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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13화 (213/621)

213화. 강 건너 불구경 (3)

원래는 금빛이 아니었고 튀어나온 부분이 날카로웠기에, 금판이 아니라 칼처럼 느껴졌던 것이었다.

뭐, 황금빛 금속판을 펼쳐 놓는다면 어쩌면 칼의 모양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황금판은 이리저리 구부러져 있기에 그 형태를 짐작하기가 불가능했다.

한빈은 재빨리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 남은 시간 일각.]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태.

한빈은 재빨리 황금빛 금속판 위로 올라섰다.

순간 한빈은 탄성을 흘렸다.

황금빛 판 위에는 그림이 음각으로 파여 있었다.

그림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 그림이 초식을 의미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테지만, 남은 시간이 문제였다.

초식을 보고 그것을 이해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너무 촉박했다.

한빈이 눈을 빛냈다.

이 초식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 확신했다.

한빈은 초식 그림 하나에 손을 갖다 댔다.

순간 그림이 봄날 눈처럼 사르르 녹았다.

황금판 위의 그림이 사라진 대신, 비급이 나타났다.

한빈은 시야에 뜬 글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강호에 흩어진 초식의 조각이 모였습니다. 이십 분의 일.]

글귀를 확인한 한빈은 바로 나머지 초식들을 손으로 훑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사사-삭

구걸십팔보를 극성으로 펼치며 누비자, 황금판의 초식들은 모두 사라졌다.

동시에 눈앞에 글귀가 나타났다.

[강호에 흩어진 용린검법의 초식을 발견했습니다.]

[초식의 이름은 혼원벽력도, 이해도가 낮아 초식의 설명을 볼 수 없습니다.

[설명을 통해 완벽하게 이해한다면 본래 형태로의 전환이 가능합니다.]

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융합편의 초식을 확인했다.

[융합편]

[……]

[혼원벽력도]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혼원벽력도라는 다섯 글자를 볼 때마다 집중력이 깨졌다.

아무리 봐도 혼원벽력도라는 단어만 눈에 들어올 뿐, 그 설명이 보이지 않았다.

역시 비급이 전한 내용 그대로였다.

그때 비급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해도에 필요한 조건은 혼원보, 혼원장, 오호단문도입니다. 세 가지를 익힌 후 다시 설명을 확인하십시오.]

혼원벽력도도 용린검법의 흔적이 묻은 초식이었다니?

가문에서 반쪽만 남았다는 혼원벽력도였다.

한빈이 얻은 혼원벽력도는 완전한 비급이 분명했다.

문제는 지금 당장 볼 수는 없다는 것.

어쩌면 혼원벽력도의 설명을 볼 수 있는 세 가지 무공을 얻기 위해서 꽤 많은 시간인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는 법.

한빈은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수만 가지 가능성으로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때였다.

한빈이 올라탔던 황금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말이다.

자세히 보면 지하층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고 넓게 펴진 황금판만이 흔들렸다.

한빈은 재빨리 황금판에서 내려와서 반대편 벽 쪽으로 물러났다.

그 전에 보였던 기세와는 다르게 묘한 이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빈이 느낀 것은 살기였다.

그때였다.

황금판의 빛이 점점 흑빛으로 변했다.

검은빛을 띤 황금판, 아니 철판은 폭발음을 냈다.

쾅!

철판이 조각나는 동시에, 암기가 되어 한빈에게 날아왔다.

휙. 휙.

암기가 되어 앞을 가득 채운 철 조각 덕분에 앞이 시커멓게 변했다.

마치 당가의 만천화우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물처럼 빽빽하게 날아오는 암기로부터 숨을 공간은 없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금선탈각.’

동시에 한빈의 신형이 사라졌다.

한빈이 나타난 곳은 지하층으로 내려오는 계단.

한빈은 자신이 서 있던 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조각난 철판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저 정도의 양이라면 어떤 수법으로도 막을 수 없을 터.

오직 금선탈각만이 살아날 길이었다.

이것은 오직 용린의 주인에게만 안배를 전하겠다는 뜻.

만약 한빈이 용린의 주인이 아니라면?

꼼수를 써서 안배를 얻었더라도 저 암기에 걸레가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쩝,”

혀를 찬 한빈은 계단에서 지하로 뛰어내렸다.

황금빛 철판이 차 있던 곳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휑하기만 했다.

한빈은 반대쪽을 바라봤다.

“이건 대체…….”

한빈은 말끝을 흐렸다.

벽에 박혀 있는 암기의 간격이 일정했기 때문이다.

당가의 최고 비기인 만천화우라도 암기를 저렇게 벽에 박을 수는 없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어찌 간격이 일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저 암기의 간격은 일정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간격을 두고 벽에 수놓아진 암기.

“혹시?”

혼잣말을 뱉은 한빈은 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순간, 다시 비급이 반짝였다.

[용안(龍眼)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지급(地級) 구결 만(滿)을 획득하셨습니다]

한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암기가 박힌 벽을 바라봤다.

어찌 보면 이중으로 안배를 해 놓은 것.

이 안배를 준비한 이는, 제갈공명보다 지략이 뛰어나고, 무당의 조사인 장삼봉보다도 무력이 뛰어난 자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 시대를 풍미한 자였을 가능성이 컸다.

거기에 더해 천하 십대세가를 아우르는 자여야 했다.

하남정가와 황보세가 그리고 하북팽가까지 안배를 펼쳐 놓았으니 말이다.

이상한 것은 한빈이 아는 한, 그런 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과연 누굴까?

강호를 해치려는 자와 구하려는 자.

두 거대한 수레바퀴 사이에 한빈이 낀 것만 같았다.

의문도 잠시, 한빈은 계속 벽을 살폈다.

하지만 더는 구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다급한 발소리가 천장에서 들려왔다.

타다닥, 타다닥.

맹호비고의 문이 열렸는지 계단 쪽에서 희미하게 빛이 들어왔다.

그 빛줄기를 타고 두 신형이 지하로 내려왔다.

“한빈아, 팽한빈!”

첫 번째로 들린 목소리는 팽대위였다.

“아우야, 무슨 일이냐?”

두 번째 목소리의 주인공은 대공자 팽혁빈이었다.

둘은 횃불을 들고 있었다.

그 둘은 동시에 한빈에게 다가와 상태를 살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팽혁빈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별일 아닙니다.”

“지금 집법당의 전각이 흔들릴 정도인데, 별일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그건 그렇고 몸은 괜찮은…….”

순간 팽혁빈의 눈이 커졌다.

한빈의 붉은 무복이 넝마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팽혁빈은 더욱 가까이 불빛을 비춰 봤다.

한빈의 뒤에는 수많은 암기가 빼곡히 박혀 있었다.

팽혁빈이 입을 딱 벌리고 있자, 옆에 있던 팽대위가 대신 나섰다.

“일단 여기에서 나가자.”

* * *

한 시진 후.

집법당에 마주 앉은 셋은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팽대위는 한빈을 의당에 보내고 치료하려 했다.

하지만, 한빈이 한사코 손을 내저으며 옷만 갈아입고 이곳으로 왔다.

팽대위는 한빈에게 물어볼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하가 완벽하게 잿더미가 된 일도 그렇고, 벽에 박혀 있던 암기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가 난감했다.

팽대위는 힐끔 팽혁빈을 바라봤다.

팽혁빅도 입술만 달싹거리며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팽대위는 둘을 번갈아 봤다.

두 명의 소가주 후보가 모두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요즘 들어 혁혁한 공을 세우며 전면에 나선 한빈이었지만, 묘하게 가문과는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팽대위가 한빈에게 잘해 준 것은 가문의 균형을 위해서였다.

가장 약한 후보를 보호해 줌으로 소가주 후보 경쟁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려는 뜻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 한빈은 어떠한가?

지금 소가주로 낙점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물론 대공자 팽혁빈이 빠지는 것은 아니었다.

뭐, 대공자 팽혁빈의 속내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한빈이 입을 열었다.

“일단 제가 겪은 상황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한빈은 마치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단숨에 설명을 끝냈다.

설명은 간단했다.

불이 나서 지하층이 싹 다 타고 벽 쪽에서 무지막지한 암기가 튀어나왔다는 것이었다.

물론 불은 지난번에 한빈이 지른 것이지만, 폭약이 터졌다고 살짝 거짓을 덧씌웠다.

이로써 한빈은 지하층 소각에 대한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한빈은 자신이 겪을 일을 안배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실체도 없는 완벽한 혼원벽력도를 얻었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한빈은 누군가의 음모로 설명했다.

한빈의 설명을 들은 팽혁빈이 물었다.

“그럼 누군가 너를 해치려 했단 말이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네가 다칠 뻔하지 않았느냐?”

“제가 다칠 뻔한 것은 우연이죠. 생각해 보십시오. 아까 확인한 암기라면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야 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소가주 후보로 임명되고 맹호비고에 그런 변화가 있었습니까?”

“흠.”

팽혁빈은 헛기침을 했다.

한빈의 말이 정확했기 때문이다.

벽의 암기를 확인해 보면, 이건 사천당가에서 설치한 함정이라 해야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함정을 아무런 소란 없이 맹호비고 지하에 만들 수 있다라?

이건 불가능했다.

팽혁빈이 물었다.

“그렇다면 네 의견은 무엇이냐?”

“저는, 소가주가 된 자를 해치려 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소가주가 된 자라고?”

“생각해 보시면 간단합니다. 맹호비고 지하에 들어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맹호비고 지하라?”

“관리도 안 되는 곳이 아닙니까?”

“그야 그렇지.”

“그럼 맹호비고의 지하에 들어가야만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시면 간단하죠.”

“그 경우라면…….”

“소가주로 임명되면 가문의 모든 시설을 한 달 안에 살필 의무가 있습니다. 그 모든 시설이라 하면 지하도 포함되겠죠.”

그때였다.

팽대위가 눈을 빛내며 끼어들었다.

“생각해 보니 너는 얼마 전에 맹호비고의 지하에 출입할 권한을 얻어 그곳을 살피지 않았느냐? 그때는 멀쩡했는데 왜 오늘은 함정이 발동되었다는 말이더냐?”

한빈이 눈을 가늘게 떴다.

팽대위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빈은 이 대답 역시 준비해 놨다.

“그건 간단합니다. 지난번에는 운이 좋았던 겁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계속해 보아라.”

“도둑을 잡기 위해 철질려는 사방에 뿌려 놔도, 아무 일 없이 통과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아.”

팽대위는 탄성을 흘렸다.

한빈의 논리에는 허점이 없었다.

운이라는 게 수치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팽대위가 물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운이 나빴다는 거군?”

“아니죠. 이번에는 운이 더 좋았던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함정이 발동되었는데도 살아남았으니 그게 운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아마 제 평생 운을 이번에 다 쓴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죠.”

“…….”

팽대위와 팽혁빈은 말없이 한빈을 바라봤다.

계속하라는 무언의 재촉.

한빈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는 적을 주시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적이라면…….”

“황실과 우리 가문의 적, 한마디로 강호 공공의 적이죠. 장운현에서 일을 벌인 집단과 하북팽가를 노리는 집단은 같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

한빈의 말은 한 시진이 지나서도 멈추지 않았다.

한빈의 의도는 간단했다.

뒤통수 맞을 일 없도록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지금 한빈의 의견을 저들이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가문이 타격을 입을 일은 없을 것이었다.

외부의 적은 강유찬이.

혹시 모를 적의 침입은 가주를 중심으로 대비하는 것이 맞았다.

이제 한빈은 강해지는 것만 신경 쓰면 되었다.

한참 동안 이어지던 한빈의 설명이 멈췄다.

한빈이 마른 입술을 차로 적실 때였다.

한빈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갑자기 비급이 반짝이며 새로운 글귀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혼원벽력도에 대한 보충 설명이 도착했습니다.]

뭐지?

한빈은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 글귀를 마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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