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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84화 (284/621)
  • 284.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법 (4)

    그것도 잠시 표정을 감춘 호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시하신 일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호위는 어디선가 장포를 구해 중독된 여인을 감쌌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여인을 안아 들고는 황색 자리로 돌아갔다.

    호위가 그녀를 눕힌 곳은 병사들이 몇 겹으로 둘러싼 자리였다.

    호위는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듯 보였다.

    물론 한빈이 전한 그대로일 것이었다.

    분주히 움직이는 호위의 모습을 바라보던 군장 장후가 물었다.

    “당문호 대인도 안전한 곳으로 모실까요?”

    자신도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꺼낸 이야기였다.

    하지만, 한빈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내 앞에 있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네.”

    “네, 알겠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증인 한 명을 데려와야겠네.”

    “그게 누구입니까?”

    장후가 눈을 크게 뜨자 한빈은 바깥쪽을 가리켰다.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던 책임자일세. 당장 그자를 데려오게.”

    “입구를 책임지는 관리라면…….”

    장후가 누군지를 몰라 주변을 돌아봤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데려온 병사 이외에는 아는 자가 많지 않았다.

    그때 가만히 지켜보던 현령이 다시 나섰다.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자는 칠음현의 관리입니다.”

    현령은 포권까지 하며 한빈의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에 한빈은 속으로 실소를 삼켰다.

    그것도 잠시, 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하오. 그리고 관리와 더불어 관리가 이곳을 입장한 사람들에게 받았던 초대장도 같이 부탁하오.”

    한빈이 승낙하자 현령이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사람들은 귓속말로 상황을 추측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입구를 지키는 관리를 부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비도 마찬가지였다.

    궁에서 총명하다고 소문난 현비였지만, 청운사신의 행동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때 병사들에게 중독된 여인을 맡기고 온 호위가 돌아왔다.

    “마마, 증인을 맡기고 돌아왔습니다.”

    그의 말에 현비는 뭔가 생각난 듯 눈을 빛냈다.

    “아까 청운사신이 네게 한 말이 무엇이더냐?”

    “저 여인을 보호하되, 현비 마마께 멀리 떨어뜨려 놓으라 했습니다. 또한 현비 마마와 공주님을 철저히 지키라 했습니다.”

    “음.”

    침음을 뱉은 현비는 병사의 호위를 받고 있는 자신의 딸 효명공주를 불러왔다.

    그러고는 호위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이유를 물어봤느냐?”

    “흠, 그게 그러니까…….”

    호위는 말끝을 흐리며 현비의 눈치를 봤다.

    그 모습에 현비가 손짓하며 재촉했다.

    “편하게 말해 보아라.”

    “비밀이라 하셨습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비밀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겠구나.”

    현비는 비밀이라는 말을 조금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만큼 엄중한 사안이라고 해석했지만, 사실 한빈이 버릇처럼 던진 말일 뿐이었다.

    현비와 주변을 지켜보던 고관대작들이 웅성대고 있을 때, 현령이 데려온 관리가 한빈의 앞에 섰다.

    관복을 입고 나타난 관리가 중앙으로 나오자,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마치 경극에서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 것처럼 누군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한빈은 그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관리를 살폈다.

    돈을 받아먹던 그 관리가 맞았다.

    관리는 이곳에 오자마자 심상치 않은 시선을 느꼈다.

    사실 향시에 합격하고도 이런 뜨거운 시선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모두가 자신을 주인공처럼 바라보자 얼떨떨했다.

    하지만, 그 시선에 호의가 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자 급격하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관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를 왜 찾으셨는지요?”

    “하나만 묻겠네.”

    “말씀하시지요, 대협.”

    관리는 포권하며 허리를 땅에 닿도록 숙였다.

    본능적으로 이곳의 상급자가 누군지를 안 것이다.

    한빈은 아무 표정 없이 질문을 이어 갔다.

    “이곳에 들어오려면 입구를 지나는 방법밖에 없는가?”

    “네,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살수의 출입도 자네의 통제하에 이루어졌겠군.”

    “헉, 아닙니다. 저는 살수를…….”

    관리는 살수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화들짝 놀랐다.

    한빈은 그를 진정시키듯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자네가 살수를 들여보냈다는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닐세.”

    “네, 절대 아닙죠. 아닙니다요.”

    “살수는 분명히 변장을 하고 들어왔겠지? 그러니 모를 수밖에 없지 않나?”

    “…….”

    관리는 말할 수 없었다.

    인정하게 되면 변장한 살수를 못 알아본 무능한 관리가 되어서 처벌을 면하기 힘들었다.

    이것은 유도 심문이라 생각했다.

    “자네는 살수가 들고 있는 초대장을 확인했을 터야.”

    “…….”

    관리는 계속 침묵했지만, 한빈은 관계없다는 듯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 그자가 살수인지 잘 모르겠지. 내가 알아보고 싶은 것은 초대장일세. 초대장은 반쪽으로 나누어 반쪽은 자네가 받았을 테고, 다른 반쪽은 사람들이 아직 들고 있겠지.”

    이것은 사실이었다.

    초대장의 반쪽은 잘라 초대받은 사람에게 주어 그 사람의 출입 유무를 확인하고, 나머지 반쪽은 보관한다.

    한빈이 줬던 초대장의 반쪽도 관리가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요.”

    “저기 있는 상자에는 초대장의 일부분이 들어 있겠고.”

    “네, 맞습니다.”

    “내 생각은 간단하네. 살수가 독을 썼다면 독의 흔적을 그리 쉽게 지우지는 못할 것이야. 그러니 초대장에도 독의 흔적이 묻어 있을 수 있겠지.”

    “그건 그렇…….”

    관리는 다시 말끝을 흐렸다.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주변의 의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빈의 말에 호응하고 있다.

    한빈은 힐끔 고개를 돌려 의원들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친 의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한빈이 의원들에게 말했다.

    “의원 여러분.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네. 독에 제일 반응하는 게 인은이 맞는가?”

    한빈이 말한 인은은 황궁의 의원들이 은의 순도에 따라 나누는 등급 중 하나였다.

    황궁의 의원들은 인의예지신의 순서로 은의 순도를나눈다.

    그중 가장 순도가 높은 것이 인은이었다.

    아마 대답하는 의원은 황궁에서 나온 의원일 가능성이 컸다.

    그때 기다리던 대답이 나왔다.

    “네, 맞습니다.”

    대답한 의원은 다른 의원들과는 달리 복장이 조금 화려했다.

    같은 백색의 옷이지만, 그는 비단으로 되어 있는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한빈이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인은을 가지고 있나?”

    “네, 황궁에게 가지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황족을 위해 사용을…….”

    “지금이 바로 그때이네.”

    한빈이 현비 쪽을 힐끔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현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에서 온 의원도 현비의 신호를 보고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인은만 내어 드리면 되겠습니까?”

    “자네가 직접 도와주게.”

    “알겠습니다.”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의녀 둘이 그의 짐을 들고 왔다.

    의원은 한빈의 지시에 따라 황동 대야에 물을 따랐다.

    그리고 그 속에 인은 가루를 쏟았다.

    황동색 대야는 바로 은색으로 물들었다.

    의원은 한빈이 말한 의도를 알고 있었다.

    이것은 독을 검출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의원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지켜보면 되네.”

    말을 마친 한빈은 관리를 바라봤다.

    “그릇에 손을 담가라.”

    “네?”

    “네 손이 검게 변한다면 네가 살수와 마주했다는 증거니까.”

    “아.”

    관리가 탄성을 지르자 한빈을 도와주는 의원이 말했다.

    “청운사신 대협의 말이 맞습니다. 인은은 독에 격렬하게 반응을 하죠. 그래서 독이 있는 물체에 붙게 마련입니다. 만약 손에 독이 묻어 있다면 인은이 묻을 테고 묻은 인은은 검게 변할 것입니다.”

    그의 말에 관리는 마지못해 대야에 손을 넣었다.

    관리는 자신의 손이 검게 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살수가 미쳤다고 초대장을 들고 입구로 당당히 들어오겠는가?

    이건 한마디로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텀벙.

    관리가 손을 넣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한빈을 도와주던 의원이 말했다.

    “이제는 빼셔도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관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뺐다.

    순간 주변에서 지켜보던 의원들이 입을 떡 벌렸다.

    “진짜 손에 독이 묻어 있어.”

    “그럼 살수가 초대장을 들고 버젓이 입구를 통과했다는 거네.”

    “청운사신 대협의 말씀이 맞았어.”

    “생각지도 못한 일을 어떻게…….”

    “그러니까 삼존을 넘어서 사존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겠지.”

    “그렇게 치면 사존이 아니라 적룡대협까지 오존이라 불러야 하지 않겠나?”

    “에이, 지금 서열 가지고 싸울 때인가? 이제 범인이 밝혀질 때이거늘.”

    “그래, 일단 청운사신 대협이 범인을 잡는 것을 지켜보자고.”

    “자네나 조용히 하게.”

    주변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뒤쪽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현비마저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모두가 웅성거릴 때, 한빈이 말했다.

    “자네는 잠시 대기하고, 의원 양반은 나를 마저 도와줘야겠네.”

    “말씀하시지요, 대협.”

    황궁에서 나온 의원의 목소리는 더욱 공손해졌다.

    힘만 쓰는 것이 무림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지략까지 겸비했기 때문이다.

    의원의 빛나는 눈빛에 씩 웃은 한빈이 말을 이었다.

    “저기 있는 초대장을 검사해 주게.”

    “그 말씀은…….”

    “관리의 손에 독극물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초대장에도 남아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녀뿐 아니라 동료 의원들까지도 몇몇이 나와 황궁에서 나온 의원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초대장 검사는 끝이 났다.

    하지만, 뜻밖의 결과에 의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황궁에서 온 의원이 한빈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대협, 이상합니다.”

    “초대장이 인은에 반응을 안 한다는 얘기인가?”

    “네, 그렇습니다. 저 관리의 손에는 독극물의 흔적이 검출되었는데, 어떻게 초대장에는 흔적이 없을 수 있습니까?”

    “그건 간단한 이유일세.”

    “제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지요. 대협.”

    의원을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의원이었다.

    손에서는 독극물의 흔적이 나왔는데 그 원인인 초대장은 멀쩡하다는 건, 달걀 없이 닭이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뒤쪽에 있는 다른 의원들도 고개를 숙였다.

    사건의 실마리를 떠나 사람을 치료하는 의원으로서의 호기심이 고개를 든 것이었다.

    모두는 마른침을 삼키며 한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흡족한 듯 한빈이 말했다.

    “이 관리가 받은 것이 초청장만이 아니라는 것이네.”

    “초청장뿐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을 받았을까?”

    한빈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관리를 바라봤다.

    관리는 긴장한 듯 목울대를 꿀렁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한빈이 현령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현령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한빈이 물었다.

    “현령은 짚이는 구석이라도 있는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현령은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폭죽 하나가 공중으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하늘 위에서 파란색 불꽃을 수놓았다.

    펑!

    불꽃을 본 한빈이 말을 이었다.

    “사실, 오늘 내가 잡을 도둑은 두 부류요. 하나는 현비 마마까지 참석한 이 행사에서 독살극을 벌인 집단이오. 무림인인 내가 왜 관의 일을 돕는지 아시오?”

    “…….”

    “그것은 관과 무림을 적으로 만들려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오.”

    “헉, 그런 천인공노할 집단이 있단 말씀입니까?”

    “천인공노할 집단이라……. 딱 그 표현이 맞겠군. 그리고 또 하나는 백성의 고혈을 빠는 집단을 찾기 위함이요. 무림인도 나라의 백성이니 내가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지.”

    “네, 맞습니다. 백성의 피를 빨다니 대체 어떤 자들입니까?”

    “그자들도 지금 이 안에 있소. 지금 이 사건을 해결하게 되면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게 되는 일이지. 그러니 현령이 나를 좀 도와주시오.”

    “힘껏 돕겠습니다.”

    “약속하오?”

    “약속드립니다.”

    현령은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한빈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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