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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57화 (257/621)

257화. 필유아사(必有我師) (4)

하얀 무복에 하얀 머리.

그리고 피부마저 하얗게 보이는 노인은 지금 등선해도 이상하지 않은 정도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노인은 팔짱을 끼고 한빈을 바라봤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사건을 만든 노인은 사내가 아닌 여인이라는 점이다.

뭐, 한빈은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던 여고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참을성이 많은 놈이구나.”

“제가 좀 그렇습니다.”

“당황하지 않는 것을 보니 내가 누군지 아는 것 같구나.”

“강남 사도련의 련주님은 아니신 게 확실하고…….”

“나하고 스무고개를 하자는 것인가?”

“사도련주의 누님이신 독고련 선배 아니신가요?”

“흠.”

여고수가 희미하게 헛기침을 하자 한빈이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제가 맞혔나 보군요.”

“내 이름을 알다니, 조금은 놀랍군.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저기 있는 산서삼살을 부리는 것을 보면 사파의 고수실 테고 짱돌을 던져서 바위를 산산조각 내실 분은 강남에서 련 선배밖에 더 있겠습니까?”

한빈은 물레방아 돌아가듯 쉬지 않고 입을 털었다.

사도련의 독고련.

전생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무력의 수준은 무림삼존의 아래.

이 지역에서는 절대자였다.

한빈의 지금 수준에서 상대의 능력이 측정되지 않는 것을 보면 한참 윗줄이라는 이야기였다.

현경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화경 중에도 꽤 높은 수준.

이길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했다. 이긴다 하더라도 이익이 없다.

그녀는 한빈이 얻어 가야 할 게 많은 자였다.

사도련주를 좌지우지하는 강남 사도련 최고의 고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은 검날을 세우기 바쁘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수련을 거르면 검이 무뎌진다고 생각한 그녀는 사도련의 일 대신 개인의 수련을 택했다.

그 결과 지금의 경지에 올라선 것이다.

독고련이 눈을 가늘게 뜨며 한빈이 내뱉은 호칭을 되새김질했다.

“선배라…….”

한빈이 활짝 웃으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동경이 있다면 얼굴을 보십시오. 그게 어디 육십 먹은 분의 피부입니까? 어르신이라고 하는 것은 선배님을 욕보이는 것이지요.”

한빈의 능청이 한 단계 더 올라갔다.

전생에 몇 번 마주한 바가 있기에, 한빈은 그녀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외모를 치켜세워 주는데 싫어할 여인이 있던가?

그것은 등선을 앞둔 아미파의 여자 도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거늘, 독고련이 싫어할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독고련의 입꼬리가 보기 좋게 올라간다.

“허허. 잔혈마도를 죽였다 들었는데, 검술이 아닌 혀로 죽인 모양이구나.”

독고련의 말에 한빈은 살짝 놀랐다.

적룡대협과 자신이 동일인이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빈은 표정의 변함 없이 답했다.

“잔혈마도를 죽인 건 제가 아니라 적룡대협이란 분이지요. 저는 그분과 관계가 있는 후인일 뿐이고요.”

“잡아떼는 것도 고수구나. 내가 왜 왔는지 아느냐?”

다시 한번 묻는 것이, 천년 묵은 능구렁이가 서너 마리는 들어가 있는 듯했다.

하지만, 떠보는 말에는 이제 답할 필요가 없었다.

표정을 보면 벌써 해답을 얻은 모양이다.

한빈이 원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한빈은 그의 질문에 천천히 답했다.

“큰 자금을 저를 보고 굴리시는데, 확인을 안 하실 수가 있나요? 사도련주이신 독고진 어르신이야 마휘 군사를 철석같이 믿을 테고, 상황을 의심할 분은 독고련 선배님밖에 없겠지요.”

한빈의 말대로였다.

이 부분이 강남 사도련주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었다.

하라는 대로 하라 해 놓고 옆에서 왜 그래야 했냐 훈수를 두니 말이다.

강남 사도련과 협상을 하려면 사도련주가 아닌 독고련을 만나야 했다.

독고련의 입꼬리가 살짝 더 올라갔다.

“그럼 내가 너를 시험하러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말 같구나.”

“네, 맞습니다.”

“그런데도 숨어 있었다고?”

“련 선배가 제 수하들에게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 주시는데, 어찌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소중한 경험을 했다면 응당 대가도 치러야겠지?”

“말씀을 듣고 보니 선배님께서는 길 가다 날아온 짱돌에도 감사하다고 하시겠습니다. 독고련 선배님은 사도련보다는 소림이나 도가의 문파가 어울리시는 듯합니다.”

이쯤 해서는 살짝 감정을 흔들어 놔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독고련이 미간을 좁힌다.

“말하는 게 목이 두 개인 듯하구나. 다른 목 하나는 다른 곳에 맡겨 놨고.”

“설마 저를 죽이시겠습니까? 사도련에서 투자한 게 얼마인데요.”

“내가 너를 여기서 죽이면 네가 적룡대협이란 작자의 후인이란 증거도 없어질 테지. 그리고 네 말에 따라 사도련이 좌지우지되는 일도 없을 테고.”

“과연 그럴까요?”

“내가 앞서 말한 것이 사실이 아니더냐? 그런데 너는 아직 여유만만하구나.”

“선배님이 저를 죽이지 않으시리라 확신하니까요.”

“허허, 내가 설명을 했거늘 내가 너를 죽일 이유가 없는 것처럼 말을 하는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이곳으로 왔다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

“전서구를 통해서 아셨겠죠? 아래에 있던 사도련의 정찰대가 이쪽으로 마차가 온다는 걸 보고해 왔겠죠.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기 보십시오.”

“어디를 말이냐?”

“제 마차 말입니다.”

“마차라…….”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있었던 비둘기가 없을 겁니다. 제 마차 지붕 위에 원래 몇 마리의 비둘기가 있었을까요?”

독고련은 한빈에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

독고련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빈이 가리킨 마차의 지붕을 바라봤다.

평소에 철저하기로 소문난 그녀였지만, 지붕 위에 비둘기가 몇 마리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비둘기가 한 마리도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독고련의 미간이 작은 주름이 생겼다, 없어졌다 반복했다.

몇 번 표정을 바꾼 독고련이 말했다.

“전서에 뭐라 쓴 것이냐?”

“만약에 제가 죽으면, 사도련이 이익에 눈이 멀어 적룡대협의 후인을 죽였다고 밝히라 했습니다.”

“머리 좀 썼구나. 내가 만약 여기서 너를 보내고 나중에 네 목을 딴다면?”

“전서에는 이곳이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제가 죽는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여 놨습니만…….”

“…….”

“그냥 후배의 재롱이라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배님.”

“그렇다면 내가 지금부터 확인해야겠구나.”

“적룡대협의 후인이라는 것을 말입니까? 아니라면 어쩌시려고요?”

“네 팔 하나는 내가 가져가겠다, 문답무용!”

“강자지존!”

한빈이 외치며 씩 웃었다.

그 웃음이 사라지기도 전에 한빈은 월아를 뽑았다.

스릉.

월아가 달빛을 받아 예기를 빛내자, 독고련이 씩 웃으며 오른손에 든 부채를 손으로 탁 쳤다.

동시에 부챗살이 스르륵 분리되며 흐트러졌다.

독고련은 부챗살을 흩뿌리듯 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동시에 흐트러졌던 부챗살이 일렬로 쭉 내려앉았다.

그 모습에 한빈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상대가 진심으로 싸움에 임할 것을 알아챈 것이다.

독고련이 말했다.

“내 병기는 흑야칠절검. 평소에는 부채 모양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진기를 불어 넣게 되면 온전한 검의 형태를 띠지.”

독고련이 흑야칠절검에 진기를 불어 넣자 일곱 개의 관절에 틈이 없어졌다.

마치 자석처럼 탁탁 붙자 누가 봐도 쫙 뻗은 흑색의 검이 되었다.

“…….”

한빈이 말없이 바라보자, 독고련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아마 처음 들어 봤을 것이다.”

“뭐, 처음 들어 봤습니다.”

한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은 거짓이었다.

전생에서는 들어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한빈이 고개를 끄덕이자 독고련이 말을 이었다.

“내 검의 형태를 본 자는 모두 저세상으로 떠났으니 말이다. 절강의 명물인 흑철로 만든 명품이니 한번 맛보도록 하거라.”

한빈이 슬쩍 웃었다.

저 말이 진짜라면 흑야칠절검에 살아남은 첫 번째가 한빈 자신이 될 테니까.

뭐, 전생에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방법이 달랐다.

무력이 아닌 지략으로 상대했으니까.

지금은 저 여고수에게 무력을 시험받아야 하는 상황.

한빈이 진지한 눈빛으로 독고련의 검을 바라봤다.

“그 검이 그 유명한 흑야칠절검이군요. 세상에 남아 있으려면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어야겠습니다, 선배님. 제 검은 월아라 합니다. 특히 오늘처럼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면 날카로운 어금니를 드러내지요. 한번 물면 좀처럼 놓는 법이 없으니 조심하시지요.”

“허, 입만 살았구나.”

“입만 산 게 아니라 제 검도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선배님.”

한빈이 슬쩍 한 발을 내디디자, 독고련도 한 발 나섰다.

한빈이 그 상태에서 동작을 멈추자, 독고련은 고개를 갸웃했다.

“들어오겠다더니 무슨 일이냐? 왜 그러고 있느냐?”

“원래 호랑이 입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오호라, 겁이 나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가마.”

말을 마친 독고련이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눈을 빛냈다.

그러고는 기합 소리도 없이 한빈을 향해 짓쳐 들었다.

얼마나 빠른지 바닥에 흩어진 도토리와 나뭇잎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휙.

짓쳐들어오는 독고련을 보는 한빈이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독고련도 만만치 않았다.

독고련은 속도의 변함 없이 한빈을 따라오고 있었다.

한빈은 지금 독고련의 속도에 기가 막힐 뿐이었다.

구걸십팔보를 오 성 이상 펼치고 있는데도 간격이 넓혀지지 않고 있었다.

구걸십팔보를 극성으로 펼칠 수는 없었다.

그건 이 싸움에서 도망가겠다는 표현이니 말이다.

한빈이 독고련과 협상하기 위해서는 무력을 인정을 받아야 했다.

더는 도망칠 수는 없는 일.

바닥을 확인한 한빈은 재빨리 도토리를 주웠다.

얼마나 도토리를 던졌는지 사천당가가 쓰러진 곳 근처에는 흙이 안 보일 정도였다.

손안에 도토리 한 움큼을 쥔 한빈은 뒤쪽에서 쫓아오는 독고련을 향해 던졌다.

‘백발백중.’

파바팍.

도토리가 독고련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쫓아오던 독고련은 가볍게 한빈이 던진 도토리를 막아 냈다.

툭. 툭. 툭.

한빈이 던진 도토리를 받아치던 독고련은 눈매를 좁혔다.

한빈의 도토리를 던진 수법이 황당했기 때문이다.

한빈이 던진 도토리는 위력적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 반대였다.

독고련에게 날아온 도토리는 이미 가루가 되어 있었다.

내공으로 가루가 된 도토리를 감싼 후 던진 것이다.

왜 이런 짓을?

독고련은 바로 한빈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화르르.

가루가 된 토토리는 이내 연기처럼 주변으로 퍼졌다.

그렇지 않아도 어두컴컴한 산중에서 연막이라?

신기한 것은 기척이 완벽히 사라졌다는 점이다.

독고련은 주변을 살피다가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쥐 새끼처럼 숨었구나. 이래도 안 나오는지 한번 보자.”

말을 마친 그녀는 흑빛의 검을 들어 올렸다.

“셋 셀 때까지 안 나오면 이놈의 목을 베지.”

그녀는 쓰러진 적혈맹호대 대원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하나, 둘!”

그녀는 셋을 생략한 채 쓰러진 자를 향해 가차 없이 검을 꽂았다.

슝.

그 순간, 갑자기 발밑에서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독고련은 내려 꽂으려던 검을 돌려 서늘한 기운을 막았다.

챙.

그때부터였다.

한빈의 검이 쉴 새 없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챙, 챙.

마치 누구의 검이 빠른가를 시험하자는 듯 도발해 오는 한빈의 모습에, 독고련은 피식 웃었다.

“피가 차가운 놈인 줄 알았는데 수하는 아끼는군?”

“내 수하였으면 그냥 놔뒀을 겁니다. 그런데 사도련의 무사라서 할 수 없이 나섰죠.”

“…….”

“빚 하나 지셨습니다, 선배.”

독고련의 눈썹이 꿈틀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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