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물과 기름 (4)
같은 시각, 석화교 위.
석화교 위를 지나가려던 사람들은 발길을 멈췄다.
석화교 가운데에 펄럭이는 깃발 때문이었다.
깃발의 가운데에는 당(唐) 자가 굵게 적혀 있었다.
그 위아래는 작은 글씨로 사천(四川)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양옆으로는 뱀이 마주 보고 있었다.
이것은 사천당가의 상징이었다.
사천이란 글자를 당이란 글자 아래에 두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그것은 자신들이 사천에서 군림하고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수많은 무림세가와 거대 문파를 앞에 두고 자신이 지역의 지배자라 공표할 수 있는 문파가 얼마나 될까?
중원을 통틀어 사천당가밖에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사천당가의 이런 진취적인 기상을 인정하는 강호인들은 없다.
오히려 사천당가의 성격 때문인지, 일반 백성도 대부분 그들을 피한다.
지금 석화교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천당가의 행렬을 피해 가는 상황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동생인 듯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석화교를 건너려던 소녀가 발을 멈췄다.
걸음을 멈춘 누이의 모습에 아이가 물었다.
“왜 갑자기 멈춰요, 향이 누나?”
“아무래도 돌아가야겠다, 정아.”
“왜 돌아가요?”
“그냥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래. 어서 가자.”
“난 저기 건너갈래요. 저기에 당과 파는 아저씨가 있잖아요. 오늘 사 주기로 했잖아요.”
“다리 건너편 말고 다른 데서 사 줄게.”
향이라 불리는 누이는 동생의 소매를 잡았다.
동생 정이는 다리만 건너면 맛있는 당과가 있는데 길을 돌아가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나이 차가 꽤 나는 두 남매의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급기야 동생 정이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울먹이는 아이 앞에 길 가던 거지 하나가 멈췄다.
“허허, 누나 말을 잘 들어야지.”
누군가 갑자기 끼어들자 정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상대가 거지라는 것을 알고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거지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정이는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거지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거지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허, 이거 참. 잘 생각해 봐라, 똥통에 머리를 들이밀 필요는 없지 않느냐?”
“…….”
정이는 거지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수수께끼를 풀겠다는 듯 눈을 껌뻑이는 정이.
거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기 무사들 보이지? 그리고 저 깃발도 보이고?”
“네, 보여요.”
정이는 수수께끼 같은 거지의 말에 빠져든 듯 눈을 빛냈다.
“저게 바로 진짜 골통, 아니 똥통이란다.”
“똥통이요?”
아이는 눈을 크게 떴다.
수수께끼의 정답을 얻어 냈지만, 더 큰 의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지가 말을 이었다.
“그래, 사람들은 똥을 피하는 이유가 과연 뭘까?”
“더러워서 피하죠.”
정이는 거지와의 대화에 빠져든 듯 말을 마친 후 마른침을 삼켰다.
거지와의 대화는 마치 스무고개 같았다.
그 모습에 거지가 만족한 듯 말을 이었다.
“그래 보통은 더러워서 피하지, 그런데 무서워서 피하는 똥도 가끔 있단다. 저놈들처럼 말이야.”
“똥이 왜 무서워요?”
“똥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구나.”
거지는 씩 웃으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정이는 한 걸음 물러났다.
며칠은 안 씻은 듯한 얼굴에, 수염에는 밥풀까지 묻어 있는 전형적인 거지였다.
그가 드러난 하얀 이는 마치 캄캄한 동굴에서 튀어나온 맹수처럼 보였다.
물론 열 살도 안 된 정이의 착각이었다.
정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 거지 아저씨가 더 무서워요, 누나!”
정이는 고개를 힐끔 돌리고는 누이를 불렀다.
향이는 안절부절못하는 듯 동생을 끌어안았다.
“정이야,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꾸나.”
“아니, 거지 아저씨가 더 무서…….”
정이는 거지가 있던 곳을 가리켰다.
그것도 잠시, 정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까지 대화를 나누던 무서운 표정을 한 거지 아저씨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진짜 눈 깜빡할 사이였다.
정이는 눈을 비볐다. 자신이 착각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이는 콧등을 씰룩였다.
아직도 거지가 남겨 놓은 냄새는 남아 있었다.
절대 착각은 아니었다.
그 찰나에 특유의 악취만 남겨 놓은 채 거지가 사라진 것이다.
정이가 입을 벌리고 있자, 누이인 향이가 말했다.
“저 거지는 무림인이야, 정이야.”
“무림인이요?”
“그리고 저기 다리 위에 있는 사람도 무림인들이고.”
향이의 말에 정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림인이면 막 사라지고 그러는 거예요?”
“사라지는 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빨리 움직이지. 저기 봐.”
향이가 가리킨 곳은 강 건너.
그곳에는 방금까지 대화를 나누던 거지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한참을 보던 정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누나, 조호 형아도 무림이라고 했잖아요.”
“아, 그건 그렇지…….”
“그럼 조호 형아도 저런 거 할 수 있어요?”
“음,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향이는 말끝을 흐렸다.
요즘 만나고 있는 천수장의 조호를 떠올린 것이다.
향이는 다름 아닌 한빈이 연서(戀書)를 대필(代筆)해 줘서 맺어 준 조호의 인연이었다.
향이는 조호와 강 건너의 거지를 머릿속으로 비교해 봤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입에 풀칠을 하려고 칼을 든 무사와 저런 고수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저쪽에서 거지가 손을 흔든다.
향이는 재빨리 동생 정이의 소매를 잡아끌고 자리를 벗어났다.
조호가 한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무림인을 보면 절대 상대하지 말란 충고였다.
뭐, 조호에게만 들었던 말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석화교를 피해 가는 이유는 있었다.
사천당가 사람과는 옷깃만 스쳐도 중독된다는 속담 때문이다.
강호의 속담이 아니라, 마을에서 흔히 도는 낭설이다.
그만큼 사천당가는 일반 백성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암기와 옷깃만 스쳐도 상대를 중독시킬 수 있는 독술(毒術)은 태산을 가르는 고수의 검보다도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은 대상에 대해 더욱 공포를 느끼곤 한다.
게다가 저렇게 당문의 깃발을 치켜들고 있다는 것은 다가오지 말라는 선전포고와도 같았다.
* * *
향이에게 손을 흔든 거지는 헛웃음을 뱉었다.
“칫, 마을 인심하고는!”
제법 큰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거지를 바라봤다.
거지를 바라보던 이들은 허리에 있는 매듭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거지 옆에 산들바람이 불었다.
사사-삭.
거지는 힐끔 고개를 돌리다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아, 깜짝이야…….”
말끝을 흐린 거지는 재빨리 상대를 향해 포권했다.
“무제자 어르신, 깜짝 놀라지 않았습니까?”
“광개야, 거기서 뭐 하느냐?”
“사천당가가 뭐 하는지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꼬리에 불붙은 늑대처럼 뛰어다니는 사천당가를 신경 써서 뭐 하게?”
“뭔가 중요한 것을 찾고 있는 것 같아서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에이, 저놈들이 똥을 싸든 방귀를 뀌든 신경 쓰지 말고 할 일만 하거라. 원래 사천당가 놈들하고는 겸상을 안 하는 법이다. 동냥밥에 독을 푸는 놈들이 어찌 정파이더냐. 상종 말아야 할 놈들이지.”
“어르신, 목소리가 큽니다. 괜히 들었다가 사천지부에 또 독을 풀면 어떻게 합니까?”
“뭐 어떠냐, 개방 방도라면 독에 대한 내성도 길러야지. 그나저나 내 제자한테 수고비는 다 받았느냐?”
“휴…….”
“왜 한숨을 쉬느냐?”
“아닙니다.”
광개를 힘없이 손을 흔들며 도망치듯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빈 이야기만 나오면 묘하게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 보는 느낌은 왜일까?
광개의 뒤에서 홍칠개가 외쳤다.
“어딜 가느냐? 이놈아!”
“일하러 갑니다, 어르신.”
석화교 위에서 무언가를 찾던 사천당가의 사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홍칠개와 광개가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누구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공자님.”
“저쪽에서 묘한 시선이 느껴져서. 휘야, 너도 느꼈지?”
“아무도 없는뎁쇼?”
“그래, 지금은 아무도 없지. 뭐, 하북에도 무가는 많으니까 그들 중 하나겠지. 그런데 왜 그렇게 못 찾아?”
“아, 그게…….”
휘라 불린 무사는 말끝을 흐렸다.
지금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쪽지였다.
그들은 사신첩과 그에 맞는 설명이 적힌 쪽지를 강북 무림세가에 전하고 있었다.
쪽지에는 사신첩을 선물로 준다는 내용과 함께 사신첩을 여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당가의 대표로 온 당기명이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쪽지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말끝을 흐리던 휘는 뭔가 생각났는지 다급히 물었다.
“공자님, 그런데 하북팽가까지는 설명이 적힌 쪽지를 잘 전달하신 거죠?”
“휘야!”
“네, 공자님.”
“너, 나 못 믿어? 내가 언제 실수하는 거 봤어?”
“아, 제가 공자님을 의심하는 건 아니고…….”
“지금 눈빛이 완전히 의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오해가 아닌 것 같은데? 하북까지 와서 한따까리 해야 하나 막 갈등이 생기네.”
“아, 저는 빨리 잃어버린 쪽지를 찾겠습니다.”
휘는 재빨리 석화교 바닥을 뒤지기 시작했다.
사실 시켜서 하지만, 휘는 당기명을 믿지 못했다.
그가 보기에 당기명의 건망증은 제법 심각했다.
가끔은 무사들의 이름도 바꿔 부르는 당기명이었다.
휘가 당가에 들어온 오 년간 당한 대부분은 당기명의 건망증에서 비롯되었다.
건망증이 심한 당기명을 사이가 안 좋은 강북에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당기명이 당가 내에서 그나마 성격이 유들유들하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었다.
휘는 한 가지만 기도했다.
이미 들른 하북팽가에 설명이 담긴 쪽지를 제대로 전달했기를 말이다.
* * *
하북팽가 가주전.
팽강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진 것은 역시 팽대위였다.
“형님, 사파의 결집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파는 지금 삼삼오오 분열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강북 오대세가와 강남 오대세가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은 것처럼, 강북의 사파와 강남의 사파는 서로 왕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형제끼리 경쟁하는 것과 같았다.
싸움 중 가장 무서운 것이 집안싸움이라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강북과 강남의 무림이 그랬다.
강북 사파는 강남 사파와 왕래가 거의 없었다.
차라리 같은 지역의 사파와 정파의 사이가 더 돈독하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등을 돌린 형제처럼, 그들은 서로를 견제했다.
그것은 정파의 무림세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강북과 강남을 물과 기름으로 비유한다.
사실 물과 기름이란 표현도 함부로 쓰면 안 되었다.
누가 물이냐 기름이냐를 두고 싸우기도 하니 말이다.
기름은 물의 위에 뜨기 마련.
기름이 상전이니 자신이 기름이라 우기는 문파나 세가도 있었다.
“이제까지는 그랬지.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사파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팽강위는 뒤쪽으로 가더니 조그만 책자 하나를 들고 왔다.
팽대위에게 책자를 전하려던 팽강위의 손이 멈췄다.
순간 팽대위는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설마 제게 책을 주시려는 건…….”
“됐다.”
팽강위는 포기한 듯 고개를 흔들더니 책을 가기군에게 주었다.
가기군은 책을 받자마자 촤르륵 넘겨 봤다.
정보를 담당하는 주작각주답게, 대략적인 내용부터 파악한 것이었다.
책을 대충 넘겨 본 가기군의 고개를 살짝 기울어졌다.
누가 봐도 의문을 품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기군이 물었다.
“가주님, 이게 대체 무슨 책입니까?”
“자네가 본 그대로이네.”
“이건 저잣거리에서 유행하는 이야기책이 아닙니까?”
“맞네,”
“그런데, 이 이야기책이 사파와 무슨 상관이라는 이야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