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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03화 (303/621)

303. 불상 깎는 노인 (1)

얼마나 지났는지 몰라도 적어도 두어 살은 더 먹어 보이는 외모에 키까지 컸다.

성숙해지긴 했지만, 머리를 쓰다듬어 줄 귀여움은 남아 있었다.

설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가왔다.

“공자님,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저기 보세요.”

설화는 한쪽을 가리켰다.

한빈의 시선이 설화의 검지를 따라 돌아갔다.

설화가 가리킨 곳을 확인한 한빈이 침음을 토해 냈다.

벽 쪽에는 조그만 토굴이 있었고, 그 토굴 안쪽에는 해골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음, 대체 저게 누구냐?”

“그건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뒤에 있던 청화가 앞으로 나오며 끼어들었다.

그 모습에 설화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 사연이 있어 보였다.

한빈도 턱짓으로 설명을 재촉했다.

“그래, 청화가 설명해 봐라.”

“네, 공자님. 그러니까 이분은 백 년 전에…….”

청화는 입에 물레방아라도 달아 놓은 듯 쉬지 않고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러고 보니 변한 것은 외모뿐 아닌 것 같았다.

지금 보니 입담이 보통이 아니었다.

청화의 설명은 간단했다.

가부좌를 튼 해골이 만독비고에서 실종되었다는 사천당가의 고수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알아봤냐고 물으려던 한빈은 토굴 아래에 이름은 보고는 말을 삼켰다.

-당만호

오래전 사천당가의 가주였으며, 독보다는 암기에 났다던 인재였다.

당시 가주였던 그는 지진이 일어난 후 만독비고를 덮은 독을 제거하기 위해 홀로 이곳에 들어왔었다.

하지만, 만독비고 속의 모든 독이 섞이며 만들어 낸 독기에 당해 나오지 못한 비운의 고수였다.

덕분에 사천당가의 암기술은 당만호의 죽음 이후 퇴보했다고 한다.

그만큼 당만호가 사천당가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았다.

여기까지는 세상에 알려진 이야기.

하지만, 당만호가 남겨 놓은 사정은 달랐다.

흩어진 독기를 해독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독기를 한곳에 모으는 것은 성공했던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사천을 날릴 수 있는 위험한 독 기운을 진정시키는 것은 가능했다.

그가 독기를 모으기 위해 선택한 것은 바로 독진.

독진을 가장 원활하게 펼치기 위한 장소가 바로 입구 쪽이었다.

그는 독 기운으로 뒤틀어진 만독비고에서 천재적인 두뇌로 생존하며 독진을 구축했다.

한빈이 처음에 들어왔던 문 앞에 있던 독진이 바로 당문호가 구축해 놓은 진법이었던 것이다.

한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청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물론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만호가 독진을 구축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일 년.

모든 임무를 마치고 만독비고를 빠져나가려던 당만호는 뭔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나무 문을 현철로 된 중문으로 바꿔 놓은 것.

보통 독을 보관하는 창고의 문은, 옻칠을 한 후 그 위에 기름칠한 한지를 덧대어 빠져나가는 독기를 막게끔 만든다.

그런데 그 문 뒤에 현철로 된 문을 하나 더 설치한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도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청화는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도 지금 청화가 들려준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여닫이문이었던 기존의 문 뒤에 미닫이문을 설치했으리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뭐, 알았다고 해도 안에서 만독비고 입구에 설치된 육중한 문을 열 방법은 없었다.

기관 장치를 돌릴 수 있는 쇠막대가 없는 한 말이다.

어찌 보면 비극이었다.

일 년이나 안에 있다 보니 사천당가에서는 그가 죽었다 생각했을 것이 분명했다.

또한 당문호가 설치한 독진 때문에 독기가 입구에 몰리다 보니, 사천당가의 입장에서는 점점 강해지는 독기를 막기 위해 문 하나를 더 설치했던 것.

고개를 끄덕이던 한빈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갑자기 의문 하나가 생겨난 것이다.

“청화야, 이곳이 당무천 가주님이 준 지도와 완전히 다르던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알아냈느냐?”

“그게…….”

청화를 말끝을 흐렸다.

뭔가 감추고 싶어 하는 듯 시선을 피하는 동시에 천장을 올려다본다.

그 모습에 한빈의 호기심은 더욱 짙어졌다.

그때 설화가 끼어들었다.

“그건 제가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아요. 괜찮지, 청화야?”

“언니, 그래요. 제 입으로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어요.”

“그래, 그럼 공자님께는 내가 설명해 드릴게.”

설화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한빈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설화에게는 웃기는 이야기인데 청화에게는 숨기고 싶은 비화라는 이야기였다.

한빈이 설화에게 턱짓하며 설명을 재촉했다.

“설화야, 숨넘어가겠다.”

“네, 공자님. 만독비고의 지형이 바뀐 것은 당만호 어르신의 복수심 때문이에요.”

“복수심?”

한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복수심이란 단어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별건 아니고 자신을 여기에 가둬 놨으니 다른 이도 여기에 못 들어오게 하겠다는 거죠.”

“아, 역시 사천당가는…….”

한빈은 청화를 힐끔 보고 말끝을 흐렸다.

사천당가는 역시 사천당가라고 하려 했다.

한빈의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설화는 계속 설명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간단했다.

기존에 있던 지형을 이용해서 진법을 만들고, 기관 장치를 추가해서 만독비고에 중원 최고의 미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미로는 공독지체가 와도 깰 수 없게 설계되었으며 혼자서는 깰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

뭐, 그 정도의 성의면 이곳을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 정도였다.

뒤끝에 있어서는 무림세가 중 최고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빈이 설화와 청화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무래도 설화와 청화가 깨달음을 얻는 것 같은데 그건 어떻게 된 거지?”

“바로 이 책 때문이에요. 당문호 어르신은 이 책에 만독비고에서 깨달은 심득을 남겨 놓았어요. 위기를 넘기고 자신을 찾아온 자를 위한 선물이죠.”

대답한 것은 설화였다.

옆에 있던 청화는 말없이 서책 하나를 내놓았다.

-암기백서

제목을 본 한빈이 조용히 책장을 펼쳤다.

그러고는 바로 눈을 크게 떴다.

“헉.”

그 탄성에 청화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공자님, 혹시 독이라도 묻어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다. 청화야, 이 책에 적힌 심득이 놀라워서 그런 것이다.”

“그럼 이거 공자님 가지세요.”

“아무리 그래도 사천당가의 보물이니 네가 보관하거라.”

“아니에요. 언니와 저는 벌써 여기에 있는 암기술 중 구 성은 깨달았어요.”

“아니다. 그래도 넣어 두어라.”

한빈은 서책을 청화에게 다시 건넨 후 조용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 서책은 한빈에게는 필요 없는 비급이었다.

암기백서의 마지막이 바로 용린검법 중 나오는 백발백중이었기 때문이다.

비급의 초반만 보고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다면 해답은 간단했다.

[이미 익힌 용린검법의 흔적입니다. 관련 무공은 백발백중입니다.]

이렇게 자세히 설명이 나오니 어찌 모를 수가 있는가?

대체 용린검법의 정체는…….

한빈이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뒤쪽에 있는 청화가 탄성을 질렀다.

“아, 언니. 공자님은 왜 이렇게 욕심이 없으세요?”

“그러게…….”

설화는 말끝을 흐렸다. 지금 행동만 봐서는 욕심이 없는 게 맞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설화가 지켜본 한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설화는 한빈의 등을 보며 입을 벌렸다.

청화와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한빈도 무소유의 도를 깨달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때 한빈이 손뼉을 쳤다.

“자 자, 이제 여기는 정리하고 빠져나갈 궁리부터 하자.”

“네, 공자님.”

“참, 빠뜨린 거 없는지 자리 확인하고. 모처럼 얻은 기연인데 좁쌀 한 톨이라도 놓고 가서는 안 된다.”

“아, 알겠어요. 공자님.”

설화는 자신이 조금 전 세웠던 가정을 바로 지워야 했다.

설호의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빈은 힐끔 당만호의 유골을 바라봤다.

어찌 보면 치밀하고 다른 쪽으로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이곳에 들어온 자에게는 살길을 열어 주고 기연까지 안배해 놓았다.

청화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암기백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유골을 향해 세 번 절을 한 후라 했다.

그런데 설화와 청화가 반대쪽 공간으로 들어갔다면?

한빈의 도움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갇혀 죽었을 것이다.

한빈은 사천당가의 선조에 대해 다시 한번 평가를 해야 했다.

“마교랑 비슷하네!”

“뭐라고 그러셨어요?”

귀 밝은 설화가 고개를 갸웃하자 한빈이 손을 내저었다.

“훌륭한 분이라고 했어. 너희에게 안배를 해 주신 분이잖아.”

한빈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때 청화가 당황한 듯 달려왔다.

“고, 공자님.”

“왜 그래? 청화야.”

“추, 출구가 없어요.”

“이런 함정을 만들어 놓은 사람이 출구를 보이는 데 만들어 놨을 리가 없잖아.”

“그래도 절을 세 번이나 하고 안배까지 받았는걸요. 그럼 후인으로 인정한다는 건데, 어떻게 출구가 안 열려요?”

청화가 당황하자 설화가 빙긋 웃으며 그녀를 달랬다.

“청화야, 우린 그냥 기다리면 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언니.”

“어차피 공자님이 열어 주실 거야.”

설화가 한빈을 바라봤다.

시선을 받은 한빈이 씩 웃으며 말했다.

“뭐, 사천당가의 선조분인데 우릴 여기 죽게 내버려 두겠어? 참, 그 비급은 어디서 얻었다고 했지?”

“절을 세 번 하니 저기서 상자가 튀어나왔어요.”

청화가 유골의 아래쪽에 있는 홈을 가리켰다.

한빈은 그쪽으로 가서 주변을 살폈다.

사각형 홈 옆에는 거기에 맞는 상자가 놓여 있었다.

정확히는 기다란 직사각형의 상자.

한빈은 상자와 비급 그리고 유골을 번갈아 바라봤다.

비급은 손바닥만 했지만, 상자는 편육랑아의 낭아봉을 넣어도 될 만큼 길고 넓었다.

잠시 고민하던 한빈이 상자를 열었다.

그 모습에 청화가 말했다.

“상자에는 비급 말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 아무것도 없네. 그런데 상자가 이렇게 큰 이유가 뭘까?”

“그야…….”

청화는 답하지 못했다.

그때 한빈이 유골 쪽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

그 모습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유골로 손을 뻗었다.

쩍!

한빈은 유골의 머리를 떼 내었다.

“앗, 공자님.”

“쉿.”

한빈이 돌아보며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방해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설화와 청화가 자리에 멈췄다.

하지만, 청화는 한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함정을 만들어 놨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해 안배를 내려 준 선조였다.

아무리 유골이라지만, 저렇게 머리를 떼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해골을 몸에서 분리한 한빈이 조심스럽게 그것을 살폈다.

청화가 설화에게 속삭였다.

“언니, 공자님이 왜 저러시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 공자님이 좀 악랄한 면이 있어도 이유 없이 저러실 분이 아니잖아.”

“공자님이 악랄해요?”

“아, 미안, 내가 말이 헛나왔네. 악랄함 속에 따뜻함을 숨기고 계신 분이지.”

“아, 그것도 좀 이상한데요.”

“앗, 또 실수.”

설화는 재빨리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때 한빈이 해골을 나무 상자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나무 상자에 해골을 놓았다.

한빈은 다시 유골이 있는 쪽에 손을 뻗었다.

쩍!

이번에는 팔이었다.

한빈은 그렇게 가부좌를 틀고 있는 당만호의 유골을 하나씩 상자에 넣었다.

뒤쪽에 있던 설화도 가까이 와서 상자를 확인했다.

“헉.”

설화가 입을 벌렸다.

비급이 들어 있던 나무 상자에 유골을 넣자, 원래 유골이 있던 자리인 것처럼 딱 맞았기 때문이다.

한빈이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비급을 보관하는 상자가 아니라 관이었다. 아마 당만호 어르신은 후손 중 누군가가 와서 자신의 마지막을 수습해 주길 원한 것 같다. 다만…….”

“다만이라니 또 뭐예요?”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시신을 수습하겠어? 마지막까지 함정이네, 함정.”

“함정이라니요?”

“시신을 수습 안 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이곳은 무너질 거야.”

“앗,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설화가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철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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