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241화 (241/621)

241화. 범인은 바로 이곳에 (4)

조호의 말에 장오가 눈을 크게 떴다.

“두 무사라니? 혹시 신창양가의 무사와 저 늙다리 말이오?”

조호는 자신의 형, 즉 장삼을 보고 비웃는 장오의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그는 그동안 장삼이 자신에게 해 준 장오 이야기는 반의반도 안 되었음을 깨달았다.

“…….”

“하하, 결과야 뻔하지 않소.”

“혹시 모르죠?”

“젊은 무사 양반, 삼류가 일류를 누를 수는 없는 법이지. 그건 세상이 무너져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뭐, 살다 보면 늙다리가 이길 수도 있는 일 아닐까요?”

“이 거참, 내기를 하자는 건가, 말싸움을 하자는 건가?”

“내기를 하자는 거죠.”

“내기가 성립되나? 어차피 당신도 신창양가의 무사한테 걸 거잖아.”

“저는 저 늙다리한테 걸 건데요.”

조호가 장삼이 있는 쪽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장오가 눈을 빛냈다.

그동안 노름판을 오가며 뼛속까지 박힌 노름의 본능이 고개를 쳐든 것이었다.

장오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겨우 감췄다.

조호라는 무사는 분명히 자신의 형, 장삼의 동료였다.

상대는 동료애 때문에 장삼에게 돈을 걸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장삼을 가장 많이 아는 자는 누구일까?

동료일까?

아니면 가족인 장오, 자신일까?

장오가 내린 결론은 바로 자신이었다.

몇 년간은 드문드문 본 것이 전부였지만, 삼류 무인인 자신의 형, 장삼이 신창양가의 무사를 이길 순 없을 것이다.

더욱이 서른이 넘어서도 삼류로 살아가던 장삼이었다.

아마 지금도 이류 근처에도 못 갔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상대에게 최대한 돈을 뜯어내는 일만 남았다.

운이 없어서 이상한 거지한테 잡혔지만, 돈만 있으면 이 상황은 어떻게 든 벗어날 수 있었다.

장오는 상대에게 최대한 돈을 뜯어내기로 결심하고 입을 열었다.

“그깟 푼돈 가지고 동료애를 표시하려고 하는 게 조금 안타깝구료.”

“푼돈이라고요?”

“그쪽이 한 달에 버는 돈이라고 해 봤자 뭐…….”

장오는 말끝을 흐렸다.

갑자기 조호가 품속에 손을 넣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상대의 자존심을 너무 건드렸나 하며 살짝 쫄리는 장오였다.

그것도 잠시, 장오의 눈이 커졌다.

조호의 품속에서 나온 것은 묵직한 전낭이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전낭의 끝을 풀었다.

그러고는 장오의 면전에 전낭을 내밀었다.

순간 장오의 눈이 반짝였다.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짜 은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장오의 눈동자에 전낭 속 가득한 은전이 반사된 것이었다.

장오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모습을 본 조호가 말했다.

“쫄리면 그냥 앉아 계시죠, 거지 아저씨.”

조호는 거지란 말에 유난히 힘을 주었다.

서로의 눈에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장오가 다급한 표정으로 자신의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치, 온몸이 근지러워 긁는 것처럼 보였다.

조호가 말했다.

“그렇게 온몸을 긁는 것을 보니, 거지 생활이 오래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네요.”

“나 거지 아니다.”

“그럼 걸 돈이 있어요?”

“…….”

“뭐, 돈 대신 인생을 걸어도 되고요.”

“인생?”

“거지 인생이니 일 년에 은전 한 냥 정도…….”

“거지 아니래도…….”

“개방도니 은전 한 냥, 그냥 거지면 은전 한 닢. 개방이에요, 아니에요?”

“개, 개방도 맞다.”

“그럼 난 이 은전 육십 냥을 전부 걸고. 거지 아저씨는 육십 년을 걸고. 어때요? 아니 그럼 내가 손해인가…….”

조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장삼 쪽을 바라봤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한빈에게 배운 그대로였다.

주군인 한빈은 상대를 낚으려면 절대 조급해서 안 된다고 했다.

조호는 손짓과 말투까지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상대가 괘씸해서 시작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름 낚는 맛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조호는 지금 조금씩 지쳐 가고 있었다. 상대를 낚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을 몰랐었다.

그렇지만, 힘든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빈틈을 보이는 즉시 상대는 도망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조호는 항상 낚싯대를 드리우며 주변 사람들을 낚는 주군이 존경스러웠다.

그때, 장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겠네, 하겠어.”

그 목소리에 조호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튕기려 했다. 하지만, 튕기지는 않았다.

자신에게는 계약서를 가져다줄 설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조호의 옆에 보따리를 내려놨다.

탁.

고개를 들어 보니 설화가 빙긋 웃고 있다.

“조호 오라버니, 이게 필요할 것 같아서요.”

“아, 설화구나.”

“지나가는 길에 재미있는 구경이 있는 것 같아서 들렀어요. 먹 갈아 드려요?”

“아, 그러니까 먹은 됐고…….”

조호는 말끝을 흐렸다.

여기까지가 조호의 한계였다.

주군인 한빈처럼 하려고 애썼지만, 똑같이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조호가 아직도 완벽하게 글을 쓸 수 없다는 점이었다.

대충 읽을 수는 있고 이름 석 자를 쓸 수는 있어도 계약서를 작성할 만큼 글을 깨우치지는 못했다.

조호는 분함에 이를 악물었다.

그때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조호야, 아직 멀었구나.”

조호는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이제까지 아무 말 없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홍칠개가 있었다.

홍칠개가 긴 웃음의 끝이 다시 말을 이었다.

“조호야, 이런 간단한 내기는 내가 증인이 되면 그만이다.”

“아, 그렇겠군요.”

조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에는 잘못하면 은전 육십 냥을 날릴 뻔했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장오는 홍칠개를 바라봤다.

이제까지는 홍칠개의 시선을 피했지만, 오늘만은 간절했다.

그 눈빛을 받은 홍칠개가 말했다.

“너희의 약속을 개방의 홍칠개가 지켜보았다. 만약 약속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백만 개방 방도는 눈길을 피하지 못할 터…….”

증인으로서 말을 끝낸 홍칠개는 가래를 모아 조호와 장오의 가운데에 뱉었다.

“퉤!”

동시에 조호와 설화가 몇 걸음 물러났다.

몇 걸음 물러난 조호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이제, 비무를 지켜보죠.”

말을 마친 조호는 연무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돌린 조호의 눈이 커졌다.

비무를 시작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양쪽 진영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보니 그들도 내기를 하고 있었다.

조호가 시작한 내기는 전염병처럼 연무장 주변으로 퍼져 나갔던 것.

신창양가 무리와 적혈맹호대가 지금 전낭을 털고 있었다.

“아.”

조호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옆에 있던 설화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역시 좋은 건 나눠 가져야 한다고 공자님이 말씀하셨죠.”

“좋은 걸 나눠 가지다니?”

“싸움에는 내기가 최고잖아요. 잠시만요, 저도 돈 좀 걸고 올게요.”

사사-삭.

설화가 순식간에 내기를 거는 사람들 쪽으로 사라졌다.

조호가 시작한 작은 내기는 이제 거대한 해일이 되어 연무장을 덮었다.

간단한 친선 비무가 갑자기 가문끼리의 행사가 되어 버린 상황.

연무장에 선 신창양가의 무사는 이전과 다르게 굳은 표정으로 창을 잡았다.

그는 창끝보다도 뾰족한 눈빛으로 장삼을 노려봤다.

단순한 친선 비무가 아닌 가문 간의 명예가 걸린 이 비무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 주겠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그의 앞에 선 장삼의 시선은 연무장 옆 조호 쪽을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조호가 아니라 장오였다.

집에 들어올 생각도 안 하는 망나니 동생이 왜 저기 있단 말인가?

거기에 거지꼴을 하고 조호와 내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장삼은 조호를 확인했다.

조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으로 뭐라 말하고 있다.

이건 꼭 이기라는 신호였다.

장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끄덕이던 장삼의 고개가 멈췄다.

몇 번 끄덕이지 않았지만, 장삼은 자신의 머리가 만근이 되는 것처럼 힘들었다.

그것도 잠시 장삼은 눈을 빛내며 상대를 바라봤다.

상대도 자신처럼 매의 눈으로 연무장을 살피고 있었다.

사실, 장삼과 상대의 눈에는 연무장이 아닌 전장으로 보였다.

비록 살생이 금지된 비무이긴 했지만, 눈빛만으로 상대를 죽일 것 같은 분위기였다.

장삼은 현철 반 묵철 반으로 만든 칼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물론 친선 비무이기에 칼에는 가죽으로 만든 칼집이 씌워져 있었다.

그때 소대섭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무 시작.”

그 말을 시작으로 신창양가의 무사와 장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슥.

그들의 발이 연무장 바닥을 쓰는 듯 움직인다.

먼저 간격을 좁힌 것은 신창양가의 무사였다.

창이 도(刀)보다 공격 범위가 넓기에, 이런 비무에서 선제공격은 항상 창을 든 자가 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신창양가의 무사는 간격은 좁히되 먼저 공격을 하지는 않았다.

마치 낚시를 하는 듯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장삼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장삼도 섣불리 앞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지금은 내공을 사용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병장기의 날을 가죽으로 막고 철저하게 초식으로 승부를 내야 하는 자리였다.

창을 상대한 적은 없지만, 창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는 주군인 한빈에게 배운 적이 있었다.

사실 배웠다고 해야 할지, 그냥 시도 때도 없이 맞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빈이 보는 창술에 대한 파훼법은 간단했다.

그것은 찰(扎), 즉 찌르고 빼는 동작만 잘 피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창술의 기본을 란나찰(攔拿扎)이라고 말한다.

바깥으로 돌려 걷어 내고, 안으로 돌려 누르고, 찌르는 동작을 말한다.

앞에 란과 나는 마지막 찰을 위한 기본 포석일 뿐.

찔러 들어오는 동작만 막을 수 있다면 아무리 고강한 창술이라도 파훼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이론이었다.

그렇다면 기다란 창을 어떻게 피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빈이 제시한 해법은 공간 감각이었다.

쉽게 말해 공간을 느끼는 감각.

공간 감각을 위해서 눈을 가리고 밥을 먹고, 밥을 먹다 찔러 들어오는 꼬챙이에 수난을 당해야 했다.

뾰족한 물건이라면 눈을 감고도 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때 그 훈련은 끝이 났었다.

장삼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상대 무사의 창이 슬쩍 회전했다.

장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발을 바라봤다.

상대의 발이 전진한다.

창으로 시선을 뺏고 거리를 좁혀 오는 상광첨창(常光尖槍)의 수법.

상광첨창의 수법은 어찌 보면 동수 간의 대결에서 주로 쓰는 신창양가의 고급 창술이었다.

창을 흔들면서 적의 눈을 교란시키며 들어오지만, 정작 적은 좁혀지는 간격을 모른다.

그것은 신창양가 특유의 조법으로 창을 뒤쪽으로 빼기 때문이다.

상대는 창을 잡되 창을 실제 잡지는 않고 있었다.

내공으로 창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손바닥 위에 진기를 불어 넣은 채 유지하면서 창을 자유로이 다룬다고?

뭐, 무기에 내공을 넣는 것은 아니니 친선 비무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법이 문제였다. 장삼은 눈매를 좁혔다.

상대가 절정 고수임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장삼은 막 절정의 경지에 오른 상황.

기세로 봐서는 비슷하지만, 상대가 자신의 아래일 확률은 적었다.

이 승부에서 이기려면 정공법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고민을 끝낸 장삼은 모른 척 간격을 유지했다.

장삼은 고의로 빈틈을 보여 주기로 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눈을 어지럽히며 들어오던 상대는 적당한 간격을 이루자 창을 뻗었다.

슝.

상대의 창이 가슴을 향해 파고들었다.

이제껏 뒤로 뺏던 창대를 한 번에 앞으로 밀어 낸다.

신창양가의 창술 중 진왕마기(秦王磨旗) 수법.

장삼은 창대를 흘려보내기 위해 몸을 젖혔다.

휙.

신창양가가 내뻗은 창대가 뱀처럼 장삼의 상체를 훑고 지나갔다.

순간 구경꾼들이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