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311화 (311/621)

311. 무가지회 (6)

제갈휘는 모른 척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고모님.”

“그럼.”

말을 마친 제갈공려는 저잣거리 옆 나무 뒤로 사라졌다.

그것도 잠시, 그녀가 나타난 것은 장신구 가게로부터 백 걸음은 족히 돼 보이는 곳에 서 있는 전각의 지붕이었다.

그녀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느낌 때문이었다.

제갈세가에서 상단전을 개방한 유일한 인물인 제갈공려는 남들보다 감각이 뛰어났다.

그런데 그 감각이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녀는 직감을 믿고 지금 전각의 지붕 위로 넘어온 것이었다.

제갈공려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자신이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저잣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가판을 기웃거리는 사람들.

모두가 평범하게 보였다.

제갈공려가 막 몸을 돌려 제갈휘에게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전각의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내려오시죠!”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찹쌀떡 장수 앞에서 기웃거리는 네 명의 행인이 들어왔다.

그중 허여멀건 얼굴을 한 서생 분위기의 사내가 위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제갈공려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 사내를 바라봤다.

붉은 무복을 입은 서생이라?

제갈공려는 뭔가 어긋난 것 같은 그의 분위기에 입술을 뗐다.

“나를 부른 것이 자네인가?”

“네, 맞습니다. 거기 위에 계시면 힘들잖아요. 그러니 일단 내려오시죠.”

붉은 무복의 사내가 손짓하자 주위를 돌아본 제갈공려는 소리 없이 아래로 내려왔다.

그녀는 내려와 경계하는 눈빛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사내는 물론 한빈이었다.

한빈은 사람 좋은 얼굴로 그저 바라만 봤다.

그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뜬 제갈공려가 물었다.

“대체 누구길래 나를 불렀나?”

“일단 시장하실 텐데 이거부터 드세요.”

사내는 찹쌀떡을 내밀었다.

반사적으로 찹쌀떡을 건네받은 제갈공려가 물었다.

“이건 또 무엇이냐?”

“시장하실 거 아니에요. 미행도 먹어 가면서 해야지, 그렇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시면 쓰러지세요.”

“미행이라…….”

순간 제갈공려의 눈빛에서 예기가 맴돌았다.

잘 벼린 검날을 한빈을 향해서 겨누는 듯한 기세.

한빈이 손을 내저었다.

“기세도 적당히 부리시고요. 그럼 상대가 눈치채잖아요.”

“기세라고?”

고개를 갸웃한 제갈공려가 재빨리 기세를 거두었다.

주변을 바라보니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제갈공려는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부모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아이는 눈을 크게 떴고 앞에 있는 찹쌀떡 장수는 손을 벌벌 떨기까지 했다.

갑자기 지나가던 이들이 걸음을 멈춘 상태.

제갈공려가 기세를 거두고 온화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그냥 갈 길 가시면 됩니다.”

“더 어색한데요.”

한빈이 제갈공려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제갈공려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

그녀의 말에 한빈이 씩 웃으며 멈춰 제갈공려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우리 누님께서 아직 시집을…….”

슬쩍 말끝을 흐린 한빈은 제갈공려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측은하기에 그지없었다.

지나가던 이들이 안타까운 눈으로 제갈공려를 바라봤다.

“아, 그럴 수도 있지. 원래 그 나이가 되도록 시집을 못 가면 신경질도 나고 그런 법이지.”

“생각해 보니 저 정도 살기는 당연하다고 봐요.”

누군가는 거들었다.

그것도 잠시, 그들은 신경을 거두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에 제갈공려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빈의 순발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몰린 시선을 말 한마디로 분산시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 한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저는 하북팽가의 사 공자 팽한빈이라고 해요. 누님은 제갈세가분이시죠?”

“누, 누님이라고?”

“싫으시면 이모님이라고 불러 드릴까요?”

“아니다. 그냥 누님으로 해라. 그런데 하북팽가가 여긴 무슨 일이지?”

“사천당가에서 다급한 기척이 느껴져서 여기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럼 거기서부터 우리를 미행했다는 말이냐?”

“미행은 몰래 하는 거고요.”

“그럼 미행이 아니라는 말이냐?”

“제가 계속 신호를 보냈잖아요. 누님이 지금에서야 오신 거고요.”

“흠.”

“그나마 누님쯤 되니 제가 보낸 기척을 알아채신 거고, 다른 사람이면 어림없었을 겁니다.”

“혹시 나를 아느냐?”

제갈공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바라봤다.

누님 누님 하면서 말하는 것을 보면 분명 자신을 아는 자가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이 만난 하북팽가의 인물 중 팽한빈이라는 자는 없었다.

한빈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갈세가의 최고 기재이신 제갈공려 누님이시잖아요.”

“나를 알다니 신기하구나.”

“제갈세가의 총군사이신 제갈공민의 동생분이시잖아요. 강호에서 그 정도도 모르면 눈을 감고 다니는 거랑 다를 바 없죠.”

“그래. 그렇게 잘 안다면 남의 가문에 일에는 눈을 감아 줘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을 텐데.”

“도움이 안 된다면 눈을 감고 있겠죠.”

“그럼 네가 도움이 된다는 말이냐?”

“네, 물론이죠.”

그때였다.

그들의 옆에 있던 중년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움직이기 시작했소.”

“그럼 저희도 움직이죠.”

한빈이 제갈공려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움직인다는 것이냐?”

“추적 대상이요.”

“저들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어딜 간다는 거지?”

“변복하고 나왔잖아요.”

한빈은 턱짓으로 장신구 가게에서 나오는 두 명의 연인을 가리켰다.

순간 제갈공려는 입을 크게 벌려야 했다.

저들이 들어갈 때는 분명 사내 둘이었다.

그런데 나올 때는 연인이 되어 나온 것이다.

한빈이 가리킨 후에야 그들의 키나 발의 크기를 확인하고는 알아챌 수 있었다.

제갈공려는 한빈이 이끄는 대로 일단 따라가 보기로 했다.

* * *

잠시 후.

금와 전장 앞.

그들이 추적하던 연인이 들어간 곳은 다름 아닌 금와 전장의 앞이었다.

한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는 제갈공려와 그녀의 조카 제갈휘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제갈공려는 일단 급한 김에 따라왔지만, 한빈이 이리 나서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제갈공려가 말했다.

“이제 내 물음에 대답해 줄 때가 된 것 같은데, 어떤가?”

“아, 왜 제가 끼어들었냐는 질문 말씀이시죠? 대답은 간단합니다. 십대세가 아닙니까?”

“십대세가라…….”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십대세가를 위협하는 존재가 있다면 저는 같은 십대세가의 일원으로서 좌시할 수 없습니다.”

“입은 살아 있군. 눈빛을 보면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이익이죠. 제 도움이 필요 없으시면 지금이라도 돌아가겠습니다. 저도 무가지회에서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한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그러고는 설화와 청화를 바라봤다.

한빈이 슬쩍 턱짓하자 설화와 청화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모습에 제갈공려가 다급하게 한빈을 불렀다.

“팽 공자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겠나?”

“지금 미행하면서 느끼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가려 하니 잡으신 거고요.”

“흠.”

“잠시만요.”

한빈이 눈매를 좁히더니 하늘에 뭔가를 날렸다.

제갈공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순간 시야에 번쩍하고 뭔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때였다.

한빈이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휙.

그러더니 위쪽에서 떨어지는 비둘기 하나를 잡았다.

비둘기를 잡은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작은 대롱에 담긴 전서를 꺼냈다.

그 비둘기는 보통 비둘기가 아닌 전서구였다.

한빈은 제갈공려 일행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서를 확인하고는 다시 대롱에다가 전서를 넣었다.

그러고는 비둘기에 몸에 박힌 은침을 빼내었다.

은침을 빼내자 비둘기가 퍼뜩거리며 하늘을 날았다.

비둘기가 향한 곳은 금와 전장.

모든 것을 확인한 한빈이 말했다.

“저는 그만 가 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제가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그 전서가 뭔지 내가 말해 줄 수 있을까?”

“가주 일행을 은밀한 장소에 옮겼다더군요.”

“헉.”

제갈공려가 헛숨을 들이켜자 한빈이 말을 이었다.

“어느 가문의 가주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자, 잠시만, 그러니까. 가주를 가뒀다고 전서에 적혀 있었다는 거지?”

“네, 맞습니다.”

“혹시 장소는 알 수 있을까? 팽 공자.”

“그건…….”

한빈이 말끝을 흐리자 제갈공려가 말했다.

“어떤 보상이라도 지급할 것을 약속하네. 그러니 그 장소를 말해 주게.”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한빈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설화가 씩 웃으며 어깨에 메고 있던 보따리를 풀었다.

“여기 미리 준비했어요. 공자님.”

“그래, 수고했다. 우리 설화가 요즘 들어 준비가 철저해졌구나.”

“헤헤. 칭찬 고마워요, 공자님.”

설화가 웃으며 보따리 위에 한지를 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가느다란 대나무 통에 들어 있는 먹물을 벼루에 쏟았다.

그 모습에 제갈공려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것이냐?”

“일단 계약서부터 한 장 쓰시죠?”

“계약서라고?”

“일 끝나고 입 씻는 분들이 하도 많아서요.”

“이렇게 급한데 계약서를 쓰자고?”

“계약서는 제가 쓰고 누님은 서명만 하시면 됩니다.”

“헉.”

제갈공려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한빈을 말리지 못했다.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이 바로 한빈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로 이 순간에도 맹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금와 전장으로 쫓아가 어떻게 된 것이냐고 으름장을 놓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증거도 없을뿐더러, 그들이 진짜 범인이라면 가주가 위험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장소를 알아내서 직접 행동하는 것밖에 없었다.

한빈은 제갈공려의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약서를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사사-삭.

일필휘지로 종이 위를 누비던 한빈의 붓끝이 멈췄다.

탁.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제갈공려에게 붓을 넘겼다.

제갈공려는 계약서를 확인했다.

계약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그냥 팽가, 아니 팽한빈이라는 자의 이익이 반영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기둥뿌리가 완전히 뽑힐 정도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두서너 개 정도는 뽑힐 정도의 계약서.

제갈공려가 붓을 들고 어깨를 부르르 떨자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현문이 도호를 외쳤다.

“원시천존이시여! 어찌 이런 일이…….”

현문은 이 광경이 강호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가 의심스러웠다.

정파의 가주가 납치를 당했으면 일단 쳐들어가서 적을 도륙하고 구해야 하는 것이 강호의 도리였다.

그런데 이 다급한 상황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계약서를 내밀고 있는 그 냉정함이 기가 막혔다.

현문은 문득 천살성을 타고 난 것은 자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확신이었다.

제갈공려는 끝내 붓을 잡고 서명을 시작했다.

스슥.

서명이 끝나자 한빈은 계약서를 제갈공려에게 건네며 말했다.

“지금부터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됩니다.”

“어딘지나 말해 주게.”

“낙촌입니다.”

“낙촌이라면…….”

“귀락천이 흐르는 곳이죠. 그런데 그곳이 정확히 어딘지는 저만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전에 대규모의 인원이 움직인다면 아마 적은 도주할 것입니다. 만약 적이 도망치지 않고 있다면 그건 함정이고요.”

“…….”

제갈공려는 아무 말 없이 한빈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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