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328화 (328/621)

328. 생사논검(生死論劍) (10)

한빈의 말에 암제가 웃었다.

“껄껄, 어쩌다 보니 네놈을 잊고 있었구나.”

“잊으면 안 되지! 아까 못 했던 논검은 끝마쳐야 하지 않겠어?”

“논검이라…….”

“이번에는 확실히 영감 목과 내 목을 걸고 하자고.”

“어찌 강호에 너같이 간덩이가 부은 놈이 있을꼬…….”

“쫄리면 그냥 뒈지시든가!”

“역시 재미있는 놈이란 말이야. 삼 초를 양보할 테니 어서 들어오너라.”

암제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손짓했다.

“영감 바보야? 아니면 바보인 척하는 거야? 삼 초를 양보하겠다는 거짓말에 내가 속을 것 같아?”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더냐?”

암제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진짜로 삼 초를 양보해도 결과는 똑같겠지.”

“어떻게 결과가 똑같을까…….”

“잘 생각해 봐. 저기 제갈가의 가주가 봉황태령장을 쓰고도 영감의 손가락 하나에 당하는 거 내가 봤잖아.”

“그럼 경지의 차를 인정한다는 것이구나.”

“인정은 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쪽에 펼쳐진 쇄금진 때문이기도 해. 네 무기가 화룡편이잖아. 내 무기는 검이고. 그런데 내가 왜 쇄금진 안으로 들어가?”

“그럼 어떻게 할 테냐? 고래를 잡으려면 바다로 가야 하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산으로 가야 하는 것이 이치이거늘……. 거기에 가만히 서 있으면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란 말이냐?”

“고래와 호랑이라고? 그걸 내가 왜 잡아?”

“나와 대결을 위해서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니더냐?”

“내가 왜 불리한 곳에서 왜 싸워? 그리고 영감이 왜 고래야? 뭐, 호랑이는 더욱 아니지.”

“음…….”

“그러니까. 삼 초를 양보할 테니 영감이 내 쪽으로 와.”

“하하.”

지하 공간이 떠나갈 정도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그 웃음소리가 끊기기도 전에 암제가 걸음을 옮겼다.

세 걸음 정도 옮기던 암제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그 모습에 한빈이 물었다.

“왜 그러지?”

“…….”

암제는 슬쩍 바닥을 살폈다.

쇄금진을 경계로 앞쪽에는 철질려가 무수히 깔려 있었다.

분명히 애송이가 깔아 놓은 것이 분명했다.

무공보다 책략이 더 대단한 놈이었다.

죽이기보다 사로잡기가 더 힘든 놈인 것도 분명했고 말이다.

암제가 잠시 고민에 빠진 듯하자, 한빈이 손뼉을 쳤다.

짝.

그 소리에 암제가 상념에서 깨어났다.

암제의 시야에 비릿하게 웃는 한빈의 얼굴이 들어왔다.

“논검 하던 사람 어디 갔나? 내가 여기서 그냥 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네가 이들을 두고 도망간다고?”

암제가 고개도 안 돌리고 뒤쪽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이랑 내가 무슨 상관인데? 나는 제갈가 사람들은 잘 몰라.”

“제갈가의 사람들은 몰라도 저 둘은 네 시녀…….”

“내 시녀가 어디 있는데?”

한빈이 고개를 갸웃하자 암제는 검지로 설화가 있던 자리를 가리켰다.

“바로 내 손 안에…….”

암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가리킨 곳에는 설화라는 아이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새로 합류한 아이도 없어졌다.

제갈세가의 두 아이만이 자신의 아비인 제갈세가의 가주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암제는 그제야 한빈에게 당한 것을 알았다.

이목을 끌어 자신의 시녀 둘은 대피시킨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제갈세가의 쇄금진은 암제에게도 독이었다.

쇄금진만 없다면 이곳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놓칠 리 없었다.

지하 공간은 암제가 모두 장악하고 있으니까.

암제는 더는 격장지계에 당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사로잡아 놈을 자신의 수하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암제의 눈빛에서 한겨울 서릿발보다 더 지독한 한기가 흘러나왔다.

그 시선을 받은 한빈이 말을 이었다.

“봐 봐. 먹잇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호랑이가 어디 있어? 그러니까 내가 바보라고 하는 거야.”

“버르장머리를 어디다 두고 온 아이구나. 내가 그 입버릇을 고쳐 주지.”

“그렇게 머리가 나쁘니 자꾸 머리카락이 빠지는 거지. 무공으로도 머리는 어찌 못 하나 봐?”

한빈은 암제의 머리를 가리켰다.

백발의 머리가 찰랑대고 있지만, 정수리 쪽은 휑했다.

암제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격장지계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머리카락 가지고 놀리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한빈의 말대로 휑한 정수리는 무공으로도 막지 못하는 현상이다.

피부나 골격은 무공으로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지만, 머리카락만의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한빈의 말에 암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암제가 처음 보이는 표정의 변화였다.

그의 표정에 맞춰 한빈의 입꼬리를 올라갔다.

격장지계에 일단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때 암제가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이놈이!”

“그렇게 말만 하지 말고 어서 나와 봐.”

“후.”

암제는 다시 한번 심호흡했다.

상대를 사로잡기로 했지만, 자꾸 살심(殺心)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암제는 상대를 사로잡으면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개조할 생각이었다.

그냥 죽일 수는 없었다.

암제에게 죽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루살이를 잡을 때 살리는 것이 쉬울까 죽이기가 쉬울까를 생각해 보면 간단했다.

조금만 힘을 줘도 하루살이는 손바닥에 눌려 죽는다.

그때 한빈이 다시 외쳤다.

“필요 없으니 일단 이것부터 막아 봐!”

한빈은 품에서 묘하게 생긴 암기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그것을 암제에게 던졌다.

‘백발백중.’

휙!

암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날아오는 물체가 너무 확실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빈이 날린 암기는 환약이었다.

혹시 연막탄?

암제는 코웃음을 치며 한빈이 던진 환약을 잡았다.

잡고 보니 그것은 연막탄은 아니었다.

기름종이에 싸인 정체 모를 물건이었다.

암제는 환약을 쥔 손에 내공을 실었다.

환약을 감싸고 있던 기름종이가 바스러졌다.

기름종이가 없어지자 안쪽에서는 액체가 흘러나왔다.

혹시 맹독?

이미 만독불침의 단계에 오른 암제였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

그는 막 삼매진화로 액체를 태워 버리려 했다.

그때 액체에서 익숙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뭐지?

분명 독은 아니었다.

의문도 잠시, 암제가 액체에 코를 씰룩였다.

그것은 산사나무의 열매로, 당과의 재료로 흔히 쓰인다.

암제의 코끝을 간지럽히는 것은 바로 과즙과 꿀 냄새였다.

암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빈을 바라봤다.

“무슨 뜻이더냐?”

“영감 배고플까 봐. 그거 내 시녀 중 하나가 먹다가 남긴 당과를 쌓아 놓은 거야. 일단 그거나 먼저 먹어.”

“…….”

암제는 표정을 바꾸었다.

노한 표정은 한순간에 갈무리되어 마치 폭풍이 몰려오기 전 바다처럼 잔잔하게 보였다.

폭풍 전야.

딱 그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그의 표정은 온화했다.

한빈은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암제도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 한빈 쪽으로 걸어간다.

서로 다섯 걸음 정도만 남겨 놓은 상태.

그때였다.

숨만 겨우 붙은 채 서로 싸우던 괴인과 복면인들이 절뚝거리며 암제와 한빈이 있는 곳을 향해서 다가왔다.

어떤 자는 팔 한쪽이 없었고 어떤 자는 무복이 짙은 붉은색으로 변해 있을 정도로 피에 물들어 있었다.

그 몰골이 얼마나 처참한지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암제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내 제자와 수하들부터 상대해야겠구나. 껄껄.”

웃음을 토하던 암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수하들이 다가오는 방향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빈이 아닌 암제 쪽으로 검을 겨누고 접근해 오고 있었다.

암제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는 그제야 상대의 수를 알아봤다.

방금 당과의 향기를 맡고 수하들이 목표를 정한 것이 분명했다.

환각에 환각을 더한 수법.

“강호에서 이렇게 더러운 수를 쓰다니…….”

“제자를 저 꼴로 만들어 놓은 영감이 할 말은 아니잖아. 일단 쟤네부터 처리하고 마저 얘기하자고.”

한빈은 입꼬리를 올리며 강시처럼 다가오는 암제의 수하들을 가리켰다.

암제는 아무 말 없이 화룡편을 들었다.

화룡편이 그들을 쓸고 지나갔다.

동시에 암제를 향해 달려오던 수하들이 제자리에 쓰러졌다.

털썩!

자신의 수하들이 쓰러진 것을 본 암제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여기 있는 모두는 하루살이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런 수고를 하게 만든 하루살이가 문제였다.

“처리해 줘서 고마워, 영감. 이제는 들어와 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 내 초식이다!”

말을 마친 암제는 화룡편을 허공에 돌리기 시작했다.

화룡편을 돌리자 그것은 마치 금륜처럼 동그랗게 변했다.

화룡편이 만드는 원은 곧 회오리를 만들었다.

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암제의 화룡편을 바라봤다.

한빈과 암제의 사이에 거대한 원이 생긴 것만 같았다.

저 거대한 원이 자신에게 날아온다면?

어라?

자세히 보니 그냥 원이 아니었다.

원이 그리고 있는 것은 마치 용의 비늘 같았다.

용의 비늘이 불꽃을 내며 원을 만드는 것이다.

불꽃 원을 그리며 끝없이 질주하는 거대한 용이라?

한빈의 입가에 보기 좋은 미소가 맺혔다.

한빈은 막 화룡편의 파훼법을 정리했다.

그때 암제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화룡분쇄라는 초식이다. 저승에 가기 전에 널 죽인 이름이나 알고 가거라. 이게 내 마지막 자비다.”

“고마워, 영감.”

암제는 화룡편을 잡은 손을 놓았다.

마치 날리던 연을 놓듯 말이다.

화룡편은 정면으로 원을 그리고 날아왔다.

주변의 기를 모두 쓸듯이 회오리처럼 날아오는 화룡편.

이 초식이 화룡분쇄라 불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금륜이라면 상대가 막을 수 있겠지만, 화룡편이 그리는 원은 어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만약에 화룡분쇄를 쳐 내려고 채찍을 건드리는 순간, 화룡편의 기다란 채찍이 상대의 몸을 꽁꽁 묶을 것이었다.

원을 그리며 날아오는 밧줄을 손으로 잡으려고 하면 그 밧줄이 손을 둘러싸는 원리와도 같았다.

문제는 꽁꽁 싸맨 다음 화룡편이 점점 상대를 조인다는 점이다.

그 압력에 상대는 터져 죽을 수밖에 없고 말이다.

유일한 방법은 화룡편을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암제는 이기어검을 구사할 수 있는 고수였다.

만약 피한다면 그 방향을 바꿀 것이었다.

회오리를 일으키며 날아오는 화룡편을 한빈이 피할 방법은 없었다.

휘-잉.

화룡편이 먼지를 일으키며 한빈의 코앞까지 날아가자 암제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자신의 아픈 곳만 찌르지만 않았어도 제자로 삼았을 터였다.

그 정도로 한빈에게 흥미가 동했었다.

괴아와 나머지 괴인들은 모두 실패작이라 항상 아쉬워했던 그였다.

그는 한빈을 보고 자신의 오른팔로 삼을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던진 화룡편을 건드리는 순간, 한 줌의 핏물로 변해 버릴 것이었다.

그때였다.

암제의 눈이 커졌다.

탁!

화룡편을 한빈이 쳐 낸 것이다.

옆으로 방향을 바꾼 화룡편이 방향을 바꾸어 벽 쪽으로 날아갔다.

쉐엥!

화룡편이 내는 소리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푹!

화룡편이 벽에 박혔다.

완벽하게 통제에 벗어난 화룡편을 본 암제가 눈을 가늘게 떨었다.

“대, 대체 어떻게…….”

암제가 놀라고 있을 때 한빈은 허공을 힐끔 바라봤다.

[실력편 중급(中級)]

[……]

[안(眼) : 일(一)]

안(眼)은 실력편이 중급으로 올라서며 새로 생긴 속성이었다.

즉, 이번에 얻은 깨달음 덕분에 화룡편을 쳐 낼 수 있었던 것.

안의 속성을 쓸 동안 한빈은 깨달음을 얻기 전보다 열 배 이상 향상된 동체 시력을 쓸 수 있었다.

한빈은 진짜 용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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