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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44화 (244/621)

244화. 사천으로 (1)

한빈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양예신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저 아래에 있는 사람은 괜찮겠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래에 있는 뱀 중에 독을 가진 놈은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양예신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던 장자명이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독사를 섞어 넣은 것은 아니지만, 산에서 내려온 독사가 저 밑에는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위에는 사신대 아래는 독사굴로 불린다는 건 적혈맹호대라면 누구든 안다.

물론 가장 큰 피해자는 장자명이었다.

중독되면 치료해야 하는 건 그의 몫이니 말이다.

한빈과 함께 내려가던 양예신은 고개를 갸웃했다.

앞장서서 연무장으로 향하는 한빈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뭐가 이상하지?’

고개를 갸웃하던 양예신은 눈을 크게 떴다.

한빈의 모습에서 어색한 점을 알아낸 것이었다.

보통 경사로를 내려갈 때면 땅을 보면서 내려가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한빈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허공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양예신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고고한 학이라…….”

실책을 깨달은 양예신은 재빨리 자신의 입을 막았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해도 상대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옆으로 다가온 장자명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그냥 크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아, 장 의원님.”

“뭐, 좋은 말은 크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저러실 때면 얼마나 집중하시는지 주변 소리를 잘 못 들으시더라고요.”

“아, 가끔 저러시는군요.”

“암요, 항상 저러십니다.”

장자명은 한빈을 가리켰다.

양예신의 눈빛에서 살짝 부러움이 일었다.

한빈의 모습은 누가 봐도 득도한 도인의 모습이었다.

당장이라도 후광이 비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한빈이 보고 있는 것은 허공이 아니었다.

득도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한빈은 입맛을 다시며 글귀를 확인하고 있었다.

[오호단문도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했습니다.]

[오호단문도의 깨달음까지 삼 할 남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깨달음에 대한 보충 설명이 이어집니다. 오호단문도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합니다.]

방금 깨달음은 신창양가와 장삼의 대결에서 깨달은 것이다.

사람을 통해서 깨달아야 한다고 해서 구결만 생각했는데, 뜻밖에 지금의 대결에서 오호단문도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제 삼 할이 남았다.

그런데 숲을 봐야 한다는 말은 잘 해석이 안 되었다.

한빈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있는 것이었다.

* * *

삼 일 후.

양예신과 그 일행은 천수장을 떠나기 위해 짐을 꾸렸다.

정문으로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올 때와 달라진 것은 마음뿐은 아니었다.

그들이 가져온 마차도 보이지 않았다.

마차 안에 있는 황금과 영약은 한빈에게 주고 왔다.

하지만, 묘하게 불안함은 없었다.

그만큼 한빈에 대한 믿음은 굳건했다.

한빈에게 받은 것은 처방전뿐이 아니었다.

그의 고귀한 마음과…….

양예신은 귓가에 들려오는 한숨 소리에 상념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장자명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양예신은 다급하게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장 의원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안색이 불편하신데요.”

“괜찮습니다. 산서까지 가려니 긴장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그나저나 팽 공자님 곁을 비우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으니까 저를 보낸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장 의원님.”

양예신은 정중히 포권하며 마지막 점검을 위해 양후돈에게 걸어갔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던 장자명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이리 한숨을 쉬는 이유는 간단했다.

한빈이 신창양가와 동행하라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가짜 청명환을 만든 것이 장자명이니, 뿌린 씨는 직접 확인하고 거두라는 것이 한빈의 의도였다.

하지만, 장자명은 그 의도에 조금도 동의할 수 없었다.

한빈이 자신을 신창양가에 딸려 보낸 것은 순전히 돈에 눈이 멀어서라 판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창양가가 계약서에 적힌 내용 이외에 마차 가득 가져온 황금까지 모두 한빈에게 내놓고 간 후 내린 지시였기 때문이었다.

장자명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사실 한빈과 동행해서 신창양가의 가주를 치료한다면 이리 심란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잘못해서 변수라도 생긴다면?

자신은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장자명의 처지에서 신창양가는 단순한 무림세가가 아닌 적진처럼 보였다.

물론 그것은 찔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자꾸 떠오르는 생각에 장자명은 다시 혼잣말을 늘어놨다.

“휴, 아무리 돈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장자명은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톡톡 쳤기 때문이다.

장자명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양예신이 있을 거라 생각한 장자명의 눈이 커졌다.

그곳에는 한빈이 빙긋 웃고 있었다.

“장 의원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사, 사 공자님.”

“안색이 안 좋아 보이네요. 먼 길 떠나시니 관리를 잘하셔야 하는데……. 어쩌나?”

“저, 저는 괜찮습니다. 사 공자님.”

장자명은 재빨리 뒷걸음쳤다.

그 모습에 한빈이 씩 웃으며 품 안에 손을 넣었다.

장자명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찔끔 감았다.

간단하게 생각해도 좋은 물건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 추가 계약서가 아니라면 노비 계약서가 확실했다.

그때 한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 의원님, 왜 그러십니까?”

장자명은 눈을 살짝 떴다.

실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자 장자명의 예상대로 계약서로 보이는 종이가 있었다.

살랑살랑 흔드는 것이 마치 자신을 약 올리는 것만 같았다.

장자명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뭡니까?”

“딱 봐도 문서 아닌가요?”

“문서인 줄은 저도 알죠. 저는 추가 계약서인지 노비 문서인지를 묻는 겁니다.”

“무슨 계약서요?”

“아, 아닙니까?”

“천수장 아래에서 진료 보시는 의원 있잖습니까?”

“거기에 왜요?”

장자명은 고개를 갸웃했다.

제법 넓은 점포를 내주어서 사람들을 진료하는 곳이었다.

그 정도 전각만 있다면 평생 먹고살 수 있는 그런 점포였다.

물론 임시로 내준 의원이기에 언제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점포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곳 얘기를 꺼낸다는 말인가?

혹시 신창양가의 임무가 위험하기에 후임자를 구하라는 이야긴가?

장자명이 눈을 가늘게 뜨자 한빈은 문서를 펼쳤다.

촤르륵,

문서를 펼치자 내용이 장자명의 눈에 들어왔다.

“아.”

내용을 확인한 장자명이 뱉을 수 있는 것은 탄성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서는 다름 아닌 집문서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이 일하던 의원 건물의 권리 문서였다.

긴 탄성의 끝에 장자명이 말했다.

“사 공자님, 이걸 왜 저에게 보여 주시는 겁니까?”

“다녀오면, 장 의원 겁니다. 그러니 잘 다녀오세요.”

“헉.”

“그리고 신창양가의 가주님이 쾌차하시면 사천당가로 같이 오시면 됩니다.”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사 공자님.”

“그럼 살펴 가시고요.”

“고, 공자님.”

“저는 그만 가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한빈은 낙엽 밟는 소리만 남기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때 뒤쪽에서 다가온 양예신이 말했다.

“신기한 보법이군요.”

“네, 신기한 보법과 신기한 마음을 가진 분입니다. 우리 공자님은요.”

장자명은 자신이 말하고도 깜짝 놀랐다.

우리 공자님이란 말을 천수장에 와서 처음 썼기 때문이다.

장자명의 표정을 본 양예신이 물었다.

“장 의원님은 팽 공자님은 정말 좋아하시나 봅니다, 하하.”

“…….”

하지만, 장자명은 답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이 좋긴 했지만, 이제까지의 관계를 쭉 돌이켜 보면 섣불리 답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긴 침묵 끝에 장자명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진심이었다.

잘 생각해 보니 칼을 품고 온 자신을 포용한 것은 한빈이었다.

거기에 독에만 조예가 깊었던 자신을 이렇게 사람을 치료하는 의원으로 만들어 준 것도 한빈이었다.

강호에서 살아갈 수 있게끔 생존본능을 일깨워 준 것도 한빈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물을 사 준 것도 한빈이었다.

장자명이 감상에 빠져 있을 때 양예신이 말했다.

“마차에 오르시죠, 장 의원님.”

“네?”

“장 의원님은 무림인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신창양가까지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아.”

장자명은 탄성을 질렀다.

그 탄성은 정문을 나간 신창양가의 무사들과 마차가 점점이 되어 갈 때까지 흘러나왔다.

* * *

보름 후.

한빈 일행도 사천을 향해 출발하기 위해 천수장을 나왔다.

천수장을 나온 한빈 일행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한빈을 수행하는 적혈맹호대는 소대섭과 장삼, 조호 이렇게 셋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명의 시녀, 즉 설화와 청화가 한빈을 수행하기로 했다.

나머지 대원은 심미호가 맡아서 한빈의 특별 지시를 수행하기로 했다.

서재오는 철노, 검오와 함께 천수장을 지키기로 했다.

달그락,

한빈을 태운 마차가 천수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한빈을 태운 마차에는 설화와 청화가 같이 타고 있었다.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민 한빈이 장삼을 바라봤다.

장삼은 속세의 번뇌를 모두 털어 낸 듯 보였다.

뭐, 조금 과장을 보탠다면 십 년은 젊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한빈이 물었다.

“동생은 잘 보냈어? 장삼.”

“물론이죠.”

“잘됐네.”

“주군, 감사합니다.”

“뭘 감사해?”

“우리 장오를 정신 차리게 해 준 게 주군이라고 들었습니다.”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그래.”

“무제자 어르신께 다 들었습니다. 잘 돌봐 달라고 편지까지 남기셨다고…….”

“아니야. 나는 빡세게 굴려서 사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것밖에는 없어.”

“그게 잘 돌봐 주는 겁죠. 사실 우리 집에서는 장오가 막내라서 아무래 개판을 쳐도 그냥 놔뒀습니다. 진작 저라도 나서서 사람을 만들었어야 했는데요.”

“그런데 괜찮겠어?”

“뭐 말입니까? 주군.”

“동생이 강호에 발을 들였잖아.”

“개차반 왈패보다는 강호에서 한 송이 붉은 꽃으로 산화하는 것이 훨씬 보람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군.”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 그리고 말이다.”

“네, 주군.”

“괜히 장렬히 산화한다든지 그런 말은 쓰지 마. 말이 씨가 된다고!”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최고야. 멋있게 죽을 생각하지 말고 엎드려서라도 살아야 해. 그게 내가 내리는 명이야.”

“하하, 알겠습니다. 주군.”

“그래, 내가 한 번 죽어 봐서 알아. 그러니까 명심해.”

“하하,”

장삼은 실없이 웃었다.

한빈이 자신에게 농을 던진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한빈은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돌려 허공을 바라봤다.

* * *

한빈이 떠난 후 세 시진이 지난 천수장 근처.

누군가 천수장을 향해 다급하게 말을 몰고 있었다.

따다닥, 따다각.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황색 먼지를 몰고 오는 한 무리의 무사.

천수장 아래의 저잣거리 사람들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서기 바빴다.

하지만, 말을 탄 무사는 겁먹은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고삐를 더욱 틀어쥐었다.

따가닥, 따가닥.

다급히 울리던 말발굽 소리는 천수장의 정문 앞에서 멈췄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는 다급하게 말에서 내려 정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경비 무사도 없는 정문은 썰렁했다.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달려오더니 우두머리에게 다가갔다.

달려오는 무사의 등에는 깃발이 꽂혀 있었다.

그 깃발에는 사천당가를 나타내는 문양과 문구가 적혀 있었다.

무사가 우두머리에게 포권했다.

우두머리는 물론 당기명이었다.

“당 공자님, 천수장의 장주는 몇 시진 전 마을을 떠났답니다.”

“뭐라고?”

순간 당기명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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