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동행 (1)
설화의 표정을 본 한빈이 말했다.
“걱정하지는 말아라. 긴 여행을 떠나려면 준비는 당연한 것이 아니냐? 그러니 이 층에서 쉬고 있거라.”
한빈은 사람 좋은 얼굴로 빙긋 웃었다.
한빈이 삼 층으로 올라가자, 설화와 청화는 장하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음식과 마주했다.
차향이 풍기는 다루이기는 해도 점소이는 설화와 청화가 원하는 음식을 모두 내주었다.
그 결과 설화의 앞접시에는 당과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그때 청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공자님은 진짜 부자인가 봐요.”
“그게 무슨 말이야?”
“아까 보니 여기 주인이신 것 같던데요?”
청화의 말에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한빈이 그런 말은 했지만, 설화는 새겨듣지 않았다.
점소이의 무공과 삼 층에서 흘러나오는 음흉한 기척에 모든 신경을 다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설화는 말끝을 흐리며 삼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힐끔 봤다.
한빈이 왜 여기의 주인이라고 했는지 설화도 아는 바가 없었다.
설화는 한빈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모르는 모습이 나오니 왠지 섭섭했다.
설화는 그 섭섭함을 당과로 달래는 중이었다.
설화는 당과 꼬치를 하나 더 짚었다.
“청화야, 너도 먹어.”
“저는 괜찮아요. 이거나 먹을래요.”
청화는 자신의 접시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찹쌀떡이 한 무더기 있었다.
청화는 최근에 자신의 입맛에 딱 맞는 간식거리를 찾아냈다.
그게 바로 찹쌀떡이었다.
독인으로 살 때는 이런 음식은 입에 댈 생각도 못 했다.
독이 들어간 음식으로 몸에 독성을 길러야 했으니 말이다.
처음 천수장에 오고 나서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찹쌀떡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모두 설화와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었다.
천수장에 있었던 것은 잠시였지만, 설화가 당과를 사러 새로 생긴 저잣거리로 나갈 때면 항상 동행했었다.
천수장에서 내려온 설화와 청화는 상인들에게는 귀빈이었다.
장주의 시녀라는 위치와 둘의 어려 보이는 외모는 상인들의 마음을 쥐어짰다.
상인들은 그녀들이 내려올 때면 너나없이 이것저것 먹어 보라고 내놓았으며 장신구를 선물로 주었다.
본의 아니게 이것저것 대접을 받던 중 이제껏 청화는 못 먹어 본 음식을 다 맛보게 되었다.
모든 음식이 다 맛있었지만, 찹쌀떡은 조금 느낌이 달랐다.
아무리 먹어도 양이 차지가 않았다.
왜 그런지는 청화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찹쌀떡이 끝없이 당길 뿐이었다.
청화가 앞에 있는 찹쌀떡을 다 비우고 앞을 힐끔 봤다.
설화의 접시도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청화와 눈이 마주친 설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점소이를 바라봤다.
“아저씨, 당과하고 찹쌀떡 조금만 더 주실래요?”
“그래, 잠시만 기다리거라.”
점소이는 사람 좋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잠시 후.
아래층에서 접시를 가지고 올라오는 점소이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점소이의 눈에는 설화와 청화가 괴물이었다.
물론 설화의 무공 때문은 아니었다.
설화는 무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점소이는 상대가 초절정의 고수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다만, 설화와 청화의 해치운 음식의 양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하나는 당과만 입 속에 쓸어 담고 있고 하나는 찹쌀떡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우고 있었다.
지금 점소이가 이렇게 음식을 나르는 것이 벌써 다섯 번째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에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고 있지만, 이건 아니었다.
당과나 찰쌀떡은 다루에서 파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조금 멀리 떨어진 가게에서 사 와서 대접하는 중이었다.
어찌나 힘든지 지금 점소이는 내공까지 바닥나 있었다.
점소이는 설화와 청화의 앞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탁!
그러고는 힐끔 둘의 눈치를 봤다.
설화는 점소이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고는 잽싸게 말했다.
“이제 더 안 주셔도 돼요.”
“휴, 다행이구나.”
점소이는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말해 버렸다.
설화가 다시 말했다.
“힘드셨나 봐요, 아저씨.”
“아니다, 아니야.”
“땀을 많이 흘리는 것 같은데요.”
“괜찮대도.”
점소이가 손을 휘휘 저을 때였다.
이 층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쿵. 쿵.
어찌나 다급하게 들리는지 점소이는 잔뜩 긴장한 채 눈매를 좁혔다.
그때 설화가 말했다.
“점소이 아저씨, 아무래도 저희 일행이 온 것 같아요.”
“일행?”
점소이가 고개를 갸웃할 때 누군가가 뛰어왔다.
이 층으로 올라와서도 그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급보를 전하는 병사처럼 거리를 단숨에 좁힌 그들은 점소이의 앞에 섰다.
상대는 세 명의 사내.
모두 칼을 찬 무림인이었다.
하나는 경지를 가능할 수 없고 나머지는 일류 내지는 그 위로 보이는 무사들이었다.
난데없는 상황에 점소이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중 하나가 손이 뭔가를 들고 뛰어왔다.
점소이는 순간 그들을 막아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사내의 다음 말에 점소이는 동작을 멈췄다.
“설화야, 알아냈다! 알아냈어!”
“조호 오라버니, 드디어 알아내셨어요?”
설화는 자신의 일처럼 좋아하며 손뼉까지 쳤다.
짝, 짝.
옆에 있던 청화도 같이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
그 모습에 점소이는 긴장의 끈이 풀린 듯 뒤쪽으로 물러났다.
설화는 점소이의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호에게 물었다.
“그래서 정답은요?”
“새장이 비어 있는 이유는 비둘기를 날리는 게 아니라 비둘기를 받기 위해서였어.”
“와, 드디어 알아내셨군요. 어떻게 알아내신 거예요?”
“이거 봐. 전서구가 마차 위로 날아왔어.”
조호는 손에 있는 비둘기를 설화에게 보여 줬다.
설화가 눈을 크게 떴다.
“진짜네요.”
“신기하지? 어떻게 마차를 찾아왔는지를 몰라도 비둘기가 날아와서 마차에 앉더라고. 처음에는 우연인가 했는데 이게 매달려 있지 뭐야?”
조호는 설화에게 전서구에 달려 있던 통을 자랑스럽게 보여 줬다.
조호가 아이처럼 펄펄 뛰면서 좋아하고 있을 때,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 알아낼 줄 알았다, 조호야.”
그 목소리에 모두가 뒤를 돌았다.
그곳에는 한빈이 서 있었다.
한빈이 손을 내밀자, 조호가 통을 내밀었다.
통을 받은 한빈은 재빨리 속에 있는 쪽지를 빼내어 확인했다.
쪽지를 받은 한빈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진지한지 아무도 묻지 못했다.
쪽지를 다 읽은 한빈은 점소이를 바라봤다.
“대충 요기할 거리 좀 부탁하네.”
“요기할 거리라면…….”
“아무거나 내오게.”
한빈의 말에 점소이가 고개를 숙인 후 일 층으로 내려갔다.
점소이가 사라지자, 한빈이 설화를 바라봤다.
“점소이가 조금 힘들어 보이는데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지? 설화야.”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점소이 아저씨가 당과 조금 하고 찹쌀떡 조금 주셔서 먹은 것밖에는…….”
설화는 말끝을 흐리며 자리에 있던 접시를 재빨리 포개어 놓았다.
그 모습에 한빈은 창밖을 봤다.
아니나 다를까.
점소이는 휘청이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한빈은 점소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때 설화가 물었다.
“공자님이 진짜 여기 주인이에요?”
“그건 사실이야.”
“진짜요?”
“뭐, 그리 놀란 건 없다, 설화야. 그러니까…….”
한빈은 그들이 궁금해하는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지난번 하남정가에서 받은 것 중 하나였다.
이곳은 원래 정화 부인이 운영하던 다루.
이곳을 운영하는 이유는 정보 수집이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는 하남정가와 정화 부인의 긴밀한 연락을 위해서였다.
하남정가 사건 이후 하남정가에서는 정화 부인과 관련된 모든 사업을 한빈에게 넘겨줬다.
그런 이유로 이곳 다루는 한빈의 것이 되었다.
한빈이 맡고 나서는 심미호를 통해서 관리했었다.
심미호를 통해 이곳을 강북과 강남을 잇는 정보의 요충지로 발전시키는 중이었다.
심미호는 적임자를 뽑아 이곳의 다루를 맡겼고 말이다.
그런 이유로 이곳 사람들은 아직 한빈과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다.
오늘이 이곳 다루 사람들과는 첫 번째 인사였다.
말을 마친 한빈은 조용히 조호를 바라봤다.
“다들, 용케 밝혀냈네. 아마 사천당가까지 가면서 전서구를 받을 거야. 전서구를 받고 나면 저 새장 속에 넣어 놓으면 되고. 날아온 비둘기를 관리하는 건 앞으로 조호가 맡도록.”
“제, 제가요? 그거 원래 설화가 하던 거 아닌가요?”
“설화는 바빠질 거야. 이제부터는 조호, 네가 맡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소대섭 대주는 내일 배편 취소해.”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유라도…….”
“손님이 오고 있대. 사천까지 동행할 손님이 말이야.”
“그 손님이 누굽니까?”
“그건 비밀이야.”
“아.”
소대섭이 탄성을 터뜨리자 한빈이 씩 웃으며 손을 저었다.
“농담이야, 농담. 오기로 한 손님은 사천당가니까, 미리 마음의 준비 좀 하고 있어.”
“헉, 사천당가요?”
“혹시 부담 가는 건 아니지?”
“제가 왜 사천당가에 부담을 가집니까? 괜찮습니다.”
소대섭은 자신의 가습을 쾅쾅 치며 웃었다.
하지만, 표정과는 다르게 속으로는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사천당가라니?
밥을 먹을 때도 고기에 양념 대신 독을 쳐서 먹는다는 족속이 바로 사천당가였다.
그런데 사천당가와 함께 간다니?
소대섭은 머리가 아득해졌다.
물론 조호와 장삼의 눈빛도 살짝 떨리고 있었다.
다만 설화와 청화만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접시 위에 남은 당과와 찹쌀떡을 비우고 있을 뿐이었다.
* * *
하북에서 장하로 내려오는 관도.
말고삐를 움켜쥐며 누군가가 다급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뒤쪽에는 사천당가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가장 앞에 선 이는 다름 아닌 당기명.
지금 당기명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천수장의 장주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기 위해 당기명은 주머니를 탈탈 털어야 했다.
처음에 자신에게 돈을 뜯었던 화산파의 서재오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뒤늦게 온 무제자 홍칠개는 황보만청과 합을 이루어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모든 돈을 다 털어 갔다.
사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무가지회에 대한 초대장은 홍칠개가 책임지고 돌려 주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맡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황당한 것은 황보세가에게 전달해야 할 초대장을 돌리는 비용까지 받아 갔다는 점이었다.
황보세가의 가주가 바로 옆에 있는데, 그것을 왜 받아 간다는 말이던가?
당기명은 천수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의심을 해야 했다.
하지만, 천수장을 떠나 마을로 내려오며 당기명은 생각을 완전히 바꿔야 했다.
그들은 신선 혹은 생불로 불리는 천수장의 장주에 대해서 티끌만큼의 의심도 없었던 것이다.
전염병으로 들끓던 장운현에서부터 천수장의 장주가 보여 준 신통력을 목격했다는 자도 있었다.
천수장의 장주라?
이것은 사천당가에 있어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었다.
“이럇!”
당기명은 더욱더 세게 말 고삐를 움켜쥐었다.
* * *
다음 날 새벽 다루 옆 객잔.
한빈과 적혈맹호대 셋은 아침 수련을 위해 강가를 걷고 있었다.
수련을 할 장소를 찾고 있던 것이다.
천천히 강가를 거닐던 한빈은 나루터 근처에 있는 거지를 봤다.
한빈은 팔짱을 끼고 그들의 허리부터 확인했다.
매듭이 있는가를 확인해 본 것이었다.
한빈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은 개방도가 아닌, 그냥 거지임이 틀림없었다.
그들의 허리에는 매듭은커녕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한빈이 그들을 지나쳐 강가에 공터에 도착해서 막 자리를 잡았을 때였다.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따가닥, 따가닥.
황토색 먼지가 먼동이 트는 태양을 가리며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