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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72화 (272/621)

272화. 독사의 독니는 물린 뒤에야 알 수 있다 (3)

그 목소리에 악비광은 진기를 용천혈로 모았다.

순간 악비광이 날아올랐다.

슝.

마치 방아깨비가 뛰듯 악비광이 한걸음에 대문을 통과했다.

다급하게 경공술을 펼친 악비광은 속도를 주체 못 하고 바닥에 굴렀다.

팍!

데구르르.

정신을 차린 악비광이 뒤를 바라봤다.

다급한 한빈의 외침과는 다르게, 빠져나온 곳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형님, 대체 왜…….”

악비광은 말을 맺지 못했다.

바닥에서 이상한 진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부르르.

그때였다.

갑자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쾅.

콰르릉.

조금 전 있었던 곳에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일어난 것이다.

모두는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에 엎드렸다.

한빈은 바닥에 엎드리며 어딘가를 바라봤다.

한빈의 시선이 멈춘 곳에는 당기명이 보호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몸을 지키려는 듯 나무 몽둥이를 무기 삼아 들고 있었다.

주변이 잠잠해지자 사람들이 일어났다.

가장 늦게까지 고개를 파묻고 있었던 것은 한빈이었다.

그를 본 악비광이 한빈의 소매를 잡았다.

“형님, 왜 그러고 계십니까?”

악비광은 그때 한빈의 눈빛을 봤다.

한빈은 악비광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을 살짝 찡그리고 있었다.

덩치는 커도 눈치는 백단인 악비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바꿨다.

“그러고 보니 형님은 의원님이셨죠. 모든 위험은 지나갔습니다.”

“휴, 다행이구나.”

“이제 일어나시죠, 형님.”

악비광이 한빈을 부축했다.

그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일어난 한빈이 떨리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물론 한빈의 이런 행동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빈은 새로운 인물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칠음현에 오기 전, 한빈은 신분을 감출 것이라 말해 놨다.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당기명은 자신의 옆에 있던 인물을 한빈과 악비광에게 소개했다.

“이분은 제 숙부이십니다.”

당기명의 말이 끝나자마자 숙부라는 자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당문호라고 하오. 생명을 구해 준 은혜 잊지 않겠소.”

그는 당황한 표정 없이 모두를 살폈다.

포권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숙이는 그의 행동과 말에서 기품이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은 관리가 무림인을 대하는 보편적인 행동이었다.

악비광이 재빨리 포권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산동악가의 악비광이라고 합니다.”

“유명한 산동악가의 악 공자셨군요.”

당문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빈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는 강북에서 내려온 의원 한빈이라고 합니다. 사천당가의 어르신 같으신데, 의복만 보면 관리 같습니다.”

“한빈 의원이셨구려. 저는 당문의 사람이긴 하지만, 지금은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사람이외다.”

“어쩐지 기품이 다르다 했습니다.”

한빈이 고개를 살짝 더 숙였다.

그 모습에 당문호가 웃었다.

“하급 관료이니 그렇게 예를 차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거기에 여러분들은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생명의 은인이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 여기 있는 두 여고수와 우리 기명이가 아니었다면 저들의 공세에 버텨 내지 못했을 겁니다.”

“다행이군요. 저는 별로 도와드린 것도…….”

“아닙니다. 악 공자와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진 안에 갇혀 죽었을 겁니다. 저는 진을 파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말을 마친 당문호는 손에 들고 있던 몽둥이를 바닥에 팽개쳤다.

그러고는 사람 좋은 얼굴로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이 말했다.

“우연입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지저분한 것은 보지 못하는 성미라서 우연히 도움을 드린 것 같습니다. 사실 무림세가를 떠돌아다니는 장돌뱅이 같은 의원이라, 진에 대한 지식도 조금은 있었습니다.”

“오호, 그러시구려. 의원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는 바요.”

당문호는 한빈에게 정중하게 다시 인사를 건넸다.

그때 당기명이 말했다.

“일단 여기를 벗어나는 것이 먼저가 아닌 듯싶습니다.”

“그러자꾸나.”

당문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는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되었고 그들은 칠천 객잔으로 향했다.

그때 악비광이 한빈에게 물었다.

“형님, 사람이 이상합니다. 이 정도의 폭발음이나 다들 뛰어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평온하죠?”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 있다니요? 이건 말도 안 됩니다. 경천동지할 정도의 폭음이 아닙니까?”

“내 생각에는…….”

한빈이 막 설명하려고 할 때였다. 당문호가 끼어들었다.

“그건 내가 설명하겠소. 저기를 보시오.”

당문호는 지나가는 남녀를 가리켰다.

악비광을 비롯한 모두는 지나가는 여인 둘을 바라봤다.

한 여인이 폭발이 일어난 쪽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들렸는데…….”

“그러게 말이야. 분명히 불꽃놀이 하는 소리였지?”

“맞아. 분명히 들었는데 나와 보니 조용하네.”

“에이, 괜히 나왔네. 이렇게 일찍 끝날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 있는 건데 말이야.”

“그러게 말이야. 요즘 들어 가끔 이러더라고. 칼춤 추는 소리 나와서 나와 보면 경극도 바로 끝나 있지를 않나.”

그 여인들이 지나가자 당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는군요.”

“아.”

악비광은 탄성을 터뜨렸다.

한빈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칠음현의 불꽃놀이는 강남의 십대공연에 속했다.

예고 없는 불꽃놀이 때문에, 칠음현의 주점과 다루들은 밤에도 열어 장사를 하고 있었다.

뭐, 경극도 여기저기서 공연하니, 가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당연하고 말이다.

즉, 이 정도 폭발음은 공연 중에 나올 수 있는 평범한 소리라는 것이다.

* * *

한빈과 당기명 일행은 칠천 객잔의 일 층에 도착했다.

그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물론 새로운 인물인 당문호가 대화의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했다.

그는 괴한과 마주친 사정을 설명했다.

“진짜 여러분들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소.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당문호는 북경에서 밀지를 받고 삼 개월 전 이곳에 내려와서 조용히 조사하고 있었다.

문제는 수상한 무리를 발견한 후 그들의 배후를 조사하다가 일을 당했다는 것.

당기명이 설화와 함께 돌아오는 중간에 당문호를 만나 같이 일에 휩쓸렸고 말이다.

사람들은 연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당문호를 위로했다.

원래 죽을 고비를 넘기면 하나가 되는 법.

당문호는 일행에 녹아들었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한빈은 처소에 먼저 들어가 붓을 놀렸다.

사-삭.

가느다란 붓이 조그만 종이 위에 많은 내용을 적어 나갔다.

탁.

붓을 멈춘 한빈은 종이가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전서 통 안에 넣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딱.

동시에 설화가 나타났다.

“공자님, 그렇지 않아도 드릴 말씀이…….”

“아니, 그건 돌아와서 듣기로 하고 이걸 먼저 가까운 개방 분타에 전해 줘.”

“네, 공자님.”

“그리고 답장은 그 자리에서 받아 와야 해.”

“네, 알았어요.”

대답을 마친 설화가 사라졌다.

* * *

설화가 한빈 앞에 나타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설화는 한빈에게 전서통을 건넸다.

“여기요, 공자님.”

“생각보다 일찍 나왔네.”

“준비된 자료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고마워.”

한빈은 전서 통에서 쪽지를 꺼내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쪽지를 읽는 한빈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쪽지를 다 읽은 한빈이 설화를 바라봤다.

“왜 그러고 있어? 들어가서 쉬어야지.”

“어제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잖아요.”

“혹시 당과라도…….”

“아, 공자님. 지금 심각해요. 당과가 문제가 아니에요. 원래 진작 말씀드려야 했는데 이 일부터 하라고 하셔서…….”

설화는 전서 통을 가리켰다.

한빈도 설화의 말이 그제야 기억났다.

설화는 분명히 할 말이 있다고 했었다.

한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화를 바라봤다.

“진짜 심각하구나. 당과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면…….”

“어제 마주쳤던 자들 말이에요.”

“그 괴한들 말이냐?”

“아무래도 살수들 같아요.”

“흠.”

“살막의 살수가 분명해요.”

“근거는?”

“살수가 풍기는 살기를 제가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연검을 그렇게 자유자재로 쓰는 집단은 살막밖에 없어요. 살막의 살수들이라면 제가 전에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어요.”

“음, 그렇구나.”

“왜 안 놀라세요? 꼭 알고 있었던 것처럼요.”

“알고 있었으니 안 놀라지.”

“그럼 벌써 알고 계셨던 거에요? 어떻게요?”

“그건 비밀이다.”

“아, 이번에도 비밀이에요?”

“참, 오늘부터 할 일이 있다. 설화야.”

“살막을 조사하라고요?”

“아니, 당문호를 관찰하거라. 무리하지는 말고.”

“관찰을 하라고요?”

“그냥 지켜보다가, 이상한 것이 있을 시 말해 주면 된다.”

“네. 알았어요, 공자님.”

“혹시라도 살막의 살수들의 기척이 느껴지면 뒤로 물러나야 한다, 설화야.”

한빈의 말에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살막의 살수들이 당문호를 노린다면 구해 줘야 하잖아요.”

“당문호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가 장담하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살수가 과연 의뢰인을 죽일까?”

“의뢰인이라니요?”

“내가 보기에 살막을 고용한 건 당문호야.”

“당문호라니요?”

설화는 한빈의 말에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어제 당문호가 말했었잖아. 밀지를 받고 강남에 내려왔다고.”

“네, 그랬었죠.”

“여기 적혀 있는 대로라면 정계에서 밀려난 거야. 흔히 좌천됐다고 하지.”

“밀지에 적힌 임무를 수행하려고 그렇게 보인 게 아니고요?”

“이건 당문호의 삼 년 치 자료야. 임무 하나 맡기는데 황실에서 삼 년 동안 남을 속일 리는 없지.”

“그렇다고 당문호가 살막을 고용했다고 볼 수는 없잖아요.”

“어제 당문호가 들고 있던 그 몽둥이 말이야.”

“그 몽둥이가 왜요?”

“대나무 안에 쇠심이 박혀 있었어.”

“쇠심이요?”

“어제 진법을 파훼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어. 하나는 생문에 불을 지피는 것.”

“나머지 하나는요?”

“열쇠를 따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내가 보기에 어제 빗자루 속에 담긴 봉이 열쇠였던 게 분명해. 그가 몽둥이를 떨어뜨릴 때 소리를 유심히 들었거든.”

“아.”

설화가 탄성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그런 사소한 일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한빈은 모든 것을 빠트리지 않고 머릿속에 담아 둔 것이었다.

긴 탄성의 끝에 설화가 말했다.

“그럼 저와 당기명 공자를 죽이려 했다는 거예요?”

“그건 아니지.”

“그게 아니라면요?”

“아마 목적은 딴 곳에 있었을 거야. 그걸 위해서 당기명을 구하는 연극을 해야 했고.”

“이유가 뭘까요?”

“뭐, 차차 알아보면 되겠지.”

“그럼 당기명 공자에게 지금 빨리 말해 주는 게 좋지 않겠어요?”

“워, 진정해. 설화야.”

“진정하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증거가 없잖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이 연극을 하는 건지가 중요하다는 거지.”

“…….”

“사천에서 벌어져야 할 일이 여기에서 일어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설화야.”

“알겠어요, 공자님.”

설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빈이 탁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탁자에 있는 건 내 선물이야.”

“선물이요?”

“당과와 찹쌀떡. 아까 당과 사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잖아.”

“가, 감사해요.”

설화는 감격한 듯 말까지 더듬었다.

“설화한테는 당과가 칼보다 무섭구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제 그 죽을 고비에서도 눈빛이 흔들리지 않았잖아. 그런데 지금 표정을 보면 떨고 있잖느냐? 확실히 칼보다도 당과가 무섭다는 증거지.”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청화가 들어왔다.

청화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문호가 객잔을 떠났어요.”

그 말에 한빈과 설화가 서로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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