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314화 (314/621)
  • 314. 무가지회 (9)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장천이 내공을 담아 외쳤다.

    “지금부터 무가지회를 시작하겠소! 먼저 중원을 지키다 산화한 선배들에 대해 뜻을 기리겠소!”

    그의 외침에 모두가 단상을 향해 포권한 후 침묵을 지켰다.

    이어서 남궁세가의 가주가 조금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이번 무가지회에서는 용봉지회를 부활시키겠소! 그리고 용봉지회에 우승하는 자에게는 무림세가 연합을 이끌 수 있는 수장 자리를 수여하겠소. 이것이 우리 천하 십대세가의 결정이오.”

    그 말에 여기저기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뭐야, 자기들끼리 다 먹겠다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와, 이거 너무 심하네.”

    모두가 웅성댈 때 남궁장천이 발을 굴렀다.

    쿵.

    청강석이 흔들리며 그 진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남궁장천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결과에 따라 천하 십대세가의 자리도 바뀔 수 있소. 용봉지회는 이곳에 초대받은 무림세가라면 누구든 참가할 수 있소. 나머지는 여기 있는 제갈세가의 대표이신 제갈공민 대협이 설명해 주실 것이오.”

    순간 실망은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가장 놀란 것은 십대세가 싸움에 끼어들 세력이 없는 가문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구경꾼의 입장에서 이번 행사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뭐야? 십대세가 자리를 걸고 싸우겠다는 거야?”

    “그러면 백천문도 한 자리 차지할 수 있다는 거잖아.”

    “자네, 백천문이 문제야? 남도문은 당연히 십대세가에 들어야 했어. 그런데 기득권에 밀려 못 들었을 뿐이지. 아니, 신창양가는 귀찮아서 십대세가의 이름을 버린 가문이잖아.”

    “그러면 십대세가에서 떨어지는 가문도 있다는 거 아니야?”

    “그러게, 진짜 이번에는 피가 튀겠는데…….”

    모두가 술렁이는 가운데 제갈공민이 남궁장천의 뒤를 이었다.

    “지금부터 용봉지회의 규칙에 대해 설명하겠소. 용봉지회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제갈공민은 잠시 말을 멈췄다.

    모두가 마른침만 삼키며 제갈공민을 바라봤다.

    주위가 잠잠해지자 제갈공민이 말을 이었다.

    “첫째, 초대장을 받은 세가 중 세 명만 나올 수 있습니다. 부상자가 있을 경우에는 명단 교체가 가능합니다. 둘째, 용봉지회라는 뜻이 어울리도록 이전 용봉지회에 나왔던 자는 출전할 수 없습니다. 셋째, 병장기 사용은 일체 금합니다. 넷째, 상대를 죽이면 승리자의 자격을 박탈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제갈공민은 자리로 들어갔다.

    순간 단상 아래에서 눈을 빛내고 있던 세가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말이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용봉지회에 나가지 않은 자라면 출전할 수 있다잖아.”

    “그러고 보니…….”

    “그래, 참가만 안 했다면 가주라도 참가할 수 있다는 거네.”

    “설마. 용봉지회라는 자리는 후기지수가 겨루는 자리인데, 노장들이 나올 리는 없지.”

    십대세가의 후기지수들도 그 영향을 받아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중 팽혁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이 잠겨 있었다.

    그때 악비광이 팽혁빈을 불렀다.

    “형님,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악비광은 특유의 붙임성으로 지금 팽혁빈과도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악비광의 목소리에 정신 차린 팽혁빈이 고개를 돌렸다.

    “자네 언제 왔나?”

    “아까부터 있었습니다. 용봉지회 때문에 걱정하시는 건 아닐 테고…….”

    “아무것도 아닐세.”

    팽혁빈은 손을 내저었다.

    그 모습에 악비광이 사람 좋은 얼굴로 팽혁빈을 이끌었다.

    “일단 참가 신청부터 하시죠.”

    “아, 그래야겠군.”

    “참가 신청을 한 후 출전 명단은 나중에 제출하라 했으니, 일단 신청부터 하고 오겠습니다.”

    악비광이 단상 옆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팽혁빈은 한빈이 준 책자를 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틀 동안 한빈이 준 책자를 살폈지만, 이게 무슨 내용인지를 알 수 없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넘겼을 테지만, 한빈이 준 지난번 책자에는 오호단문도의 오의가 깃들어 있지 않았던가?

    이번에 준 이 책자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책을 해석하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극도의 피로감.

    도저히 이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악비광이 다시 돌아왔다.

    “형님, 다녀왔습니다. 가만 보니 기권한 세가도 제법 되는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악비광이 단상 옆에 마련된 임시 가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용봉지회의 출전을 원하는 가문들의 명패가 하나씩 걸렸다.

    팽혁빈은 걸려 있는 명패와 한빈이 준 서책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고는 재빨리 서책을 펼쳐 봤다.

    다시 가벽에 걸린 명패를 살폈다.

    번갈아 서책과 명패를 보던 팽혁빈의 눈이 커졌다.

    이제야 한빈이 준 책이 뭔지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믿을 수는 없었다.

    책 속 내용은 대진표와 그에 따른 결과였다.

    힐끔 옆을 돌아보니 연무장 구석에 돈을 걸기 위한 내기 가판이 펼쳐져 있었다.

    이 대진표와 결과가 맞는다면?

    하북팽가는 천하제일 무림세가가 아닌 천하제일 거부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팽혁빈은 고개를 흔들었다.

    용봉지회가 열릴 것까지는 예상했지만, 결과까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리는 없었다.

    팽혁빈은 일단 용봉지회의 참가를 위해 단상 옆으로 걸어가며 혼잣말을 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녀석이 뭘 하라는지를 모르겠어.”

    * * *

    같은 시각, 귀락천을 눈앞에 둔 한빈이 발걸음을 멈췄다.

    탁.

    갑자기 한빈이 멈추자 뒤따라온 설화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공자님, 혹시 적이라도…….”

    “아니, 갑자기 귀가 간지러워서 그래. 누가 내 얘기를 하고 있나 보네.”

    “에이, 공자님 얘기를 누가……. 아니 많이 할 것 같네요.”

    “아마 욕은 아니겠지.”

    “누가 공자님의 욕을 해요.”

    뒤쪽에서 따라오던 현문이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오?”

    “현문 아저씨, 잠시 여기서 쉬었다 가요.”

    “흠, 그러자꾸나. 나는 물 좀 구해 오겠다.”

    “네, 감사해요. 아저씨.”

    현문이 자리를 뜨자 한빈은 눈앞에 흐르는 귀락천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전생에 기억이 없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의 유래는 대충 알고 있었다.

    수려한 경치에 비교해 물가에서 귀곡성이 들린다고 헤서 귀락천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실 이곳에 오면서 한빈은 내심 귀락천이 천수장과 같은 극양지기의 땅이 아닐까 기대했다.

    만약 극양지기를 담고 있는 땅이라면?

    반드시 이곳을 한빈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극양지기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끄그-극!

    강가에서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뒤따라오던 제갈휘는 침음을 토해 냈다.

    “설마…….”

    “아닐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제갈공려가 제갈휘를 진정시켰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한빈이 물었다.

    “설마라니, 어떤 상상을 하는 겁니까?”

    “저 귀신 소리가 우리 가문의 식솔이 내는 원통함이 아닐까 해서요.”

    제갈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제갈휘가 이렇게 겁을 먹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무리에서 자신의 무위가 유독 약하다 보니 마음마저 약해진 것이다.

    한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제갈 공자, 왜 이리 부정적입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팽 공자님?”

    “죽은 자는 목소리를 못 냅니다. 이게 제갈가의 식솔이 내는 거라면 그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군요. 죄송합니다. 팽 공자님은 도와주시려고 하는데, 제가 쓸데없이…….”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게 사람의 목소리라면…….”

    “편하게 말씀해 주시지요.”

    “꽤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겁니다.”

    그때였다.

    끄아-악!

    다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빈이 눈을 반짝이며 강을 바라봤다.

    저 소리는 강가가 아닌 강물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 분명했다.

    한빈은 일행에게 말했다.

    “일단 확인해야겠습니다.”

    “어떻게 확인하시려고요?”

    “직접 강에 들어가 찾는 수밖에 없죠.”

    “강 속에 뛰어든다고요? 저 정도 물살의 강에 뛰어드는 건 해남파 같이 수공을 익힌 문파나…….”

    제갈휘는 말끝을 흐리며 세차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봤다.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무공과는 결을 달리하는 동작이 필요했다.

    오죽하면 무공 중 수공이라는 분류가 있겠는가?

    물속에서의 호흡도 문제지만, 저리 세차게 흐르는 물속에서 떠내려가지 않고 움직이려면 물속에서 펼칠 수 있는 경신술이 필요했다.

    뭐, 경신술이라기보다는 헤엄치는 요령이라고 해야 적당하지만 말이다.

    무공이 높은 데다 의술까지 가진 한빈이 수공까지 익혔을 리는 만무했다.

    그때 한빈이 말했다.

    “여기서 움직이지 마시고 기다리시죠.”

    “어디를 가려는 것입니까?”

    제갈휘가 묻자 한빈은 조용히 강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제갈휘가 다시 말을 이었다.

    “팽 공자는 수공을 익히신 겁니까?”

    “수공은 모릅니다.”

    “그럼 대체 어떻게 강 속을 살피시려고 하는 겁니까?”

    “그건 영업 비밀입니다. 그냥 잠시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고는 적당한 돌덩이 몇 개를 모았다.

    그 돌덩이를 천을 이용해 자신의 발목에 감쌌다.

    그리고는 설화를 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설화가 한빈의 앞에 어깨에 메고 있던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한빈은 아무 말 없이 보따리에서 가느다란 끈을 꺼냈다.

    한빈은 그 끈을 자신의 몸에 묶었다.

    옆에서 보던 제갈휘가 물었다.

    “그 끈은 대체 뭡니까?”

    “천잠사입니다.”

    “처, 천잠사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양의 천잠사가…….”

    “길 가다가 주웠습니다.”

    한빈이 씩 웃었다.

    그때 옆에 있던 청화는 표정을 굳히며 허공을 올려다봤다.

    그 천잠사는 청화가 천독의 밑에 있을 때 쓰던 것이다.

    당시에는 한빈과 청화가 서로 적이었기에 천잠사로 주변에 경계망을 쳐 놨었다.

    한빈이 그 천잠사를 끊고는 들어왔었고 말이다.

    다른 이라면 천잠사라고 해도, 독물이 잔뜩 묻은 것을 이렇게 챙기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한빈은 그것을 알뜰하게 챙겨서 지금 쓰고 있는 것이다.

    한빈이 청화에게 천잠사의 실타래를 건넸다.

    “이건 청화가 들고 있어라.”

    “알았어요, 공자님.”

    모두가 침을 삼키며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은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첨벙.

    뛰어든 한빈은 그들의 눈앞에서 바로 사라졌다.

    심호흡 몇 번 할 시간이 지났을 때 물 뜨러 간 현문이 도착했다.

    한빈이 안 보이자 현문이 물었다.

    “팽 공자는 대체 어디에 갔습니까?”

    “저기에 들어갔습니다.”

    제갈공려가 말하자 현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팽 공자가 수공도 익혔습니까?”

    “그건 저도 잘…….”

    제갈공려는 현문을 바라보며 의문을 품었다.

    이제까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본 사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하북팽가의 사 공자를 잘 모르는 듯했다.

    제갈공려가 물었다.

    “현문 선배님께서는 하북팽가의 사 공자와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 아니셨나요?”

    “아니오. 이곳 사천에서 만났소.”

    “헉, 저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소. 들어간 지 얼마나 됐소?”

    “아마, 일다경 정도요?”

    “헉, 그럼 무슨 일이라도 난 게 아니오? 물속에서 일다경 동안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소?”

    “그러고 보니…….”

    제갈공려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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