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305화 (305/621)

305. 불상 깎는 노인 (3)

한빈은 노인에게 한 발 다가섰다.

“그 내기 제가 대신 하지요.”

“허허, 무슨 내기를 한단 말이냐?”

“지금 제 시녀가 제안한 내기 말입니다.”

“허허, 그러니까, 누구의 불상이 더 완벽한지 말이냐?”

말을 마친 노인은 슬쩍 한빈이 깎은 불상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바로 입가에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한빈이 깎은 불상은 제법 그럴듯해 보였지만, 노인의 불상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다.

노인이 말했다.

“네 불상과 내 불상을 비교해서 내기를 하자는 말이지? 하북팽가라 했으니 돈은 넉넉할 테고 어디 이야기나 들어 보자.”

“어르신이 깎고 계신 불상이 관음보살상이 맞으시죠?”

“그래, 눈은 있는 모양이다. 어디 마저 얘기해 보아라.”

“이게 제가 깎은 관음보살입니다.”

“으하하, 이걸 깎으려고 내가 만든 불상의 목을 부러뜨렸단 말이냐?”

“어르신이 깎은 불상이 관음보살이라 우기시는 겁니까?”

“우기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그게 진짜 관음보살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럼 네가 깎은 것이 관음보살상이라는 것이냐?”

“당연히 제가 더 관음보살과 비슷하게 깎았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내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놈을 상대했구나. 너는 벌할 가치도 없으니 이만 꺼져라.”

노인은 다시 기세를 피우며 한빈을 바라봤다.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던 설화는 어안이 벙벙했다.

한빈이 아무리 뜬금없기는 하지만, 그가 하는 일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멀쩡하게 불상을 깎고 있는 노인을 왜 자극한단 말인가?

뭐, 거기까지도 이해는 되었다.

문제는 한빈이 깎은 불상이 노인이 깎은 불상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였다.

아무리 한빈의 편인 설화라지만, 이번만큼은 우길 수 없었다.

힐끔 옆을 보니 청화도 계속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빈이 뒷짐을 진 채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럼 본격적으로 내기를 시작해 볼까요? 저는 어르신의 한 달을 원합니다.”

“내 한 달이라? 늙은이의 목숨을 원한다는 게냐?”

“그게 아니라 한 달 동안 어르신이 저를 위해 일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부탁드린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불상을 깎든 도를 닦으시든 관계없습니다.”

“그래, 그럼 나도 네 한 달을 받겠다. 대신 내가 이긴다면 한 달 동안 내 너를 엄히 굴릴 것이다. 뭐, 죽을지도 모르지.”

“네, 그러지요.”

말을 마친 한빈은 손뼉을 쳤다.

짝짝!

그냥 손뼉이 아니라 내공이 담긴 소리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한빈과 노인 쪽을 보기 시작했다.

그때 한빈이 외쳤다.

“여러분, 진짜 불상을 판단해 주실 분을 찾습니다!”

한빈의 외침에 호기심이 동한 행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노인을 보더니 말했다.

“저 양반, 한 달 내내 저 나무 밑에서 불상 깎던 노인네 아니야?”

“그 정신 나간 노인네 맞네.”

“그런데, 저 젊은이는 누구지?”

“그러게 말이야?”

행인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한빈과 노인을 번갈아 봤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한빈이 다시 외쳤다.

“여기 보십시오! 어떤 불상이 관음보살과 같은지를 판단해 주실 분께 철전 한 닢씩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공정성을 위해 진 사람이 드릴 겁니다.”

“…….”

노인이 말없이 한빈을 쏘아봤다.

하지만, 한빈은 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여기 계신 어르신이 자신의 불상이 제 불상보다 관음보살과 더 닮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관음보살을 보신 분 계십니까?”

한빈의 말에 행인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도 잠시 누군가가 나와 물었다.

“실제로 본 사람들이 어떻게 있겠나, 젊은이! 혹시 우리한테 돈 안 주려고 하는 건가?””

“그건 아니지요. 둘 중에 누구의 불상이 비슷한지만 판단해 주시면 철전 한 닢을 드리지요.”

“흠, 그렇다면 불상을 보여 주게.”

행인의 말에 한빈은 노인에게 턱짓했다.

“어르신의 불상부터 보여 주시죠.”

“그러지.”

고개를 끄덕인 노인이 말없이 불상을 들어 행인들에게 보여 줬다.

노인의 불상을 본 이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저 정도면 저 아래 공방에 내다 팔아도 되겠는데, 왜 궁상맞게 나무 밑에서 깎고 있던 거지?”

“그러게 말이야. 저 정도면 나라도 사겠는데.”

“뭐, 보나 마나일세.”

행인들의 목소리에 노인은 입가에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한빈이 불상을 내밀었다.

한빈의 불상을 본 행인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잘 깎기는 했는데 노인이 깎은 불상이 훨씬 잘 깎았어.”

“그러게 말이야.”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한빈이 준비되었다는 듯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제가 아까 관음보살을 실제로 보신 분이 계신가를 물었습니다.”

“그랬지. 그런데 관음보살을 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요. 하지만, 우리는 관음보살님의 마음은 알고 있지요.”

“흠, 그야, 중생을 구제하는…….”

“맞아. 마음은 알고 있지.”

행인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한빈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빈과 대화하던 행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마음을 못 보니 얼굴이라도 인자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면에서…….”

“잠시만, 기다리시죠.”

손바닥을 보인 한빈은 바닥에서 지푸라기 하나를 들었다.

그러고는 노인이 들고 있는 불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르신 그 불상 좀 제게 잠깐 주시죠.”

“허, 무슨 장난을 치려는 것이냐? 뭐, 승부는 이미 난 것이니 어디 마음대로 해 보아라.”

“감사합니다.”

불상을 건네받은 한빈은 지푸라기를 들고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이 불상이 관음보살의 마음을 얼마나 담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죠.”

말을 마친 한빈은 지푸라기에 불상의 귀에 갖다 댔다.

그 모습에 행인들이 노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불상에 장난을 치고 있는 게냐?”

“아닙니다. 불상의 마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마음이라…….”

“그런데 귀가 막혀 있군요. 진짜 관음보살이라면 귀가 막혀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중생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실 관음보살의 귀가 막혀 있다면 가짜가 아니겠습니까?”

동시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허, 저 젊은이 말이 맞네.”

“그러게 말이야.”

그때 노인이 헛기침하며 손을 내밀었다.

“흠, 다시 내 불상을 줘 보아라.”

“여기 있습니다. 직접 확인해 보시죠.”

한빈은 지푸라기까지 건넸다.

그것을 받은 노인이 눈을 빛냈다.

순간 지푸라기의 끝에서 가느다란 검사가 맺혔다.

노인은 아무렇지 않게 불상의 귀에 지푸라기를 넣었다.

순간 소리 없이 불상의 귀가 뚫렸다.

노인은 한빈의 말에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노인은 무당파 장문인의 사제, 현문이었다.

무당 최고의 기재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란 현문이지만, 그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가둘 수 없는 살심(殺心) 때문에 여기저기 사고를 치고 다니기 일쑤였다.

사악한 무리를 처단한다는 명목으로 그냥 정의맹에 넘겨도 될 악인을 일 검에 목을 베었다.

그가 죽인 악인의 숫자만 해도 무당파 전체의 문도가 죽인 수를 넘을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훈계만 해도 사람들까지 모두 작살 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의 사부는 십 년 전 세상을 떠나며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바로 진짜 관음보살상을 깎으라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천살성의 살심을 재우는 방법이라 했다.

덕분에 그는 무당파를 나와 세상을 떠돌며 관음보살상을 깎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실 지금 한빈의 한마디는 십 년 동안 불상을 깎으며 얻었던 깨달음보다 작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

어떻게든 한빈을 누르고 싶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어떤 수법을 쓰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무당의 현문이라는 건 아까부터 알아봤다.

그때 현문이 씩 웃으며 불상을 한빈에게 들어 보였다.

“내 불상도 이렇게 귀가 뚫려 있네. 그러니 내가 이 내기에 이긴 거로 해도 되겠나?”

말을 마친 현문은 지푸라기를 자신이 만든 불상의 귀에 넣었다.

지푸라기는 불상의 귀를 관통해서 반대쪽으로 나왔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 저러면 젊은이가 말한 관음보살이 맞잖아.”

“그러네, 저렇게 뚫려 있어야지 진짜 관음보살이 맞지.”

“그럼 같은 조건이면 저 노인이 이긴 게 맞지.”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한빈은 진득한 웃음과 함께 모두에게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한쪽 귀로 들은 것을 다른 쪽 귀로 흘려 버린다면, 어찌 진정한 관음보살이라 할 수 있습니까?”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그려.”

구경꾼 중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현문이 나섰다.

“그럼 네가 깎은 불상은 무엇이 다르다는 것이냐?”

“여길 보십시오.”

한빈이 자신의 불상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불상의 귀에 지푸라기를 넣었다.

지푸라기는 어느 정도 들어가자 멈췄다.

“보셨죠. 진짜 관음보살님은 중생의 목소리를 이렇게 머릿속에 담아 두신답니다.”

한빈의 말이 끝나자 모두는 입을 벌렸다.

한빈의 말은 장난 같으면서도 속세를 벗어난 듯한 깨달음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건해진 분위기에 구경꾼들은 조용히 한빈의 불상을 바라봤다.

그때 현문이 갑자기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외쳤다.

“십 년 동안 나는 겉모습만 깎았구나. 사부께서 말씀하신 것은 속마음인 것을……!”

말끝을 흐린 그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 한빈이 나지막이 외쳤다.

“설화야, 청화야. 호법을 부탁한다!”

동시에 설화와 청화가 현문의 앞뒤로 서서 경계하기 시작했다.

한빈은 조용히 구경꾼들의 앞으로 갔다.

그러고는 전낭을 꺼내 그들에게 철전을 나눠 주었다.

철전 몇 닢으로 든든한 아군 하나를 얻기 위함이었다.

철전을 받은 구경꾼들은 하나같이 미안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설법을 듣고 돈까지 받아 가니 미안하구려.”

“허허.”

어떤 이는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한빈은 어떤 경우에도 긴장을 풀지 않고 현문을 바라봤다.

현문은 전생의 기억에 있는 자였다.

마도가 일어설 때 큰 힘이 될 사람.

지금 한빈이 전한 깨달음은 소림의 일지 대사가 그에게 전한 것이라고 들었었다.

그 상황을 그대로 한빈이 재현한 것이었다.

당시 현문은 일지 대사의 설법을 전해 받고도 백일 후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런 후 무당에서 장문인에게 인사를 한 후 소림으로 들어가서 일지 대사의 제자가 되었다.

무당에서 자라 소림의 제자가 된 기구한 운명.

그런데 바로 무아지경에 들다니?

아무래도 그의 일생은 한빈 덕분에 바뀐 것 같았다.

한빈이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힐끔 돌려 보니 그곳에는 팽혁빈이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한빈은 그 자리를 설화와 청화에게 맡기고는 팽혁빈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팽혁빈의 앞에 선 한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잘 지내셨나요?”

“그래 잘 지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닌 것이냐?”

“무슨 일이라니요?”

한빈이 고개를 갸웃하자 팽혁빈이 답했다.

“네 때문에 이 호위가 곤혹을 치렀다.”

“이 호위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흠,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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