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295화 (295/621)
  • 295. 사천당가의 사정 (1)

    어떤 이는 마른침까지 삼키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무소율이 허탈한 표정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이전에 모닥불을 피워 둔 흔적이 있는 곳이었다.

    모닥불 쪽에는 뭔가 흙이 덮여 있었다.

    “이게 좀 말하기 그런데······.”

    “말씀해 보시죠.”

    “아까 어떤 상인이 주고 간 고기를 굽고 있는데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달려오더라고요. 그런데 어찌나 다급히 지나가는지 저희가 굽고 있던 고기가 저렇게 못 먹을 정도로 흙에 덮였습니다.”

    “······.”

    “물론 고의는 아니겠지만요.”

    “그래서요?”

    “그래서 불러 세웠더니 다짜고짜 남궁세가의 행사를 방해한다면서 덤벼들지 뭐예요?”

    무소율은 검지로 남궁세가의 무리 중 하나를 가리켰다.

    그는 남궁세가의 무리 중 수장이라 밝힌 자였다.

    그의 이름은 남궁무진이었다. 그는 자신을 남궁세가의 둘째 공자라 밝혔다.

    “죄송합니다. 너무 급한 사안이라 무림 동도들에게 양해를 구할 틈이 없었습니다.”

    “뭐, 우리가 실력이 없었다면 똑같이 죽었겠지요.”

    “흠.”

    남궁무진이 헛기침을 토하며 시선을 돌리자 무소율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동등하게 맞서고 있는데 조금 묘한 일이 일어났어요.”

    “네, 그건 무 소저 말씀이 맞습니다.”

    남궁무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저희 가문의 검진과 무씨검가의 검진이 충돌하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두 고수가 내공을 겨루듯 검진의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그때는 저희도 그만두려고 발을 빼려고도 해 봤습니다. 그런데 그게 제대로······.”

    남궁무진이 살짝 말끝을 흐리자 무소율이 설명을 이었다.

    “조금 전 상황은 둘 중 한 무리의 기운이 떨어져야 끝나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도움을 받은 것이죠.”

    무소율을 한빈을 바라봤다.

    남궁무진도 한빈을 향해 조용히 포권했다.

    한빈은 손을 내저었다.

    “저는 한 것이 없습니다. 여기 있는 악 공자가 목숨을 걸고 먼저 뛰어들었을 뿐입니다. 거기에 마지막에 제가 충돌하는 두 기운을 나누어 받아 세 개의 기운이 되었지요. 그때 그 기운을 와해시킨 것이 악 공자입니다. 저는 중간에 거들기만 했지 큰 역할은 하지 못했죠.”

    한빈의 말에 무소율이 포권했다.

    “악 공자님의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악 공자님께 감사드리는 바요.”

    남궁무진도 깊숙이 포권했다.

    뭐,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악비광이 목숨을 건 것은 맞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은 남궁세가에게 주목을 받으면 안 되는 상황.

    일단 악비광을 내세우는 것이 맞았다.

    갑자기 두 가문의 대표가 예를 차리자 악비광은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이용하라는 신호였다.

    대충 상황이 수습되자 한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저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먹는 데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한빈이 가리킨 곳은 흙에 덮인 고기가 있는 곳이었다.

    “죄송합니다. 어쩌다 보니······.”

    남궁무진이 변명하듯 말하자 한빈이 단번에 그 말을 끊었다.

    “그리고 음식에는 재를 뿌리지 않은 법이죠.”

    “그건 저희의 실수입니다.”

    그가 깊숙이 포권하자 뒤쪽에서 여자아이의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그런 짓은 용서 못 해요.”

    “맞아. 어떻게 남의 간식에다가 재를 뿌리고 가요?”

    “재가 아니라 흙이었다 청화야.”

    둘은 아까 간식을 졸지에 못 먹게 된 설화와 청화였다.

    둘의 목소리에 남궁무진이 손을 내저었다.

    “미안하오. 그건 내가 보상하리다.”

    말을 마친 남궁무진은 품 안에서 전낭을 통째로 꺼내 놓았다.

    그 전낭은 순식간에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사사-삭.

    설화가 어느새 낚아챈 것이다.

    그 모습에 남궁무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저분은 어느 문파의 분입니까?”

    남궁무진의 말에 서재오가 헛기침을 시작으로 답했다.

    “흠, 저 아이는 여기 있는 하북팽가 사 공자의 시녀입니다.”

    “시, 시녀라고요?”

    남궁무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설화를 바라봤다.

    설화는 신이 난 아이처럼 남궁무진이 준 전낭의 돈을 품에 넣고 청화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허허, 이것 참. 강호에는 기인이사가 셀 수 없다더니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군요.”

    그의 말에 앞으로의 간식거리를 살 계획을 세우던 설화가 고개를 돌렸다.

    “개구리는 저희예요. 가만히 있다가 남궁 공자님이 던진 돌에 맞았잖아요.”

    “하하.”

    남궁무진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임무도 잊은 채 한빈 일행의 대화에 녹아들었다.

    그 후 시답지 않은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남궁무진의 입술은 계속 달싹였다.

    아까부터 무엇인가 말하려는 듯 계속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물었다.

    “할 말이 있는 모양인데, 말씀해 보시지요.”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는지······.”

    남궁무진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끝을 흐렸다.

    한빈이 사람 좋은 얼굴로 말했다.

    “이건 같은 십대세가이니 말씀드리는 겁니다.”

    “네, 말씀해 보시죠.”

    “저희 가문에 불순한 세력이 끼어들었습니다. 가문을 분열시키려는 계책이 실패하자 지금 도주 중입니다. 그러니······.”

    그는 가문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어차피 정의맹을 통해서 도움을 청할 내용이니 조금 먼저 밝히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내용은 간단했다.

    대공자인 남궁무정이 세외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남궁무진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가 이야기하는 동안 흔들림은 없었다.

    거짓은 아니라는 이야기.

    거짓말을 할 때면 인체는 외부에 신호를 전달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눈치였다.

    거짓말이 잘 통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자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확인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남궁무진에게는 그런 행동이 없었다.

    최소 남궁무진은 자신의 이야기를 사실로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령산을 기점으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악비광과 무소율은 왔던 길로 돌아갔다.

    물론 한빈의 부탁 때문이었다.

    서재오는 조용히 어디론가 말없이 사라졌다.

    남궁무진도 대공자의 흔적을 뒤쫓기 위해 길을 떠났다.

    이제 남은 것은 한빈 일행과 사천당가의 일행밖에 남지 않았다.

    미령산을 넘어선 그들은 속도를 높였다.

    당기명의 호위인 휘가 가주가 위독하다는 서신을 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당기명은 가장 앞에서 행렬을 지휘했다.

    한빈은 마차에서 조용히 멀어지는 미령산을 바라봤다.

    물론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산이 아닌 비급이었다.

    [지급(地級) - 만(滿)]

    완성해야 할 지급 초식이 하나가 더 남은 상태.

    한빈은 저 초식을 완성하면 상위 단계의 초식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떠올렸다.

    * * *

    사천당가의 주변은 요즘 들어 더욱 북적거렸다.

    사천당가에서 천하십대세가를 중심으로 한 무림세가 모임인 무가지회가 개최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사천당가의 문을 들락날락하며 물자를 운송하고 있으며 세가 안쪽에서는 새로운 전각을 올리고 있었다.

    사천당가의 사정도 정신없지만, 이번에는 나라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수로 사업이 시행되고 있어 주변은 더욱 혼잡했다.

    사천당가와 저잣거리를 가로지르는 관도 주변은 수로 개선 사업 때문에 혼란 그 자체였다.

    위쪽의 수로로 그렇지만, 관도에 깔린 돌 밑에서 작업하는 인부들은 마치 두더지라도 된 것처럼 계속 땅을 파 나가고 있었다.

    그들을 관리하는 관리는 사천에서 나온 관리가 아니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였다.

    붉은색과 청색이 조합된 복장에 관모까지 쓴 관리는 연신 입맛을 다셨다.

    지금의 상황이 적응이 안 되어서였다.

    그는 다름 아닌 금의위의 강유찬이었다.

    한빈은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은밀히 진행해야 할 일이었기에 그가 직접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하는 일은 황실과 한빈 그리고 자신만이 아는 일이었다.

    이 일에 투입된 인부들도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한빈이 시킨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일이 투입된 인부는 다름 아닌 심미호와 적혈맹호대였다.

    처음에는 이들이 어떻게 광부들도 힘들어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지금은 그저 입을 벌리며 그들의 작업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강유찬은 적혈맹호대가 전생에 두더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그들의 작업은 빠르고 정확했다.

    지금도 심미호가 그들을 독려하듯 외친다.

    “자, 조금만 더 하면 오늘 일과는 끝이다. 다들 힘을 내라!”

    말을 마친 심미호도 곡괭이를 들고 앞쪽의 장애물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심미호가 든 곡괭이에는 누가 봐도 뚜렷한 푸른 기운이 맺혀 있었다.

    검기나 도기는 봤어도 곡괭이에 진기가 맺히는 것은 본 적이 없는 강유찬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그는 금의위의 훈련 계획에 땅굴 파는 훈련을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그때 심미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은 그만! 오늘의 작업은 이것으로 끝이다.”

    심미호의 외침에 모두는 조용히 곡괭이를 내려놨다.

    그러고는 강유찬의 앞에 모였다.

    그의 앞에 다가온 심미호가 밝은 모습으로 물었다.

    “대인, 오늘 할 일은 다 끝났어요. 조금 더 일할까요?”

    “아니네, 아직 일정이 많이 남아 있으니 무리할 필요는 없네.”

    “무리할 것도 없습니다. 전에 일하던 환경에 비하면 뭐, 이곳은 극락이에요.”

    심미호는 싱긋 웃었다.

    덕지덕지 얼굴에 붙은 진흙 사이에 피어나는 한 떨기 미소.

    강유찬은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그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심미호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수하들을 이끌고 관에서 마련해 준 처소로 돌아갔다.

    심미호가 이곳이 극락이라고 한 것은 진심이었다.

    그녀는 황보세가와 태청산 사이에 난 비밀 통로를 뚫기 위해 그야말로 생사를 오가는 작업을 했었다.

    벽곡단으로 끼니를 때우며 공기가 부족해서 죽을 뻔한 적도 몇 번이 있었다.

    덕분에 곡괭이에 진기를 싣는 법도 깨달았었다.

    지금은 그 깨달음은 나머지 적혈맹호대의 대원들에게 나눠 주고 있었다.

    이제 나머지 대원도 희미하나마 곡괭이에 진기를 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모자란 감도 있었다.

    이 정도의 작업량으로는 곡괭이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심미호는 판단했다.

    “내일부터 작업량을 조금 더 올려야겠어.”

    심미호의 혼잣말에 앞서가던 적혈맹호대 대원들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 * *

    혼란스러운 주변 상황과는 달리 사천당가 가주의 처소는 조용하기만 했다.

    가주의 상황이 안정되어서가 아니었다.

    너무 불안한 나머지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마저 통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현 사천당가의 세력은 크게 둘로 나누어졌다.

    가주의 세력과 원로들의 세력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사천당가의 가주인 당무천이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당무천이라는 존재는 사천당가의 힘 중 반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사천당가의 권력을 원하는 거지 빈껍데기인 사천당가를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가주의 처소 앞에서 초조한 눈빛으로 새로 온 의원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의원이 나왔다.

    그 의원은 원로원의 지지를 받는 둘째의 아들인 당기수가 데려온 의원이었다.

    강남의 화타라 불리는 의원으로 그가 아니면 가주의 병환을 치료할 사람은 없다고 세가의 사람들은 생각하는 중이었다.

    모두는 의원의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강남의 화타라 불리는 의원은 그들의 시선에 움찔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이 병은 누가 와도 고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순간 모두의 눈빛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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