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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38화 (238/621)

238화. 범인은 바로 이곳에 (1)

과연 무슨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천수장에서부터 쭉 뻗은 길에 있는 텅텅 빈 상점 중 대부분이 바로 한빈의 소유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상점에 입점하려고 하는 상인도 당연히 없었다.

그런 상인이 있다면 아마도 미친 자일 것이 분명했다.

아직도 천수장은 귀곡장이라는 소문이 지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오죽하면 장운현에 있던 사람들도 이 마을을 귀곡현이라 부를까.

그런데 주인 없는 텅 빈 상점이 늘어선 거리가 저리 번잡스럽다고?

한빈도 이리 당황스러울 때는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청화가 설화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 왜 그렇게 놀라는 거예요? 아무리 봐도 이상한 모습은 안 보이는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유령 마을이었거든. 귀신 나온다는 동네라서…….”

그때 한빈이 끼어들었다.

“설화야.”

묵직한 한빈의 목소리에 설화가 답했다.

“네, 공자님.”

“그런 얘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한빈의 말에 정신이 번뜩 든 설화가 말했다.

“아, 참 그렇지. 죄송해요, 공자님.”

살짝 고개 숙인 설화를 뒤로한 채 한빈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향해 걸어갔다.

한빈이 멀어지자 청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언니, 혹시 비밀인가요?”

“에이, 비밀도 아니야.”

“그런데, 왜 저렇게 정색을 하시는 거죠?”

“땅값 떨어진다고!”

“아, 그렇구나.”

청화가 멀어지는 한빈을 보며 입을 벌렸다.

* * *

휘적휘적 거리를 걷던 한빈의 눈동자는 분주히 움직였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의문이 풀리기는커녕 더 쌓이는 상황이었다.

가장 황당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한 가지였다.

한빈이 아직 매입하지 않은 상점에조차 누군가가 입점하여, 물건을 팔고 있던 것.

한마디로 죽었던 거리가 완벽하게 살아난 것이다.

이것은 한빈이 상상도 하지 않은 일이었다.

고민하던 한빈은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물론 이 일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일이었다.

한빈이 의도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다른 이의 함정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견제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한빈은 자신의 복장을 살폈다.

수염은 없지만, 옷은 전에 입던 허름한 푸른 무복이었다.

이 정도면 누가 자신을 알아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주위를 돌아보던 한빈은 장신구를 파는 상인에게 다가갔다.

상인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어서 오십시오.”

“장사는 잘되세요?”

“그럼요, 이게 다 장주님의 은덕 덕분입니다.”

“장주요?”

한빈은 눈매를 좁혔다.

갑자기 장주라는 칭호가 왜 튀어나온다는 말인가?

이곳과 연관된 자 중에 장주라는 칭호로 불릴 만한 이는 없었다.

대체 어떤 세력이?

그때 상인이 황당하다는 듯 한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이곳 처음이십니까? 손님.”

“처음은 아니지만, 전에 봤을 때는 텅 빈 마을이었는데…….”

한빈이 쓱 뒤쪽을 훑어보자, 상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습죠. 이게 다 장주님 밑에서 일하시는 매화검협 님 덕분입니다.”

“매화검협이요?”

한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매화라면 화산파를 뜻하는 것일 텐데 매화검협이란 별호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문제가 더 심각했다.

화산파의 누군가가 이곳을 눈독 들이고 있다는 것이니까.

한빈의 표정을 본 상인이 무릎을 치며 웃는다.

“아이고, 손님도 강호 물정에 어두우시군요. 그럼 천수 도협은 혹시 아십니까?”

“아, 제가 잘…….”

한빈은 말끝을 흐렸다.

모르는 이름이 총 세 번이나 나왔다.

요즘 들어 정보 수집에 게을렀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코앞에서 일어난 일을 모른다는 것은 반성해야 했다.

“그분들을 모르시면 새외에서 오신 건데…….”

“제가 요즘 바빠서 소문에 좀 어둡네요.”

한빈이 최대한 표정을 숨기며 웃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매화검협 대협이시다!”

“어디 어디?”

“저기 내려오시잖아.”

“아, 저기 내려오시는군.”

“그 옆에는 천수 도협도 같이 오시네.”

“오늘 무슨 일이지?”

“그러게 말이야. 무슨 경사라도 난 건가?”

“일단 가 보자고.”

그들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한빈과 얘기하던 상인마저 웅성거리는 쪽으로 뛰어갔다.

한빈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과연 저들은 누굴까?

한빈이 아는 한 매화검협이라 불리는 화산파의 인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천수 도협이란 인물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대체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팔짱을 끼고 잠시 상념에 잠겼던 한빈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기대했던 인물은 없었다.

대신 서재오와 소대섭이 대화를 나누며 걸어오고 있었다.

한빈과 눈이 마주친 둘이 다급하게 달려온다.

둘이 달려오자 웅성거리던 마을 사람들이 마치 썰물 빠지듯 반으로 갈라졌다.

쓱.

갈라진 길로 달려오는 서재오와 소대섭이 한빈의 앞에 멈췄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서재오였다.

“사 공자! 드디어 오셨군.”

“네, 잘 지내셨습니까? 서 대협.”

한빈이 포권하자 서재오도 재빨리 마주 포권했다.

소대섭은 아예 깊숙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주군, 오셨습니까?”

“그래, 소 대주. 먼저 와서 정리하느라 고생 많았어.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라니요?”

허리를 편 소대섭이 고개를 갸웃하자 한빈이 턱짓으로 사람들을 가리켰다.

“이 많은 사람 하며, 여기에서 장사하는 점포들 하며 딱 봐도 이상하잖아.”

“아, 그러니까…….”

소대섭은 말끝을 흐렸다.

변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그때 서재오가 끼어들었다.

“그건 내가 설명하겠네, 사 공자.”

그때였다.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빈이 있는 쪽에서 멀리 떨어져 조심스럽게 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이 뭔데 매화검협하고 천수 도협이 저렇게 깍듯하게 대하지?”

“그러니까?”

“설마 장주님은 아니겠지?”

“에이, 장주님은 저런 옷 안 입으시네. 자네들도 봐서 알잖아.”

“그래, 장주님은 저런 옷을 안 입으시지. 장주님이 입기에는 너무 허름해 보여.”

“쉿,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멀리 떨어졌는데, 우리 목소리가 들리려고?”

“그래도 두 분 대협하고 안면이 있는 사람 같은데 저러면 안 되지.”

“그런데, 천수 도협이 지금 주군이라고 한 것 같지 않아?”

“에이, 주군이 아니라 죽음이라고 한 것 같은데.”

“그럼 저자가 두 분 대협한테 빚이라도 진 건가?”

물론 그들의 목소리는 한빈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서재오가 답을 하기 전에 한빈의 입이 먼저 열렸다.

“지금 매화검협하고 천수 도협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흠, 매화검협이라는 게 허명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서재오의 답이 끝나기도 전에 한빈의 눈길은 소대섭에게 멈췄다.

“그럼 소 대주가 혹시 천수 도협?”

“아, 그게……. 제가 원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주군.”

“그래, 서재오. 대협은 그렇다 치고. 소 대주가 천수 도협이라고? 혹시 지금 반란이라도 일어난 거야? 나도 협 자가 들어가는 별호는 달지 못했는데, 소 대주가 나를 넘어선 거야?”

“아, 주군. 오해입니다, 오해.”

“오해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수상해.”

“진짜 오해라니까요.”

“이거 많이 서운하네.”

“절대 제가 원한 별호가 아닙니다. 주군.”

“그런데, 갑자기 천수 도협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대체 뭐야? 그것부터 들어 보자고.”

“그러니까, 서재오 대협께서 설명해 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주군, 일단 얘기부터 들어 보시죠.”

소대섭이 연신 고개를 숙이자, 한빈은 시선을 다시 서재오에게 돌렸다.

한빈의 눈빛에 서재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일단 내 얘기를 들어 보게.”

“말씀해 보시죠.”

말을 마친 한빈은 꼬투리가 보이면 바로 잡겠다는 듯 매의 눈을 떴다.

그 눈빛에 서재오는 헛기침을 시작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흠, 우리가 이곳에 막 도착했을 때의 일이네. 그러니까…….”

서재오의 설명은 꽤 구체적이었다.

한빈은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서재오와 적혈맹호대가 천수장에 도착했을 때, 이 마을에는 먼저 온 손님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 손님들은 장운현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말이다.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하북의 생불이 있는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만큼 지난번의 역병 사건은 그들에게 충격이 컸던 것이다.

나라의 군졸들이 포위해서 출입을 통제했을 때는 모두가 버림받았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바로 한빈과 적혈맹호대였다는 것이다.

거기에 와불이 가리킨 곳이 바로 이곳 천수장이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어떤 이는 와불이 바라보는 곳이 극락이라고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즉, 그들은 한빈을 찾아서 이곳에 온 것이었다.

서재오가 여기까지 설명했을 때 한빈이 물었다.

“그럼 장주는 대체 누구입니까?”

“자네를 말하는 거네. 하북팽가에서는 막내 공자지만, 이곳에서는 장주가 아니던가?”

“허, 제가 장주라고요?”

“천수장의 주인인 자네를 장주라 안 부르면 누굴 장주라 부른다는 말인가?”

“그건 그렇고, 저들의 눈빛은 대체 뭡니까?”

“그건 자네와 우리가 살길을 열어 줬으니 당연한 것이네.”

“살길이라니요?”

“뭐, 간단히 말하면…….”

서재오가 다시 설명을 이었다.

간단히라고 표현했지만, 그 설명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다.

천수장에서 한빈을 기다리는 이들의 꼴은 한마디로 난민 그 자체였다고 한다.

장운현에서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왔지만, 이곳 어디에도 그들이 정착할 곳은 없었다.

그때 서재오가 빈집과 상점에 그들은 내어 주는 방법을 생각한 것이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들을 이곳에 정착시키는 역할을 맡은 것은 서재오. 그 옆에서 그를 도와준 것이 바로 소대섭이었다.

그런 이유로 마을 사람들이 끝에 협 자를 붙인 별호로 서재오와 소대섭을 부른다는 것이다.

말을 마친 서재오는 품속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한번 쓱 확인을 하더니 그대로 한빈에게 건넸다.

한빈은 대충 그것이 뭔지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장운현에서 이곳으로 온 상인들과의 계약서가 분명했다.

계약서를 건네받던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종이 뭉치를 건네는 서재오가 이상하게 손을 놓지 않는 것이었다.

한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서 대협?”

“아무래도 먼저 확인해 봐야 할 게 있어서…….”

말끝을 흐리는 서재오는 종이뭉치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한빈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이렇게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때 헛기침까지 하는 서재오.

“흠.”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소대섭이 한빈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속삭였다.

“주군, 소매를 좀 보시지요.”

“소매라니…….”

서재오의 소매를 보던 한빈의 눈이 커졌다.

그 눈빛에 서재오는 그제야 손을 내려놓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게 다 자네 덕분이네.”

한빈이 놀란 이유는 한 가지였다.

바로 소매에 있는 매화꽃 문양의 개수 때문이다.

화산파의 매화검수는 강호행의 성적에 따라 매화 문양의 숫자에 차등을 둔다.

소매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매화 문양은 그가 화산파의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였다.

사실, 매화 문양을 새기는 행사는 강호행이 끝난 직후에 이루어진다.

강호행 도중에 있는 서재오에게 문양을 내린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빈을 바라보는 서재오의 눈썹이 반달 모양이 되었다.

한빈을 향한 서재오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늘어난 매화꽃만큼 한빈을 향한 호감도 늘어났다.

그때 소대섭이 나지막이 외쳤다.

“일단 올라가시면서 검토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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