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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70화 (270/621)

270화. 독사의 독니는 물린 뒤에야 알 수 있다 (1)

원경은 마치 소름이 돋는다는 듯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한빈은 씩 웃으며 원경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 원경이가 겁이 많아졌구나.”

“…….”

원경은 말없이 물끄러미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은 그저 웃기만 했다.

원경의 특기인 촉은 겁에서 기인한다.

겁이 원래 많기에 촉이 발달한 것이었다.

그렇게 겁이 많은 놈이 전생에 한빈에게 날아오는 칼을 몸으로 막았다.

왜 그랬는지는 한빈도 이해되지 않았다.

한빈은 그 일을 잊을 수 없었다.

그 용기에 대한 상은 이번 임무가 끝나는 대로 줄 예정이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악비광이 웃는다.

“원광아, 칠음현은 황제가 계신 북경보다 안전한 곳이다. 뭐, 쉽게 말하면 소림사보다 더 안전하다고 보면 되지. 그런데 저길 피해 가자고?”

“아, 그게 조금…….”

원경은 말끝을 흐렸다. 녀석의 감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때 뒤쪽에 있던 당기명도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건 악 공자님 말씀이 맞습니다. 돌아가는 것보다는 칠음현에서 하루 정도 머물고 말들의 기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면 칠음현에서는 저희 사천당가도 독을 쓰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당기명의 말은 사실이었다.

칠음현은 원래 고관대작과 황실의 명숙들이 많이 방문하는 관계로, 무력을 잘못 썼다가는 패가망신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원래 계획대로 가도록 하죠.”

한빈은 칠음현이 있는 큰길을 가리켰다.

모두가 흩어지자 한빈은 고개를 돌려 곧게 뻗은 길을 바라봤다.

칠현로로 불리는 이 길은 하남과 호북을 잇는 길이었다.

하남에 하남정가와 소림사가 있다면, 호북에는 제갈세가와 무당파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길은 강호와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길을 정비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칠음현이라는 마을의 사람들이었다.

칠음현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모두가 예인인 마을이었다.

술과 여자가 있는 환락가가 아니고, 술과 음악이 있는 예락가였다.

그런 이유로 유생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소림의 승려나 무당의 도인들도 많이 들르는 곳이 바로 이곳 칠음현이다.

칠음현이라 불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칠음현의 모든 이는 기본적으로 칠현금을 익힌다.

거기에 더해 대부분의 사람이 칠현금 이외에도 각종 악기 연주에 능했다.

일곱 살이 넘으면 천자문 대신 악기를 잡는 것이 칠음현이니, 과연 예인의 마을이라 할 수 있었다.

한빈은 검지로 무릎을 치며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아직 멀었지만, 칠음현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톡. 톡.

한빈이 무릎을 두드리는 뜻은 과연 무엇일까?

동작을 멈춘 한빈은 칠음현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한빈이 보기에는 전서구에서 다음 계획을 실시한다는 곳이 바로 칠음현일 가능성이 높았다.

한빈이 무릎을 친 이유는 가상의 전투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월아를 몇 번이나 놀려야 할지?

아니면 혀로 적을 옭아 넣어야 할지?

한빈은 지금 경우의수를 따지고 있었다.

* * *

이틀 후.

한빈 일행은 칠음현에 들어섰다.

드르륵.

마차 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더 큰 소리가 마차에서 나오는 소음을 덮었다.

칠음현의 명성대로,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어디선가 칠현금의 가락과 부드러운 비파 소리가 귀에 흘러들어 왔기 때문이다.

띵띠. 띵띠디디.

찌이잉. 찡.

동시에 이제까지 만년한설이 쌓여 있는 듯 차가웠던 당기명의 표정도 사르르 녹았다.

뒤를 따르는 사천당가의 무사들도 표정을 풀었다.

예인의 마을답게 칠음현의 사람들은 여유가 넘쳤다.

마차에 앉아서 졸던 설화도 눈을 번쩍 떴다.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거리던 설화가 다급하게 외쳤다.

“저기 공자님! 저는 여기서 내려서 따라갈게요.”

“우리 설화가 어디서 당과의 향기를 맡았나 보네.”

“맡은 게 아니라 봤어요. 저기요, 저기 보세요.”

설화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옆에 있던 청화가 물었다.

“찹쌀떡은 있어요?”

“뭐, 먹거리는 한군데 모여 있곤 하니 저쪽에 있을 거야.”

설화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자 청화가 한빈을 바라봤다.

“공자님, 저도요.”

“그래, 둘 다 다녀와. 마차에서 떨어지지 말고.”

한빈이 손짓하자 설화가 마차 문을 열고 내렸다.

획. 획.

바람 부는 소리가 두 번이 나고 마차 문이 닫혔다.

탁.

동시에 뒤쪽에서 설화와 청화의 외침이 들렸다.

“다녀올게요!”

“다녀오겠습니다, 공자님!”

그들의 외침에 한빈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행렬과 떨어지면 알아서 따라와라.”

한빈의 외침에 당기명이 달려왔다.

“팽 공자님, 제가 저 아이들에게 간식거리를 사 줘도 되겠습니까?”

“사 주려면 사 줘도 되겠지만,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시죠.”

“무리랄 것이 뭐 있겠습니까? 제가 당과와 찹쌀떡도 사지 못할 거로 보이시는지요?”

“그게 아니라 끌려다닐까 봐 그러죠. 뭐, 당 공자가 간다면야 저도 안심하겠습니다.”

“하하, 걱정 놓으시지요. 팽 공자님.”

막 걸음을 옮기려는 당기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팽 공자님의 의복이 바뀐 것 같습니다.”

“아, 분위기를 바꿔 볼 겸 갈아입었습니다.”

“표정을 보니 분위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하, 당 공자께는 못 당하겠습니다. 섬서로 가는 이곳 길목부터는 아군보다 적군이 많을 겁니다. 사천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는 이야기죠.”

“흠, 그것이 의복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정신 놓고 있다가는 상대한테 발가벗겨질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일단 소문이 나기로는 팽가의 사 공자도 아니고 천수장의 장주도 아니고 이름 모를 의원이 함께하고 있다고만 전해졌을 겁니다.”

“음,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당기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빈이 진득한 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곳부터는 하북팽가의 사 공자도 천수장도도 아닌, 의원 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의원 행세라니요? 원래 의원이 아니십니까?”

“네, 그러니 공자라고 하지 말고 그냥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제 이름을 아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테니까요.”

“한빈 의원님이라고요?”

“네, 그렇게 불러 주시면 됩니다.”

“흠, 일단 알겠습니다. 팽, 아니 한빈 의원님.”

“네, 감사합니다. 당 공자님.”

한빈이 짓궂은 표정으로 포권하며 말하자, 당기명이 멋쩍게 웃었다.

“실수하지 않도록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빨리 가 보시지요. 그러시다 아이들 놓치겠습니다.”

한빈이 설화와 청화가 가는 방향을 가리켰다.

“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당기명은 재빨리 설화와 청화를 따라갔다.

한빈이 막 고개를 돌리려는데 당독대도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당기명을 혼자 보내는 것이 안심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 * *

한빈이 도착한 것은 칠천 객잔이었다.

칠천 객잔은 칠음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큰 객잔 중 하나였다.

칠천 객잔에는 다른 객잔과 다른 점이 있었다.

이 객잔만큼은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이나 노래를 부르는 예인들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객잔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칠천 객잔.

손님들은 줄을 서서 그곳에 들어가곤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칠음현의 명물인 칠현금과 비파 소리가 좋아 찾는 손님들도 있었지만, 하남에서 호북으로 가는 최단 거리이기에 할 수 없이 지나가는 상인도 많았다.

칠천 객잔은 이런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한빈이 이 객잔을 고른 것은 칠현금 소리가 싫어서일까?

그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한빈과 협력 관계에 있는 낭인왕 이세명이 운영하는 객잔 중 하나였다.

천 리의 ‘천’과 칠음현의 ‘칠’을 따서 칠천 객잔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사천당가의 마차가 도착하자, 객잔의 점주가 뛰쳐나왔다.

사천당가의 깃발을 확인한 객잔의 점주는 재빨리 일행을 살폈다.

곧, 점주의 시선이 한빈에게 멈췄다.

점주는 한빈의 앞으로 가더니 살짝 고개를 숙였다.

“국주님께 미리 전달받았습니다. 저는 이곳을 맡고 있는 점주 양수민이라고 합니다. 한빈 의원님이시죠?”

점주도 한빈을 의원이라 불렀다.

한빈은 칠음현에서부터 복장과 이름을 바꾸기로 하고 떠나기 전에 낭인왕 이세명과 홍칠개에게 말해 놓은 상태였다.

다른 이들은 못 찾아도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한빈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네, 맞습니다. 환대 감사합니다, 양 점장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귀빈을 위해 별채를 준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점주님.”

한빈이 씩 웃으며 포권하자 점주가 손을 내저었다.

“과분한 예는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한빈 의원님.”

“네, 그럼 편하게 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양 점주.”

한빈은 별채에 들어서며 눈을 가늘게 떴다.

별채는 생각보다 넓었다.

정자와 연못 그리고 화원까지 있었다.

돌과 조각상 그리고 모든 조경이 진법을 고려해 설치된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구석에는 창고까지 있는 것이, 완벽한 요새에 가까웠다.

누군가 공격한다면 별채에서 보름은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된 것 같았다.

뭐, 문제는 저 창고 안에 식량이 얼마나 있느냐는 점이지만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별채의 경계에 있는 다른 건물에도 손님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한빈의 부탁이었다.

여기서 일이 벌어지더라도 다른 자들이 연관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빈이 뒤를 돌아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짐을 푼다. 그리고 소 대주.”

“네, 주군.”

“자네는 사천당가 무사들이 편하게 짐을 풀 수 있게 도와주도록.”

“알겠습니다, 주군.”

소대섭이 자리에서 사천당가 쪽으로 가자, 한빈은 장삼을 바라봤다.

“나머지 인원은 장삼이 조호와 함께 방을 배정한다.”

“알겠어요, 주군. 저만 믿으세요.”

조호가 가슴을 팡팡 치자 장삼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방 배정 하나 하는 것 가지고 너무 흥분한다, 조호야. 누가 보면 전쟁이라도 나가는 줄 알겠다.”

“아, 장삼 아저씨. 주군이 오랜만에 맡긴 임무잖아요. 그런데 흥분이 안 되세요?”

“죄송합니다, 주군. 이놈을 데리고 빨리 일부터 마치겠습니다.”

장삼은 활짝 웃으며 조호의 입을 틀어막고 데려갔다.

“읍, 자, 장삼 아저씨!”

조호는 소리를 질렀지만, 장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누군가 한빈의 곁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형님, 저는 뭐 합니까?”

“너는 왜 그러고 있어?”

“제게도 임무를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넌 그냥 아무 데나 골라서 자. 저기 방 보이지? 저길 혼자 쓴다고 해도 남아. 그런데 뭔 걱정이야?”

“아, 너무하십니다. 다 방을 배정해 주시고 왜 저는 아무 데입니까?”

“그건 비밀이다, 비광아.”

“혹시 돈 내면 가르쳐 줍니까?”

“그건 당연하지, 일단 짐 풀고 나와라. 밥 먹을 준비하자.”

“아, 그러고 보니 뱃가죽이 등에 붙은 것 같네요.”

말을 마친 악비광은 번개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

* * *

한 시진 후.

한빈은 의원 복장을 한 채 객잔에서 나왔다.

한빈의 옆에는 악비광이 휴대용 단창을 등에 메고 거닐고 있었다.

그들이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시간이 지나도 설화와 청화 그리고 당기명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그들이 다칠 것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잘못하면 함정에 빠질 가능성은 농후했기에 이렇게 나온 것이었다.

한빈의 아무 망설임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에 악비광이 물었다.

“형님, 꼭 어디 있는지 아시는 것 같습니다.”

“뭐, 느낌이지.”

“그 느낌이 부럽습니다. 누가 보면 사냥개인 줄 착각할 정도입니다.”

“뭐, 칭찬으로 알아들을 줄 알았냐? 지금 나보고 개 같다고 한 거지? 비광아.”

“헉, 아닙니다.”

악비광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때였다.

한빈이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악비광에게 눈짓했다.

조용히 하고 따라오라는 신호였다.

동시에 한빈이 풀잎 밟는 소리만 내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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