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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31화 (231/621)

231화. 천수장 (3)

신창양가에게 빚을 지워 무가지회에서 활용하는 것이면 충분했다.

거기에 아무리 봐도 정체불명의 집단이나 위씨세가와는 접점이 없어 보였다.

그들과 접점이 있더라도 아마 양예신은 아닐 것이었다.

그런데 발길이 안 떨어지는 것은 왜일까?

“쩝.”

한빈은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금괴가 아까웠다.

그 모습에 양예신이 번개처럼 달려왔다.

“어르신, 배고프십니까?”

“아닐세.”

“아무래도 배고프신 것 같은데 저희가…….”

“그건 됐고, 약속은 확실히 지키게.”

한빈이 떠나려 하자 양예신이 다급하게 물었다.

“어르신,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말해 보아라.”

“이 마차를 홈친 놈들이 산적입니까?”

“아니다.”

“그럼 대체 이 마차를 홈친 놈들은 누구란 말입니까?”

“그건 너희들이 밝혀야지, 왜 내게 물어보는 것이냐?”

“아, 죄송합니다. 어르신.”

“누군가 너희의 일을 방해하려고 하는 것일 터. 저런 힘 없는 산적 놈들은 이 일에는 관련이 없을 것이야.”

“어르신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 대신 내 제자가 찾아갈 것이니 그리 알아라.”

“제자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한빈은 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채 손가락만 튕겼다.

딱.

내공을 실은 소리는 고즈넉한 산자락에 풍경(風磬) 소리처럼 잔잔하게 퍼져 나갔다.

그 소리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한빈은 풀잎 밟는 소리만 남기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사사-삭.

그때 마차를 확인하던 당기명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어르신!”

하지만, 한빈은 잔잔한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진 후.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한빈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당기명은 입을 벌린 채 석상이 되었다.

찾아야 할 사람 중 하나를 찾았는데 눈앞에서 떠나보낸 것이었다.

청운사신에게는 하남정가에서 벌어진 일을 물어보고 도움을 받아야 했다.

당기명은 자리에서 사라진 푸른 무복의 도인이 청운사신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양예신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당 공자.”

양예신의 물음에 당기명은 손을 내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네, 그럼…….”

양예신은 뒤돌아 마차로 돌아갔다.

당기명과 말을 섞다가 이전과 같은 불협화음이 나와서는 안 될 일.

자신의 손에 가문의 존망이 걸려 있기에 여기서 지체하면 안 되었다.

양예신은 재빨리 마차를 다시 정비하기 시작했다.

당기명도 자신의 수하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당기명은 중간중간 멈칫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것은 청운사신이라 생각한 푸른 무복의 도인이 사라진 방향이었다.

당기명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청운사신을 만나면 한 가지 부탁을 할 터였다.

가문의 모든 재산을 바쳐서라도 동생을 찾아 달라 그의 소매를 붙들고 늘어질 작정이었다.

동생을 찾는데 가문의 전 재산을 쓴다면?

병석에 있는 당기명의 아비, 즉 사천당가의 가주도 흔쾌히 승낙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당기명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산자락에 있던 마차는 모두 정비가 끝났다.

정비가 끝나자 당기명은 수하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제 출발한다.”

“네, 공자님.”

수하가 마차에 올라 말고삐를 움켜쥐자, 옆에 있던 다른 수하가 뒤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놈들은 어떻게 할까요?”

다른 수하가 가리킨 곳에는 산적들이 있었다.

마차에 접근하려다가 설화의 돌멩이를 맞고 쓰러진 산적들.

그들은 손과 발이 포박된 채 나무에 묶여 있었다.

거기에 더해 아혈까지 제압된 상태.

사실 산적들의 입장에서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되었다.

이곳에 와서 물건을 홈친 적이 있던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건을 홈치기도 전에, 아니 물건을 보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공격당해서 쓰러진 것이다.

산적질이라도 제대로 하다가 이렇게 꼬꾸라졌으면 할 말 없지만, 지금 상황은 너무 억울했다.

아혈을 제압당한 산적들이 눈만 멀뚱거리고 있을 때였다.

당기명이 다가와 가장 억울한 표정을 하는 산적의 아혈을 풀었다.

그러고는 수하들에게 외쳤다.

“이제 됐다. 출발한다!”

“저, 저희를 여기에 그냥 놔두고 떠나시려고요? 차라리 관아에라도 넘기시길……. 제발,”

떠나려던 당기명이 멈칫하고 뒤를 돌아봤다.

산적의 상태를 살핀 당기명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우리도 바빠. 강호에서는 목소리 큰 놈이 살아남는 법이야.”

말을 마친 당기명이 뭔가 기억난 듯 수하에게 외쳤다.

“가문의 깃발을 올려라!”

당기명의 외침에 수하들이 마차에 사천당문의 깃발을 꽂았다.

그 모습에 산적의 눈빛이 떨렸다.

사천당문의 깃발이 있었다면 그 마차는 거들떠도 안 봤을 것이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늑대의 울음이 들려왔다.

아우-울.

산적은 그때야 다급하게 외쳤다.

“구, 구해 주십시오! 이곳은 절…….”

산적은 말을 맺지 못했다.

멀리 떠나던 당기명이 날린 암기에 다시 아혈이 눌렸기 때문이다.

산적은 이곳이 절호곡과 가깝다는 것을 그제야 떠올리고는 절망했다.

* * *

한빈과 신창양가 그리고 사천당문이 떠나고 반 시진이 지난 객잔의 앞.

그곳에서는 아직도 구경꾼들이 모여 있었다.

웅성거리며 객잔에 모여 있는 이들 속에는 장오도 있었다.

장오는 팔짱을 끼고 안을 들여다봤다.

무림인의 싸움이라는 것이 이렇게 과격할지는 몰랐다.

뭐, 자신의 형 장삼이 자칭 무림인이긴 했다.

하지만, 장오가 보기에는 삼류에 불과했다.

삼류 무인의 생이 저잣거리 왈패의 삶보다 나을까?

장오는 자신 있게 고개를 저을 수 있었다.

손가락 몇 번 튕기면 하루 끼니를 때울 수도 있고.

무림 고수만 피한다면 저잣거리 왈패 생활보다 편한 것이 없었다.

힘든 시기가 있으면 집에 기어들어 가서 어미의 등골을 빨며 살아가는 장오였다.

물론 장오의 입장에서는 가끔 들어가 어미를 봉양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장오는 삼류에 불과한 자신의 형 장삼이 요즘 집에 얼굴을 비치지 않는 이유가 어디선가 쥐어 터지고 있어서라 생각했다.

장삼을 떠올리던 장오는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장오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때가 되었다는 듯 구경꾼들의 앞을 막아섰다.

“잠시 멈추시오.”

거대한 덩치의 장오가 팔을 벌리며 객잔을 막아서자, 객잔 안을 보며 두리번거리던 구경꾼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도 잠시, 그들 중 제법 체격이 잡힌 이들이 앞으로 나왔다.

“지금 왜 그러는 겁니까?”

“이건 무림인들이 남긴 대결의 흔적입니다.”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잖소. 왜 앞을 막냐는 이야기요.”

“안을 둘러보려면 돈을 내시오.”

장오는 상대에게 손을 내밀었다.

상대는 황당하다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그 모습에 장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까 못 봤소?”

“뭘 말이요?”

“내가 돈을 걷고 있던 것을 말이요.”

“음.”

상대는 침음을 삼키며 장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잘 생각해 보니 아까 말도 안 되는 무위로 암기를 막아 냈던 푸른 무복의 도인과 같은 일행인 듯 보였다.

그 일행이 이렇게 앞을 막아서자 안쪽이 궁금해도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살짝 물러서며 돈을 내야 할까 말까를 고민하자, 어깨가 으쓱해진 장오가 다시 외쳤다.

“안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은 철전 열 닢이요!”

장오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장오는 이런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인간이었다.

집에서는 내놓은 자식이고 어미와 형의 속을 끓이지만, 이렇게 기회가 왔을 때는 잡아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앞쪽의 구경꾼들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 모습에 장오가 눈매를 좁혔다.

그러나 잠시 긴장했던 장오는 헛웃음을 흘렸다.

구경꾼들이 내준 길로 오는 이들은 누가 봐도 거지였기 때문이다.

무서워서 피한 게 아니라 더러워서 길을 내준 것이라 장오는 생각했다.

백발의 거지와 아직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거지를 무서워할 장오가 아니었다.

장오가 어이없는 표정을 하고 있을 때, 어린 거지가 장오를 가리켰다.

“저 사람이 가져갔어요.”

“저놈이 가져갔다고?”

늙은 거지가 장오를 가리키며 물었다.

어린 거지의 고개가 격하게 상하로 움직였다.

“맞아요. 저 아저씨예요.”

“험,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다고 해도 저렇게 허우대가 멀쩡한 놈이 동냥 그릇을 빼앗아 가?”

“네, 눈 깜짝할 사이에 동냥 그릇이 없어져서 찾아다녔는데, 저 아저씨가 내 동냥 그릇으로 동냥을 하고 다니더라고요.”

“허허 말세로다. 동냥 그릇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아이의 구역에서 동냥까지 했다고? 거참 사악한 놈이로구나.”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장오의 앞으로 걸어왔다.

장오는 그들의 대화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자신이 왜 동냥 그릇을 홈친다는 말인가?

거기에 더해 동냥 그릇을 빼앗아 자신이 구걸하고 다녔다니?

장오는 울화통이 치밀었다.

그때 늙은 거지가 장오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네가 이 아이의 동냥 그릇을 홈친 게 분명하더냐?”

“이런 미친…….”

장오는 말을 맺지 않았다.

대답을 못 해서가 아니라 거지의 물음이 가치 없다 판단해서였다.

장오는 대답 대신 통나무처럼 두꺼운 다리를 들었다.

다리를 든 장오는 거지를 밟을 것 같은 기세로 힘차게 뻗었다.

늙은 거지를 발로 차 버리려 한 것이다.

하지만, 발에 닿는 느낌이 없었다.

허공을 찬 장오는 순간 중심을 잃어버렸다.

휘청.

장오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때 누군가 장오의 어깨를 잡았다.

힐끔 고개를 돌려 보니 늙은 거지였다.

늙은 거지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때 어깨 쪽에서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늙은 거지가 검지로 어깨 부근을 찌른 것이다.

‘이런 미친 거지가…….’

장오의 말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몸도 마비됐다는 것이었다.

장오는 지금 상황이 황당했다.

고수를 보면 피했기에 마혈과 아혈을 제압당한 적이 없던 장오였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점혈을 당하고 보니, 왜 무림 고수와 상대하지 말라고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거지는 잡았던 장오의 어깨를 놓았다.

쓰윽.

장오의 시야에 점점 기울어지는 세상이 들어왔다.

그때 장오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쓰러지면서 상대의 허리 쪽을 본 것이었다.

하나, 둘, 셋, 넷…….

허리에 맨 매듭의 개수를 세다가 장오는 쓰러졌다.

주변에서는 구경이라도 난 듯 웅성대고 있었다.

그때 어린 거지가 말했다.

“무제자 할아버지, 이 아저씨 등에 뭔가 꽂혀 있는데요?”

아이는 장오의 등판을 가리키며 늙은 거지를 바라봤다.

늙은 거지의 정체는 다름 아닌 무제자 홍칠개.

홍칠개는 광개에게 일을 시켜 놓고 한빈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다니던 도중, 어린 거지 하나가 봉변을 당했다고 해서 그 원흉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등에 뭔가가 꽂혀 있다니?

무제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말이냐?”

말을 마친 무제자는 장오의 등 뒤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곳에는 쪽지가 꽂혀 있었다.

정확히는 은침이 쪽지를 고정하고 있었다.

진짜 절묘한 솜씨였다.

상대는 지금까지 저 암기가 박힌 줄도 모르고 있었을 것.

홍칠개는 재빨리 은침과 쪽지를 뺐다.

획.

쪽지를 펼친 홍칠개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쪽지를 끝까지 읽고 난 홍칠개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혔다.

그 모습에 어린 거지가 물었다.

“할아버지, 왜 그렇게 웃으세요?”

“내 제자가 보낸 쪽지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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