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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48화 (248/621)
  • 248화. 동행 (2)

    한빈은 재미있다는 듯 먼지구름을 바라봤다.

    지금 다가오는 이들에 대한 한빈의 판단은 간단했다.

    강호에서 마주치는 자의 대부분이 적 아니면 아군이 아니던가?

    어정쩡한 자들마저 차후에는 적 아니면 아군이 될 자였다.

    뭐, 확률은 반반.

    한빈이 다가오는 먼지구름을 보며 팔짱을 끼고 있을 때였다.

    황토색 먼지구름이 강가에 있는 거지 무리를 지나쳤다.

    순간 여기저기서 욕설이 들리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소란이 일어난 것이었다.

    “아쒸! 누구야?”

    “누가 내 밥을 짓밟고 지나갔어!”

    “와, 이런 미친 것들이!”

    분명 거지들의 아우성이었다.

    다소 거친 욕설이 울리자 먼지구름이 멈췄다.

    말발굽 소리로 더는 들리지 않았다.

    뿌연 먼지구름이 걷히기 전까지는, 거지들의 욕설도 말을 탄 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빈은 조용히 먼지구름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마치 경극의 다음 장면을 기다리는 눈빛을 한 한빈은 입맛까지 다셨다.

    거지 중 몇몇에게 묘한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거지들 근처를 지나올 때는 못 느꼈던 무림인의 기척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저 거지들은 한빈의 이목마저 속였다는 점이었다.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을 속일 수 있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

    즉, 저들은 보통 거지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개방도가 아닌데 무공을 익힌 데다, 무공을 익혔다는 티까지 내지 않는 자들이라?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들이 거지로 위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 더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다가온 자들은 과연 누굴까?

    모든 호기심이 한빈을 자극했다.

    * * *

    황토 구름이 걷히자 당기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욕설이 들려온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먼동이 트는 새벽부터 거지들이 몰려 있었다.

    당기명은 화를 억누르고 상대를 살폈다.

    허리에는 어떤 매듭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 개방의 거지는 아니었다.

    옷이 그리 많이 상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거지가 된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거지는 거지.

    개방도가 아닌 거지가 사천당가의 깃발을 보고 욕설을 뱉었다라?

    무지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모욕으로 다가왔다.

    당기명이 말에서 내려서 거지들을 바라봤다.

    “누가 사천당가의 뒤통수에 대고 욕을 했느냐?”

    “…….”

    거지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당기명이 봤을 때는 기세에 눌린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욕을 할 당시에는 사천당가의 깃발을 못 봤을 터.

    지금 자신의 신분을 밝힌 이상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당기명은 저들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여기까지라 생각했다.

    사천당가도 정파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반 백성을 단죄한다면, 사파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이 당기명의 결론이었다.

    당기명이 주변을 보고 외쳤다.

    “다시 출발한다!”

    말을 마친 당기명이 말고삐를 틀어쥐었을 때였다.

    뒤쪽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잠깐!”

    그 목소리에 당기명은 고개를 돌렸다.

    상대는 보통 남자보다 머리 두 개는 더 달고 있는 것처럼 큰 체격이었다.

    한마디로 힘 좀 쓸 것 같은 거한.

    그 거한이 긴 막대를 들고 더벅더벅 걸어 나왔다.

    하지만, 거지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당기명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뭐지?”

    “남의 밥상에 흙을 뿌려 놓고 갔으면 보상은 해야지. 안 그래?”

    “여기에 밥상이 어디 있지?”

    “눈이 있으면 잘 둘러보라고. 여기 안 보여?”

    거구의 거지는 손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모닥불에 적당히 구워진 고기 꼬치가 있었다.

    하지만, 당기명은 어이가 없었다.

    “미안하게 됐지만, 거지가 먼지 타령을 하는 건 처음 보겠군.”

    “흠, 거지라고?”

    “그럼 자네들이 거지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얼핏 보니 개방도도 아니니 무림인이라고 보기는 뭐하고…….”

    “눈깔이 삐어도 단단히 삐었어. 내가 어딜 봐서 거지로 보이지?”

    커다란 덩치의 거지는 턱수염을 씰룩이며 당기명을 노려봤다.

    당기명은 재빨리 말에서 내렸다.

    탁.

    당기명은 한 발 한 발 내공을 실어 거지에게 다가갔다.

    일 검에 목을 쳐 버리고 싶을 정도로 살심이 올라왔지만, 상대는 일반 백성이었다.

    무림인도 아닌 일반 백성을 상대로 정파가 검을 휘둘렀다가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일.

    터벅터벅.

    하지만, 상대는 물러서지 않고 도리어 다가왔다.

    터벅터벅.

    당기명은 고개를 갸웃했다.

    상대의 발걸음에 태산과 같은 기세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당기명은 왼손으로 검집을 움켜쥐었다.

    언제라도 검을 빼어 들 준비를 한 것이었다.

    동시에 상대는 먼지가 덕지덕지 묻은 긴 막대를 바닥에 꽂았다.

    쾅.

    긴 막대에 붙은 먼지와 진흙이 흩날렸다.

    순간 긴 막대의 윗부분에서 어슴푸레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쇠붙이가 내는 예기였다.

    푸른빛이 일렁이는 것을 보니, 내공으로 쌓였던 진흙을 털어 냈던 것이 분명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공으로 진흙과 창날 사이에 막을 만들어 둘을 분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가 고수라는 뜻.

    보잘것없는 긴 막대는 이내 창으로 변해 있었다.

    번쩍이는 창날이 눈에 들어오자 당기명은 재빨리 한 걸음 물러나며 수하들에게 외쳤다.

    “다들 방어진을 구축하라! 기습이다!”

    동시에 당기명은 품 안에 손을 집어넣고 암기를 고르고 있었다.

    당기명의 계획은 간단했다.

    딱 봐도 창을 든 거한이 이 무리의 대장이었다.

    검을 빼 들며 암기를 날리면, 상대는 막을 방법이 없을 것이었다.

    검이 허초요.

    암기가 실초였다.

    사천당가의 기본적인 허허실실의 전략.

    당기명이 막 검을 빼 들려고 할 때였다.

    상대가 외쳤다.

    “잠깐!”

    당기명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러느냐? 죽기 전에 유언이라도 남기려고 하는 것이냐?”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죽는 건 너야!”

    “뭐라?”

    “계속 묻기만 하지 말고 내 얘기 좀 들어 보지.”

    “…….”

    “내 말은 장소를 좀 옮기자는 거야. 이런 데서 암기를 던지면 애먼 사람이 다칠 수도 있잖아. 안 그래?”

    창을 든 거한은 턱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뒤쪽에 있는 자들도 지금 보니 무인들이 분명했다.

    정확히는 무인과 일반 거지가 섞여 있었다.

    당기명이 보기에는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거한과 한패였다.

    그런데 창을 든 거한은 뒤쪽에 있는 자들과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당기명이 눈썹을 꿈틀하며 물었다.

    “지금 뭐라 했느냐?”

    “사천당가는 아무나 죽이는 게 일상인가 봐?”

    “…….”

    당기명은 아무 말 없이 상대를 바라봤다.

    묘하게 자신을 나쁜 쪽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말투는 왠지 낯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어투였다.

    하지만, 막상 떠올리려니 기억나지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사천당가라는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다.

    상대는 당기명이 사천당가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시비를 거는 것이 분명했다.

    당기명은 뒷짐 진 손으로 수하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방어진에서 공격진으로 바꾸라는 신호였다.

    언제든 신호를 보내면 총공세를 펼칠 수 있도록 준비시킨 것이다.

    상대는 당기명의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뒤쪽에 있는 자들과 내 싸움은 상관이 없다. 그러니 자리를 옮기지. 애먼 사람 잡지 말고.”

    “자리를 옮기는 것보다는 상관없는 자들은 물리는 게 좋지 않아?”

    당기명이 검집을 들어 거한의 뒤쪽을 가리켰다.

    거한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리 있는 말이군.”

    거한은 힐끔 뒤를 돌아보더니 손짓으로 사람들을 멀찌감치 물렸다.

    그러고는 당기명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쪽도 사람들을 물리지 그래?”

    “내 수하들은 부러진 창날 따위에는 다칠 염려가 없어.”

    “내 창날이 부러질 리는 없지만, 자네가 던진 허접한 암기가 되돌아갈지도 모르지. 예를 들어 오른손에 틀어쥔 허접비 같은 암기 말이야.”

    당기명의 눈썹이 꿈틀했다.

    허접비라고 하는 것은 사천당가에 대한 모욕이었다.

    당기명이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허접비가 아니고 호접비란 말이다!”

    “아, 틀어쥐긴 했군.”

    “…….”

    당기명의 눈썹이 꿈틀댔다.

    상대의 말에 감정이 요동치는 것이, 왠지 싸우기 전부터 말려드는 느낌이었다.

    당기명은 재빨리 호접비를 날렸다.

    슝!

    나비 모양의 호접비가 허공을 가르며 창을 든 거한 쪽으로 다가갔다.

    진짜 살아 있는 나비처럼 날아가는 호접비.

    상대는 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털썩!

    바로 자리에 누워 버린 것이다.

    당기명은 눈매를 좁혔다.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정원을 노니는 듯한 나비라면 당연히 꽃을 찾아가게 마련이었다.

    꽃이 나비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줄기가 꺾여 향기를 잃은 꽃이라면 나비가 그곳으로 갈 리가 없었다.

    호접비는 공간을 넓게 섭렵하는 암기였지만, 바닥에 붙어 있는 목표물에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못했다.

    상대는 호접비의 파훼법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당기명은 재빨리 상대를 향해 짓쳐 들었다.

    휘릭.

    무복을 펄럭이며 검을 바닥을 쓸 듯이 아래로 낮췄다.

    당기명은 입꼬리를 올렸다.

    상대는 암기에 대한 파훼법은 알고 있을지 몰라도 사천당가의 검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 상대의 실수였다.

    당기명의 의도는 간단했다. 위쪽은 호접비가 천천히 날아다니고 있으니 아래쪽 공간에서 바닥에 누워 있는 거한을 공격하겠다는 것이었다.

    창을 들고 누워 있는 상태에서 상대가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이 승부의 결과는 뻔했다.

    하지만, 그때 누워 있던 거한의 몸이 스르륵 움직였다.

    창을 든 채 몸이 회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휘리릭.

    창날이 아래로 뻗은 당기명의 검을 쳐 냈다.

    챙.

    거한의 움직임을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휑!

    바람 소리를 내며 회전하는 몸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소리만이 아닌 소용돌이가 거한을 중심으로 뻗어 나가자, 당기명이 풀어 놓은 호접비는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툭.

    그때 거한이 달려들었다.

    “이제 내 차례다!”

    길게 뻗은 창이 당기명을 향해 짓쳐 들었다.

    당기명이 뻗어 오는 창만큼 뒤쪽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간격은 점점 좁혀졌다.

    뒤로 물러나며 당기명은 창을 쳐 냈다.

    챙, 챙!

    하지만, 창날은 묘하게 당기명의 가슴과 점점 가까워졌다.

    당기명은 이를 악물었다.

    묘하게 창을 든 자들과 만나면 일이 꼬였다.

    신창양가의 양예신과의 만남이 그랬으며 지금 이 거한의 창도 당기명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당기명은 왼손으로 품속에서 사천당가의 암기 중 가장 악독하다는 백은신침을 꺼내 들었다.

    통에 있는 장치를 누르면 백 개의 은침이 동시에 발사되어 상대를 벌집으로 만든다.

    중요한 것은 백 개의 은침 중 하나라도 적중한다면 상대는 돌에 맞은 개구리처럼 뻗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순간 상대의 창날에서도 푸른 기운이 피어올랐다.

    단순히 시시비비를 가리는 승부에서 생사결로 바뀐 것이다.

    그때였다.

    옆에서 묘한 기척을 느낀 당기명은 재빨리 물러났다.

    정말 묘한 기척에 묘한 기분이었다.

    위협적이면서도 잠잠한.

    거대하면서도 소박한.

    감을 잡을 수 없는 기척이었다.

    거기에 이 끈끈한 시선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듯한 착각마저 만들어 냈다.

    그 기척을 느낀 것은 당기명뿐이 아니었다.

    거한도 피워 올린 창끝의 기운을 거뒀다.

    당기명과 거한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당기명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곳에는 딱 봐도 별 볼 일 없는 사내가 앉아 있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기에 당기명은 검날을 그쪽으로 향했다.

    일단 자세를 가다듬은 후 상대를 확인한 당기명은 코웃음을 쳤다.

    상대의 손에는 고기 꼬치가 들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먼지가 묻은 꼬치였다.

    당기명은 시선을 힐끔 돌려 거한을 바라봤다.

    거한은 입을 떡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당기명은 지금 누가 적인지부터 파악해야 했다.

    그때 상대가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났다.

    툭툭.

    흙먼지가 사방에 흩날리지만,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고기를 베어 물었다.

    그러고는 감탄하며 말했다.

    “먼지는 묻었어도 먹을 만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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