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290화 (290/621)

290. 오호단문도의 비밀 (4)

적룡무관.

처음에 대들보를 올릴 때는 다른 이름이었지만, 최근에 완공하고 나서는 적룡대협이라는 영웅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바꾸었다고 들었다.

사파는 이렇게 대놓고 적룡대협의 명성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무가지회에 가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그 중심에 바로 적룡무관이 있었다.

게다가 여기는 사파의 성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여기로 자신들을 이끌었다는 말인가?

팽혁빈은 저 노파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했다.

이전에 했던 말들도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고 하는 행동도 그랬다.

그렇다면 홍칠개도 정신이 온전하지 않을 수 있었다.

원래 정신 나간 사람들끼리는 통하는 데가 있는 법이 아니던가!

팽혁빈이 멍하니 현판과 홍칠개 그리고 독고련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홍칠개는 현판을 보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팽혁빈이 황급히 홍칠개의 소매를 잡았다.

“어르신, 여기는 사파의…….”

팽혁빈은 말을 맺지 못했다. 옆에 바싹 다가온 독고련 때문이었다.

독고련이 활짝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잘 아는군?”

“…….”

갑작스럽게 독고련이 끼어들자 팽혁빈은 모든 동작을 멈췄다.

그 모습에 독고련이 물었다.

“왜 그러는가?”

“아니,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여기가 적룡무관이라는 걸 알고 끌고 오신 겁니까? 여긴 사파제일을…….”

팽혁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독고련이 손뼉을 치며 외쳤다.

짝짝.

“적룡무관에 온 것을 환영하네!”

그 소리에 맞춰 적룡무관의 입구에서 사파의 무사들이 도열하기 시작했다.

마치 귀빈에 대한 예우를 갖춘다는 듯.

사파의 무사들은 두 줄로 오십 걸음이나 되는 거리를 쫙 늘어섰다.

상대방의 기를 죽이려는 건지?

귀빈에 대한 배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위세만큼은 위풍당당했으며 그 자세 또한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모습에 팽혁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르신은 대체 적룡무관과 무슨 관계이길래…….”

팽혁빈은 고개를 돌려 현판을 다시 바라봤다.

그 모습에 독고련이 짓궂게 웃었다.

“그건 비밀이네.”

“비밀이라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야. 지난번에 먼저 지나간 고얀 놈이 뭐만 물어보면 비밀이라고 하더군. 이제 나도 복수했으니 퉁친 걸로 하세.”

“먼저 지나간 놈이라니 혹시…….”

말끝을 흐렸다.

상대가 말하는 자는 한빈일 가능성이 컸다.

처음에는 막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영단산에서 내려왔을 때 안색이 좋았다는 광개의 이야기가 기억났다.

팽혁빈이 독고련에게 물었다.

“어르신의 존성대명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허, 자꾸 비밀을 물어보면…….”

독고련은 말을 멈췄다. 뒤쪽에서 따오던 홍칠개를 중심으로 소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제법 큰 목소리로 노고수들이 웅성대고 있자, 독고련은 그쪽을 조용히 바라봤다.

물론 팽혁빈도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홍칠개를 가운데 두고 황보만청과 악소천이 쉴 틈 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악소천이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그게 진짜입니까?”

“그럼, 그러니까 여기로 온 거지, 왜 여기로 왔겠나?”

홍칠개가 현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때 황보만청이 끼어들었다.

“저분이 사파제일검 독고련 선배시라고요?”

“사파제일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독고련은 맞네.”

“그런 사도련주의 누님이 아닙니까?”

“그런가?”

“그렇죠. 저도 소문으로만 들었지. 이렇게 뵙는 것은 처음입니다.”

“뭐, 강호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수련에만 매진하길 어언 삼십 년이 지났다고 들었습니다. 사파인이지만 사파가 아니요, 강호인이지만 강호인이 아니라 들었습니다.”

“이제 그만하게. 다 듣겠어.”

홍칠개는 흥분한 황보만청을 진정시켰다.

사실 황보만청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파인이지만, 사파의 행사에 나서지 않아 사파인도 그녀의 존재를 모른다.

강호인이지만, 강호에는 얼굴도 비치지 않아 독고련은 잊힌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몇몇 고수들과 교류하기에 그녀가 사파제일검이라는 사실이 소문난 상태였다.

그 소문이라고 해 봤자 무림 백대고수에 한해서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사삭.

찬바람이 황보만청에게 불어왔다.

황보만청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독고련이 씩 웃고 있었다.

“왜 내 뒤통수에서 얘기를 하고 그래?”

“진짜 사파제일검이라 불리시는 독 선배님이시군요.”

“누가 자네 선배래?”

“사해는 동도라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자네 같은 후배를 둔 적 없어. 그리고 사파제일검도 아니야.”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파제일검이라 자부했었다.

하지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처럼 보이는 하북팽가의 막내를 상대하면서 그의 자부심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 승부에서는 자신이 우위였지만, 십 년 후, 아니 오 년만 지나도 승부의 향방은 바뀌리라는 것을 안 것이었다.

어찌 하북팽가에만 인재가 있겠는가?

구대문파를 비롯해 여러 정파, 그리고 사파의 숨은 인재들이 지금도 천하제일검에 한발 다가섰을지 몰랐다.

그녀는 자신이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다고 결론을 내렸다.

속세를 등지고 수련만 하느라 강호의 정세에 어두웠기 때문이라 생각한 것이다.

독고련의 표정이 심각해 보이자, 황보만청은 능글능글한 성격에 걸맞게 재빨리 수습에 나섰다.

“허허. 죄송합니다. 시간 나실 때 저와 얘기라도…….”

“이놈아, 난 연하한테는 취미 없어.”

독고련의 주름진 얼굴이 살짝 흔들렸다.

황보만청은 살짝 당황했다.

검만 무서운 줄 알았는데 독고련이라는 인물은 늙은 생강답게 혀도 화경에 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물러날 황보만청이 아니었다.

상대는 사파제일검.

비록 사파라 하지만, 꼭 한 번 검을 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황보만청은 독고련의 공세에 굴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독 선배님과 논검을 하고 싶어서…….”

슬쩍 눈치를 보던 황보만청은 말끝을 흐렸다.

독고련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화제를 잘못 돌린 것 같았다.

“내가 너랑 논검 할 정도로 한가한 줄 아나?”

독고련이 쏴붙이자, 옆에 있던 홍칠개가 다급히 말렸다.

“이 할망구가 성질은 여전하군. 술로 나를 유인해 놓고 뭐가 한가하지 않다는 거야? 우릴 여기로 데려왔으면 꿍꿍이도 있을 테고, 한가하니 이런 일도 벌이는 게 아닌가?”

“나는 하북팽가의 막내와 관계있는 사람을 접대하러 온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차 한 잔 나눌 시간도 없어. 그러니 늙은 거지도 그냥 조용하게 밥이나 먹다 가.”

“허허, 무슨 일로 나까지 대접하는 겐가?”

“그놈 사부라면서?”

“그러고 보니 우리가 아니라 내 제자 때문에 이런 정성을 쏟는 것이라는 거야?”

“당연하지. 그놈 아니면 산에 오르다 입이 돌아가든 말든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안 그래?”

“흠, 어쨌든 대접은 감사히 받지. 그런데 어쩌나……?”

홍칠개는 뒤쪽을 힐끔 바라봤다.

그 모습에 독고련이 물었다.

“뭘 그렇게 봐? 어서 들어가지 않고?”

“저 친구들도 내 제자랑 조금 관계가 있어서 그러지. 내 제자 때문에 대접하는 거라면서?”

“흠, 대체 무슨 관계인데 그러지?”

“저 친구는 내 제자와 긴밀한 계약을 한 사이고…….”

홍칠개가 가리킨 사람은 황보만청이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벌써 계약서에 의해 돈독한 관계로 맺어진 사이니 말이다.

홍칠개가 말을 이었다.

“저 친구는 아들이 내 제자랑 의형제라고 했던 것 같고.”

이번에는 악소천을 가리켰다. 악비광이 한빈과 본의 아니게 의형제를 맺었으니 이것도 사실이었다.

독고련은 둘을 번갈아 보더니 활짝 웃었다.

“그놈과 관계가 있다면 당연히 내가 모셔야지. 다들 들어오게!”

독고련이 안쪽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그 모습에 황보만청은 발걸음을 옮기며 옆을 힐끔 봤다.

악소천의 표정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악소천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황보만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소천과 자신은 화경의 고수.

화경의 고수끼리는 사파든 정파든 통하는 것이 있다.

하수들은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이권 다툼을 해도, 고수의 경우는 이권보다 무공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무공에 관한 이야기로 밤을 새우다가 중간에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서로 교분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기에, 고수들 간의 교분은 순간순간이 소중한 법이었다.

그런데 독고련은 자신과 악소천을 떨거지 취급하고 있었다.

게다가 홍칠개마저도 그 위치가 아닌 한빈의 스승이라는 이유로 대접받고 있었다.

황보만청은 마음속으로 바둑판을 그려 봤다.

그 위에 현재 상황에 대한 수를 놓아 봤지만, 어떤 식으로도 해석이 되지 않았다.

그때 홍칠개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웠다.

“황보만청, 거기서 뭐 하나? 빨리 들어가지 않고.”

“네, 들어가겠습니다.”

황보만청은 다시 한번 현판을 확인하고 문을 넘었다.

그때였다.

여기저기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귀빈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귀빈을 뵙습니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두 줄로 도열해 있던 사파의 무사들이 포권을 했다.

이것은 정파에서도 받지 못하던 대우.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이냐?

황보만청은 더욱 미궁에 빠졌다.

물론 정파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 한빈과 적룡대협이라는 영웅에 대한 예우라는 것을 황보만청이 알 도리는 없었다.

* * *

같은 시각 칠음현을 빠져나가는 마을의 어귀.

설화가 뭔가 기억난 듯 물었다.

“공자님, 전에 옛 성현의 눈으로 이 사건을 보라고 하셨잖아요.”

“흠, 내가 그랬던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한빈이 씩 웃자 설화가 다시 물었다.

“그때 옛 성현이 누구예요? 혹시 공자님? 아니면 맹자님?”

“내가 말한 옛 성현은 장자였다, 설화야.”

“장자라니요?”

한빈의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주변에 있던 청화와 당기명까지 옆으로 바싹 붙었다.

갑자기 모인 시선에도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장자가 사냥을 하기 위해 활을 들고 조릉을 거닐 때가 있었지.”

“그런데요?”

“어느 날, 이상할 정도로 커다란 까치가 장자를 스치더니 나무 위에 앉았다고 한다.”

“흠, 눈이 먼 까치였나 보네요.”

“장자도 똑같이 생각했지. 날개는 크면서 멀리 날지도 못하고 눈도 밝지 못하다고 말이야. 장자는 까치를 보고 활을 겨누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까치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관찰했단다.”

“그게 뭔데요?”

“그건 사마귀였지. 그 사마귀를 보니 그놈은 나무에 붙은 매미를 노리고 있었고. 장자는 문득 자신의 처지도 다를 바 없음을 깨닫고 활을 버리고 도망쳐 석 달을 꼼짝하지 않고 방에 있었다고 하지. 설화 너는 우리가 뭐라 생각하느냐? 장자? 아니면 까치?”

“음, 과연 뭘까요? 뭐가 됐든 상위 포식자가 있다는 거지요?”

“설화가 똑똑하구나. 뭐,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간단해.”

“…….”

“장자에게 잡힐 뻔한 까치도, 까치에게 잡힐 뻔한 사마귀도 되어서는 안 되지. 까치를 이용해서 사마귀를 잡는 매미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거지. 아니면 밤나무 숲의 주인을 이용해서 장자를 잡는 까치가 되든지.”

말을 마친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빙긋 웃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웃을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본다는 착각이 들었던 것이다.

한빈의 말은 그만큼 그들을 자극했다.

그중 서재오의 눈이 가장 빛났다.

그는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안광을 빛내다가 조용히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이 이번에 쓴 수는 무력이 아니었다.

잘 다듬어진 경극 배우의 연기와도 같은 혀로 모두를 몰입하게 만든 것이다.

한빈의 말대로 황실이라는 까치를 이용해서 사마귀를 몰아냈다.

가장 무서운 점은 언제까지 매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빈은 언제든 활을 든 사냥꾼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서재오는 조용히 칠음현을 바라봤다.

뭐, 저곳에 사냥꾼이 있을 것 같아서 지켜본 것은 아니었다.

칠음현 전체가 물고 물어뜯는 강호의 축소판 같아서 입맛을 쓰게 다셨던 것뿐이다.

그때 악비광이 외쳤다.

“다들 서두릅시다!”

그의 말에 모두는 주변을 경계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마을에서 멀어지자 말을 탄 비단옷의 사내가 입맛을 다셨다.

그 사내는 한빈 일행이 떠나는 것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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