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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45화 (245/621)

245화. 사천으로 (2)

놀람도 잠시, 당기명은 재빨리 천수장의 정문으로 달려갔다.

정문 앞에 선 당기명은 기척을 살피기 위해 살짝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안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조금도 없었다.

당기명의 입술 사이로 안타까움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음.”

안타까운 시선으로 굳게 닫힌 천수장의 문을 살피던 당기명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 쓰……. 그 자식만 아니었다면…….”

“누구 말씀입니까?”

수하가 묻자 당기명은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지금 몰라서 물어? 양가 놈 말고 또 누가 있어?”

“아, 신창양가의 대공자 말씀이시군요.”

“무슨 신창이야, 견창(犬槍)도 과분하지.”

“아무리 그래도 그리 말씀하시면…….”

“당 호위, 지금 날 놀리는 거지?”

당기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수하를 바라봤다.

수하의 이름은 당독대. 당가의 방계로 수년간 당기명을 보필해 온 호위였다.

당기명의 성질을 아는 당독대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왜 공자님을 놀리겠습니까?”

“내가 보름이나 헤매고 다닌 게 누구 때문인데 그래? 그때 그놈이 내가 찾는 의원이 산서에 있다고 거짓말만 하지 않았어도…….”

당기명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천수장의 정문처럼 닫힌 입술 사이로는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간헐적으로 튀어나왔다.

당기명이 흥분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당기명은 양예신과 헤어지기 전에 의원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그런데 그 정보는 불완전한 정보였다.

물론 불완전한 정보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기명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쏙 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당기명은 양예신이 소개해 준 황궁 출신 의원을 찾아 삼백 리 길을 돌아오는 길이었다.

중간에 개방의 하남 분타주를 만나지 않았다면 영영 이곳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남 분타주에게 받은 정보가 꽤 구체적이었다는 것이었다.

황금 한 냥이 아깝지 않은 정보였다.

물론 당기명이 만난 하남 분타주는 광개였다.

당기명은 분에 못 이겨 천수장의 정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 쿵.

어찌나 크게 울렸는지 뒷산의 산새들이 다급히 날갯짓했다.

푸드덕.

한참을 두드리던 당기명은 동작을 멈추고 수하를 바라봤다.

“그래서, 천수장의 장주의 목적지는 알아냈느냐?”

“저 아래 상인들에게 물어봤지만, 모른다고 합니다. 거기에 자신들을 치료해 주던 의원도 신창양가와 함께 떠났다고 합니다.”

“아, 완전히 계획적이군. 계획적이야. 그 새끼는 다시 만나면 목을 뽀사 버린다.”

묘하게 오해까지 생겨 버린 상황.

당독대는 황급하게 당기명을 말렸다.

“공자님, 그렇게 흥분하실 필요는 없을…….”

“내가 흥분 안 하게 생겼어? 가문의 흥망성쇠가 달린 일이라고!”

“일단 차분히…….”

수하는 말을 맺지 못했다.

당기명이 성큼성큼 담장 쪽으로 걸어갔기 때문이다.

수하는 다급히 뛰어갔다.

수하의 눈에 당기명은 모닥불 앞에 굴러다니는 벽력탄과도 같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데다 터져도 혼자 죽지는 않은 벽력탄 말이다.

당독대는 다급히 당기명의 소매를 잡았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공자님.”

“일단 장주가 어디로 떠났는지 알아봐야겠어.”

“그렇다고 월담을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주인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럼 가만히 있어?”

말을 마친 당기명은 당독대의 손을 뿌리치고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휘릭.

천수장의 담장이 높기는 해도 당기명에게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다.

공중에 떠오른 순간에 눈에 들어온 전각의 위치를 모두 머릿속에 넣은 당기명은 어디서부터 조사를 해야 할지를 정리했다.

이 모든 것이 바닥에 착지하기 전까지 이루어졌다.

이렇게 비상한 머리는 사천당가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당기명이 생각 못 한 것이 하나 있었다.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목에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기를 품은 쇠붙이의 느낌.

암기를 다루는 사천당문이기에 더욱 잘 알 수 있는 느낌이었다.

당기명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한 사내가 당기명의 목덜미에 검을 겨누고 있었다.

당기명은 사내의 얼굴을 살폈다.

사내의 표정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다.

굳이 찾자면 사내의 얼굴에는 귀찮다는 기색만 있을 뿐이었다.

거기에 자신을 넘어선 고수.

사내의 의도가 뭔지 중요하지는 않았다.

남의 집 담을 넘었다는 것은, 여기에서 목이 달아나도 관계없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때 사내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용건이지?”

“…….”

당기명은 사내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정답을 말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것은 무인으로서의 본능이었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당기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왜?”

사내는 차갑게 물었다.

짧은 물음이었지만,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다.

이제부터 본론이라는 것을 당기명은 알기 때문이다.

깊은 고민을 하던 당기명이 입을 열었다.

“환자가 있습니다.”

“돌아가라.”

“이곳에 장주님이 안 계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셨는지만이라도 알았으면 합니다.”

“천수장에서는 공짜는 없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라고 우리 사 공자가 얘기했지.”

말을 마친 사내는 검을 당기명의 목덜미에서 거뒀다.

하지만 목덜미에서 거뒀을 뿐이지, 마음만 먹으면 당장 목을 벨 수 있는 거리에서 검을 멈췄을 뿐이었다.

완벽하게 경계심을 늦춘 것은 아니었다.

당기명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사내가 한 말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문 바로 옆에 서 있던 것으로 보아 사내는 경비 무사가 분명했다.

경비 무사의 경지가 어찌…….

생각을 이어 나가던 당기명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검을 잡은 사내의 소매에 새겨진 매화 문양을 봤기 때문이다.

당기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화산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걸 내가 말해 줘야 하나?”

“그것도 대가가 필요한 겁니까?”

“물론이지.”

말을 마친 사내는 검을 완전히 거두었다.

물론 사내의 정체는 서재오였다.

서재오는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는 중이었다.

천수장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맛보는 휴식이었다.

그런데 불청객이 그 휴식을 방해한 것이었다.

서재오가 하필이면 정문 뒤에서 휴식을 즐기는 데도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아래쪽 상인들의 민원을 받아 주기 위해서였다.

서재오는 지금 천수장 근처 마을의 재건에 진심이었다.

아마 당기명이 문을 두드리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 자신을 불렀다면 서재오는 문을 열었을 것이었다.

상인들은 그를 매화검협이라 부르며 의지하니 말이다.

자신을 부르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는 것은 상대가 불청객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잠시 서재오는 눈을 살짝 감았다가 떴다.

자신의 행동이 묘하게 누군가와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한빈이었다.

서재오는 한빈을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미운 정이 들었나 보네.’

피식 웃는 서재오와는 달리 당기명의 눈빛을 더욱 떨렸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몰라서였다.

당기명은 조심스러웠다.

상대와 싸우고 싶어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고 싸워서 이긴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당기명이 태어나서 이렇게 화를 누른 것이 몇 번이나 될까?

기필코 한 번도 없었다.

당기명은 감정을 억누르고 물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야 당연히…….”

서재오는 살짝 말끝을 흐리며 검지와 엄지를 말아 쥐었다.

당기명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은 설마 돈이겠냐는 의문이었다.

당기명은 상대의 소매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매화 문양의 의미를 알았다.

그것은 매화검수.

수놓아진 매화의 양으로 봐서는 중수 이상이 분명했다.

화산파가 돈을 밝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도가인 만큼 대놓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혹시 가짜 매화검수일까?

이것은 타당한 의심이었다.

요즘 들어 대문파를 사칭하는 자들이 많다는 소문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대의 기세를 보면 매화검수가 맞긴 맞는 것 같았다.

당기명은 혹시나 하고 품속에서 전낭을 뒤졌다.

초인적인 감각으로 황금 한 냥을 찾아 꺼냈다.

“이거 말씀입니까?”

“던져.”

휙.

한 냥짜리 금화를 받은 상대가 말했다.

“화산파의 매화검수 서재오. 그게 내 이름이네.”

말투가 살짝 누그러졌다.

반대로 당기명의 눈은 커졌다.

사천과 서안은 그리 멀지 않았다.

얼마 안 되는 매화검수의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헉, 서재오 대협이시군요.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화산파의 매화검수가 대체 이곳에는 왜…….”

“질문을 하려면 대가가 필요하지.”

서재오는 당기명이 전낭을 꺼낸 곳을 가리켰다.

당기명은 상황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산을 넘는 떡장수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호랑이에게 떡을 주다가 끝내는 자신의 팔까지 바쳐야 했던 비운의 떡장수 이야기 말이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묘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마치 몇 년은 씻지 않은 거지에게서나 날 것 같은 악취였다.

당기명은 힐끔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백색 무복의 노인이 팔짱을 끼고 걸어오고 있었다.

악취와는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복장이었다.

그는 당기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쓱 지나쳐서는 서재오의 앞으로 다가갔다.

“자네, 오늘따라 장난이 지나치군. 왜 내 제자 흉내를 내고 그러나.”

서재오가 재빨리 포권했다.

“오셨습니까? 무제자 어르신. 제가 언제 사 공자 흉내를 냈다고 그러십니까?”

“지금 보니까 하는 짓이 똑같은데…….”

“하하, 전혀 아닙니다.”

서재오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저자는 대체 누군가?”

홍칠개는 그제야 턱짓으로 당기명을 가리켰다.

당기명은 갑자기 머리가 아득해졌다.

홍칠개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무림명숙이자 배분으로 치면 당기명의 할아버지, 즉 태상가주와 친구였다.

그런데 왜 저런 사람이 이곳에 있단 말인가?

의원을 찾아서 천수장에 왔더니, 개방에 화산파라?

머리가 비상하기로 소문난 사천당가에서도 머리만큼은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당기명이었지만, 지금 상황만큼은 풀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다.

쿵, 쿵.

이어서 문 너머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 황보만청이네. 어서 문을 열어 주게.”

그 목소리에 서재오는 조용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

당기명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왜 나는 안 열어 주신 겁니까?”

“불렀으면 열어 줬을거야.”

시큰둥하게 답한 서재오는 천수장의 문을 활짝 열었다.

문이 열리자 그곳에는 거대한 검을 등에 짊어진 황보만청이 있었다.

천수장으로 들어온 황보만청은 홍칠개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정겹게 인사가 오가는 동안 문 너머에서는 사천당가의 무사들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머뭇거리고 있었다.

물론 당기명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잠시 당기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개방과 화산파도 모자라 황보세가의 가주까지 이곳에 왔다는 것은?

이곳의 장주가 자신이 찾는 자라는 증거라 생각했다.

* * *

같은 시각, 중천에 뜬 해는 한빈이 탄 마차를 비추고 있었다.

마차 안팎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누가 보면 마실 나온 부잣집 도련님의 행차로 착각할 정도였다.

마차 안에서 팔짱을 끼고 잠든 듯 눈을 감고 있던 한빈의 모습도 결전을 앞둔 무사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때 한빈이 눈을 뜨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주 보고 있던 설화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왜 그래요, 공자님?”

“누가 내 얘기 하나 봐, 귀가 간지럽네.”

“공자님 얘기를 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헤헤, 그거 착각일 거예요.”

설화의 웃음에 한빈은 손을 내저었다.

“내 느낌은 틀릴 때가 없는데…….”

“그건 인정이에요. 공자님! 그런데…….”

설화는 한빈의 옆을 바라봤다.

한빈의 옆자리에는 검은색 상자가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상자 위에는 부러진 검이 놓여 있었고 말이다.

설화는 천수장을 떠나면서 계속 궁금했다.

하지만, 왠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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