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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31화 (331/621)

331.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3)

폭죽이 터지자 불꽃이 민들레 홀씨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눈송이처럼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불꽃.

휘리릭!

그 모습에 팽팽히 대치하던 두 집단이 동작을 멈췄다.

격렬하던 대결이 잠시 소강상태로 흐르자 여유가 생긴 제갈공려가 물었다.

“대체 저건 뭐지?”

“제갈휘 공자에게 보내는 신호잖아요.”

“그럼 설마…….”

제갈공려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저 불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제갈휘는 천잠사로 만든 끝을 잡고 있었다.

그것을 당기게 되면?

분명 지하가 물로 잠기게 될 터였다.

제갈공려가 다급하게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안에 있던 팽 공자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그야 암제라는 할배를 해치우고 올라오시겠죠.”

“지하가 물에 잠길 텐데 대체 어떻게…….”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공자님 걱정을 하는 건 염라대왕 걱정을 하는 것과 똑같아요. 언니.”

“아, 그렇구나.”

제갈공려는 지금 눈앞에 적이 깔려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입을 벌렸다.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저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사실 암제의 존재를 몰랐다면 설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암제의 존재를 마주한 순간을 떠올린다면, 설화의 저 자신감은 그저 바람에 불과했다.

제갈공려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설화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설화의 뒤쪽에서 누군가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언니, 저 왔어요.”

“왜 이렇게 늦었어?”

설화가 고개를 기울이며 묻자 청화가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리며 답했다.

“저만 떼 놓고 가시면 어떻게 해요?”

“아, 그러고 보니…….”

설화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 표정을 본 청화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언니, 또 까먹었죠? 우리 중에서 저만 느리잖아요.”

“이번 일이 끝나면 공자님한테 보법을 배워야겠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현문 아저씨는 왜 안 오는 거야? 청화야.”

“현문 아저씨는 확인할 게 있다고 석상 쪽으로 다시 갔어요.”

청화는 우물 쪽을 가리켰다.

그곳은 자신들이 빠져나온 통로였다.

“헉, 왜 거길…….”

설화가 마뜩잖은 표정을 짓자 청화가 손을 내저었다.

“현문 아저씨는 우리보다 강하잖아요.”

“하긴 그렇지. 일단 이거부터 먹어.”

설화는 청화에게 기름종이에 감싼 찹쌀떡을 건넸다.

청화가 활짝 웃으며 그것을 입 속에 털어 넣었다.

입을 오물거리던 청화가 목멘 목소리로 말했다.

“네, 고마워요. 언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갈공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평온함은 대체 뭐란 말인가?

조금 전까지 피가 튀는 아수라장에서 빠져나왔다.

보통이라면 제자리에 주저앉아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며 체력을 보충하고 있었다.

마치 수십 년 동안 전장을 누벼 온 백전노장과 같은 분위기가 설화와 청화에게 느껴졌다.

제갈공려가 그들의 대화에 황당해하고 있을 때였다.

챙! 챙!

다시 병장기 울리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폭죽의 등장으로 소강상태에 빠졌던 대결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이다.

제갈공려가 다급하게 주변을 살폈다.

그녀의 오라비인 제갈공영이 맡고 있는 방향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제갈공영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치 않을 상태였다.

그녀는 검을 고쳐 잡고 제갈공영이 있는 쪽을 향해 달려가려 했다.

그때 설화가 끼어들었다.

“제갈 언니는 우리 뒤쪽을 따르세요.”

“그게 대체 무슨 말…….”

제갈공려가 말도 맺기 전에, 설화가 청화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신호를 받은 청화는 천천히 적진을 향해 걸어갔다.

들고 있던 금륜마저 천으로 만든 가방 속에 넣어 어깨에 들춰 멘 청화는 완전히 빈손이었다.

청화의 등장에 적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것이 흰색 무복의 소녀가 올망졸망 눈을 빛내며 다가오니 적이라는 생각이 되지 않았다.

뒤쪽에서 뒷짐을 지고 따라오는 설화도 그들의 눈에는 청화와 다를 바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 둘이 갑자기 아수라장에 왜 나타난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는 것이 이곳에 나타났다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었다.

이 아수라장에 나타났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아이거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반로환동의 고수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본래 강호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늙은이와 여자 그리고 아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곳을 지키던 그들의 생각은 똑같았다.

그들은 검을 세우면서도 함부로 청화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청화는 경계의 눈빛을 보이는 그들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갔다.

그때였다.

청화를 경계하며 검을 겨누던 적이 쓰러졌다.

털썩.

청화는 손 하나 꿈쩍하지 않았는데 적이 쓰러진 것이다.

거기에다가 쓰러진 적은 입에서 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청화를 경계하던 적들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중 하나가 말했다.

“독이다, 독. 다들 조심해.”

“저건 독이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인가?”

“독이라면 옆에 있던 나도 당해야 하잖아.”

“그렇다면 독을 묻힌 암기?”

“저 아이들이 손을 움직이는 것을 봤는가?”

“그러고 보니…….”

“저 아이들이 입이라도 뻥끗했는가?”

“그렇다면 저 수법은 대체 무엇…….”

그는 말을 맺지 못했다.

자리에서 털썩 쓰러져 게거품을 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심(心), 심…….”

그는 가슴을 움켜쥔 채 고개를 바닥에 파묻었다.

동료는 그 모습에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심’ 자로 시작되는 수법이 기억나지 않았다.

“심이라…….”

뒤로 물러나며 청화를 바라보던 그의 두 눈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공포에 사로잡힌 그는 다른 이들을 향해 말했다.

“심검(心劍)이다!”

“뭐라고 심검이라고?”

“대체 어떻게 저런 고수가 나타났다는……. 악!”

그들 중 하나가 다시 말을 맺지 못하고 쓰러졌다.

적들은 순식간에 혼돈에 빠졌다.

그들의 주인인 암제도 구사하지 못하는 것이 심검이었다.

그런데 저리 어린 소녀가 구사한다는 것은?

딱 하나의 가능성밖에 없었다.

그것은 저 소녀가 반로환동한 전대 고수라는 것.

그리고 저 소녀의 무위가 무림삼존의 위에 있다는 것.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일단 뒤로!”

복면인들은 썰물처럼 진영에서 이탈했다.

이제 남은 것은 세 명의 괴인밖에 없었다.

그 광경을 바라본 제갈공영은 아연실색했다.

“청출어람이라더니 옛말이 틀리지 않았구나!”

“언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팽 공자와 닮아서 하는 말이지, 하하.”

제갈공려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는 청화가 공독지체라는 것을 제갈공영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지금 수법은 공독지체 특유의 체질로 만들어 낸 독공을 이용한 것일 터였다.

그것을 심검으로 보이게 만들어 적의 사기를 단번에 꺾어 놓은 계책. 제갈세가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머리라 평가받는 제갈공려로서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저들의 무위보다 머리가 더 무서웠다.

그때였다.

설화가 청화에게 말했다.

“강호에서는 실력의 구 할을 숨겨야 하는 법이라고 했잖아, 청화야. 그렇게 밑천 다 드러내면 어떻게 해.”

“이게 구 할을 숨긴 건데요.”

“아, 숨겼구나.”

설화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청화를 바라봤다.

그들의 대화에 제갈공려는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렸다.

이제는 더는 놀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상상도 못 할 일들이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제갈공려가 멍하니 설화와 청화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설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청화가 물었다.

“왜 그래요? 언니.”

“내가 폭죽 터뜨렸잖아.”

“네, 저도 봤어요. 아주 화려하게 터졌죠.”

“그런데 왜 반응이 없지?”

“반응이라니요?”

“공자님이 기관 장치의 이름이 동귀어진이라고 했잖아. 그게 발동되면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질 거라고 나한테 말씀하셨거든.”

“저도 들었어요.”

“그런데 경천동지할 일이 어디서 벌어지냐는 말이자? 너무 조용하지 않아?”

“그렇다면…….”

“가능성은 딱 하나지.”

“헉, 그럼 제갈휘 공자가…….”

“맞아. 저 강 건너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지. 일단 내가 가 볼게.”

“저도 같이 가요, 언니.”

“너는 조금 느리잖아.”

“저를 업고 가면 되잖아요. 그리고 헤엄은 제가 더 잘 치는데.”

“그래, 알았어. 업혀.”

“네, 고마워요. 언니.”

“그럼 당과 하나 빚진 거다.”

“알았어요, 언니.”

청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화의 등에 업혔다.

청화를 업은 설화는 고개를 돌려 제갈공려를 바라봤다.

“제갈 언니, 여기는 언니한테 맡겨도 되겠죠. 조금 있으면 현문 아저씨도 올 테니 믿고 맡길게요.”

“어, 그래.”

“그럼 저희는 가 볼게요.”

“조심해서 다녀오고.”

“네, 알았어요. 언니, 헤헤.”

설화를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점점이 사라지자 제갈공려는 재빨리 제갈공영의 곁으로 가 힘을 보탰다.

괴인들의 반격도 만만치는 않았다.

겁을 먹고 도망간 다른 무사들과는 달리, 괴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치 규칙적으로 도는 수레바퀴처럼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제갈공려는 그들을 사로잡고 싶었다.

지하 공간에 남아 있는 암제가 이 조직의 머리가 아니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들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괴인 중 하나를 반드시 사로잡아야 했다.

하지만, 저항이 너무 거셌다.

휑!

우지끈!

지금도 제갈세가의 무사 하나가 종잇장처럼 접힌 채 나가떨어졌다.

그때였다.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따가닥.

따다닥.

제갈공려는 슬쩍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봤다.

멀리서 황토색 먼지가 자욱하다.

얼핏 봐서는 대규모의 병력이 이동하는 듯 보였다.

제갈공려는 뒤쪽으로 물러나 그들의 정체에 대해 고민했다.

저들이 적이라고 한다면 이곳에서 빨리 후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제갈공려의 표정이 환해졌다.

황토색 먼지구름 사이로 얼핏 깃발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분명 정의맹의 표식이었다.

제갈공려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이제 이곳이 정리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었다.

정의맹이 왔다면 무공 고수만 온 것이 아니라 기관 진식을 해체할 장인들도 같이 왔을 것이며, 적당량의 벽력탄도 가져왔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 지하에 혼자 남아 악전고투를 펼칠 팽가의 사 공자를 구할 수 있었다.

* * *

한편 무너진 석상 틈으로 한빈과 암제의 대결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통로를 탈출하려다가 다시 이곳으로 온 현문이었다.

현문이 이곳으로 온 것은 한빈에게 빚이 있어서였다.

오다가다 만났지만, 자신에게 깨달음을 준 은인을 그대로 사지(死地)에 버려두고 간다라?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한빈이 죽는다면 최소 시신을 수습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현문은 한빈의 죽음을 확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문이 느낌 암제의 무위는 측정이 안 될 정도였다.

한빈의 시신을 수습하고 나면 암제를 찾아 결투를 신청할 것이었다.

그리고…….

예상되는 결과는 뻔했다.

목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현문이 될 터.

그것이 은인에 대한 도리이자 복수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틈으로 바라보고 있는 둘의 대결은 현문의 예상 밖이었다.

한빈의 검술은 그야말로 기본에 충실했다.

기본에 충실하다는 건 무엇일까?

한빈을 만나기 전이라면 대답하기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해답을 내놓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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