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325화 (325/621)
  • 325. 생사논검(生死論劍) (7)

    석상에 다가간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에도 문을 열 수 있는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설화는 난감한지 입맛을 다셨다.

    “흠, 분명히 여기가 마지막인데 문을 여는 장치는 없네요.”

    “내가 보기에도 그렇구나. 바람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봐서 통로가 확실하긴 한데…….”

    제갈공영은 말끝을 흐렸다.

    뒤쪽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더욱 격렬해졌기 때문이었다.

    제갈공영은 시선을 돌려 전투 광경을 확인했다.

    괴인 중 대부분은 눈이 멀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적군과 아군에 대한 구별이 없었다.

    그저 분노에 칼을 휘두를 뿐이었다.

    그 원인을 제공한 한빈은 구석에서 조용히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것은 말도 안 되는 전투 방식이었다.

    마교보다 더 악랄하고.

    사파보다 더 사악한 전술이었다.

    정파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발상이었다.

    대체 누가 저런 괴물을 만들었을까?

    제갈공영의 상식으로는 저런 괴물을 만들 집단은 현 강호에 존재하지 않았다.

    마교나 사파는 아닐 것이 분명했고.

    하북팽가는 더욱 아니었다.

    게다가 저 시녀는 대체 뭐란 말인가?

    몇십 년을 강호에 몸담은 자신보다도 더 침착하게 이끌어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잠시 상념에 잠겼던 제갈공영을 깨운 것은 내공이 담긴 웃음소리였다.

    “하하하.”

    그 웃음소리에 제갈공영이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확인한 제갈공영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그 웃음의 주인공은 바로 암제였다.

    제갈공영은 아차 하는 눈빛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그 모습에 암제가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들켰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

    “그렇게 생각했다면 나를 물로 본 것이고…….”

    “아니란 말이오?”

    “너는 바가지 속 파리가 발버둥 치면 신경을 쓰더냐?”

    “우리가 파리란 말이냐?”

    “파리는 희망이라도 있지. 너희에게 과연 희망이 있을까?”

    말을 마친 암제는 설화를 가리켰다.

    “그 문이 안에서 열릴 것 같더냐?”

    “그걸 할아버지가 왜 신경 써요?”

    설화는 암제를 놀리듯 입술을 쭉 내밀었다.

    하지만, 암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토해 냈다.

    “허허, 주인이나 시녀나 말버릇이 고약한 건 똑같구나.”

    “그럼 내가 우리 공자님을 닮지, 누굴 닮아요?”

    “그래 누굴 닮았는지 사냥개와도 같은 후각을 지녔구나. 너도 내 수집품 속에 넣어 주마.”

    암제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수집품이란 자신의 수하들이 분명했다.

    천으로 덕지덕지 기운 듯한 그들의 외모를 봤을 때는 소름 끼치는 말이었다.

    하지만, 설화는 아무렇지 않게 피식 웃으며 답했다.

    “수집품은 쟤네들로 그냥 만족하고 우리 일에는 신경 쓰지 마세요.”

    말을 마친 설화는 계속 석상을 살폈다.

    그때 암제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문은 열리지 않는다고 해도.”

    “저랑 내기할래요?”

    설화가 돌아서더니 팔짱을 꼈다.

    암제도 흥미가 동한 듯 설화를 바라봤다.

    “내기라? 좋지. 너는 무엇을 걸 테냐?”

    “저는 문이 열린다는 것에 제 오른팔을 걸게요.”

    “파리의 다리라……. 그렇다면 나는 내 수염 하나를 걸도록 하지.”

    “제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할 수 없죠.”

    “그럼 언제까지 시간을 주면 되겠느냐?”

    암제가 눈매를 좁히자 설화가 찻잔을 잡는 시늉을 하며 답했다.

    “그냥 차 한잔 마실 시간 정도면 충분해요.”

    “하하하, 시간을 벌려는 속셈…….”

    암제는 말을 멈췄다.

    석상 위에서 소량의 흙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투득.

    석상이 흔들리는 묘한 소리까지 들렸다.

    옆에서 제갈공영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기관 진식에 능한 그였기에 암제의 말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석상이 통로는 맞지만, 안에서 열 방법은 없었다.

    만약 있다고 해도 이 근처가 아닌 천장 어딘가에 장치를 만들어 놨을 것이다.

    하지만, 제갈세가의 식구들은 모두 산공독에 당한 상태.

    설화를 도와 천장에 있는 장치를 찾을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석상이 흔들리고 있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눈만 크게 뜰 뿐이었다.

    그때 모두의 눈이 커졌다.

    덜컹!

    석상이 문처럼 열렸다.

    앞쪽에서 장치를 찾던 설화는 빙긋 웃으며 뒤쪽으로 폴짝하고 물러났다.

    열린 틈 사이로 누군가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설화가 재빨리 다가가 말했다.

    “청화야, 다녀왔구나.”

    “네, 갔다 왔어요.”

    “통로는?”

    “이곳에서부터 쭉 뻗어 있어요. 정의맹의 고수들은 두 시진은 있어야 도착할 거예요.”

    “그래, 수고했다.”

    말을 마친 설화는 청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가 봐도 친자매 같은 모습에 제갈공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모두가 놀라고 있을 때 설화가 말을 이었다.

    “현문 아저씨는 입구가 막히지 않게 석상을 고정해 주시고. 제갈 언니는 현문 아저씨를 보호해 주세요. 그리고…….”

    설화는 말끝을 흐리며 인원을 살폈다.

    설화와 시선이 마주친 제갈공영이 물었다.

    “우리도 도와주마.”

    “제갈세가 중 초절정 이상은 남으시고 나머지는 재빨리 문으로 튀세요.”

    “그게 무슨…….”

    “시간 없으니 제가 말한 대로 하세요.”

    그때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설화의 앞쪽으로 날아왔다.

    팡!

    그림자가 만든 파공성을 향해 설화가 짓쳐 들었다.

    쾅!

    그림자와 설화가 부딪쳤다.

    그 모습에 제갈공영이 눈을 크게 떴다.

    설화의 무위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때 석상이 움직이지 않게 막아서고 있는 현문을 향해 금륜이 날아왔다.

    드드득!

    묘한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금륜은 제갈공려가 막아섰다.

    챙!

    제갈공려의 손에 부딪힌 금륜이 빠른 속도로 암제의 손으로 돌아갔다.

    제갈공영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는 제갈세가의 가주답게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내가 지정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통로를 통해 빠져나가라.”

    “존명.”

    식솔들이 포권하며 열린 문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앞쪽에 있는 청화는 통로의 앞에서 그들의 손을 잡아 주었다.

    설화가 괴아를 막아서고 있는 상황

    제갈공영은 힐끔 암제를 바라봤다.

    암제는 의자에 앉은 채 두 손에 금륜을 들고 있었다.

    “밖으로 나간다고 살 수 있을까?”

    암제의 말에 제갈공영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산공독에 중독된 채 적을 맞이한다면?

    그러고 보니 지하에 가둬 놓고 제갈세가를 장난감 취급하던 암제가 이렇게 자신들을 놓아줄 리 없었다.

    산공독만 아니라면 어찌해 볼 방법이 있겠지만, 중독된 제갈세가의 식솔들이 죽음을 피해 갈 방법은 없었다.

    제갈공영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동시에 빠져나가려는 식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들 잠시…….”

    하지만, 제갈공영은 말을 맺지 못했다.

    청화가 제갈공영의 손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이 봤을 때는 별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청화가 손을 잡자, 제갈공영의 혈맥에 묘한 기운이 흘렀다.

    정체불명이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오더니, 낙엽을 쓸어 담듯 몸 안에 특정한 기운을 한 곳으로 몰고 있었다.

    놀란 제갈공영이 말했다.

    “흡정대법?”

    “좀 조용히 하세요, 가주님.”

    “대체…….”

    “그냥 모른 척하세요.”

    말을 마친 청화는 제갈공영에게 떨어졌다.

    그러고는 다른 이의 손을 잡았다.

    순간 제갈공영은 적과 대치 중이라는 것도 잊고 머리가 멍해졌다.

    갑자기 내공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몸을 잠식하고 있던 산공독이 모두 사라진 것이 분명했다.

    진기가 청화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길래 내공을 흡수하는 사이한 무공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산공독만 빼 간 것이었다.

    몸속에 든 독만 빼낼 수 있는 무공은 세상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체질을 타고난 이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사천당가의 공독지체…….’

    제갈공영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적에게 아군에 관한 정보를 줄 수는 없었다.

    제갈공영은 문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바라봤다.

    그들 모두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안광이 증거였다.

    제갈공영은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밖에서 당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공을 찾은 저들은 진법과 기존의 지형을 이용해서 적에게 몸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정의맹의 고수들이 온다는 두 시진 정도는 말이다.

    제갈공영의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청화는 아무렇지 않게 나머지 사람들의 몸에서 산공독을 빼내었다.

    그때였다.

    두 개의 금륜이 날아왔다.

    제갈공려는 이를 악물었다.

    첫 번째 날아온 금륜을 막고 나서 손아귀가 찢어졌다.

    금륜에 담긴 내력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두 개가 한 번에 날아온다면.

    하나는 검으로 막고 하나는…….

    그냥 몸으로 막아야 할 듯싶었다.

    제갈공려가 기합을 내질렀다.

    “덤벼!”

    이것은 악다구니에 가까웠다.

    이어서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

    챙!

    첫 번째 금륜을 막아 낸 것이다.

    그때였다.

    챙!

    다시 금륜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힐끔 옆을 보니 그녀의 오라버니이자 가주인 제갈공영이 검에서 푸른 진기를 뿜어내며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제갈공영은 금륜을 쳐 낸 뒤 설화와 대치하고 있는 괴아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제갈공영의 아들인 제갈명과 제갈수도 합공에 손을 보탰다.

    제갈공영은 괴아를 공격하면서도 아래쪽에 있는 암제를 바라봤다.

    다행히 암제는 의자에 앉은 채 생각에 빠진 듯 금륜을 매만지고 있었다.

    상황은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제갈공영은 판단했다.

    암제가 저리 고민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었다.

    내공으로 바퀴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하지만, 몇 개의 턱이 있는 지하 공간의 위쪽까지 의자를 이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심할 것은 아래쪽에서 던지는 금륜밖에 없다는 것이 제갈공영의 판단.

    제갈공영은 한빈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괴인들은 약효가 다 되었는지, 한두 명씩 서로를 난도질하던 것을 멈췄다.

    한빈은 환각에서 벗어나려는 괴인들을 공격하고 다시 구석으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했다.

    지금은 전투에 지친 듯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제갈공영의 착각이었다.

    한빈은 지금 운기조식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 가득 쌓인 구결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용안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지급 구결 일(一)을 획득하셨습니다.]

    [지급 구결 장(長)을 획득하셨습니다.]

    [지급 구결 난(亂)을 획득하셨습니다.]

    [……]

    끝없이 쌓여 가는 구결이 벌써 아홉 개였다.

    그런데 새로운 초식은 나오지가 않았다.

    한빈이 의문을 피워 내고 있을 때, 용린검법의 비급이 질문에 답하듯 다시 글귀가 나타났다.

    [현재 수집한 구결은 서로 연관이 없습니다.]

    한빈은 어이가 없는 듯 입맛을 다셨다.

    “쩝, 쓸모없게…….”

    하지만, 한빈은 내뱉던 혼잣말을 멈췄다.

    그것은 새로운 글귀 때문이었다.

    [연관성이 없는 열 개의 구결로 상위 구결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뭐지?

    한빈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다시 글귀가 바뀌었다.

    [연관성이 없는 구결 지급 구(九) / 지급 십(十)]

    순간 한빈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괴인을 살피기 시작했다.

    괴인의 몸에서 일렁이고 있는 진청색 점.

    그런데 문제는 그 괴인이 다른 괴인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죽게 되면 구결이 없어질 터.

    한빈은 재빨리 몸을 날렸다.

    “내 것이다. 건들지 마!”

    말을 마친 한빈은 재빨리 용린검법의 초식을 펼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