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친절한 주군 (5)
당독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자신의 손에 아까 한빈에게 건네받은 빈 통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한빈이 들고 있는 저 양념 통은 무엇이란 말인가?
당독대가 당황한 채 한빈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한빈 곁으로 설화와 청화가 다가왔다.
“다 떨어졌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어디서 나신 거예요? 저도 뿌려 주세요.”
“저도요.”
청화도 꼬치를 내밀었다.
그들의 대화에 당독대는 급하게 자신의 품을 뒤졌다. 당독대의 얼굴이 마치 중독된 것처럼 새파랗게 변했다.
품속에 있어야 할 삼 단계짜리 독분이 사라진 것이다.
심상치 않음을 느낌 당독대가 재빨리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품에 넣어 둔 통을 떨어뜨린 것 같습니다!”
“뭐라고? 네가 가지고 있는 통이라면, 삼 단계가 아니더냐?”
“네, 그렇습니다.”
“그럼 여기서 뭐 해? 빨리 가서 저들을 말려야지. 아니다, 내가 가겠다.”
당기명의 얼굴도 파래졌다.
발끝에 진기를 모은 당기명의 몸이 화살처럼 튀어 나갔다.
팡.
갑자기 파공성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당기명의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당기명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모두의 고개가 서서히 돌아갔다.
그들의 고개가 멈춘 곳은 한빈과 시녀들이 있는 자리였다.
한빈은 꼬치를 한 입 베어 문 채 황당하다는 듯 당기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빈이 물었다.
“지금 뭐 하십니까?”
“그게 아니라…….”
당기명은 말끝을 흐리며 한빈의 안색을 살폈다.
뭔가 이상했다.
삼 단계짜리 독분이라면 아무리 독에 대해 박식한 의원이라도 반응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빈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그때 옆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공자님, 이거 정말 맛있는데요.”
당기명은 힐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설화가 꼬치를 들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당기명은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토했다.
“헉.”
“왜 그러십니까? 당 공자.”
“그, 그게 아니라…….”
당기명을 말을 맺지 못했다. 청화의 꼬치도 휑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항상 이상하게 마음이 가던 청화가 삼 단계짜리 독분을 섭취해 버리다니.
당기명은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해독약을 가지고 오기 위해서였다.
독분을 섭취하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먼 길을 떠날 때는 항상 해독제를 가지고 다녔다.
당기명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얼마나 땀이 나는지 땀방울은 그의 뺨에서 턱으로 연신 시냇물처럼 흘러내렸다.
뚝. 뚝.
그때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와! 진짜 맛있습니다, 광개 님.”
“거기에 양념도 최고네. 사천당가에 이런 기술이 있을 줄이야.”
“자네 말이 맞아. 암기와 독만 최고가 아니라 요리도 최고네.”
그들의 말에 조호가 술병을 들고 일어났다.
“여러분, 흥분하지 마십시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하다니?”
장삼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천이 달리 요리로 유명한 게 아니지 않아요?”
“오호, 그래 그건 조호 네 말이 맞다.”
장삼이 손뼉을 쳤다.
그때 소대섭이 일어나 한빈에게 포권하며 외쳤다.
“이런 요리를 맛보게 해 주신 주군과 광개 님, 그리고 당 공자님께 감사드립니다!”
동시에 모두가 손뼉을 쳤다.
다급히 해독약을 찾는 당기명의 마음과는 반대로 이들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뒤를 이어 새로 들어온 원경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로 들어온 저희에게도 이런 친절을 베풀어 주신 주군께 감사드립니다.”
말을 마친 원경은 한빈을 향해 포권했다.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기존의 적혈맹호대만 맛보라고 당독대가 갖다준 향신료였다.
그런데 주군인 한빈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눠 준 것이다.
원경에 이어서 새로 들어온 무리 중 한 명이 외쳤다.
“친절을 베풀어 주신 주군을 위하여!”
그가 술잔을 높이 치켜들자, 모두가 똑같이 잔을 들었다.
“위하여!”
그때였다.
새로 들어온 무리 중 하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이렇게 어지럽지?”
“그러게 말이야. 나도 어지러운데…….”
맞장구치던 원경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기명의 손을 더욱 빨라졌다.
해독약을 둔 곳이 생각이 안 났던 것이다.
당기명은 짐을 다 풀어헤치고 해독약을 찾았다.
그때였다.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당기명은 입술을 깨물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묘하게 꼬일 줄은 몰랐다.
반 단계짜리 독분을 먹은 저들도 저런데, 한빈과 시녀 둘은 조금만 늦는다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한빈이 있는 쪽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공자님, 더 뿌려 주세요.”
그것은 청화의 목소리였다.
순간 당기명은 자신이 한빈이 들고 있는 삼 단계짜리 양념 통을 그대로 두고 해약을 찾기 위해 달려온 것을 깨달았다.
당황한 당기명과는 다르게 한빈은 사람 좋은 얼굴로 청화를 바라봤다.
“흠, 그러다 배탈 나는 거 아니야?”
“괜찮아요.”
“그럼 조금만 더 먹거라.”
툭툭.
한빈이 꼬치에 독분이 가득 쌓이도록 뿌렸다.
“맛있어요.”
“그래, 이번 것만 먹는 거야. 더 먹으면 배탈 난다.”
한빈이 고개를 내젓자 이번에는 설화가 손을 내밀었다.
“저도요.”
“그래, 설화 너도 여기까지다.”
말을 마친 한빈은 남은 독분을 자신의 술병에 털어 넣었다.
그 모습에 설화가 외쳤다.
“공자님! 욕심이 많아요.”
“미안하다. 나누는 건 여기까지다.”
말을 마친 한빈은 술을 들이켰다.
목울대가 쉬지 않고 시원하게 꿀렁였다.
숨도 쉬지 않고 술을 들이켜던 한빈이 탄성을 질렀다.
“좋구나, 좋아!”
“아, 너무하세요.”
청화가 투정을 부리자 한빈이 손을 내저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당 공자에게 또 얻어 오마.”
“정말요?”
청화가 눈을 빛내자 한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미소 짓던 한빈은 조용히 허공을 올려다봤다.
[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습니다. 만독지체에 한 걸음 다가섰습니다.]
[독(毒) : 삼십사(三十四)]
이번 일로 독의 구결이 삼십사 개로 늘어났다.
한빈은 텅 빈 양념 통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사천당가에 가면 이 양념을 많이 얻어야 할 것 같았다.
한빈은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다.
한빈의 예상대로 소대섭과 장삼 그리고 조호는 아무 일도 없었다.
다만, 새로 들어온 원경 일행은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소대섭 일행은 천독과의 대결에서 어느 정도 독에 대한 내성을 기를 수 있었다.
그들뿐 아니라 이 자리에 없는 적혈맹호대도 이 단계의 독분 정도는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사천당가의 일반 무사들보다는 독에 대한 면역이 뛰어나다는 것.
한빈이 사천당가의 독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전생에 귀검대를 운용했을 때 독을 가르치기 위해 특별 교관을 부른 적이 있다. 그때 온 교관이 사천당가의 사람이었다.
평상시라면 독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겠지만, 그때는 마교와의 전쟁이 한창이었다.
그런 이유로 사천당가에서 온 교관은 가문의 교육 방법을 아낌없이 털어놓았다.
그래서 한빈은 저들에게 적응할 수 있을 만큼의 독을 제공했다.
천독과의 대결 당시 마음껏 독기를 호흡했던 설화는 아마도 사 단계 정도의 독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청화는?
공독지체 앞에서 독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십 단계가 아니라 그보다 더 높은 단계의 독이 있다고 해도 맛있게 흡수할 수 있는 것이 공독지체니 말이다.
그때였다.
한빈의 눈앞에 당기명이 나타났다.
식은땀을 흘리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많이 아픈 것 같았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당 공자님.”
“그 통을 제게 주시죠, 팽 공자님.”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 통에 든 양념은 대체 어디로…….”
통을 흔들어 본 당기명의 눈빛이 흔들렸다.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나머지는 제가 다 먹었습니다.”
“헉,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않으면 제가 이러고 있겠습니까?”
“지, 진짜 괜찮으십니까?”
당기명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조금 떨어져 있던 악비광이 소리쳤다.
“독이다! 모두 호흡을 멈춰라!”
악비광의 외침에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당기명은 움찔했지만, 한빈은 아무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우리 악 아우가 한 박자 늦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뭐, 그렇다는 말입니다.”
“흠.”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좋은 것도 찾아야 하지만, 때로는 몸에 해로운 것도 먹어 봐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사람을 살릴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해로운 음식에도 면역이 생기더라고요.”
“아.”
당기명은 탄성을 흘렸다.
한빈이 독분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한빈이 만독지체를 완성하기 위해 독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의원으로서의 사명감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그때 여기저기서 끙끙대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 소리에 당기명은 어쩔 줄을 몰랐다.
아직 해독약을 찾지 못한 것이다.
순간 한빈이 씩 웃으며 말했다.
“다 저러면서 크는 겁니다. 이게 모두 강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재산이 되는 거고요.”
“…….”
당기명은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이건 친절이 아니라 악랄이었다.
수하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데도 그걸 수련으로 바라보다니 말이다.
사천당가도 저 정도로 몸부림치면 해약을 주는 것이 관례였다.
* * *
반나절이 지나서야 독분이 만들어 낸 아수라장은 잠잠해졌다.
자신의 삼 단계짜리 통을 되찾은 당독대는 멀리서 한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존경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삼 단계짜리 독분을 섭취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행을 했던가?
삼 단계를 먹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보면 수많은 독초를 직접 맛봤던 것이 분명했다.
그 정도로 연구에 몰두하는 의원이라면 분명 믿을 수 있었다.
희열에 차서 주먹을 꽉 쥐고 있을 때, 당독대의 수하가 조용히 속삭였다.
“대주님의 독분이 잘못된 게 아닐까요?”
“그게 무슨 말이냐?”
“아무리 천하제일 의원이라고는 하지만, 삼 단계짜리 독분을 먹고 멀쩡할 리 없지 않습니까? 한발 양보해서 의원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시녀들도 멀쩡하다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게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더냐?”
당독대는 수하에게 빈 통을 내밀었다.
수하는 통을 바라보더니 씩 웃었다.
“제가 증명해 보겠습니다.”
“어떻게 증명하겠느냐?”
“이리 줘 보십시오.”
수하는 조심스럽게 빈 통의 뚜껑을 열었다.
“뭐 하는 것이냐?”
“아직 독분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말을 마친 수하는 손가락으로 독분을 쓱 문질렀다.
손가락에는 제법 많은 양의 독분이 묻어 나왔다.
수하는 미소를 띤 채 손가락을 입 속으로 쑥 넣었다.
손가락에 다시 나왔을 때는 독분은 사라져 있었다.
당독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하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삼 단계를 섭취할 수 있는 의원이라면 화타의 환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통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일 단계나 삼 단계나 맛은 다 똑같았으니 말이다.
팔짱을 끼고 수하를 지켜보던 당독대의 눈이 커졌다.
수하가 입에서 거품을 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털썩.
수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당독대가 외쳤다.
“큰일 났습니다, 공자님! 여기…….”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앞에 신형이 나타났다.
당독대는 당연히 그가 당기명일 거라 생각하고 말을 이었다.
“당 공자님, 이놈이 글쎄…….”
당독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예상과는 달리 당기명이 아닌 한빈이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한빈이 물었다.
“제가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
당독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빈이 사람 좋은 얼굴로 쓰러져 있는 무사의 완맥을 잡았다.
* * *
같은 시각, 사천으로 향하는 하북팽가의 행렬.
하북팽가의 행렬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팽혁빈이었다.
팽혁빈은 장하의 나루터를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