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206화 (206/621)
  • 206화. 뜻밖의 보상 (1)

    흑선이 외쳤다.

    “조심해!”

    “빠져나갈 준비를 해!”

    한빈도 같이 외쳤다.

    같은 원인에 대해 둘은 전혀 다른 말을 했다.

    흑선은 바람을 보고 어디선가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을 감지하고 던진 말이었고, 그에 반해 한빈은 폭발이 일어난 틈을 타서 빠져나가자는 뜻이었다.

    한빈은 대충 시간을 가늠해 봤다.

    대충 두 시진이 지난 것 같았다.

    두 시진이라면?

    공손명후가 입구를 막기로 한 시간이었다.

    한빈은 혀를 찼다.

    막으라고 해서 흙을 덮고 비석을 쓰러뜨릴 줄 알았는데, 입구를 폭파시킨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자신을 걱정하는 것 같더니만,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입구를 막은 공손명후를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거기에 한술 더 떠 폭약이라니!

    물론 황실의 스승을 배출한 가문이니 관아에서 허가한 폭약을 지니고 있을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폭약은 조금은 지나쳤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넋두리를 속에 새길 때가 아니었다.

    한빈은 눈매를 좁히고 상황을 주시했다.

    순간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청강석이 들썩인다.

    거대한 압력이 밀려와 밀폐된 공간을 움직인 것이다.

    한빈이 흑선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구걸십팔보를 펼쳤다.

    사사삭.

    한빈은 미꾸라지처럼 무너지는 청강석 사이를 빠져나갔다.

    구석 위쪽까지 올라가자 조금 다른 재질의 천장이 가로막고 있었다.

    짙은 흑색의 차가운 물질.

    그것은 무쇠였다.

    ‘혹시?’

    한빈이 떠올리기도 전에 무지막지한 화기가 느껴졌다.

    한빈은 그제야 깨달았다.

    한빈이 배치해 놓은 기름통과 화약 중 불발탄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본래라면 첫 번째 지진 때 기름이 터져야 했다.

    지도를 떠올려 보니 이 방의 근처였다.

    그게 지금에서야 충격을 받고 터진 것 같았다.

    한빈은 숨을 들이쉬었다.

    “흡.”

    조금 전까지 육포가 될 것을 걱정했다면, 지금은 꼬치구이가 될 것을 걱정해야 했다.

    덮쳐 오는 화기가 더 빠를지 아니면 발이 빠를지를 시험해 봐야 했다.

    천장을 덮은 무쇠에 틈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거대한 압력 때문에 천장이 들썩일 수도 있었다.

    그때가 바로 기회였다.

    한빈은 재빨리 내공을 운용했다.

    가장 빠른 보법을 써야 했다.

    준비를 마친 한빈은 흑선의 목덜미를 틀어쥐었다.

    아직 회복을 못 한 흑선이 그 짧은 순간에 틈 사이를 빠져나갈 수는 없을 터.

    이대로 두면 육포구이가 될 터였다.

    화르륵!

    후!

    강하게 불어오는 화기.

    동시에 거대한 압력의 해일이 온몸을 덮쳐 왔다.

    한빈은 때를 가늠했다.

    하나.

    둘.

    셋.

    시간이 되었다.

    얼핏 보니 슬쩍 천장이 들썩인다.

    동시에 발끝에 타들어 가는 통증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금선탈각.’

    휘리릭.

    한빈의 신형이 한 줄기 옅은 그림자가 되어 잔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밖으로 빠져나온 한빈은 흑선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한빈이 착지한 곳은 제법 큰 구멍에서 두 걸음 떨어진 곳이었다.

    한빈이 막 안도의 한숨을 쉬려 할 때였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흰색 구름 대신 흑빛 구름이 보였다.

    순간 한빈이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구름이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쇠뭉치였다.

    한빈은 재빨리 흑선을 옆으로 던졌다.

    휙.

    흑선이 종잇장처럼 날아갔다.

    흑선을 던진 한빈도 재빨리 굴렀다.

    일어날 시간도 없이 옆으로 휘리릭 굴렀다.

    그때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쾅.

    귀청이 찢어질 듯한 소리에 한빈이 쇳덩이를 확인했다.

    순간 한빈은 입을 벌렸다.

    쇳덩이는 다름 아닌 불상이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나무였는데, 바닥은 쇠뭉치라서 비밀 공간의 덮개 역할을 하고 있던 것이다.

    저 와불이 높이 떠오를 정도라면?

    한빈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계속된 위기 중 하나라도 못 벗어났다면, 한빈의 마지막은 육포 아니면 토끼구이가 될 뻔했다.

    “휴.”

    한빈은 한숨을 내쉬며 옆을 바라봤다.

    한빈의 시야에 끙끙거리며 일어나는 흑선의 모습이 보였다.

    한빈은 재빨리 흑선을 잡아끌고 구걸십팔보를 펼쳤다.

    사사삭.

    한빈은 순식간에 와불의 옆에서 사라졌다.

    * * *

    한빈이 사라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장운현의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밖을 보기 시작했다.

    이제 잠잠해진 것처럼 보여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쉴 때, 상인 중 하나가 외쳤다.

    “모두 저길 보게!”

    그가 가리킨 곳은 와불이 있는 곳이었다.

    다른 이들도 웅성대며 한마디씩 했다.

    “저기 뭐지?”

    “그러게 말이야.”

    모두는 점포에서 나와 와불로 모여들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묘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그들은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빠르게 와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와불 앞에선 이들은 모두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들이 이런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와불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나온 공손수도 합장했다.

    이전에는 누워 있던 와불이, 좌선하는 불상으로 바뀐 것은 공손수의 계책.

    하지만, 지금 와불이 움직인 것은 누구의 계책도 아니었다.

    공손수의 머리로도 이해가 안 될 상황이었다.

    물론 밑에 있는 기름이 터지며 그 화기와 압력에 들썩였던 와불이 움직인 것이지만, 이를 아는 이는 없었다.

    제자리로 내려왔는데 와불이 바라보는 방향만 바뀐 상태.

    상인 중 누군가가 말했다.

    “하북팽가의 사 공자 말이 맞았네.”

    “뭐가 맞아?”

    “경천동지할 일이 생기면 집에 꼼짝 말고 있으라고 했잖아. 저기 봐, 나와서 돌아다녔으면 큰일 날 뻔했어.”

    상인이 주변을 가리켰다.

    주변은 그야말로 아수라장.

    사실 마지막 폭발이 제일 큰 피해를 줬다.

    그때 다른 상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북팽가의 사 공자는 어떻게 천기를 읽었을까?”

    “에이, 생불이잖아, 생불.”

    “그러게 말이여. 진짜 살아 있는 관음보살님이 맞나 벼.”

    그때였다.

    와불이 서 있는 방향을 보고 있던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다들 여기 봐 봐!”

    “뭔데, 또 무슨 일이야?”

    “여기를 보라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 상인이 가리킨 곳은 와불의 머리였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 상인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와불님의 머리가 왜?”

    “아니, 머리 말고 눈 말이야.”

    상인은 답답한지 검지로 와불의 눈을 향해 콕콕 찍는 시늉을 했다.

    “눈이 왜?”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눈이라고 말을 해 줬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

    상인이 답답한지 가슴을 팡팡 치며 말을 이었다.

    “지금 와불님이 어딜 보고 있는지 보라고.”

    “와불님이 어딜 보는지를 우리가 어떻게 알아? 극락세계를 보고 계시겠지.”

    “아니, 저쪽에 뭐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저쪽이야 마을 밖인데, 뭐가 있겠어.”

    “그 너머에 말이야.”

    상인이 손가락으로 포물선을 그렸다.

    마을 밖을 가리킨 것이다.

    상대는 다시 물었다.

    “그 너머에?”

    뭐,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고개를 갸웃할 때, 와불의 머리를 가리켰던 상인이 또박또박 큰소리로 외쳤다.

    “하북팽가!”

    순간 모두의 눈이 커졌다.

    방금까지 생불이라 칭찬했던 하북팽가의 사 공자.

    그리고 이제껏 그들이 믿고 있던 와불.

    그런데 와불이 하북팽가를 바라보고 있다라?

    이것은 그들의 가슴에 묘한 믿음의 불씨를 지폈다.

    와불에게 합장하던 이들의 방향이 점점 바뀌었다.

    그들 모두는 하북팽가 쪽으로 머리를 숙였다.

    * * *

    한참을 가던 한빈은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이상하게도 뒤통수가 따가웠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흑선이 물었다.

    “왜 그러는가?”

    “뒤통수가 따가워서.”

    “팽 공자를 욕할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야 모르지.”

    둘은 이곳까지 오면서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흑선의 눈빛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금제를 걸었지만, 자신의 생명을 구한 한빈을 원망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한빈은 백선의 치료를 약속한 상태.

    흑선에게 한빈은 한 줄기 희망이었다.

    거기에 더해 둘은 진짜 동료처럼 말을 놨다.

    흑선은 한빈에 비하면 한참 형이지만, 공통의 적을 가진 동료로서 편하게 대하기로 한 것이다.

    한빈이 말했다.

    “그럼 내가 말한 곳으로 가 보라고. 거기에 백선이 있을 테니.”

    “고맙네.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아니, 잘 숨어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니, 걱정 말고.”

    한빈이 손을 내저었다.

    흑선이 한빈에게 포권했다.

    “그럼 이만.”

    “잠시만, 그런데 장운현에 관심을 둔 이유가 대체 뭐지?”

    “내가 알기로, 흑룡단주는 특이체질을 찾고 있었네.”

    “특이체질이라…….”

    “무극지체라는 체질일세. 무극지체를 가진 이를 찾아서 특수한 약을 복용시킬 것이라 했다네.”

    “약이라?”

    “얼핏 지선에게 들은 얘기로는, 용이 남긴 흔적이라고 했네.”

    “흠.”

    한빈이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했다.

    묘하게 흑룡단주란 인간은 자신과 자꾸 엮이고 있었다.

    그 헛기침의 의미를 모르는 흑선이 말을 이었다.

    “참, 천독을 제거해 준 일도 고맙네.”

    “그게 왜 고맙지?”

    “우릴 추적할 수 있었던 것이 천독의 독 때문이라 알고 있는데, 그를 제거했으니 백선 누님과 나도 쉽게 몸을 숨길 수 있겠지.”

    “참, 흔적을 감추려면 철저히 하라고, 그러니까…….”

    한빈은 몇 가지 방법을 말해 주었다.

    독을 제거하는 방법.

    천리추종향을 완벽히 지우는 방법.

    그리고 위치를 추적당할 장신구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 상단전을 개방한 흑선이니 잘 알아들었을 것이라 한빈은 생각했다.

    흑선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한빈도 재빨리 움직였다.

    사사삭.

    한빈은 풀잎 밟는 소리만 남기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빈이 향한 곳은 강유찬이 있는 초소였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차에서부터 적혈맹호대까지, 모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한 것은 모두가 움직이지 않고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

    거기에 강유찬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한빈이 어슬렁어슬렁 적혈맹호대의 앞에 나타나자 설화가 달려왔다.

    “공자님.”

    “무슨 일이야?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그게, 이무명 호위가 전해 준 쪽지대로 따르는 바람에요.”

    설화의 얘기대로라면 한빈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한빈이 재빨리 물었다.

    “그런데 강유찬 대인은 어디에 있고?”

    “그 쪽지 때문에 막사에서 회의하고 있어요, 공자님.”

    “회의를 하고 있다고?”

    한빈은 눈매를 좁히며 막사를 돌아봤다.

    고민을 길지 않았다.

    한빈은 지체 없이 막사를 향해 달려갔다.

    한빈을 알아본 군졸들도 한빈의 앞을 막지 않았다.

    도리어 친절히 길을 열어 줬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막사에서 열띤 토론을 하는 이유가 바로 한빈이 남긴 쪽지 때문이 아니던가?

    “들어가시죠.”

    손짓하며 안쪽을 가리키는 군졸의 말에 한빈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인사를 하고 들어서자, 설화의 말대로 막사 가운데에 있는 탁자를 둘러싸고 모두가 침을 튀기고 있었다.

    한빈은 헛기침을 했다.

    “흠.”

    왔다는 기척을 일부러 낸 것이다.

    기척을 느낀 강유찬이 고개를 돌렸다.

    순간 커진 그의 눈과 호기심에 가득 찬 한빈의 눈이 마주쳤다.

    먼저 반응한 것은 강유찬이었다.

    강유찬은 마치 경공술을 펼치듯 한빈에게 달려왔다.

    뭐, 착각이 아니라 화산파 최고의 경공술인 자하신보를 펼인 것이었다.

    한빈의 앞에 온 강유찬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무슨 일이십니까? 제가 남긴 쪽지 때문에 회의 중이시라 들었습니다.”

    “이걸 보고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부관과 몇몇 수장들이 모여서 머리를 짜내고 있었네.”

    강유찬은 한빈에게 쪽지를 건넸다.

    “이게 자네가 건넨 쪽지가 맞는가?”

    “살펴보겠습니다.”

    쪽지를 건네 한빈의 눈빛이 떨렸다.

    쪽지에 적힌 내용을 보니, 한빈이 준 것이 맞았다.

    한빈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혼잣말을 뱉었다.

    “아, 이게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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