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258화 (258/621)

258화. 필유아사(必有我師) (5)

눈썹을 꿈틀대던 독고련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네가 왜 사도련을 신경 쓰느냐!”

그녀의 검이 더욱 빨라졌다.

한빈이 검을 휘두르던 이전과는 다르게 오히려 독고련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한빈의 숨소리는 이전과 똑같았다.

한빈은 여유 있는 모습으로 검을 튕겨 내며 답했다.

챙.

“사도련의 무사가 죽으면 제게 책임을 물으실 게 아닙니까?”

“이놈이 끝까지…….”

“그쪽 밟지 마시죠. 그쪽은 사천당가 직계입니다.”

“네가 뭔 상관이냐?”

독고련이 미간을 좁히며 검을 내리쳤다.

챙!

한빈이 받아치며 말을 이었다.

“어이쿠, 지금 밟은 진각으로 갈비뼈 하나는 나갔겠습니다. 최소한 정사대전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저 같으면 강호에 전쟁 같은 건 없을 테지요.”

“입만 살았구나.”

어둠 속에서 검이 내는 불꽃이 점점 늘어났다.

챙, 챙.

누가 보면 불꽃놀이라 생각할 정도로 그들의 검은 계속해서 불꽃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불꽃 속에서 한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때가 됐다는 듯.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상대가 감탄할 만큼 실력을 보여 주면 되었다.

‘금상첨화.’

한빈은 오른팔에 금상첨화의 기운을 불어 넣었다.

순간 혈맥 속 진기가 오른팔로 휘몰아쳤다.

우우웅.

노도처럼 몰아치는 용린의 기운.

그게 시작이었다.

한빈의 검이 반 박자 빠르게 움직였다.

획!

챙!

독고련의 검도 한빈의 속도에 맞춰 따라오고 있었다.

불꽃이 어둠 속에서 화려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챙!

한빈은 구걸십팔보 대신 다른 초식을 펼쳤다.

이제 더는 빠른 발이 필요가 없었다.

단숨에 승부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독고련의 검이 묘한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검기가 진득하게 맺힌 흑야칠절검의 한 부분에서 검은색 기운이 흐릿하게 지워진 것이었다.

그 상태로 검이 맞부딪쳤다.

챙!

동시에 흑야칠절검이 꺾였다.

꺾인 검날이 한빈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흑야칠절검은 검이자 채찍이었다.

한빈도 흑야칠절검을 상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생에는 입으로만 그녀를 상대했으니까.

위기의 순간.

사삭.

한빈의 몸이 사라졌다.

이건 금선탈각의 수법.

독고련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이형환위의 수법이 아니었다.

자신의 시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이대로라면 시험이고 뭐고 상대를 따라잡을 수 없다 생각했다.

거기에 독고련을 희롱하듯 상의는 그대로 두고 알맹이만 빠져나갔다.

물론 그것은 착각이었다.

한빈이 쓴 금선탈각은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초식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마지막 수를 쓰기로 했다.

그녀가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외쳤다.

“이건 내 흑야검 중 마지막 비기! 흑야만화검(黑夜滿花劍)이다. 일각 내에 내 무복의 옷깃 하나만이라도 만진다면 네 승리다. 그때까지 도망만 친다면 그때부터는 나와 너는 원수지간이다!”

이건 선전포고였다.

시간을 끌면 협상 없이 원수지간이 될 것이라는 엄포.

그녀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었다.

말을 마친 독고련은 검에 주입했던 진기를 거둬들였다. 아니, 진기를 거둬들인 것이 아니라 모든 진기가 검 끝에 모였다.

검을 지탱하고 있던 진기가 검 끝에 모이자 흑야칠절검이 채찍처럼 늘어졌다.

그 상태로 독고련을 흑야칠절검을 돌리기 시작했다.

마치 아이가 밧줄을 돌리듯 몸 주변으로 돌렸다.

검은 연꽃 하나가 그녀의 몸 주변에 피어난다.

이것이 흑야칠절검을 쓰는 독고련의 무서운 면모였다.

환술과 검술을 적절히 조합한 것도 모자라, 검이 되었다가 채찍이 되었다 하는 변화무쌍한 보검으로 상대를 찍어 누를 수 있었다.

검기로 고정해 놨던 흑야칠절검이 채찍이 되자, 마치 검날이 일곱 개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 일곱 개의 검날이 독고련의 주변을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돌자, 보다 많은 연꽃을 만들어 냈다.

그것도 잠시, 수많은 연꽃은 하나의 큰 연꽃이 되었다.

그 연꽃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한빈은 그 연꽃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건 어찌 보면 마지막 시험이었다.

절대적인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 안으로 들어오라니!

힐끔 독고련을 본 한빈은 바로 바닥에 쓰러진 무사 중 한 명의 옷을 벗겼다.

금선탈각으로 상의를 남겨 놓고 튀는 바람에 상체가 허전했던 것이었다.

옷을 다시 챙겨 입고 나서 독고련이 만들어 낸 연꽃 소용돌이를 보고 있자니, 하나의 틈이 보였다.

그것은 연꽃이 만들어 내는 소용돌이의 중간 정도에 있었다.

그곳까지 파고들어 가는 것이 문제였다.

연꽃이 장악하고 있는 공간은 다섯 걸음.

빈틈은 독고련으로부터 세 걸음.

두 걸음의 간격을 극복해야 했다.

그때 뭔가 생각난 한빈은 힐끔 아래를 바라봤다.

바로 아래에는 누군가 쓰다 남은 박도가 떨어져 있었다.

한빈은 재빨리 박도를 잡았다.

왼손에 박도를 잡은 한빈은 장난꾸러기 같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새로 얻은 초식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부창부수.’

쌍검술을 쓸 수 있다는 초식이었다.

거기에 방금 얻은 가문의 도법인 오호단문도.

기존의 오호단문도가 아닌 완벽한 오호단문도라고 비급이 말해 줬으니 지금이 시험해 보기 적당한 기회라 생각한 것이었다.

‘전광석화’, ‘부창부수’, ‘오호단문도.’

세 가지 초식을 머릿속에 띄우자, 용린의 기운이 양팔에 골고루 퍼졌다.

거기에 한 가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동시에 용린검법의 초식과 오호단문도의 초식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마치 무당파의 양의심법을 일으킨 것처럼 동시에 두 가지 무공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빈은 천천히 독고련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었다.

한빈이 원하는 것은 흑야만화검의 무력화.

팅, 팅.

한빈이 잡은 박도가 연꽃을 튕겨 내기 시작했다.

슝.

한빈의 월아가 그녀의 간격을 비집고 들어갔다.

챙!

하지만, 그녀가 만들어 낸 연꽃잎에 막혀 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수십 번의 공방을 주고받았을 때, 이상한 글귀가 나타났다.

[부창부수의 새로운 효과가 발견되었습니다. 새로운 효과로 용린검법과 하나가 된 오호단문도를 합성해서 일회용 초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합성 시 필요 내공은 일각에 십 년입니다. 합성은 열두 시진에 한 번입니다.]

한빈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비급이 반짝이며 글귀를 전했다.

[오호단문도와 용린검법이 만들어 낸 초식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용호상박(龍虎相搏). 호랑이의 발톱은 능히 다섯 개의 문을 한 번에 박살 낼 수 있습니다. 호랑이가 빈틈을 만들고 용이 여의주를 물고 들어갑니다.]

한빈은 바로 임시로 만들어 낸 초식을 사용하기로 했다.

‘용호상박.’

순간 한빈의 월아와 박도가 하나가 된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법이면서 도법.

도법이면서 검법이 된 한빈의 초식이 연꽃잎 사이로 점점 파고들기 시작했다.

병장기 소리가 아닌 음악 소리처럼 들렸다.

챙, 티르릉.

그냥 단독 연주가 아닌 악사들의 합주처럼 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빈은 간발의 차로 연꽃의 소용돌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한 걸음.

두 걸음.

드디어 독고련이 피워 내는 흑야만화검의 빈틈에 다다랐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빈틈이 아니라 진청색 점이었다.

혹시?

의문도 잠시, 한빈은 월아를 그 사이로 찔러 넣었다.

슝!

동시에 글귀가 나타났다.

[용안(龍眼)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지급(池級) 구결 금(錦)을 획득하셨습니다]

[지급(地級) - 만(滿), 금(錦)]

이럴 수가?

한빈이 멍하니 비급에 나타난 글귀를 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몸을 감싼 연꽃 소용돌이가 멈추고 서서히 흑색 꽃잎이 걷혔다.

한빈은 검을 내뻗은 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독고련이 한빈의 월아를 부채로 서서히 눌렀다.

강압적인 동작이 아니라 쓰다듬듯 누르고 있었다.

한빈이 독고련을 바라봤다.

독고련이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네가 난제를 풀었구나.”

“난제라니요? 단순한 시험이 아니었습니까?”

“이건 내 사부도 못 푼 문제였다. 그리고 내 사부를 상대로 나도 해내지 못한 것이고. 그런데 힘이 아닌 지혜로 풀다니, 생각지도 못했다.”

“뭐, 제가 머리가 좀 있는 편입니다. 그럼 시험은 끝난 겁니까? 선배님.”

“그렇다고 치지. 일단 적룡대협이란 분의 후인이라는 건 인정하마. 네가 동일인이라는 가능성의 일 할은 남겨 두겠지만 말이다.”

“일단 인정해 주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한빈은 어깨를 으쓱하자 독고련이 말했다.

“혹시 혼처는 정해 놨느냐?”

“그걸 왜 물어보십니까?”

독고련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빈을 바라봤다.

“내게 과년한 손녀가 하나 있는데……. 내가 그 아이에게 약속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흑야만화검을 파훼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맺어 주겠다고 우리 손녀에게 말해 놨다.”

“헉.”

“어째 내가 흑야칠절검을 처음 빼어 들었을 때보다 놀란 표정이구나. 좋아서 그러는 거겠지?”

“뭐, 선배님께 손녀가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오호라, 화제를 돌리고 싶다는 얘기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말해 보아라.”

“저는 강남 사도련이 강북 사도련을 흡수하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네가 원하는 것은?”

“제가 원할 때 힘을 실어 주시면 됩니다.”

“네가 원할 때라? 백지어음을 달라는 말처럼 들리는군.”

“…….”

“내가 잘못 봤단 말인가? 내 손녀와 혼약을…….”

“선배님, 혹시 말입니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것이냐?”

“장기 좋아하십니까?”

한빈은 씩 웃으며 독고련을 바라봤다.

이건 한빈이 준비한 마지막 계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독고련의 눈빛에 호기심이 감돈다.

한빈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뒤돌아서 걸어갔다.

그 모습에 독고련이 물었다.

“어딜 가느냐?”

“잠시만 계십시오.”

한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향했다.

한빈이 향한 곳은 마차였다.

그 모습에 독고련이 물었다.

“혹시 전서구를 띄우려는 것이냐?”

“아닙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한빈은 손을 휘휘 저으며 마차로 들어갔다.

잠시 후. 한빈은 독고련의 앞에 반쪽짜리 천궁을 들고 나타났다.

반쪽짜리 천궁은 독고련의 눈에는 커다란 정사각형 현철 조각으로밖에 안 보였다.

한빈은 반쪽짜리 천궁을 독고련의 앞에 놨다.

쾅.

제법 큰 소리가 울렸지만, 독고련은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다만, 앞에 커다란 현철 조각을 내려놓은 의도가 궁금하다는 듯 한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독고련과 시선이 마주친 한빈이 천궁의 윗부분을 쓸어 내며 물었다.

“선배님, 장기 좋아하십니까?”

말을 마친 한빈은 힘껏 천궁의 윗부분을 불었다.

먼지가 가시자 달빛을 받은 천궁의 윗부분에는 어렴풋하게 장기판의 모습이 나타났다.

바둑판이 새겨진 나머지 부분은 벌써 열쇠로 사용했었다.

한빈은 남은 부분에 독고련을 위해 새로 장기판을 새겨 넣은 것이었다.

독고련이 눈을 빛냈다.

“오호.”

한빈은 독고련의 반응에 품속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내어 아무렇지 않게 주머니의 내용물을 장기판 위에 풀어놨다.

장기판 위에는 현철로 된 장기짝이 쏟아졌다.

데구르르.

독고련의 눈이 커졌다.

현철로 만든 장기짝은 그녀도 처음 봤던 것이다.

한빈은 그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기짝을 하나씩 올려놨다.

차(車), 졸(卒), 포(砲) 등 필요한 장기짝을 올려놓고 다른 장기짝을 다시 가죽 주머니에 넣고 장기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제가 내는 문제입니다.”

“내가 문제를 냈으니 너도 응대를 하겠다는 것이냐?”

“이건 어찌 보면 제 선물입니다.”

한빈의 말에 독고련이 장기판 위의 말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그녀의 눈이 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