에 바닥에 흩어진 청강석 조각이 반응한다.

    지면에서 일 촌 정도 떠올랐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는 청강석 조각.

    그것은 진정한 패황의 기세였다.

    한빈은 미간을 좁히며 다가오는 암제를 바라봤다.

    다만, 먹잇감이 아닌 마치 덫을 놓은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암제는 한빈에게 숨겨 놓은 한 수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한빈이 내장 조각을 뱉어 낸 것은 맞았다.

    누구보다 죽음을 앞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용린검법의 기사회생은 한빈의 숨이 멎지 않은 한 신체의 구 할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기사회생.’

    한빈은 동시에 다른 초식을 펼쳤다.

    ‘금선탈각.’

    순간 암제의 금강태륜이 한빈의 상체를 횡으로 그었다.

    털썩.

    한빈의 신형이 무너졌다.

    그 모습에 암제가 입맛을 다셨다.

    “재롱을 떠느라 고생했다, 아이야.”

    암제는 금강태륜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탁!

    순간 암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금강태륜에 묻은 피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반 토막 내고 묻은 피의 양이 아니었다.

    그때 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획!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암제의 등에 검이 박혔다.

    푹!

    암제는 몸을 돌려 금강태륜으로 상대를 쳐 냈다.

    팡!

    하지만, 파공성만 낼 뿐 허공만을 가격했다.

    등을 찌른 한빈은 멀찌감치 떨어져 암제를 보며 웃고 있었다.

    암제가 황당한 눈으로 바닥을 살폈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한빈의 몸이 아니라 그저 의복에 불과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 한빈을 바라보니 상의를 벗은 채 검을 겨누고 있었다.

    순간 암제의 눈이 커졌다.

    한빈의 상체에는 그 어디에도 상처가 없었다.

    암제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이것은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한빈과 암제는 열 걸음을 사이에 두고 서로 기수식을 취했다.

    마치 초보 무사처럼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취하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뿐, 다른 동작은 하지 않았다.

    긴 침묵 속에 암제가 나지막이 말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지.”

    “…….”

    하지만, 한빈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암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격전 중에도 잠시도 입을 쉬지 않았던 한빈이었다.

    그런데 아무런 대꾸를 안 한다.

    암제는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러고는 재빨리 가장 익숙한 보법인 태륜보를 밟았다.

    원을 그리면서 암제의 몸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때였다.

    팡!

    무형의 기운이 암제가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기운이 벽 쪽에 작렬했다.

    꾸아-앙!

    암제는 벽을 바라봤다.

    벽은 삭제된 것처럼 세 걸음 정도의 깊이로 파여 있었다.

    암제는 입을 꾹 닫고 한빈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거리를 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암제를 본 한빈은 입맛을 다셨다.

    지금의 일수는 진룡파혼검이었다.

    기를 모으는 시간이 길기에 상대가 움직이지 않아야 펼칠 수 있는 초식이었다.

    조금만 더 늦게 피했다면 암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터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빈은 구걸십팔보로 흔들리는 바닥에서 벗어났다.

    짓쳐들어오는 암제와 몸을 피하는 한빈 사이로, 거대한 물줄기가 솟구쳤다.

    파-앙!

    거대한 고래가 뿜어내듯 물줄기가 솟구치자, 암제가 주변을 둘러봤다.

    그 모습에 한빈이 씩 웃었다.

    아무래도 자폭장치에 가까운 동귀어진 기관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암제는 슬쩍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 모습을 본 한빈이 말했다.

    “저기가 통로 맞지?”

    “네놈이…….”

    “딱 보면 알잖아.”

    “내 반드시 네놈을 여기 묻겠다.”

    말을 마친 암제는 금강태륜에 내공을 불어 넣었다.

    순간 한빈이 그의 다음 초식을 경계하며 물러났다.

    하지만 암제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해야 했다.

    손에 든 금강태륜이 조각난 것이었다.

    조각난 금강태륜은 각각 네 개의 작은 륜으로 바뀌었다.

    그 크기는 금륜보다도 작았다.

    암제는 그 소륜을 손가락 사이에 끼었다.

    암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한빈에게 다가왔다.

    “내가 강호에서 이 수법까지 보여 줄 놈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이 초식의 이름은 말해 주지 않겠다.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에게 물어보아라.”

    말을 마친 암제는 오른손을 뻗었다.

    순간 네 개의 금륜이 한빈을 향해서 날아온다.

    암제는 재빨리 천장으로 왼손을 뻗었다.

    왼손에 있던 네 개의 소륜이 천장으로 날아갔다.

    한빈은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그가 있던 자리로 네 개의 소륜이 스쳐 지나갔다.

    소륜을 피한 한빈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위쪽에서 날아오는 소륜 때문이었다.

    그것을 피하자 뒤쪽 벽을 가격하고 튕겨 나온 소륜이 다가온다.

    한빈은 재빨리 상황을 살폈다.

    튕겨 나온 소륜들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암제가 보이지 않는 내공으로 소륜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한빈은 자신이 피할 공간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암제가 천장으로 던졌던 네 개의 소륜은 불규칙하게 아래위로 계속 튕기고 있었고 나머지 네 개는 횡으로 왕복하고 있었다.

    아마도 물이 차오르기 전에 저 소륜에 몸이 조각날 수도 있었다.

    한빈은 땅에 떨어진 검 하나를 주웠다.

    그러고는 재빨리 초식 하나를 떠올렸다.

    ‘만천파검.’

    동시에 그 검을 허공으로 던졌다.

    용린의 기운을 품은 검이 눈 깜짝할 사이에 천 개로 갈라진다.

    빠직!

    그 검이 비처럼 쏟아졌다.

    투두둑.

    한빈은 떨어지는 천 개의 검 조각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소륜을 막기에는 파검의 위력이 너무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푸아앙!

    바닥의 여기저기에서 물이 차올랐다.

    순간 상하로 왕복하던 소륜이 물에 닿더니 힘을 잃었다.

    물은 순식간에 허리까지 차올랐다.

    그때 한빈은 묘한 현상을 발견했다.

    소륜이 힘을 잃자 암제의 낯빛이 점점 파랗게 변함을 느낀 것이다.

    마치 소륜과 암제의 내공이 하나인 듯한 느낌이었다.

    한빈은 재빨리 암제의 품에 파고들었다.

    ‘일촉즉발.’

    순식간에 암제의 앞으로 간 한빈이 그의 심장에 월아를 박아 넣었다.

    툭!

    묘한 소리가 암제의 가슴에서 울렸다.

    한빈이 눈을 크게 떴다.

    월아가 암제의 가슴에서 튕겨 나온 것이다.

    거기에 한빈을 안은 암제의 팔이 점점 조여들었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암제가 지그시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잡혔구나. 내가 내 제자들을 금강불괴로 만들고 내 몸은 그냥 뒀을 것 같더냐, 아이야? 내 심장은 현철로도 뚫을 수 없다.”

    순간 한빈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월아로 못 뚫는다면 혈랑검으로도 불가능할 것이 뻔했다. 이제 공격할 수 있는 간격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순간 한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정답을 말해 주니 싱겁네. 이거라면 어떨까?”

    한빈이 다리에서 반 토막짜리 검을 빼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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