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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25화 (225/621)

225화. 흑막 (2)

하북팽가의 정문을 받치고 있는 기둥에는 나무못이 박혀 있었다.

나무못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못은 팽가를 방문한 손님들이 깜박하고 놓고 간 물건을 걸어 놓는 곳이었다.

가문을 떠나거나 다시 방문할 때 자신의 물건인지를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가죽 주머니가 걸려 있었던 것.

가죽 주머니의 색이 나무와 너무 비슷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마 그 때문에 아직도 저기 남아 있는 듯 보였다.

문제는 저 가죽 주머니에서 익숙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경비 무사를 지나치려던 한빈은 재빨리 몸을 돌렸다.

‘구걸십팔보.’

‘전광석화.’

한빈은 눈에 보이는 자그마한 돌멩이를 잡았다.

그러고는 기둥에 매달린 주머니를 향해 던졌다.

‘백발백중.’

순간 기둥에 걸려 있던 가죽 주머니가 떨어졌다.

툭.

한빈은 재빨리 손을 뻗어 낚아챘다.

낚아채고 돌아선 한빈이 경비 무사를 보며 씩 웃었다.

동작이 얼마나 빨랐는지, 경비 무사의 입장에서는 한빈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정도였다.

그 모습이 경비 무사의 눈에는 마치 꼬투리를 잡으려는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경비 무사가 눈을 살짝 뜨며 말했다.

“사 공자님,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그는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우연히도 그 경비 무사는 사천당가의 서찰과 백사문의 물건을 가져왔던 자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한빈이 그때의 실책을 꼬투리 잡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한빈이 사신첩의 비밀을 풀지 못했다면 누군가가 중독당했을지도 모르는 일.

물론 일개 경비 무사가 책임질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 다쳤다면 자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던 상황.

경비 무사는 그 때문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한빈이 웃는 모습은 그가 충분히 오해할 만한 모습이었다.

다행히 한빈의 활약으로 그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경비 무사는 뜨끔했다.

한빈은 사람 좋은 얼굴로 품속에 손을 넣었다.

물론 가죽 주머니를 넣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뭔가 어색한 듯한 동작이었다.

그래서 한빈은 품속에서 슬쩍 은자 한 닢을 꺼냈다.

“이거 받아.”

“이게 대체 무엇인지요? 사 공자님.”

“그날 고마웠다는 표시야.”

“그게 대체…….”

“그날 사신첩을 그냥 들고 왔잖아. 뭐, 조금은 위험한 물건이긴 했지.”

“그때는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은자라니요?”

“죽을죄는 뭐……. 내가 무사히 열게 해 줘서 고맙다는 거야. 덕분에 내가 활약할 수 있었잖아.”

“아, 사 공자님.”

경비 무사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그가 말한 것은 진심이었다.

한빈이 아니었다면 그때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포상까지 내린다니…….

경비 무사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빈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사라지는 한빈의 모습을 본 경비 무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 공자님…….”

물론 그 목소리는 너무 작아 한빈에게 닿지는 못했다.

그때 잠시 뒷간에 갔다가 돌아온 동료 경비 무사가 물었다.

“왜 그러나? 자네.”

“아, 아무것도 아닐세.”

“눈을 보니 무슨 험한 꼴을 당한 것 같은데,”

“아니래도. 험한 꼴이라니……. 은혜를 입었지, 은혜를…….”

“은혜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장운현에서 떠도는 소문이 사실인 듯하네.”

“무슨 소문?”

“우리 사 공자님이 생불이라는 거 말이야.”

“에이, 설마. 그거 그 사람들이 역병 때문에 정신이 휙 돌아서 그런 거라고 결론 났잖아.”

“아니야, 나는 오늘부터 사 공자님을 믿기로 했네.”

* * *

가문에서 멀어지자 한빈은 귀를 후볐다.

그 모습에 설화가 물었다.

“공자님, 왜 그러세요?”

“누가 내 말을 하는지 귀가 간지럽네.”

“에이 참, 공자님도 의심이 너무 많아요.”

“의심은 무슨 의심이 많다고 그래?”

“의심이 많아서 그러시는 거잖아요. 이제는 믿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누굴 믿어?”

“가족요.”

“가족이라…….”

한빈은 말끝을 흐리며 희미한 웃음으로 뒷말을 대신했다.

표정을 본 설화가 말했다.

“표정을 보니 이미 가족을 믿고 계셨다는 거네요. 솔직히 부러워요. 그렇지 않니? 청화야.”

“네, 저도 공자님이 부러워요.”

그들의 말에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부럽다는 거지?”

“가족 말이에요. 저도 그렇고 청화도 그렇고 진짜 부모님은 없잖아요.”

“음.”

한빈이 침음을 흘리며 둘을 바라봤다.

설화의 말대로 둘에게 진짜 부모는 없었다.

각각 살수와 독인에게 거둬져 그들을 부모로 알고 자라 왔다.

그 공통점 때문에 설화와 청화가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한빈이 뚫어져라 쳐다보자 머쓱해진 설화는 화제를 돌렸다.

“저, 아까 품에 넣으신 주머니는 뭐예요?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은밀하게 챙기시니 더 궁금해요.”

“아, 그러고 보니 이걸 잊고 있었네.”

한빈은 품 안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한빈이 이 주머니를 챙긴 이유는 주머니에서 나는 냄새가 사신첩에서 풍겼던 것과 너무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천당가의 물건이라는 이야기였다.

사천당가의 물건이라?

즉, 이 주머니에 들어 있는 물건이 바로 사신첩을 여는 단서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사천당가가 흘리고 간 이유는 무엇일까?

한빈은 하북팽가를 시험해 보기 위해 낸 과제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죽 주머니를 열어 본 순간, 한빈은 이제까지의 추측을 모두 백지로 돌려야 했다.

“아.”

한빈의 탄성에 설화가 고개를 내밀고 가죽 주머니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전서구 통이 여러 개가 있었다.

설화가 물었다.

“이게 다 뭐예요? 공자님.”

“뭐긴, 사신첩을 여는 열쇠지.”

“그럼 혹시…….”

“그 혹시가 맞아. 사천당가에서 이것을 떨어뜨리고 간 거지.”

“그러면, 고의로 그런 건 아니라는 얘기네요.”

“이제까지는 고의가 아니었겠지만, 앞으로는 고의가 되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전서구 통을 잘 봐 봐.”

“전서구 통이 왜요? 아, 그랬구나…….”

설화는 입을 떡 벌렸다.

한빈이 가리킨 전서구 통에는 조그만 글씨로 각 가문의 이름이 써 있었다.

모용세가, 황보세가, 백도문 등 이번에 무가지회에 초대할 강북의 문파들이 말이다.

한참을 보던 설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다른 가문 것까지 떨구고 갔을까요?”

“뭐, 소식을 전하는 자가 엄청나게 덜렁대는 성격이거나 사천당가 사람들의 약점 때문이겠지…….”

“사천당가에 약점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건…….”

한빈이 살짝 말끝을 흐렸다.

그때 마침 청화가 배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언니, 오늘 아침은 안 먹어요?”

청화의 말에 한빈과 설화가 동시에 입을 벌렸다.

한참을 바라보던 설화가 물었다.

“아까 먹었잖아.”

“그런가……?”

청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한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사천당가의 약점이라고 하면 바로 건망증이지. 독을 다뤄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가문의 내력인지는 몰라도 그쪽 친구들이 건망증이 심하더라고. 지금 보니 청화도 비슷하네, 하하.”

“헤헤, 그런데 점심은 언제 먹나요? 공자님.”

청화가 해맑게 마주 웃자 한빈이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걸음을 재촉하자꾸나.”

“이왕이면 석화교 쪽으로 가요. 거기에 맛있는 당과가…….”

“알았다, 설화야.”

한빈이 속도를 높였다.

청화의 손을 잡은 설화도 덩달아 속도를 높였다.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최근 들어 느낀 거지만, 청화의 몸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청화의 하루 식사량은 설화의 열 배가량.

독을 취해서 성장하는 청화에게 음식은 필요 없었다.

그런데 묘하게 남들의 몇 배에서 몇십 배 가까이 되는 양을 매 끼니 먹어 치웠다.

어찌 보면 이것은 체질이 바뀌면서 얻게 된 부작용일지 몰랐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석화교가 보였다.

석화교를 건넌 한빈 일행은 길거리에 늘어선 좌판 앞에 서 있었다.

설화가 향한 곳은 역시 당과를 팔고 있는 좌판이었다.

좌판 앞으로 한 발 다가선 설화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 여기 당과 좀 주세요.”

“몇 개나 줄까?”

당과 장수는 별 기대 없이 당과 한 개를 들었다.

당연히 한 개를 살 거라고 생각하는 듯.

하지만, 설화는 기분 좋게 고개를 저었다.

“그냥 다 주세요.”

“다라면…….”

당과 장수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그때 설화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거기 있는 거 다요.”

“그, 그런데 돈은 있는 거지?”

당과 장수가 설화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설화가 품속에서 전낭을 꺼내 흔들었다.

전낭이 찰랑거리며 경쾌한 소리를 내자, 당과 장수의 표정이 바뀌었다.

좌판을 통째로 내밀려는 당과 장수의 모습에, 설화가 말했다.

“그 대신 반값 어때요?”

“반값이라니? 내가 이거 팔아도 남는 게…….”

“지금 보니 오늘 넘기면 버려야 할 것도 있고, 제가 직접 만들어 보니 반값에 팔아도 많이 남더라고요.”

“당과를 판 적이 있다고?”

당과 장수가 눈을 크게 떴다.

설화의 말은 사실이었다. 장운현에 있으면서 당과는 원 없이 만들어 봤으니까.

놀라던 당과 장수가 허탈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허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빈은 흥정하는 설화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세상에 물들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살아가는 이치를 깨우쳤다고 해야 할지, 설화는 제법 알뜰했다.

뭐, 당과를 통째로 다 사는 것이 알뜰한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겠지만 말이다.

한빈이 설화가 흥정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당과 장수 뒤로 마차가 보였다.

정확히는 마차에 꽂힌 깃발이 문제였다.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천당가?”

“네? 사천당가요?”

청화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반응했다.

사천당가는 경외심의 대상이었다.

한빈이 말했다.

“같이 가 볼까?”

“설화 언니는요?”

“설화는 아마도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설화 옆에 남으려면 남아도 된다, 청화야.”

“공자님 따라갈래요. 사천당가 사람들은 아직 마주친 적이 없어 궁금해요.”

“그래, 그럼 이리로…….”

마차로 다가간 한빈이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마차의 주변에 남겨진 흔적이 이어진 곳은 근처 음식점이었다.

한빈은 청화와 함께 조용히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음식점으로 들어간 한빈은 주위를 둘러봤다.

일 층은 아무도 없었다.

한빈이 점소이를 보더니 말했다.

“석화교가 잘 보이는 자리로 안내해 주게,”

“이 층으로 가시면 고급 요리를…….”

점소이는 힐끔 한빈을 살폈다.

한빈이 그의 의도를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내가 값싼 요리를 주문할 사람처럼 보이나 봐?”

한빈이 씩 웃으며 전낭을 흔들었다.

그곳에서는 설화가 흔들었을 때보다도 경쾌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쩔렁.

그 소리에 점소이가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손님.”

한빈 일행은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이 층으로 올라갔다.

순간 사천당가의 사람들로 보이는 무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무복을 입은 무사들이 고급 요리를 시켜 놓고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화려한 무복이라?

어찌 보면 무림세가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었다.

하지만, 사천당가의 무복은 무림세가 중에서는 가장 화려하다.

사람들은 이런 사천당가의 복장이 ‘화려한 꽃에는 독이 있다.’라는 강호의 속담을 증명하고 있다고 하기도 한다.

뭐, 맞는 말이긴 했다.

화려한 무복의 무인을 앞에 두고 있으면 묘하게 방심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니까.

한빈은 그들의 눈길을 피해 청화와 함께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점소이에게 요리를 시켜 놓고 아래를 힐끔 보니, 설화는 아직도 당과 장수와 흥정을 하고 있었다.

한빈은 시선은 창가로 돌린 채 사천당가 무사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와, 미치겠네. 공자님은 우리 보고 그걸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그러게, 손바닥만 한 가죽 주머니를 이 넓은 마을에서 어떻게 찾아?”

“아, 미치겠네. 아마 요리 나올 때 되면 우리 보고 밥 먹을 시간이 있느냐고 호통칠 거고.”

“그래. 밥 먹을 시간에 석화교 주변이나 샅샅이 뒤지라고 할걸.”

“그러니까.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와, 이거 아무리 돈이 좋아도 못 해 먹겠네.”

그들은 하소연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한빈은 자신의 품속에 들어 있는 가죽 주머니를 떠올리며 주판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아래층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우당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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