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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87화 (287/621)

287. 오호단문도의 비밀 (1)

상념에 잠긴 현비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었다.

대형 폭죽이 터지며 밤하늘을 수놓았기 때문이다.

팡!

오색 불꽃이 난을 그리듯 포물선을 그리며 내려왔다.

하지만, 현비는 그 광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웅이라…….”

말끝을 흐린 현비는 조용히 강가를 바라봤다.

달빛을 받은 강물은 제법 세차게 굽이치고 있었다.

강호니 황궁이니 어찌 보면 저 강물과 같은 것 같았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혀도 언젠가는 계속 흘러가니 말이다.

* * *

음지에서 평생을 살아온 쌍둥이 자매가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금령과 은령이었다.

이 둘은 자신을 부리는 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자객으로 훈련받았으며, 임무를 수행해 왔다.

그녀들의 이름처럼 금령의 머리에는 금색 방울이, 은령의 머리에는 은색 방울이 달려 있었다.

그들은 변복을 해도 이 방울만큼은 바꾸지 않았었다.

방울을 다는 이유는 간단했다.

태어날 때부터 목에 걸려 있던 방울만이 자신들의 존재를 나타내 주는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방울에 대해서는 그녀들의 주인도 뭐라 한 적이 없었다.

그녀들이 내려온 임무를 실패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제껏 임무를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금령과 은령에게, 오늘 처음으로 위기가 찾아왔다.

금령은 의녀로 변복했으며 은령은 황궁의 시녀로 변복했었다.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황궁의 호위들도 그녀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청운사신이라는 자가 나타나더니 임무를 훼방 놓는 것도 모자라 그녀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은령이었다.

의녀로 변복했던 금령은 지금 새어 나오는 비명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은령은 청운사신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이를 부득 갈았다.

금령이 처음 의식을 잃은 것은, 단지 중독된 척하고서 귀식대법을 펼친 것뿐이었다.

삼절추혼독에 중독된 것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그런데 청운사신이라는 자가 은령의 언니 금령에게 이상한 약을 먹인 것이다.

덕분에 귀식대법도 풀리고 중독 현상도 풀렸다.

이러한 조치로 인해, 정체가 발각된 것이라 판단한 금령과 은령은 포위망을 풀고 재빨리 도망쳤다.

하지만, 포위망을 뚫고 얼마 안 가서 금령이 발작하기 시작했다.

몸을 배배 꼬더니 급기야는 흙바닥에 구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은령은 그제야 청운사신이 먹인 것이 극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일.

은령은 눈을 까뒤집고 괴로워하는 금령을 보고는 미칠 것만 같았다.

대협이라더니? 이건 사파나 마교의 마두도 찜 쪄 먹고 갈 악마였다.

은령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을 때였다.

눈앞에 백색 옷을 입은 여인이 있었다.

달밤에 혼자 있기에 다 큰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여자아이였다.

게다가 당과 꼬치까지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아이였기에, 은령은 바로 신경을 껐다.

그때였다.

“윽, 그냥 날 죽여 줘!”

금령의 비명이 숲에 울렸다.

은령은 재빨리 금령의 입을 막고 아무렇지 않게 여자아이를 지나치려 했다.

그때였다.

여자아이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뱉듯 말했다.

“참을 만한가?”

그 말에 은령이 눈매를 좁혔다.

분명 어린 소녀의 그 말은 언니와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은령이 금령을 내려놨다.

“언니 잠시만 참아, 이년 좀 손봐 주고 다시 부축할게.”

은령이 금령을 내려놓자마자 비명이 다시 숲속에 울렸다.

손에서 벗어난 금령이 다시 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뭔가 아는 것 같은 백색 의복의 소녀를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일단 백색 무복의 소녀를 제압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이 맞았다.

은령이 막 검을 빼어 들려던 때였다.

갑자기 흰색 암기가 은령의 눈앞으로 날아왔다.

은령은 검을 빼 들 시간이 없었다.

검집 그대로 들어 암기를 쳐 내려 했다.

검집이 흰색 암기를 쳐 내려던 바로 그 순간, 은령의 귓가에 목소리가 울렸다.

“왜 해약을 줘도 난리야.”

순간 은령은 아차 하며 검집을 내리고 소매로 암기를 받았다.

푹!

암기를 받은 은령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소녀의 말대로 암기가 아니라 호리병이었다.

간신히 검을 멈춘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을 때, 소매로 받은 호리병이 미끄러져 내렸다.

휙.

아래로 떨어지는 호리병을 본 은령을 재빨리 움직였다.

하지만 정신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지쳤기 때문일까?

은령의 손이 호리병이 떨어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바닥에 있는 돌부리에 호리병이 부딪히려고 할 때였다.

하얀 손이 호리병을 낚아챘다.

순간 은령은 석상이 되어 버렸다.

호리병을 들고 있는 것은 백의의 소녀. 그 소녀는 조금 전까지 세 걸음 넘게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런데 바로 코앞까지 와서 호리병을 낚아채다니!

문제는 자신의 코앞까지 오는 동안, 자신은 백의 소녀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만약에?

은령은 백의 소녀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자신의 목이 바닥에 뒹굴고 있을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은령은 황당함에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누구냐?”

“설화.”

“설화라고? 혹시 단체?”

“내 이름.”

설화는 짧게 답했다.

설화는 지금 한빈의 지시로 여기에 왔다. 뭐, 한빈이 이런 지시를 내린 이유는 간단했다.

적들이 어떻게 한빈을 찾아오게 만들 수 있을까?

해답은 간단했다.

그들에게 전언을 남기면 될 일이었다.

그 전언을 남기는 일을 맡은 것이 바로 설화였다.

설화는 덕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서재오가 비밀리에 운반해 오는 불상을 알려야 했으며, 금령과 은령이 포위망을 뚫고 나올 때 그들을 추격해야 했다.

설화의 짤막한 답에 은령이 다시 물었다.

“그 호리병은 뭐지?”

“해약.”

“해약이라니?”

“쟤가 먹을 해약.”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봐라.”

“네 말이 짧으니 자세히 말해 주는 건 불가능해.”

“흠.”

은령은 침음을 뱉으며 설화를 바라봤다.

상대의 말은 모두 맞았다. 자신의 말이 짧은 것도 맞았고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적의를 보인 것도 맞았다.

가장 큰 문제는 상대의 경지를 추측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즉, 자신보다 경지가 위라는 것.

그런데 얼굴만 보면 지나가다가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아이 같았다.

그런데 어찌 무공의 경지를 추측할 수도 없다는 말인가?

혹시 반로환동?

여러 의문 속에 은령은 자신이 상대에게 무례를 범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적이든 아군이든 상대는 자신보다 위였다.

그렇다면 조금은 예의를 차릴 필요가 있었다.

“부탁드려요. 이 해약이 뭐죠?”

“아까 청운사신이 먹인 극독에 대한 해약이에요. 한번 먹으면 효능은 십 일. 이 호리병에 들어 있는 것은 세 알. 즉 한 달 치 해약이죠.”

설화의 말투가 공손해졌다.

딱 봐도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 하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상대가 무시하는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것이 설화가 한빈에게 배운 강호 철학이었다.

호리병을 들고 머뭇거리자 설화가 말했다.

“일단 먹여 봐요. 저렇게 괴로워하는데 불쌍하지도 않아요?”

“헉.”

은령이 비명을 질렀다. 그제야 땅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언니가 떠오른 것이다.

그녀의 언니 금령은 얼마나 굴렀는지 지금은 십 보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설화가 다시 말했다.

“자, 여기요.”

“…….”

은령은 고맙다는 말을 할 사이도 없이 금령에게 뛰어갔다.

“언니, 입 벌려.”

“아악!”

금령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에 은령은 호리병에 든 환약을 털어 넣었다.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비명이 멈췄다.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던 금령의 동작도 멈췄다.

마치 먼 길을 뛰어온 듯 심호흡을 할 뿐이었다.

“후…….”

숨을 들이쉰 금령이 깨어났다.

그녀는 언제 아팠냐는 듯 설화를 노려봤다.

“넌 대체 누구냐?”

“아까 쟤한테 얘기했으니 물어봐.”

설화가 기분 나쁜 듯 눈매를 좁히자, 옆에 있던 은령이 금령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언니, 잠시만.”

은령은 금령을 잡아끌고 잠시 돌아서서 귓속말로 설화에 대한 정보를 전했다.

다 듣고 난 금령이 다시 설화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를 구해 주신 분이군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됐고요. 이거나 읽어 봐요. 동의하면 서찰에 써 있는 대로 하면 되고, 싫다면 그것도 서찰에 써 있는 대로 하세요.”

설화는 품속에서 서찰 하나를 꺼내 금령에게 전했다.

금령을 말없이 서찰을 받아 들었다.

서찰을 읽어 나가던 금령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서찰에는 자신에게 내리는 지령이 쓰여 있었다.

정보를 전하는 곳은 곳곳에 있는 개방 분타였고.

개방 분타에 청운사신에게 보내는 정보를 보름마다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개방 분타에서는 해약을 내줄 것이라고 했다.

가장 무서운 대목은 해약을 먹는 시기가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해약으로도 발작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말이 십 일이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루 정도는 일찍 해약을 복용해야 할 판이였다.

서찰을 보며 어깨를 가늘게 떨고 있는 금령에게 설화가 말했다.

“싫으면 말고. 나는 그만 가 볼게요.”

“잠시만, 내가 너를 잡아서 청운사신을 협박한다면?”

“과연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설화는 그녀의 물음에 똑같이 물음으로 받아친 뒤 해맑게 웃었다.

그러고는 당과 꼬치를 하나 빼 들고는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순간, 설화의 신형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사사-삭.

설화도 이제 구걸십팔보의 팔 성 이상을 펼칠 수 있었다.

덕분에 금령이나 은령 모두 설화가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은밀한지 산새들조차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금령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자, 옆에 있는 은령이 말했다.

“언니, 일단 시키는 대로 하자. 어차피 우리야 누구의 지시를 받든 상관없잖아.”

“…….”

금령은 답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지시했던 자는 키워 준 은혜라도 있지, 청운사신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 자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서찰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방금까지 내장이 녹는 듯한 고통을 맛봤기 때문이었다.

만일 다시 이런 고통을 겪게 된다면?

그냥 목숨을 끊는 것이 편하다고 금령은 생각하고 있었다.

“휴…….”

금령의 한숨 소리가 컸는지 주변에 있던 짐승들이 흩어졌다.

* * *

설화가 향한 곳은 연등회가 열리는 장소였다.

펑, 펑.

아직도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끊이지 않는 음악 소리는 연등회에 모인 이들을 즐겁게 했다.

한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 있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만, 악비광 이외에 서재오가 추가됐다는 것만이 달라졌다.

설화가 나타나자 한빈이 웃었다.

“수고 많았어, 설화야.”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잠시만 이리로…….”

설화가 손짓하자 한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일어났다.

설화는 악비광과 서재오에게서 떨어진 곳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그거 무슨 독약이에요?”

“독약이라니?”

“그 여자한테 먹인 독이요. 가서 보니 말도 안 되게 고통스러워하던데요. 그리고 십 일에 한 번씩 먹지 않으면 계속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게 맞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독은 들어 본 적도 없어서요.”

설화의 표정은 사뭇 심각했다.

설화가 이렇게 진지하게 묻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녀도 한빈에 의해 독을 먹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설화의 눈빛을 본 한빈이 답했다.

“궁금해?”

“네, 궁금해요.”

“오늘 수고했으니 특별히 공짜로 말해 주지. 그런 독이 있다고 해도 만들려면 얼마나 고생하겠어? 그리고 돈이 얼마나 들어가겠어? 그리고 설령 만들었다고 해도, 그런 독을 왜 걔네처럼 피라미한테 써?”

“그럼요?”

“고통스러운 건 맞는데 그건 이번뿐이야.”

“십 일에 한 번 먹어야 한다는 건요?”

“그거야 거짓말이지. 뭐, 그 정도 고통을 겪었으니 딴생각은 안 할 거야.”

“그럼 왜 개방의 분타에 가서 약을 타라고 하신 거예요?”

설화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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