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291화 (291/621)

291. 오호단문도의 비밀 (5)

한빈을 지켜보던 사내.

그는 동창의 칠음현 지부 책임자였다.

그 옆에서 그를 호위하던 무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가 지켜보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요, 나으리.”

“아무래도 기감이 뛰어난 것 같구나.”

“대인의 눈에는 누가 고수로 보입니까?”

“역시 화산파의 고수는 다르구나. 우리가 있는 곳을 한 번에 보지 않았느냐? 그리고 악가의 무공도 놀랍다. 그도 우리를 눈치채니 아무렇지 않게 길을 재촉하는구나. 그런데 가장 무서운 자는 따로 있는 것 같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생각해 봐라. 이제까지 동창과 문관들은 대등한 균형을 이루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연등회의 피바람 속에 무사한 건 누구지?”

“…….”

“저쪽 파벌이 보았을 때 현령을 쳐 낸 건 아마…….”

“대인이 가장 유력하겠군요.”

“흠, 아마도……. 간악한 계략이다.”

“저자들에 대해서 조사할까요?”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할 것 같구나.”

동창의 사내는 말머리를 돌렸다.

휘잉.

말이 투레질하며 뒷산을 떠났다.

* * *

그날 밤, 영단산.

적룡무관의 연회장.

숙소에 짐을 풀고 식사 초대를 받은 팽혁빈 일행은 모두 입을 벌려야 했다.

팽혁빈 일행에게 나온 음식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하남에서 유명하다는 요리들이 긴 탁자에 가득 찼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환대에 팽혁빈이 젓가락을 들고 머뭇거리자 옆에 있던 홍칠개가 음식을 쓸어 담듯 자신의 그릇에 옮기며 말했다.

“사내대장부는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것이 아닐세.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저 할망구가 남 뒤통수칠 위인은 더욱 아니라는 거고. 그러니 맘껏 먹게나.”

홍칠개는 팽혁빈의 앞에 있는 음식을 가리켰다.

팽혁빈은 황당하다는 듯 홍칠개가 가리킨 음식 그릇을 바라봤다.

홍칠개가 팽혁빈의 앞에 있는 모든 그릇을 깡그리 비웠기 때문이다.

그때부터였다.

눈치를 보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게끔 빠르게 젓가락으로 음식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중 승자는 홍칠개였다.

홍칠개는 구걸십팔보를 펼치며 탁자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실로 놀라운 경공술이었다.

좁은 공간에서도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고 누구의 젓가락보다 더 빨리 음식을 쓸어 담았다.

다른 이들이 음식을 이제 겨우 먹으려고 할 때, 홍칠개는 전체 음식 중 반이 넘는 음식을 모조리 쓸어 담아 목구멍으로 넘긴 후였다.

그러고는 젓가락을 놓았다.

탁.

“아무래도 내 너무 무리한 것 같군. 이제는 그만 먹어야겠어. 남은 음식은 자네들끼리 먹어야겠네. 어서 들게.”

홍칠개는 빈 접시를 가리키며 엷게 웃었다.

나머지 인물들도 홍칠개를 따라 먹기는 했지만, 양을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황보만청이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쩝. 구걸십팔보를 왜 여기에 써먹는다는 말입니까? 너무합니다.”

“허, 먹는 데는 개방을 못 따라가겠습니다.”

악소천도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아쉽게 빈 접시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청아한 향기가 풍겨 왔다.

일행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일꾼들이 양손에 접시를 들고 그들을 향해 오고 있었다.

만찬의 시작은 지금부터였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비교할 수 없는 요리들이 줄을 이었다.

해육연화(海肉蓮花)의 경우, 영단산 위에서 구하기 힘든 바닷가재 요리로, 가재의 껍질을 연꽃처럼 장식하고 안에는 살을 넣어 찐 요리였다.

거기에 사천의 요리인 매채구육(梅菜拘肉)이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었다.

매채구육은 돼지고기의 삼겹살을 이용한 요리지만, 매콤한 양념은 사천에서 직접 가져온 특산품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홍칠개는 젓가락을 들어다 놨다를 반복했다.

먹고는 싶었지만, 배가 가득 찬 것이다.

그 모습에 황보만청이 말했다.

“내공으로 술기운은 몰아낼 수 있어도 소화까지 빨리 시킬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 말에 홍칠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울상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젓가락을 들지 않고 있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팽혁빈이었다.

홍칠개는 팽혁빈에게 말했다.

“왜 그러나?”

뭔가 생각하다가 깨어난 팽혁빈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혹시 오호단문도 때문에 그러는가?”

“뭐, 그렇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뭔지 감도 잡히지 않는군요.”

팽혁빈의 자신의 품을 가리켰다.

그곳을 본 홍칠개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지 한번 볼 수 있겠는가?”

“음.”

팽혁빈은 작게 침음을 흘렸다.

오호단문도라면 가문의 비급.

그런데 이게 오호단문도일 확률은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한빈의 사부.

한빈에게 무공을 전수한 사부라고 생각하면 혼원벽력도도 아니고 오호단문도 정도는 보여 줄 수 있는 일이었다.

거기에 자문을 구하는 일이었다.

이게 한빈의 말대로 혼원벽력도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줄 오호단문다라면?

반드시 무가지회에 도착하기 전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번 무가지회에서는 십대세가 간의 이권이 비무로 정해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팽혁빈은 한빈의 말이 사실이길 빌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게 비급일 가능성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팽혁빈이 품속에서 한빈이 전한 서찰을 꺼냈다.

“그럼 어르신, 한번 봐 주십시오.”

“내 비밀은 꼭 지키겠네, 그럼 한번 보겠네.”

홍칠개는 서찰을 한 장 한 장 꼼꼼히 봤다.

한참을 보던 홍칠개는 조용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자신의 제자 한빈이 비범한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비범의 정도를 넘어서 아예 단서조차 잡을 수 없게 만들어 놨다.

강호 물을 장강의 반 정도는 들이켰다 자부하는 홍칠개였다.

하지만, 이런 암어는 본 적이 없었다.

“험.”

홍칠개의 헛기침에 팽혁빈이 물었다.

“어찌 된 일입니까?”

“모르겠네, 모르겠어. 진짜 고얀 놈이네.”

“어르신도 못 알아보시는군요.”

“그놈은 묘하게 사람 고생시키는 재주가 있어.”

그때였다.

식사를 마친 다른 고수들도 끼어들었다.

“저희도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저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황보만청과 악소천도 차례대로 고개를 내밀었다.

팽혁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홍칠개가 못 풀었다고 한다면 누구도 풀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개방이 어떤 집단이던가?

중원의 정보가 모두 모이는 천하제일의 방파였다.

모든 정보를 거지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할까?

개방은 자신들의 암어 체계를 갖추고 특급 정보에 대해서는 별도로 관리하는 집단이었다.

원로인 홍칠개라면 중원의 모든 암어를 알고 있는 자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홍칠개가 모른다?

이건 해석할 수 없다고 보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이어 한숨이 튀어나왔다.

“휴, 나는 포기일세.”

악소천이 먼저 두 손을 들었다.

이어서 황보만청도 속이 울렁거리는지 가슴을 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모르겠네. 바둑에 있어서는 스무 수 앞을 내다보는 나지만, 이건 한 글자도 못 알아보겠네.”

모두가 넋이 나간 가운데 뒤쪽에서 바라보던 광개도 고개를 흔들었다.

“저건 팽가 놈이 장난친 게 분명합니다.”

“장난인지 진짜인지는 몰라도 모용세가나 제갈세가의 수뇌가 와도 못 풀 게 분명하구나.”

황보만청이 광개의 말을 받았다.

그 옆에 있던 이무명도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게 암어가 맞긴 맞습니까?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됩니다. 대체 주군은 왜 이런 암어를 보내셔…….”

그때 악소천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우리 중에 시도조차 하지 않은 사람이 있지 않소?”

“그게 누군가?”

황보만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머지 사람도 주변을 둘러보며 그 사람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누구라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악소천이 말을 이었다.

“하북팽가의 집법당주요.”

“어, 그러고 보니…….”

황보만청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팽대위만은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팽대위는 술잔을 잡은 채 고개를 갸웃했다.

정신없이 술을 들이켜고 있었는데, 뭔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 것이다.

“다들 왜 그러십니까?”

“자네가 이걸 해석해 보게.”

황보만청이 탁자 위에 있는 서찰을 가리켰다.

팽대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했다.

“저는 암어를 해독하는 취미는 없습니다.”

말을 마친 팽대위는 술잔에 술을 부었다.

쪼르륵.

너무나 확고한 거절의 표시였다.

뭐, 팽대위도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한빈에게 오호단문도에 대해 듣긴 했었다.

그런데 자신이 암어를 어떻게 해석한단 말인가?

가문에서도 서류 하나 검토하는 데 반나절이 걸리던 그였다.

문서라면 ‘문’ 자만 들어도 치가 떨렸다.

그런데 암어를 해석하라고?

아마 저 서찰을 보고 나면 이제까지 먹은 좋은 음식을 다 토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문자에 대한 그의 울렁증은 심각했다.

그가 글자를 깨친 것도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이었다.

팽대위의 사정을 아는 팽혁빈이 다급히 나섰다.

“저희 숙부님은 문서를 극도로 싫어하십니다.”

“그래도 한 번은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나?”

황보만청이 끈질기게 재촉했다.

옆에서 보다 못한 악소천이 자신이 들고 있던 창을 바닥에 찍었다.

쿵!

난데없는 상황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그때 악소천이 말을 이었다.

“내 도저히 못 참겠네. 이걸 푸는 자가 있다면 내 애병인 현철창을 주겠네.”

“나도 내 구면검, 아니 이건 새로 맞춘 거니…….”

지지 않겠다고 받아치던 황보만청이 말끝을 흐렸다.

구면검은 한빈의 도움으로 얻은 설계도로 새로 맞춘 것이었다.

아직 손에 익지도 않았는데 가문의 비기가 섞인 검을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잠시 멈칫하던 황보만청이 전에 쓰던 애병을 떠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나는 내 애병인 한철검을 걸겠네.”

둘이 자신의 애병을 걸자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옆에 있던 광개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저는 뭘 걸깝죠? 어르신들.”

그의 말에 홍칠개가 광개의 뒤통수를 쳤다.

빡.

“왜 때리십니까? 어르신!”

“이놈아, 거지가 걸긴 뭘 걸어? 걸 게 있으면 그게 거지야?”

“너무하십니다.”

“그냥 동냥 그릇이나 걸어라, 이놈아.”

홍칠개가 황당하다는 듯 광개를 바라봤다.

광개가 씩 웃으며 자신의 동냥 그릇을 올려놨다.

탁.

그러고는 당당히 말했다.

“저는 동냥 그릇을 걸겠습니다.”

팽대위도 자신의 도를 올려놨다.

“해석은 못 해도 저도 애병을 걸지요.”

탁.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 사람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중에는 풀 수 있는 자가 없는 것이다.

그때 뒤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참가해도 되나? 호호.”

“할망구 왔구먼. 해석하고 싶으면 와서 뭘 걸든지.”

“이 늙은이, 한 번만 더 할망구라고 하면 반드시 검을…….”

“진정하고 일단 그 검부터 걸고 앉아.”

“그, 그럼 나도 일단 내 애병을 걸겠네.”

탁자 위에 검을 올려놓은 독고련이 서찰을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눈썹을 꿈틀댔다.

“이걸 해석하라고 보냈다고? 대체 누가…….”

“내 제자가 보내기는 했지만, 누구도 풀지 못해서 이렇게 내기가 붙은 거지.”

“내기의 승자는 없겠군.”

“딱 한 명만 빼고 다 풀어 봤지.”

“그 한 명이 누군가?”

독고련이 고개를 갸웃하자 모두의 시선이 다시 팽대위에게 모였다.

그때 팽혁빈이 재빨리 팽대위를 가렸다.

“그건 제 생각에 무리…….”

중간에서 말리던 팽혁빈이 눈을 크게 떴다.

팽대위가 서찰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서찰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 팽대위가 말했다.

“다들 비켜 보시죠.”

“진짜 보시려고 그러시는 건…….”

“대충 보고 못 풀겠다고 하면 더는 괴롭히지 않을 것이 아니냐?”

팽대위의 말에 모두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자신도 못 풀었는데 팽대위가 포기한다고 해서 다그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물러나자 팽대위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팽대위는 성의 없이 서찰을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남들처럼 서찰에 집중하지도 않았고 귀찮다는 듯 서찰을 휙휙 넘겼다.

노고수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성의가 없구먼.”

“그러게 말이야. 해독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저게 대체 뭔가?”

“에이, 바랄 걸 바라야지. 우리도 못 풀었는데 팽가의 집법당주가 어떻게 풀어?”

그때였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서찰을 끝까지 넘긴 팽대위가 서찰을 반대로 다시 넘기기 시작한 것이다.

휙. 휙.

그 속도로 봐서는 글자도 보지 않고 넘기는 것이 분명했다.

그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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