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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43화 (243/621)

243화. 범인은 바로 이곳에 (6)

장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삼은 홍칠개에게 다가갔다.

홍칠개에게 인사를 한 장삼은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장삼이 눈을 빛냈다.

“그럼 제 동생이 개방도이면서 조호에게는 육십 년을 빚졌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하하.”

홍칠개가 기분 좋게 웃을 때였다.

뒤쪽에서 장오가 달려와 장삼에게 매달렸다.

장삼이 홍칠개와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알자, 이 상황에서 자신을 꺼내 줄 것은 형인 장삼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장삼은 장오를 쳐다보지도 않고 조호에게 물었다.

“조호야, 네가 딴 육십 년 중 딱 사흘만 빌려줄 수 있겠느냐?”

“물론이지요, 장삼 아저씨. 그런데 고작 사흘 가지고 뭐 하려고요?”

“사흘이면 동생과 작별을 나누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

“네, 그러세요. 장삼 아저씨.”

조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삼이 고개를 돌렸다.

“가자.”

딱 한마디였지만, 장오는 말도 없이 장삼의 뒤를 따랐다.

자신을 구해 준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점점 멀어져 가는 장삼과 장오를 본 홍칠개가 말했다.

“역시 끈끈한 형제의 정으로는 망나니를 잡지 못하는구나.”

“과연 그럴까요? 어르신.”

조호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자, 홍칠개가 물었다.

“떠나기 전에 잘 먹이고 잘 입히려고 데려가는 게 아니었느냐?”

“장삼 아저씨가 말한 사흘이 장오 아저씨에게는 꽤 길게 느껴질 것 같네요.”

“흠.”

홍칠개가 헛기침을 하며 멀어지는 장삼과 장오를 바라봤다.

조호도 웃으며 그곳을 바라봤다.

그가 웃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곳에는 천수장에 와서 지옥과 같은 훈련을 받았던 사신대가 있었다.

밧줄에 매달려서 하루 종일 버텨야 했던 그곳.

떨어지면 뱀이 우글대는 구덩이가 기다리는 그곳.

독사는 없다고 했지만, 누군가가 실수로 독사를 집어넣어서 죽을 뻔한 적혈맹호대 대원도 있었다.

그 대원이 바로 조호고 말이다.

벗어나려고 해도 귀신과 같은 한빈 때문에 몇 번을 다시 잡혀 왔던가?

장오가 그곳에서 사흘을 지내고 나면 개방은 극락처럼 느껴질 것이라 조호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예상대로 멀리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악!

물론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조호는 시선을 돌려 연무장 주변에서 담소를 나누는 소대섭과 신창양가 무력대의 수장을 바라봤다.

둘 사이에는 전낭이 오가고 있었다.

두둑한 전낭 속 내용물은 바로 내깃돈이었다.

물론 전하는 자는 신창양가 무력대의 수장. 받는 자는 적혈맹호대의 수장인 소대섭이었다.

전낭을 받은 소대섭이 신창양가 무력대의 수장에게 말했다.

“양후돈 대주님, 이 돈은 오늘 잔치 비용으로 쓰겠습니다.”

“잔치라뇨? 소대주님.”

“여기에 우리 것까지 합해서 신나게 놀아 봅시다.”

소대섭은 신창양가 무력대의 수장인 양후돈이 건넨 전낭에 자신의 것까지 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힐끔 수하를 바라봤다.

적혈맹호대 대원 중 하나가 번개처럼 뛰어왔다.

소대섭은 수하에게 전낭 두 개를 건넸다.

수하는 고개를 숙였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대주님,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오겠습니다.”

“그래, 모자라면 우리 활동비에서 써도 되니까 아끼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포권한 수하가 사라지자, 소대섭이 웃으며 양후돈을 바라봤다.

“양후돈 대주, 잠시만 기다리시면 제법 맛나는 음식을 준비하겠습니다. 이날을 위해서인지 허허벌판이었던 마을에 제법 괜찮은 음식점이 들어섰습니다.”

소대섭은 웃으며 천수장의 정문 쪽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먹고 즐기자!”

“먹고 마시자!”

“팽가와 양가를 위해!”

“양가와 팽가의 번성을 위해!”

모두는 하나가 되자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신창양가의 무사들은 손님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내기를 했을 때 생겼던 승부욕은 냇물에 풀린 쌀가루처럼 희미해져 갔다.

그들은 서로 하나가 되어 대화를 나누며 친목을 다졌다.

반 시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끼이익.

끼이익.

수레바퀴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준비한 음식이 오고 있었다.

소대섭이 보냈던 수하는 수레보다 먼저 달려왔다.

소대섭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음식이 빨리 도착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수하가 자신이 전한 전낭을 그대로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낭을 든 수하가 포권하며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왜 전낭이 그대로 불룩한 것이냐?”

“그것이…….”

수하는 활짝 웃으며 설명을 늘어놨다.

그의 설명은 간단했다.

한빈이 미리 음식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주군이 어찌 알고…….”

소대섭은 말끝을 흐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신창양가의 양후돈이 물었다.

“어딜 그렇게 보십니까?”

“아무래도 주군이 지켜보는 것 같아서 그럽니다.”

말을 마친 소대섭은 전낭 하나를 양후돈에게 건넸다.

“왜 이걸 다시…….”

“이건 우리 주군이 쏘는 거랍니다. 그러니 내깃돈은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그래도, 내기에 졌으니…….”

“그냥 넣어 두시지요. 돌아가실 때 여비로 쓰십시오.”

“허허.”

양후돈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 상황이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음식이 이리 빨리 준비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천수장의 장주는 자신들을 위해 미리 음식을 준비해 놓은 것이 분명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준비했을까?

“생불이라더니…….”

양후돈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소대섭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양후돈이 재빨리 손을 저었다.

그때 음식을 실은 수레가 그들의 앞에 멈췄다.

끼익.

수레를 끌고 온 이들은 새로 들어선 음식점의 점소이들인 듯했다.

그들은 수레를 놓고 빠른 동작으로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탁, 탁.

음식을 확인하던 소대섭의 눈이 커졌다.

전낭에 든 철전만으로는 사지 못할, 진귀한 음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음식을 바라보던 소대섭의 안구에 습기가 차올랐다.

“주군…….”

말끝을 흐리며 주변을 살피며 한빈을 찾는 소대섭.

어느새 다가온 조호가 소대섭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주군이 우릴 보고 있으면 진작 오셨겠죠. 안 그래요? 대주님.”

“그렇구나, 조호야. 우리도 이제 즐기자꾸나.”

“네, 대주님.”

말을 마친 조호와 소대섭이 접시를 들었다.

하지만, 신창양가의 양후돈만은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살폈다.

이쯤이면 얘기를 다 끝낼 대공자가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서였다.

* * *

물론 대공자 양예신은 한빈과 함께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천수장에서 가장 높은 곳인 사신대 옆 정자였다.

연무장과는 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양예신은 연무장의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양예신이 말했다.

“비무가 벌어질 것을 어떻게 알고 준비하셨습니까?”

“피 끓는 젊은 무사들이 만났는데, 그냥 넘어갔겠습니까? 여흥을 즐기라고 미리 준비했습니다.”

“팽 공자님의 준비성은 못 따라가겠군요.”

“제가 준비는 철저히 하는 편입니다.”

“흠, 그런데…….”

양예신은 말끝을 흐리며 한빈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눈빛에 한빈은 사람 좋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살피면서 품속을 어루만지는 것을 보면 대충 어떤 질문을 할지 알 것 같았다.

그의 품속에는 장자명이 적어 준 처방전이 적혀 있었다.

한빈이 물었다.

“궁금하신 게 뭔가요? 양 공자님.”

“처방전을 써 주시기 전에 제게 물어봤던 내용이 갑자기 떠올라서 그렇습니다.”

“내용이라면…….”

“영약에 대해서 물으셨죠. 하지만, 저는 그 답을 숨겼고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숨겼지만, 팽 공자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왜 제가 양 공자가 숨기고 있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시니까 처방을 해 주신 게 아니겠습니까? 아까 보니 숫자를 말씀하시던데…….”

“네, 알고 있는 증세이기에 장 의원과 의견을 나눈 것뿐입니다.”

말을 마친 한빈은 힐끔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장자명이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양예신이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뭘 알고 계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흠.”

“죄송합니다. 제가 무리한 것을…….”

“아닙니다. 다만…….”

“혹시 자리를 옮길까요?”

“자리를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해답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뭐, 계약서에 일정 부분 대가만 추가하신다면 가능합니다.”

한빈이 턱짓으로 양예신의 품속에 들어 있는 계약서를 가리켰다.

“얼마든지 값은 치르겠습니다.”

“그럼 양 공자님을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다 들으시고 계약서에 대가를 추가하겠습니다.”

한빈은 밝게 웃으며 양예신을 바라봤다.

사실 대가가 없어도 말해 줘야 할 사항이었다.

적이 누군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하려면 필수였다.

양예신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말씀드리지요. 신창양가의 가주님게서 드신 영약이 혹시 팽가와 관련된 영약이 아닙니까?”

“어, 어떻게 그것을…….”

“제게 말씀을 못 하는 이유가 그것이 본래는 하북팽가의 물건이라 생각하셔서 감추는 것이고요.”

“…….”

“이제부터는 그 짐을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죄송합니다. 하북팽가와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상승 무공에 대한 욕심 때문에…….”

양예신은 제법 긴 변명을 늘어놓았다.

한빈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장자명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대충 상황을 들어 보니 어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한빈과 자신이 어찌 그 증상을 그렇게 소상하게 알고 있을까?

그것은 신창양가의 가주가 복용한 것이 바로 장자명이 만든 가짜 청명환이기 때문이었다.

가짜 청명환 때문에 주화입마에 들고 이어서 병까지 얻었다는 사실을 양예신이 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장자명이었다.

그런데 한빈은 남의 얘기 하듯 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이었다.

표정과 몸짓 그 어느 하나도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모든 설명을 듣고 난 한빈이 말을 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 영약을 가져온 사람이 가문에서 사라졌던 방계 중 하나였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다시 돌아온 사람이기에 우리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범인은 가까운 데 있는 법이죠.”

“맞습니다.”

“저도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안쪽부터 살펴봅니다.”

“네, 맞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부터는 제게 의문이 드는 부분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네, 궁금합니다. 산서와 하북은 지척이라고는 하나 양가의 일은 어찌 그렇게 소상히 아셨는지요?”

“그것은 적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입니다.”

“정보라면…….”

“중원의 무림세가를 약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입니다.”

“대체 누가…….”

“무림세가가 쪼그라드는 것을 원하는 자는 차고도 넘치죠. 대문파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사파일 수도 있고……. 정체불명의 집단일 수도 있습니다.”

“그중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얼마 전 금와 상단에서 가짜 영약을 돌렸다는 소식을 입수했었습니다.”

“금와 상단이라고요?”

양예신은 놀라는 눈빛이었다.

한빈이 아무 표정 없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정체불명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금와 상단…….”

양예신은 말을 맺는 대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을 덧붙였다.

“제 처방전이 맞다면 약속대로 무가지회에 참석하십시오. 그리고 아무도 믿지 마십시오. 아무도…….”

“팽 공자님도 주변을 믿지 않습니까?”

“뭐, 그렇죠. 이 술잔에 독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

“그렇다면 저는 이 안에 범인이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말을 마친 한빈은 힐끔 장자명을 바라봤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장자명은 움찔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때였다.

정자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악!

그 소리에 한빈이 말했다.

“이제 우리도 내려가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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