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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81화 (281/621)

281.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법 (1)

하나의 덫을 벗어난다고 해도 다른 하나의 덫을 쳐 놓았다.

그 덫을 벗어난다면?

그물을 쳐서 잡을 것이다. 그것이 당문호의 사냥법이었다.

오늘 사천당가는 자신의 어망에 든 물고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문호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어찌 보면 당문호가 느꼈던 쾌감 중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을 무시했던 가문.

자신에게 받아먹기만 하고 티끌만큼도 도움을 주지 않았던 가문의 원로들.

가문의 이름을 빛냈지만, 돌아온 것은 배신이었다.

그 대가를 오늘부터 철저히 수확할 것이었다.

당문호는 한빈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멀리 있는 현령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현령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 부탁한 것을 철저히 들어주려는 것 같았다.

당문호는 슬쩍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현령은 무표정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당문호는 현령의 저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뇌물을 받고도 티 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매진하는 모습 말이다.

그러고 보니…….

당문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중앙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동창이자, 칠음현의 책임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황족의 시중을 드는 시녀 하나가 지나가며 당문호를 바라봤다.

당문호는 재빨리 눈을 깜빡였다.

* * *

한빈이 청색 자리를 휘젓다가 그늘 역할을 하는 버드나무를 짚었다.

소리도 들리지 않을 은밀한 움직임.

그냥 버드나무에 기대며 손을 짚는 것처럼 보여도 한빈의 손에는 내기가 실려 있었다.

순간 버드나무가 살짝 흔들리며 잎이 떨어졌다.

그 잎들은 나선을 그리며 의자에 떨어졌다.

후두둑.

한빈은 가랑비처럼 쏟아지는 나뭇잎을 조용히 바라봤다. 나뭇잎이 만들어 낸 가랑비가 멈추자 한빈은 조용히 자리로 돌아왔다.

뒤따라오던 악비광은 고개를 갸웃했다.

뭘 찾겠다고 해서 같이 갔는데, 한빈이 가져온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악비광은 호기심을 주체 못 하고 물었다.

“형님, 못 찾으셨습니까?”

“물론 찾았다.”

“찾았다니요? 그냥 휘휘 돌아다니시기만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찾으려 한 건 사람이니까…….”

말을 마친 한빈은 황색 좌석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때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길함을 바라는 닭, 여유 있음을 기원하는 생선, 장수를 의미하는 국수가 쟁반 하나에 모두 들어 있었다.

한빈 일행은 그 후 한 시진이 넘는 동안 수다의 꽃을 피웠다.

물론 한빈은 계속 당문호를 주시했다.

두리번거리는 것이 적잖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청색 자리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좌석에 깔아 놓은 암기는 모두 한빈이 제거한 상태.

즉 당문호가 놓은 덫은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

한빈은 자신의 손을 펴 봤다.

버들잎 하나가 한빈의 손에 있었다.

의자에 떨어져도 아무도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가느다란 잎사귀였다.

대충 냄새로 확인한 바, 이 버들잎에는 소량의 독이 묻어 있었다.

이름하여 석사독(夕死毒).

암기나 사물에 묻혀 놓으면 햇볕을 받을 때는 독기가 잠자다가, 햇빛을 못 받으면 바로 독기가 작용하는 독이었다.

그런 이유로 밤에 사용하면 대상을 즉각 중독시킬 수 있는 독이었다.

그러므로 석사독이 묻어 있는 버들잎을 깔고 앉게 되면, 햇빛이 차단되니 바로 중독될 것이다.

의복에 스며들어 천천히 중독되면, 원인도 알 수 없이 대상은 쓰러진다.

그러나 단단한 쇠붙이로 된 암기가 아닌 버들잎에 발라 놓을 경우,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람에 날려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뭐, 당문호는 버들잎이 바람에 날려 갔으려니 하고 다음 계획을 준비할 것이었다.

그때 강가에는 커다란 배가 지나가다 멈췄다.

동시에 폭죽이 여기저기서 터지기 시작했다.

팡, 팡.

그 폭죽과 함께 강에 멈춘 배 위에서 불이 밝혀졌다.

동시에 배 위에서는 무희들의 춤이 이어졌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된 것이다.

사람들이 넋을 잃고 바라볼 때였다.

갑자기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악!

그것도 잠시, 곧장 폭죽과 음악 소리에 묻혔다.

물론 호위병과 한빈을 비롯한 몇몇 무인들은 그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즉시 음악을 멈춰라!”

“음악을 멈춰라!”

그 외침의 끝에 누군가가 내공을 실어 외쳤다.

“일대는 황족을 보호한다!”

“이대는 주변을 봉쇄한다. 다시 한번 말한다. 이곳을 봉쇄한다. 그리고 나머지 병사는…….”

급박함을 담은 목소리에, 칠음강의 잔물결이 요동칠 정도였다.

이제 때가 됐음을 직감한 한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빈이 설화에게 말했다.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처리하여라.”

“네, 공자님. 그런데 청화는 어떻게 할까요? 당기명 공자와 같이 있는데…….”

설화가 말끝을 흐리며 옆을 바라봤다.

청화는 당기명이 잠시 데려간 상태.

“괜찮아, 그냥 놔둬.”

“네, 그럼.”

말을 마친 설화는 조용히 자리에서 사라졌다.

놀란 악비광이 물었다.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형님.”

“너는 절대 나서지 말아라.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니……. 혹시라도 끼고 싶으면 변장을 하든지.”

“변장이요?”

“아니다. 변장한다고 해도, 여기서 너를 못 알아볼 사람은 없으니 그냥 자리에서 조용히 구경하는 편이 좋겠다.”

“…….”

“무시해서가 아니라 일이 꼬일 수도 있어서 그래. 그냥 남은 음식이나 먹으면서 공연이나 지켜봐.”

“공연이라니요?”

“재미있는 공연이 펼쳐질 것 같거든.”

“어쨌든 위급하다고 생각되면 나서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말을 마친 한빈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옷자락 스치는 소리만 남기고 조용히 사라졌다.

사사-삭.

* * *

광란의 도가니였다.

이곳의 경비 책임자인 군장 장후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솟아올랐다.

그는 호남성의 소속으로 천 명의 병사를 통솔하는 군장이었다.

황실의 요청으로 오백의 군사를 이끌고 온 것이다.

이곳으로 지원할 때만 해도 장후는 꿈에 부풀어 얼씨구나 하고 좋아했었다.

이곳에 모인 황족과 왕족 그리고 고관대작들의 눈에 들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훈련과 임무의 반복인 일상에서 벗어나 축제를 즐길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그런데 난데없이 살인이라니?

주변을 바라보니 일대에 속한 백 명의 군사가 황색 좌석 주변에서 철저하게 경계를 하고 있었다.

안쪽에는 황족을 진정시키는 관리 하나가 보인다.

그 관리는 장후가 모시고 온 호남성의 이인자, 장진택이었다.

다행히 중앙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자라, 사태를 파악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황족부터 진정시키고 있었다.

“휴.”

장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귀빈이 다친 것도 아니었고 황족들은 일단 진정했으니 목이 댕강 달아나는 것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뛰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킨 장후는 재빨리 병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병사들이 둘러싼 곳은 청색 좌석의 앞, 그리고 누워 있는 것은 의녀였다.

장후가 의녀에게 다가가자, 병사가 외쳤다.

“군장 나으리! 더 이상 가시면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자세히 보고하라.”

“눈 밑의 피부는 검은색으로 변색되었으며 손과 목이 점점 파랗게 변하는 것으로 봐서…….”

“흠, 독살이라는 것이구나?”

“네, 맞습니다. 제가 교육받기로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기…….”

병사는 말끝을 흐리며 장후에게 은침을 내밀었다.

장후는 은침의 끝을 자세히 봤다.

은침은 은색이 아닌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것은 독에 닿았다는 증거였다.

독살이라?

이것은 혼자 처리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장후는 내공을 담아 외쳤다.

“병사들은 들어라! 의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서 이곳으로 의원을 모시고 오너라.”

“네, 알겠습니다. 군장님!”

불과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의원들이 자리에 모였다.

의원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는 의녀에게 다가가기를 꺼려 했다.

독에 당한 것이 명백한 데다, 숨이 끊겼으니 두려움을 참고 굳이 의녀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의원 중 하나가 말했다.

“우리보다 독에 대한 전문가가 여기 있다고 들었소.”

“그게 누굽니까?”

“독이라면 사천당가가 최고 아닙니까?”

“사천당가라면……. 아, 그리고 보니 저도 조금 전 인사를 나눴소이다.”

의원들을 너도나도 사천당가에서 온 고수를 떠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한 번씩 당기명과 인사를 나눴기에,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저도 봤소이다. 사천당가 분들 역시 오늘 자리해 주셨더군요.”

그들이 웅성대자 장후가 다시 병사에게 외쳤다.

“사천당가에서 온 손님을 모셔라!”

“네, 알겠습니다.”

병사는 재빨리 달려가서 사천당가에서 온 당기명과 당독대를 데리고 왔다.

바로 옆에 있었기에 그들이 도착한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장후에게 먼저 말을 건 것은 당문호였다.

“장 군장 아닌가?”

“아, 당문호 어르신이 아닙니까? 오늘 참석하셨다고 듣긴 했는데 왜 사천당가 분들과…….”

둘은 이전에 안면이 있는 사이인 듯 보였다.

장후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당문호가 말했다.

“나도 사천당가 사람이네.”

“아, 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장후가 미안한 듯 말끝을 흐리자, 당문호가 재빨리 말을 받았다.

“그건 됐고 일부터 하지. 나는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친구들은 사천당가에서도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오. 도움이 될 것이네.”

당문호는 당기명과 당독대를 가리켰다.

소개를 받은 당기명이 앞으로 나서며 포권했다.

“사천당가의 당기명이라고 합니다.”

“저는 호남성에서 녹을 먹고 있는 장후라 합니다. 당 공자의 위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장후가 가볍게 포권을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지나가던 병사가 이 의녀가 쓰러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문제는 이 의녀가 어떤 의원의 소속인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거기에 피부를 보면 독살을 당한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

“네, 그럼 사람들을 뒤로 물려 주시죠. 혹시 있을 불미스러운 사태를 방지하려 함입니다.”

“혹시 모를 사태의 방지라면…….”

“이 의녀가 목표가 아닐 듯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름 모를 의녀 하나 죽이자고 이 일을 벌였겠습니까?”

당기명의 말에 장후는 고개를 돌려 병사들에게 외쳤다.

“경계를 강화하라! 밖에 있는 삼대와 사대도 경호에 투입한다!”

장후는 마른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범인 색출이 아니라 황족의 경호임을 떠올린 것이다.

경호를 강화한 장후가 물었다.

“당 공자님의 고견을 계속 듣고 싶습니다.”

“네, 계속 말씀드리지요. 이 의녀가 모시는 의원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닐 듯싶습니다. 물론 이 의녀나 이 의녀가 모시는 의원을 없애야 할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그게 뭐라 생각합니까?”

“그것은 다른 누군가를 노리는 데 방해가 됐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범인은 아직 도망치지 않았겠군요?”

“도망칠 범인이었으면 황족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겠지요.”

“흠.”

“일단 주변에 있는 의원과 병사들을 좀 물려 주시지요. 이 의녀의 몸에 독을 퍼뜨리는 장치라도 해 놨다면 이곳은 쑥대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장후는 고개를 돌려 수하를 바라봤다.

“여봐라! 병사와 의원, 모두 십 장 밖으로 물러나라.”

“네,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병사가 포권하며 사람들을 뒤쪽으로 물리기 시작했다.

당기명은 그제야 손에 장갑을 끼고 의녀의 시신을 살피기 시작했다.

평소에 양념으로 독을 먹는 사천당가 사람들이었지만, 어떤 독인지 모르고 그냥 만지는 멍청한 짓을 할 사람들은 아니었다.

자신들이 쓰는 독이 그만큼 위험하기에, 독에 대한 공격에도 민감했다.

당기명은 변색된 부분을 침으로 몇 번 찌르고 장갑을 낀 손으로 피부를 문질렀다.

그런데 묘하게도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죽었지만, 묘하게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변색된 부분은 있으나 피부가 괴사하고 있지는 않았다.

맥박이 끊기고 호흡이 멈췄으니 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죽은 것이 아니었다.

이런 현상을 만들 독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 독의 이름은 삼절추혼독(三節追魂毒).

당기명의 입술이 달싹였다.

하지만, 차마 입을 열 수는 없었다.

그 독은 당가의 독자적인 비법으로만 만들 수 있는 독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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