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297화 (297/621)

297. 사천당가의 사정 (3)

한빈도 이 독을 언젠가 본 적이 없었다면 전혀 가늠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빈이 이번과 똑같은 극독을 마주했을 당시에는, 해독약이 없어 단 한 방울의 독으로 정의맹 무사 세 명이 비명횡사했었다.

거기에 더해 범인이 누군지도 찾지 못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극독이긴 해도 바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점점 갈수록 그 위력을 더해 가는 독.

중독된 사람의 내공까지 빨아들여 독기를 키우는 독.

하나 독의 이름도 모르지만, 지금은 공독지체를 가진 청화가 있었으니 반은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한빈도 만독지체로 향해서 나가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가주의 몸에서 독기를 몰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청화가 주된 치료 도구고, 한빈 자신은 보조 도구였다.

한빈은 청화를 바라봤다.

“청화야, 이 할아버지를 진맥할 수 있겠느냐?”

“네, 공자님.”

그녀의 대답에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가주의 상태는 썩어 가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만큼 피부의 상태가 괴상했다.

만지면 전염병이라도 걸릴 것처럼 공포감을 주는 시퍼런 피부를 보고도 청화는 아무렇지 않게 손목을 꼭 잡았다.

진맥이라기보다는 마치 가족의 손을 잡듯이 말이다.

순간 가주 당무천의 손끝이 꿈틀했다.

이 방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 반응한 것이다.

그때였다.

밖에서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삐-익!

그 소리에 당기명이 말했다.

“아무래도 쓰러진 당기수를 보고 사람들이 오해한 모양입니다. 제가 나가서 해명하겠습니다.”

“네, 저희는 치료에 집중하겠습니다.”

한빈이 고개를 끄덕이자 당기명은 재빨리 처소를 빠져나갔다.

그가 나가자 한빈은 설화를 바라봤다.

“설화야. 숨어서 지켜봐라. 그리고 우릴 공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일검에 베라.”

“네, 그럴게요.”

설화는 해맑게 웃으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한편 당무천은 갑자기 들어온 한빈 일행에 기겁했다.

그들의 목소리를 가주 당무천은 똑똑히 듣고 있었다.

그는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못할 뿐, 극독을 몰아내기 위해 끝없이 내기를 운용 중이었다.

지금은 그 내공마저 바닥난 상태.

자신이 묶어 두고 있는 독이 언제 몸을 비집고 나갈지 몰랐다.

그렇다면 사천당가도 끝이었다.

독에 대한 지식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자신이 있는 당무천이었다. 하지만, 이 독은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성질을 가진 독인 줄 알았다.

처음에 느꼈던 것은 천산에서 느낄 수 있는 극양지기였다. 극양지기를 품은 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할 때 그 안에서 극음지기를 품은 독이 나왔다.

극음지기의 독이 해일처럼 몰려들자 당무천은 그 두 개의 독을 내공으로 감쌌다.

그런데 그 독은 당무천의 내부에서 태극처럼 서로의 꼬리를 물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당무천은 여기에서 공독지체 혹은 만독지체로 가는 실마리를 얻으려 폐관 수련을 택했다.

사람들이 당무천을 발견했을 때는 폐관 수련실에서 정신을 잃고 난 후였다.

물론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이 독을 통제하기 위해 끝없이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이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체 모를 독은 자신의 내공을 흡수해서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으니까.

당무천은 자신을 구하기보다는 빨리 이곳을 피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완맥을 잡았다.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 이곳에는 당씨 성을 가진 자는 모두 나가 있었다.

이곳에 있는 자는 의원과 의녀 둘.

그런데 의녀가 완맥을 잡았는데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것은 분명히 당가의 기운이었다.

다른 사람은 못 느낄 테지만, 분명 이것은 당가의 기운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벌모세수를 해 준 아이 중 하나였다.

자신이 벌모세수를 해 줬던 아이는 모두 손자와 손녀였다.

남장을 하고 다니는 당기명이 밖으로 나갔으니 자신이 당가에서 벌모세수를 해 준 여아는 이 자리에 없어야 했다.

그렇다면?

설마?

당무천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오래전 잃어버린 당기명의 동생일 수도 있었다.

아니, 지금 이 조건에 맞는 아이는 당가에서 잃어버린 그 아이가 맞았다.

‘여길 피해라. 잘못하면 너도 죽는다!’

당무천은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몸속에서 자신의 내공을 좀먹고 있는 독 중 일부가 완맥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 들어갔다.

‘조심해라, 세화야!’

세화는 잃어버렸던 손녀의 이름. 당무천은 지금 확신하고 있었다.

사실 사천당가에서는 잃어버린 손녀를 찾아 주는 자가 있다면 가문 재산의 사분지 일을 주겠다고 현상금까지 내건 상태였다.

그런데도 잃어버린 손녀의 그림자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찾아 헤맨 손녀를 지금에서야 만난 것이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니!

자신이 아니라 손녀가 먼저 죽게 생겼다. 그것도 당무천 자신으로 인해 말이다.

얼마나 얄궂은 운명이던가!

당무천은 혼신의 힘을 다해 손녀를 향해 달려가는 독 기운을 막았다.

하지만, 독 기운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다.

순간 당무천의 몸이 움직였다.

꿈틀!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지켜보면 되었다.

공독지체란 모든 독을 흡수할 수 있는 하늘이 내린 신체.

몸에 받아들인 독을 자유롭게 쓸 수도 있고 다시 거둬들일 수도 있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이 독을 흡수할 수 있다면 청화의 몸도 완벽해질 것이었다.

조금은 부족한 듯한 행동도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공독지체 때문.

이번 과정만 무사히 넘긴다면 환골탈태를 한 것이라 봐도 되었다.

청화를 지켜보던 한빈의 눈썹이 꿈틀했다.

드디어 치료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당무천의 완맥에서 검은 땀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온 검은 땀은 살짝 스친 것만으로도 당무천의 의복을 태웠다.

치치직.

그것도 잠시, 청화의 손바닥으로 천천히 흘러들어 갔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완맥 근처의 핏줄이 지렁이처럼 꿈틀대기 시작했다.

동시에 청화가 독기를 빨아들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배.

그리고 네 배.

계속해서 독의 흐름이 빨라졌다.

청화가 견딜 수 있을까?

지금 상태가 계속된다면 과유불급이란 단어가 딱 들어맞을 상황이 올 것이었다.

한빈은 재빨리 손바닥을 청화의 등 뒤에 갖다 댔다.

그 순간 밖에서 소란이 들리기 시작했다.

“문을 열어라!”

“안 됩니다!”

* * *

당기명은 검집을 들고 사람들을 막아섰다.

보고가 잘못되었는지 사천당가의 소가주를 비롯한 모든 고수가 당기명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

그중 가주의 둘째 아들 당광민은 조카인 당기명을 매섭게 노려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사안이 다급해서 부득이하게 점혈을 했습니다.”

당기명의 답에 당광민은 자신의 아들 당기수의 혈도를 풀었다.

혈도가 풀린 당기수가 소리쳤다.

“할아버님이 위험합니다! 지금 처소로 들어간 자는 하북팽가의 막내 공자입니다.”

“하북팽가의 막내 공자라?”

모두의 시선이 당기명에게 몰렸다.

그 시선을 담담히 받아 낸 당기명이 말했다.

“네, 하북팽가의 막내 공자가 맞습니다. 그가 천수장의 장주이면서 강북의 생불이라 불리는 의원입니다.”

“대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당기수가 눈을 부라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치자 당기명이 말했다.

“일단 기다려 주시죠. 저를 믿는다면요.”

“못 믿는다. 나는 할아버님을 확인해야겠다.”

“저를 베고 가시지요.”

“내가 그리 못 할 줄 아느냐?”

당기수가 검집에서 검을 빼내었다.

스릉.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당기명은 침착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럼 베어 보시지요.”

“그럼 날 원망하지 말아라.”

당기수는 아무렇지 않게 검을 내려 그었다.

스윽.

그때 누군가가 손이 날아와 그의 검을 막았다.

탁.

손가락 두 개로 당기수의 검을 막아 낸 사람은 당기명의 아버지이자 가주 대행의 역할을 하고 있는 당광현이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처소 앞에 서 있던 인원은 둘로 나뉘었다.

원로들이 지지하는 둘째 쪽과 가주 대행인 당광현 쪽으로.

일촉즉발의 순간.

당광민 쪽의 무사 하나가 가주의 방문을 열었다.

스르륵.

방문이 열리자 모두는 눈을 크게 떴다.

어떤 소녀가 당무천의 완맥을 쥐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 소녀의 상태였다.

그 소녀의 몸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만약 지금 저 소녀의 피부에 송곳이라도 닿는다면, 소녀의 몸은 뻥 터질 것만 같았다.

마치 몸을 부풀린 복어와도 같은 모습.

그 뒤에는 의원이라 밝힌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장심을 소녀의 등에 얹고 있었다.

소녀의 몸은 부풀어 놀랐다가 줄어들고 다시 부풀어 오르고 하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누가 봐도 위험한 상태.

그 모습을 본 당기수는 모두가 멍해 있는 틈을 타 처소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때였다.

당기수의 목 앞에 단검 하나가 스윽 들어왔다.

누구도 그 단검의 기척을 느낀 이는 없었다.

거기에 더해 살기도 없었다.

마치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아무렇지도 검을 쓴 것이다.

사천당가의 무사 중 누군가가 외쳤다.

“고수다!”

“아니에요.”

“정체가 뭐냐?”

“저는 시녀예요. 그리고 좀 조용히 해 주세요.”

“지금 무슨 소리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화의 좌혈랑검이 당기수의 목덜미 쪽에 가까워졌다.

“공자님이 여기 들어오는 자가 있으면 모두 베라 하셨어요.”

아무렇지 않게 뱉어 내는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당광민은 당기수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냈다.

순간 당광민이 눈매를 좁혔다.

안에서 느껴지는 독기 때문이었다.

당가의 하급 무사들은 당장 죽어 나갈 지독한 독기였다.

그런데 처소 안에 있는 세 명은 아무렇지도 않게 숨을 쉬고 있는 것이었다.

독공의 고수가 분명했다.

믿어야 할까?

아니면 치료를 중지시켜야 할까?

그때 그의 형인 당광현이 나지막이 외쳤다.

“사천당문은 사천당문을 믿는다! 이게 조사의 유다. 나는 기명이를 믿는다. 내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사천당가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말에 모두가 숨을 멈췄다.

가주로서의 위엄이 서려 있는 한마디였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대대로 내려오는 유지라는 점이었다.

* * *

청화의 몸이 부풀어 오른 이유는 간단했다.

당무천의 몸에 있는 독이 끊임없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한빈이 넘치는 독 기운을 받아 내었다.

[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습니다. 만독지체에 한 걸음 다가섰습니다.]

[……]

[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습니다. 만독지체에 한 걸음 다가섰습니다.]

같은 문구가 눈앞에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독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는 숫자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독(毒) : 삼십오(三十五)]

[……]

[독(毒) : 삼십구(三十九)]

계속 들어오는 독 기운에, 한빈도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얼마인지 확인했다.

그때였다.

다시 문구가 나타났다.

[독에 대한 이해도를 더는 높일 수 없습니다.]

그때 청화의 몸이 이제까지보다 더 부풀어 올랐다.

독 기운이 마지막 발악을 하듯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힐끔 가주 당무천을 보니 썩어 들어간 것 같은 피부는 본래의 색을 찾았다.

그렇다면?

지금 청화의 몸을 잠식하고 있는 독이 전부라는 말이었다.

한빈은 예전에 청화를 구했던 수법을 다시 한번 쓰기로 했다.

‘기사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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