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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86화 (286/621)

286.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법 (6)

설명을 듣던 현비의 눈은 점점 커졌다.

그의 말에 의하면 당문호에게 은밀한 제안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 은밀한 제안은 사천당가와 황실을 적으로 만들어 무림과 관의 사이에 틈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 은밀한 제안을 당문호는 받아들였고 말이다.

하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전혀 달랐다.

그것은 나라를 좀먹는 집단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 집단의 정체를 알아내려면 가문을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

당문호는 가문을 희생시켜서라도 나라를 구하고 싶었다고 했다.

물론 이건 한빈이 지어낸 이야기였다.

한빈은 거기에 한 가지 이야기를 더 얹었다.

칠음현에서 음모가 이루어지는 만큼 당문호는 부패한 관리들의 치부도 낱낱이 들추고 싶었다는 것이다.

청운사신은 이를 돕기 위해 자신의 제자와 머리를 맞댔고 말이다.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었다.

얘기를 듣던 당문호는 미칠 것만 같았다.

어찌 보면 충신으로 포장하는 것이 같았지만, 한빈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비수였다.

관리의 치부를 고발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정계에 발을 붙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시답지 않은 명분 가지고 목을 걸지만, 그들이 들추지 않는 것이 딱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뇌물이었다.

그것은 서로 잘 먹고 잘 살자는 관리들 간의 불문율이었다.

물론 청렴한 관리도 있었지만, 그런 관리들조차 혼자 청렴하게 일을 수행할 뿐이지, 상대의 치부는 들추지 않았다.

당문호는 이로써 모든 관리의 적이 되었다.

흐린 물에서는 살 수 없는 물고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더 큰 곳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 이 음모를 꾸민 집단이었다.

그들은 당문호가 어디에 숨든 찾아내어 목숨을 거둘 자들이었다.

당문호는 슬쩍 청운사신의 눈동자를 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은 그의 속을 가리고 있는 것 같았다.

청운사신의 머릿속에 어떤 계산이 들어 있는지, 당문호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당했다는 그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한빈의 설명이 끝나자 현비가 당문호를 바라봤다.

“청운사신 대협의 말이 맞는가?”

“…….”

당문호는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점혈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점혈뿐 아니라 청운사신에게 중독까지 당했다.

그때 한빈이 당문호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픽.

그제야 당문호는 움직일 수 있었다.

당문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사실입니다.”

말을 마친 당문호는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표정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당문호의 표정은 한마디로 죽을 사(死)를 새겨 놓은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자신이 인정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즉, 같이 음모를 꾸민 자들 혹은 현령과 같은 당파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청운사신에게 중독된 이상, 눈앞에 닥친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먼저였다.

“내 황제 폐하께 너의 공을 보고해 치하하겠다.”

“감사합니다, 마마.”

당문호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현비는 시선을 돌려 한빈을 다시 바라봤다.

“그럼 도망친 여인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대협.”

“그 얘기는 비밀이지만, 현비 마마께는 특별히 말씀드리겠소.”

한빈은 내기를 끌어올렸다.

물론 기막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순간 주변은 정적이 이어졌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던 이들은 기막이 펼쳐지자 안의 대화가 궁금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재미있게 읽던 책이 끊긴 기분이었다.

그들은 숨도 쉬지 않고 현비와 한빈의 대화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자 탄성을 터뜨렸다.

“대단하구먼, 저런 기막이라니!”

“그럼, 역시 청운사신이야. 완전히 영웅이군.”

“현 무림 삼존과 청운사신이 겨루면 누가 이길까?”

“에이, 같은 정파끼리 왜 싸워?”

“그러게 말일세.”

여기저기서 쓸데없는 이야기가 이어질 때, 멀리 있던 악비광은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대단하군, 영웅이 만들어졌어.”

“자네 말대로 정파의 영웅이 만들어졌네.”

“아, 서 대협! 언제 오셨습니까? 자리를 지키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 할 일은 끝났네. 그러고 보니 팽 공자가 언젠가 했던 말이 기억나는군.”

“무슨 말입니까?”

“죄인도 영웅도 만들기 나름이라고 했지. 그런데 지금 보니 맞는 것 같군.”

“하하!”

악비광은 제법 큰 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 신경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편, 기막을 펼친 한빈은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펼쳐 놓은 기막에 이상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빈이 내공으로 펼친 기막 사이에는 현비와 팔공주, 그리고 한빈만이 있었다.

기막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한빈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피라미는 잡아 봤자, 국을 끓여도 맛이 덜한 법이지 않소?”

“그게 무슨 말인지요?”

“대어를 잡기 위해 도망친 여인을 미끼로 쓴다는 말이오.”

“미끼라면…….”

“아까 그 여인에게 해약을 먹인 것을 기억하오?”

“네, 기억합니다.”

“실은 그건 독약이었소. 내가 해약을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평생 관절 마디마디 그리고 장기가 끊기는 듯한 고통 속에 살 것이오.”

“허, 그런 일이…….”

“당문호라는 첩자를 심어 놓은 만큼 우리도 미끼를 던질 필요가 있소이다.”

“당문호가 첩자라고 하셨습니까?”

“아까는 거짓이었소. 그와 협조하는 자들이 자중지란에 빠지게 하기 위함이었소. 그러니 그에게 상을 내릴 필요는 없소.”

“허허, 그렇게 깊은 뜻이 있을 줄을 몰랐습니다. 놀라운 계책이군요.”

“조금 비겁한 계책이지만 그 방법 말고는 대어를 낚을 방법은 없었소.”

“그런데 중독된 여인이 당문호와 내통한 적이라는 것을 언제 아셨습니까?”

“그냥 보고 알았소.”

“대체 어떻게 외모만 보고…….”

“그런 말이 아니오. 의녀와 시녀의 장신구가 똑같았소.”

“장신구를 보고요?”

“의녀와 시녀의 장신구가 똑같더이다. 하나는 금방울이 달려 있었고 다른 하나는 은방울이 달려 있었소. 그런데 둘은 서로 알은체를 한 번도 안 하더이다. 서로 마주쳤는데도 말이오. 만약 둘이 알은체라도 했다면 의심을 안 했을 것이오.”

“헉, 그럼 아까부터 이곳에 계셨다는 거네요?”

“그건 비밀이오.”

“저는 대협을 이해해요. 황궁에서도 비밀이라는 게 많거든요. 사실 비밀이 아닌 게 드물죠.”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이오. 그럼 나는 이만 물러나겠소.”

“잠시만요, 대협. 나중에 대협의 도움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황실에서 한낱 무림인인 제 도움을 받을 일이 있겠소?”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것 아닙니까?”

현비가 눈을 빛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관과 무림이 별개라 하지만, 상호 협력은 필수였다.

한빈은 허허롭게 허공을 보다 말을 이었다.

“내 제자를 찾으시오. 이번 일도 내 제자의 도움이 반이었소.”

“제자라 하면…….”

“하북팽가의 막내 공자요.”

“하북팽가의 막내 공자라면…….”

현비의 눈빛이 묘하게 떨렸다. 한빈도 묘한 상황에 재빨리 물었다.

“아는 사이오?”

“네, 알고 있다마다요. 우리 효명의 병을 고쳐 준 것이 바로 하북팽가의 막내 공자입니다. 이런 인연이 있다니 놀랍네요.”

“내 제자의 일을 내가 모른다니 나도 놀랍군요.”

“뭐, 세상에 알려진 일은 아닙니다. 우리 효명이는 어릴 적부터 희귀한 절맥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어의가 말하길, 천산혈랑의 내단 없이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치료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흠.”

한빈은 헛기침하며 이전 일들을 떠올렸다.

천산혈랑의 내단 하나는 자신이 먹었고 하나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황실에 바쳤었다.

뭐, 누군가를 그 내단으로 치료했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그게 아마 여덟 번째 공주라 했던 것 같았다.

한빈은 인연이라는 게 참 질기다고 생각했다.

현비는 옆에 있는 효명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 효명이가 병을 털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라를 구하는 데 도움을 줬다니, 하북팽가의 막내 공자에게는 큰 상을 내려야겠군요.”

그때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대화를 듣고 있던 효명공주가 현비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어마마마, 제게 좋은 상이 생각났어요.”

“상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그게 저…….”

효명은 자신을 가리키며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현비가 웃었다.

“그러지 않아도 네 짝으로 정해 놨으니 그건 걱정하지 말아라.”

“흡.”

한빈은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자신도 모르게 짝이 정해졌다니 당황한 것이다.

당황도 잠시, 한빈은 슬쩍 효명을 바라봤다.

현비의 미색을 꼭 빼닮은 아이였지만, 그래도 어린애일 뿐이었다.

표정을 감춘 한빈이 재빨리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 말을 이었다.

“내 제자는 아직 혼례를 치르려면 멀었소. 그리고 혼례나 치를 정도로 무림의 정세가 평화롭지 못하오.”

“그렇군요.”

현비가 아쉬운 듯 한빈을 바라볼 때, 효명이 끼어들었다.

“네 살 차이면 궁합도 안 본다고 하잖아요.”

“네 살이라고? 그럼 네가 열여섯이란 말이더냐?”

“네, 맞아요.”

효명이 눈을 빛내며 말하자 한빈이 말을 이었다.

“내 제자는 나이와 관계없이 혼례에 대한 생각은 없을 것이다.”

“대협 할아버지 너무해요. 왜 제자의 앞날을…….”

효명을 말을 잇지 못했다. 다급하게 현비가 그녀의 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효명의 입을 막은 현비가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저희를 도와주시기 바라요, 청운사신 대협.”

“그건 약속하리다.”

“그리고 근래에 꼭 뵙길 빌어요.”

“그건 약속을 못 하겠소이다. 만약 이번 일에 따른 상을 내리려면 내 제자에게 내리시오.”

“참, 이건 미리 드리겠습니다.”

현비는 손에 쥔 패 하나를 한빈에게 건넸다.

그 패를 본 한빈이 눈매를 좁혔다.

그것은 황룡 패보다도 한 단계 위에 있는 금룡 패였다.

“고맙게 잘 받겠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하겠소…….”

말을 마친 한빈은 금룡 패를 품 안에 넣었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현비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빈은 기막을 풀고 주변을 살폈다.

한빈이 기막을 풀었지만,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한빈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사사-삭.

어찌나 빠른지 일렁이는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았다.

더해 움직임도 어찌나 은밀한지, 사람들이 들고 있는 횃불도 꺼지지 않았다.

놀란 이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처음으로 입을 연 사람은 역시 현비였다.

“절세고수는 소리 없이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더니 그 말이 오늘에서야 실감 나는구나.”

“그래요, 어마마마. 저 할아버지를 설득해서 꼭 그분을 볼 거예요.”

“일단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나서 얘기하자, 효명아.”

말을 마친 현비는 중앙에 서서 외쳤다.

“모두는 들어라! 현령과 관리는 즉시 투옥하도록 하고 이 재물은 칠음현에서 나온 것이니 칠음현에 궁핍한 백성을 위해서 쓸 수 있도록 조치하라. 그리고…….”

현비는 황실이 백성을 위한다는 것을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중앙에 있던 불상과 부패한 관리가 정리되자, 현비는 청운사신이 한 말을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장후와 호위에게 말했다.

“축제를 계속 진행하도록 해라.”

“네?”

“못 들었는가? 상황이 수습되었으니 입구를 열고 축제를 진행하라.”

“아무리 그래도…….”

“태풍이 지나가면 해가 뜨는 건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연등회를 즐기도록 입구를 개방하도록 하라!”

현비의 말에는 위엄이 실려 있었다.

두 명의 호위와 장후는 재빨리 현비의 지시를 전달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연등회의 행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폭죽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강 중앙에 있는 배 위에서는 무희들이 춤을 추었다.

현비는 자리에 앉아 청운사신이 한 말을 곰곰이 떠올려봤다.

사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한 가지 있었다.

독을 먹여 적을 첩자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적이 어떻게 청운사신을 찾아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보에서는 뒤지지 않은 황실도 청운사신이라는 사람을 찾으려면 불가능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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